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습관은 성생활을 방해한다. [Gettyimage]
놀랄 만한 통계 하나를 소개하자면 1951~1952년에 태어난 아이가 1945~1950년 태어난 아이보다 훨씬 더 많다. 6·25전쟁이 1950년 6월 25일 발발했음을 감안하면 1951년 3월 이후 태어난 아기는 전쟁 중에 잉태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피난길에서 배고픔을 겪으며 쪽잠을 잤을 터인데 어찌 부부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눌 수 있었을까. 1952년 출생아 수가 무려 72만 명으로 전쟁 이전보다 10만 명 늘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한 해 100만 명이 태어난 베이비붐(1965~1975년) 시절의 안방 환경을 떠올려보자. 그때는 단칸방에서 자식 여럿을 키워내는 부부가 많았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던 그 시절 가장들은 허리가 휘도록 일해서인지 희로애락이 낯빛에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경기도 행정역사관에 보관된 그 당시 공무원 월급명세서를 보면 급여가 1만5000(1968)~4만 원(1975) 수준이었으니 살림하는 아내들의 한숨이 깊었을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궁핍함 속에서도 부부는 운우지정을 나누며 자식을 낳고 또 낳았다.
사실 인간의 생식력이란 아무리 고단한 삶에 놓인다고 해도 언제든 불꽃이 될 수 있는 불씨와도 같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리비도(성욕)는 지친 몸과 마음일지라도 살아 있음을 증명하듯 일으켜 세워내는 힘이다. 인간이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비도(성욕)는 유치한 추태가 아니라 삶의 엔진이다. 내가 존재해야 할 이유이자 살고 싶어지는 기운이다.
리비도에 충실하라
그나저나 걱정이다. 생식력이 요즘 들어 기운을 잃어가는 것 같아서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도 꺼지지 않던 불씨(생식력)가 오히려 먹고살 만한 요즘, 더 비실비실해지는 이유가 뭘까. 어찌하여 부부싸움을 칼로 물 베기로 만들던 운우지정이 점점 쓸데없고 귀찮은 일로 의미를 잃어가는 것일까.생식력이 자꾸 떨어지는 데는 리비도 저하가 한몫하고 있다. 어지간하면 꺼질 리 없는 불씨(리비도)를 꺼지게 만드는 주범은 마음에 있다. 한창 뜨거워야 할 청춘의 가슴이 너무 차갑다. 사랑 없이도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겠지만 인생살이가 결코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스트레스가 문제다. 스트레스를 수치로 따진다면 40~50년 전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젊은이들은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마음으로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행복한 운우지정을 나눌 줄 알았던 반면, 요즘 부부들은 아늑하고 그림 같은 집에 살면서도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예민한 하루를 살아간다.
걱정은 또 어떤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어디서든 소통이 가능해선지, 집 밖 걱정을 집 안에까지 끌고 들어온다. 그러니 몸과 마음이 항상 긴장 상태일 수밖에 없다. 인체는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깨진다. 몸이 긴장하면 뇌는 생명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판단해 생존과 관계없는 생식기능을 후순위로 밀쳐낸다. 긴장 상태가 계속되는 경우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으로 이어지는 스트레스호르몬 축의 항진(亢進)에 의해 뇌, 심장, 골 근육계에는 혈류가 늘어나고 생식기에는 혈류가 감소한다. 즉 뇌하수체-난소-자궁으로 이어지는 생식호르몬 축의 기능이 약해진다. 따라서 여성은 배란장애, 월경불순, 월경량 감소 등이 나타난다.
제발 부탁이다. 퇴근 후에는 본능에 충실해야 한다. 심지어 침대에 누워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보느라 등을 돌리고 자는 젊은 부부가 적지 않다니 참으로 안 될 일이다. 침실에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불 끄고 대화해야 리비도(성욕)에 충실해진다.
과식은 성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 [Gettyimage]
매사에 너무 잘하려는 강박증도 생식력 저하를 이끈다. 완벽주의 관점에서 따지다 보면 자식을 낳아 키우는 일에 자신감이 점점 없어질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묘하다.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생각이 리비도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마음먹고 생각하기에 따라 몸이 달라지는 것이다.
요즘에는 난임(難姙)이 존재할 뿐 불임(不姙)은 거의 없다. 정자가 없고 난자가 없다면 모를까 대부분 임신에 성공할 수 있다. 난임 부부 상당수는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얼마든지 자연임신이 가능해진다.
서로에게 붉은악마가 되자
자식을 낳으면 부부의 정이 돈독해진다. 필자가 2000년 초 역삼동에서 영동제일의원이라는 의원에서 진료할 때다. 맞은편 골목에서 허름한 고깃집을 운영하던 부부가 있었다. 40대 초반 부부는 금실이 좋았지만 10년째 난임이었다. 집 근처에 난임 전문 병원이 생겼다니까 혹시나 해서 필자를 찾아왔다가 쌍둥이 임신에 성공했다. 출산 후 쌍둥이를 데리고 필자를 찾아와서는 아기가 없을 때보다 속이 편하고 즐겁다고 했다. 아이가 없을 때는 명절에 시댁을 다녀오면 꼭 싸웠지만, 아기를 낳고부터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시댁을 다녀온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예전에 비해 남편이 더 잘 자상하게 잘해 준다며 행복해했다.여성은 불덩이를 안고 태어나서 살아간다. 그 불덩이는 가슴에 있지 않고 바로 아랫배 깊숙한 곳에 있다. 다름 아닌 자궁이다. 주먹보다 작은 크기의 근육 덩어리가 생명을 잉태(임신)하면 500~1000배 커진다. 기회가 되고 운명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임신할 수 있다. 난임 시술에 스무 번 넘게 도전해도 안 되던 임신이 어느 날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사례가 우리 주변에 많다. 그런 일을 경험한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으면 하나같이 비슷한 대답을 한다. “임신 강박증을 버리고 마음과 몸이 원하는 대로 남편과 사랑했다”고.
당부하건대 남편도 아내도 생식력이 좋아지기를 원한다면 서로 기를 살려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카타르 아시안 컵에서 활약한 우리나라 축구팀의 16강전, 8강전을 떠올려보라. 거의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면서 역전승을 거뒀다. 필자는 그 경기를 보면서 인간의 생식력이 바로 이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동점골이나 역전골은 90분 경기 막판이나 연장전, 승부차기에서 나타나듯이 인간의 생식력도 기능이 잠시 나빠지더라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 배우자는 서로에게 태극기를 망토처럼 두른 붉은악마 응원단이 돼줘야 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