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규 “올해 시중은행 中 1위 하겠다”
공격적 기업 대출, 지난해 3분기 대출 잔액 5% 증가
20년 전 1위 영광 다시…
우리은행이 올해 경영전략회의를 통해 내건 목표다. 2022년 우리은행은 연간 당기순이익 2조9220억 원으로 국내 주요 시중은행 가운데 4위를 기록한 바 있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실적을 봐도 4위에 머물렀다. 그런 우리은행이 갑자기 ‘1등’이라는 목표를 내걸면서 업계 안팎의 주목을 받았다.
1위 희망 찾기 어려운 최근 성적표
1월 2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4 경영전략회의’에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발언하고 있다. [우리은행]
그는 이어 ‘미래금융 선도 은행’이라는 중장기 경영 목표도 제시했다.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조기에 완수하고 지속 가능한 개인금융 경쟁력 확보와 아시아 No.1 글로벌 금융사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우리은행의 최근 실적만 보면 쉬이 납득되는 목표가 아니다. 2022년 당기순이익 기준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한 건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의 그해 당기순이익은 3조1692억 원으로 전년보다 23.3% 더 늘었다. 순이익이 3조 원을 넘어선 건 창사 이래 최초다.
이어 신한은행이 3조450억 원으로 2위를 차지했고, KB국민은행이 2조9960억 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우리은행은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지난해 3분기까지 주요 시중은행의 순익을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이 2조8554억 원으로 가장 많은 순익을 냈고, 하나은행이 2조7664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어 신한은행이 2조5991억 원으로 3위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은 2조2898억 원에 그쳤다.
특히 지난해 3분기까지 다른 세 은행은 2022년과 비교해 모두 실적을 끌어올렸지만 우리은행은 되레 순익이 줄었다. 이를 고려하면 지난해 성적표에서 희망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은행의 주요 수익 기반으로 볼 수 있는 대출 규모를 살펴봐도 경쟁사에 뒤처진 양상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우리은행의 원화대출금 잔액은 약 274조 원으로 KB국민은행(약 336조 원), 신한은행 (약 286조 원), 하나은행(약 287조 원)보다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은행권에서는 리딩뱅크 타이틀을 얻기 위해 매년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한다. 다른 은행들도 올해 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은행이 단번에 4위에서 1위로 올라서기는 쉽지 않다.
“하나도 했으니까 ‘우리’도 할 수 있어”
우리은행의 목표가 무작정 허황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근거는 최근 은행권에서 벌어지는 순위권 변동 흐름이다. 깜짝 반등이 가능하다는 것. 대표적 예가 2022년 하나은행이 리딩뱅크에 올라섰다는 점이다. 그전 수년간 리딩뱅크 경쟁은 주로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벌여왔다. 양강 구도였지만 하나은행이 경쟁 대열에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하나은행의 실적이 뛰어오른 비결은 규제가 심한 가계금융 대신 기업금융 부분을 집중 공략한 덕분인 것으로 분석된다. 하나은행의 기업 대출 잔액은 2021년 126조3920억 원에서 2022년 144조8280억 원으로 14.6% 늘었다. 지난해 3분기엔 161조4350억 원으로 증가했다. 성장 속도가 다른 은행보다 눈에 띄게 빨랐다.
2022년 3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 취임 후 그룹 차원에서 ‘1등 DNA’를 강조하며 실적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게 성과로 이어졌다고 분석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엄격한 가계부채 관리 등으로 가계대출은 성장세가 지체됐는데, 기업 대출은 오히려 늘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이런 환경에서 하나은행이 공격적으로 기업 여신을 늘리면서 수익을 끌어올릴 수 있었고, 결국 1등 경쟁에 합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이 속한 우리금융그룹 역시 올해 반전을 꾀하기 위해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전망된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1월 그룹 경영전략 워크숍에서 “올해 시장이 기대하는 수준 이상의 성과를 보여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우리은행이 내건 ‘시중은행 당기순이익 1위’ 역시 그룹 전체 목표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우리은행 역시 ‘기업금융 명가 재건’이라는 목표를 내세우며 기업금융 강화를 외치고 있다는 점이 주목받는다. 우리은행은 전신인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시절부터 대기업들의 주거래은행으로 자리하며 법인 영업의 명가로 인정받은 경험이 있다.
“오뚝이 닮은 캐릭터처럼 ‘우리’도 부활”
우리은행 마스코트 ‘위비프렌즈’. [우리은행]
업계에선 최근 은행 간 순익 규모 격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2022년 우리은행이 연간 순익 규모 4위에 머무르기는 했지만 1위 하나은행과의 격차는 2500억 원 정도다.
과거 우리은행이 경쟁사들을 제치고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한 시기도 있었다. 2003년 우리은행은 4곳의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연간 순익 1조 원을 돌파한 바 있다. 2004년엔 무려 1조 996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회계처리상 법인세 절감 등으로 순익이 일시적으로 늘어난 영향이기도 했지만 이를 제외해도 순익 규모는 1조2900억 원가량으로 경쟁사들을 여유 있게 따돌렸다.
우리은행 역시 과거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조 행장은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올해는 우리가 준비한 영업 동력을 바탕으로 확실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1등 은행을 경험해 본 저력과 자부심을 발휘해 정말 놀라운, 가슴이 뛰는 우리의 해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조 행장은 기업 금융 강화뿐만 아니라 모바일 플랫폼 등 다방면으로 은행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도 함께 보였다. 우리은행이 금융권 최초의 캐릭터인 ‘위비’를 부활한 것도 이런 의지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우리은행 마스코트 위비는 우리은행이 2015년 만들었지만 2019년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과거 위비를 필두로 캐릭터 마케팅을 시작하고 모바일 플랫폼 시장을 선도했던 우리은행의 도전과 혁신의 과정이 떠오른다”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를 닮은 위비처럼 올해는 우리은행이 다시 일어나 1등 은행으로 도약하는 모멘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