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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총 대격돌! 고려아연 崔 vs 영풍 張 ‘배당戰’

[이현준의 G-zone] 배당 이면 경영 주도권 다툼 포석… 성장이냐 분배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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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입력2024-02-29 16: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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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준의 G-zone’은 기업 지배구조(Governance) 영역을 중심으로 경제 이슈를 살펴봅니다.
    ‘1만 원 vs 5000원’

    세계 1위 아연 제련 기업 고려아연에서 또 동업자 장 씨‧최 씨 가문 간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배당금 관련 이견 때문입니다. 최윤범 회장이 취임한 2021년 하반기부터 수차례 신경전이 벌어져왔기에 ‘새삼스레…’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이번 문제는 조금 다릅니다. 1949년부터 75년간 이어진 동업 역사 이래 처음으로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이 벌어지거든요.

    “이만하면 됐지” vs “이정도론 안 돼”

    고려아연(왼쪽), 영풍 로고. [고려아연, 영풍]

    고려아연(왼쪽), 영풍 로고. [고려아연, 영풍]

    사건의 발단은 2월 19일 고려아연 이사회가 발표한 결의안입니다. 이날 고려아연 이사회는 지난해 결산 배당금을 보통주 한 주당 5000원으로 확정하는 안건을 의결했습니다. 지난해 중간배당으로 한 주당 1만 원을 지급했으니 총 1만5000원이 지급된 셈이죠. 2022년(2만 원)보다 5000원이 줄어든 액수입니다. 또 이사회는 결의안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시 ‘외국 합작법인’에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던 규정을 삭제하는 내용도 담았습니다.

    장 씨 측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20일 배당 축소에 대해선 “주주들의 실망이 크고, 주주들이 회사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돼 주가가 하락할 위험이 있다”고 했고, 제3자 배정 유상증자 관련 규정 개정에 대해선 “지분가치 희석으로 인해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한다”며 “고려아연은 2022년 9월부터 사실상 국내 기업이나 다름없는 외국 합작법인에 대한 잇단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전체 주식의 약 10%에 달하는 신주 발행과 자사주 매각 및 상호지분투자 등으로 약 16% 상당의 지분을 외부에 넘겼다”고 비판했죠.

    최 씨 측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26일 자신들에 대해 지지의사를 밝힌 소액주주연대 액트의 말을 빌려 곧 반박문을 내놨습니다. 이미 고려아연은 높은 주주환원을 통해 주주의 권익을 충분히 보호했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론 이렇습니다.



    “고려아연의 주주환원율은 개별 기준 68.8%, 연결 기준 76.3%로 지난 10년간 선진국 평균인 68%와 같은 수치다. 이는 대한민국 상장사 주주환원율 평균 28%(KB증권 분석)에 비해 높은 수치다. 지난해 주주환원율은 76.3%로 2022년(50.9%)에 비해서도 훨씬 높아졌다. 환원액도 2022년 3979억 원에서 지난해 4027억 원으로 증가했다. 영풍의 주장대로 배당금을 높이면 주주환원율이 96%에 육박한다. 기업이 모든 이익금을 투자나 기업환경 개선에 할애하지 않고 주주환원에 쓰는 것은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가치와 주주권익을 떨어뜨린다.”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 씨 측은 27일 이 주장에 이렇게 다시 반박하며 점입가경 형국을 만들었습니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의 비율)은 56.76%로 2022년 49.77%, 2021년 43.58%에 비해 증가한 것은 맞지만 시가배당률(한 주당 배당금이 배당기준일 주가의 몇 %인가를 나타낸 것)로 따지면 같은 기간 3.75% → 3.54% → 3.00%로 감소 추세다. 배당성향이 높아진 까닭은 최근 경영실적이 좋지 않아 수익성이 나빠진데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으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할 주식 수가 급격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연결 기준)은 5331억 원으로 2022년(7982억 원)에 비해 급감했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21년 10.95%에서 지난해 5.65%로 반토막 났다. 당기순이익이 폭락하면서 배당성향이 높아진 것처럼 착시 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고려아연이 2022년부터 한화, LG화학, 현대차그룹 계열사 등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자사주 맞교환 등을 하면서 배당금을 지급해야 할 주식 수가 320만 주, 약 16% 늘어난 것도 배당성향이 높아 보이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다.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으로 인해 생긴 피해를 기존 주주들에게 전가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그러자 같은 날 최 씨 측은 여기에 재반박을 가했습니다. “장 씨 측의 경영 간섭과 방해가 심각하다”며 “이는 독립경영 불문율을 깬 것”이라고 했죠. 즉 ‘동업자 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논점을 ‘배당 문제’에서 확대한 셈입니다.

    최 씨 측은 “75년간 동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각자 독립경영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의 본질은 주주권익 보호가 아니라 영풍 경영진이 ‘독립경영 체제’라는 동업자 간 불문율을 깨뜨리고 경영에 간섭하는 등 신의를 버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격해지는 갈등만큼 감정의 골도 깊어진 건지, 이번엔 다소 ‘감정적’ 표현도 섞였습니다. “고려아연의 2022년 영업이익은 1조 원에 육박한 반면 영풍은 2021년 728억 원 적자에 이어 2022년엔 1000억 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만성적 적자구조에 허덕이고 있는 영풍이 고려아연의 경영실적을 지적할 입장은 아닌 것 같다”고 했죠. 한 마디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뜻입니다.

    박빙 승부, 3월 19일 결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장형진 영풍 고문. [고려아연, 영풍]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장형진 영풍 고문. [고려아연, 영풍]

    배당액이 얼마냐를 두고 격화된 건 맞지만 두 가문의 갈등을 배당 문제로만 보면 ‘수박 겉핥기’와 다름없습니다. 이 둘이 표대결까지 불사하게 된 까닭은 배당금이 향후 경영 주도권 판세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두 가문은 지난해 8월부터 치열하게 지분경쟁을 하고 있거든요. 서로 평화롭게 지내던 두 가문이 싸우게 된 이유는 가려고 하는 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의 핵심 계열사입니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세운 영풍기업사로부터 태동했고요. 석포제련소를 운영하는 영풍 및 전자계열은 장 씨, 온산제련소를 운영하는 고려아연은 최 씨가 경영해왔습니다. 분리 경영을 하긴 했지만 상대 일가의 계열사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한 지붕 두 가족’으로 살아왔습니다. 예컨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가 영풍이고, 최 씨 일가의 영풍 지분도 20%에 육박하는 식이죠.

    2021년 최 씨 3세 최윤범 회장이 고려아연 경영을 맡으며 두 가문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아연의 향후 경영 방향에 대해 최 씨 측과 장 씨 측의 의견이 달랐거든요. 최윤범 회장은 취임 후 신재생에너지‧2차전지 소재‧리사이클링(자원 순환) 사업을 골자로 하는 신사업 ‘트로이카 드라이브’를 적극 추진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 역사상 최대치 수준 막대한 차입금을 들여오는 등 장 씨 측으로선 불만스러운 부분이 생겨난 거죠.

    최 씨 측도 할 말은 있습니다. 신사업을 하려면 필히 투자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돈을 끌어오는 게 당연한 일인데, 장 씨 측이 훼방을 놓는다고 여겨졌겠죠. 또 70여 년간 독립 경영을 해왔으니 경영 방향에 대해 간섭을 하는 건 월권이라고도 느꼈을 겁니다. 주식회사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수단은 결국 지분. 이에 둘은 서로 지분을 끌어모으며 힘을 키웠던 겁니다.

    최 씨 측은 주로 LG, 한화, 현대차 등 ‘백기사’를 통해 우호지분을 모으는 방식으로, 장 씨 측은 계열사를 총동원해가며 자금력을 이용해 지분을 직접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분율을 끌어올렸습니다. 최 씨 측으로선 배당금을 많이 주면 장 씨 측의 자금력을 키워주는 꼴이죠. 실제 최근 5년간 영풍이 고려아연으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3576억 원에 달하는데, 지난해 장 씨 측이 사들인 고려아연 지분이 2000억 원 어치에 달하거든요. 반대로 장 씨 측은 배당금을 줄이려는 최 씨 측의 시도가 지분경쟁에서 자신들의 힘을 꺾으려는 시도로 여겨지겠죠.

    현재 두 가문의 지분율은 최 씨 약 33.2%, 장 씨 약 32%로 박빙으로 추정됩니다. 단기적으론 최 씨 측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가면 지분 대부분이 직접 보유 지분인 장 씨 측에게 유리합니다. 배당금도 더 많이 받는데다가, 시간이 지나면 우호지분이라는 게 최 씨 측에 등을 돌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만큼 서로 배당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겁니다.

    그렇다면 두 가문의 주장 가운데 누구의 말이 더 타당할까요. 사실 정답은 없습니다. 흔히 배당을 주식의 ‘꽃’이라고 합니다. 대표적 주주환원 방법이라는 건데요. 배당금을 많이 주면 좋기야 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꼭 주주 이익 제고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주주가 이익을 실현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주가 상승에 따른 매도로 차익을 실현하거나 배당금을 받는 것이죠. 전자의 경우 회사가 성장할수록 그 차익이 커지는데, 배당을 많이 주면 방해가 됩니다. 향후 성장에 쓸 자금을 현재 나눠주는 것이 돼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주주 관점에서 전자를 노리게 하는 것, 이른바 ‘성장주’는 돈을 많이 벌어도 배당률이 높지 않습니다. 세계 굴지의 기업 애플만 해도 배당률은 연 2% 수준에 불과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가 될까 말까죠. 그런데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가 상승이 그만큼 크니까요. 주주들 사이에서도 ‘배당이 적더라도 회사가 성장해 주가가 많이 오르면 괜찮아’하는 인식이 있는 거죠. 반면 후자를 염두에 두도록 하는 담배, 금융지주 등 ‘가치주’는 배당률이 5~6%로 높은 편입니다. 예컨대 KT&G의 2021년 배당률은 6.08%, 2022년의 그것은 5.46%에 이르지만 주가는 지지부진한 편이죠.

    결국 배당을 어떻게 하느냐는 기업이 속한 산업, 업태, 경영 방향 등에 의해 결정되고 주주는 자신의 투자 전략에 맞는 기업을 고르면 되는 셈입니다. 성장을 통한 과실을 나눌 것이냐, 당장 분배를 받을 것이냐의 문제인 것이죠. 고려아연을 둘러싼 문제에서 최 씨 측은 성장, 장 씨 측은 분배를 우선하고 있습니다. 이는 향후 고려아연이 나아갈 방향에도 영향을 줄 것이고요. 고려아연을 아연 제련 업체로 보면 ‘가치주’가 되지만 2차전지 소재 업체로 보면 ‘성장주’가 됩니다. 주주들은 두 가문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결말은 3월 19일 주주총회에서 밝혀질 예정입니다.



    이현준 기자

    이현준 기자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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