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자산 변동 내역, 연구개발비, 비용 성격별 분류
반도체는 불황일 때 사서 호황일 때 팔아야
재무제표 분석 목표는 ‘투자 금지 기업’ 걸러내는 것
연구개발비=무형자산 회계 처리는 신약 개발 가능성 크단 뜻
김대욱 KB증권 부장은 “재무제표 분석으로 기업의 비용 구조를 파악해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김 부장은 “기업의 재무제표는 업종별 특성에 따라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주식투자 초보자에게는 낯선 용어와 숫자가 가득한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는 게 간단치 않은 일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재무제표에서 업종별 수익 구조를 분석하고 그 특성에 맞는 유의미한 지표를 파악할 수 있을까. 김 부장에게 궁금증을 던졌다.
기업 재무제표는 업종별 특성에 따라 취할 것이 따로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투자에 필요한 핵심 정보는 재무제표와 사업보고서에 모두 나와 있으므로 계정과목부터 공부해야 하는 것은 맞다. 문제는 업종마다 중점적으로 분석해야 할 계정과목이 다르다. 재무제표 분석만으로는 부족한 업종도 있다. 투자에 성공하기 위한 업종별 재무제표 핵심 포인트는 분명 따로 있다. 업종별 특징에 따라 맞춤형 분석 도구로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으면 된다.”
영업 성과 파악하려면 유형자산 변동 내역 봐야
이 대목에서 김 부장은 “주식투자자의 재무제표 분석 최종 목적은 기업의 영업 성과를 분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기업이 추진하는 영업 방향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업의 영업 성과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정과목으로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꼽았다. 그는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기업의 주된 비용인 매출원가, 판매비, 관리비를 차감해서 구할 수 있다”며 “기업의 주된 비용과 관련이 깊은 계정과목이 재무제표 분석에서 핵심이 된다”고 부연했다.기업의 영업 성과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계정과목이 대체 뭔가.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다. 첫째, 유형자산 변동 내역이다. 기업이 유형자산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매출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다. 매출액과 가장 관련이 깊은 계정과목이 바로 유형자산이다. 그런데 재무상태표에서 확인 가능한 유형자산은 총액으로만 표시돼 있다.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선 재무제표 주석에 있는 ‘유형자산 변동 내역’을 들여다봐야 한다.”
상장기업의 유형자산 변동 내역을 통해 기업의 현재 영업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는 건가.
“그렇다. 예를 들어 생산 물량을 늘리기 위해서 설비투자를 진행 중인지, 건설 중인 자산은 대부분 어떤 유형의 투자인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이 어떤 방향으로 영업을 추진하는지 파악이 가능해진다. 또 기업의 주된 비용 중 하나인 감가상각비 규모는 얼마인지, 향후 감가상각비는 어느 수준까지 증가할지도 예측이 가능해진다.”
기업의 주된 비용과 관련이 깊은 둘째 계정과목은 뭔가.
“연구개발비다. 기업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제품 개발이나 기존 제품의 품질 향상을 통해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규모 역시 기업의 매출액이 향후 증가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중요하다. 내 경험상 성장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은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거나 연구개발비 절대 금액 자체가 큰 경우가 많았다. 산업이 확장되는 과정이기에 고객이 요구하는 신제품 개발에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경기순환 업종에 속하는 기업은 연구개발비 규모가 큰 편인가.
“대체로 작은 편이다. 그 대신 꾸준히 설비투자를 늘리는 경우가 많다. 생산하는 제품 자체가 경쟁 기업과 차별화를 이루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업종 경기가 회복돼야 비로소 매출과 이익이 동시에 증가하는 기업인 경우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가 필요 없다. 소재나 부품 등 특정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기업도 연구개발에 많이 투자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업종에 속하는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많은 관심을 받아왔다.”
주식투자자에게 필수 계정과목은 유형자산 변동 내역, 연구개발비라는 것까지 언급했다. 그 외에 또 있나.
“비용의 성격별 분류다. 재무제표 주석에서 확인이 가능한 비용의 성격별 분류에서 기업의 주된 비용인 매출원가, 판매비, 관리비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재무제표 분석으로 유일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기업의 비용 구조를 파악하는 일이다. 인건비나 감가상각비 같은 고정비 비중이 높은 기업은 매출이 증가해야 이익이 증가한다. 반면에 원재료 비중이 높은 기업은 제품과 원재료의 가격 차이가 커질수록 이익이 증가한다. 기업의 비용 구조는 비용의 성격별 분류를 통해 파악이 가능하다.”
계약자산·계약부채로 조선업 경기 추측
상장기업의 재무제표 특징을 업종별로 꼽는다면.“우선 조선업의 경우 계약자산과 계약부채를 살펴봐야 한다. 거기에 조선업종 경기가 보이기 때문이다. 계약자산이란 고객이 대가를 지급하기 전이나 사전에 고객과 약정한 지급 기일 전, 기업이 고객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경우에 미지급된 금액이다. 예를 들어 A사가 어떤 제품을 만들어 B사에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치자. A사는 제품을 만들었으나 공정을 확인해보니 50%에 그쳤다. 계약상 A사가 대금을 받으려면 공정률이 80%를 넘어야 한다. 아직 공정률이 80%에 도달하지 못했기에 당장 대금을 청구할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열심히 작업한 50%에 대해서는 언젠가는 청구가 가능하다. 결국 전체 계약 금액의 50%만큼은 대금 청구를 하지 못했지만 A사가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미래에 받을 수 있는 자산으로 볼 수 있다. 계약에 따라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계약자산을 재무제표에 계상할 수 있다. 반대로 기업이 고객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기 전에 이미 고객에게서 그에 상응하는 금액을 지급받았다면 해당 금액이 계약부채가 된다. 이처럼 대규모 비용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조선, 건설, 플랜트 등 수주 기업의 매출 인식은 공사 진행률에 따라 달라진다. 공사 진행률은 실제 사용원가를 총 공사 예상원가로 나눈 백분율이다. 여기서 계약자산이 생겨난다.”
실제 조선업종 기업들의 계약자산과 계약부채는 어느 정도인가.
“한화오션의 2017~2019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계약조건이 나빴던 당시 선수금이 대부분인 계약부채(초과청구공사)보다 계약자산(미청구공사) 금액이 더 많았다. 매출 인식은 진행률 방식인데 공정별 대금 지급 비율이 낮아진 관계로 계약자산만 쌓이고 현금흐름은 나빠진 상황이었다. 한편 한화오션의 2020~2022년 사업보고서에선 선가(뱃값) 상승과 이에 따른 수주 조건 개선으로 2022년 계약부채 금액이 계약자산의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계약부채의 증가로 이전보다 현금흐름이 개선되는 영업 상황이 전개됐다. 2017~2019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계약자산이 매출채권의 3~6배에 이를 정도로 계약조건이 나빴다. 이렇게 계약자산과 계약부채를 이해하고 조선 회사의 수주 방식을 알면 재무제표 분석만으로도 조선사의 영업 상황이 개선되는지, 악화되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반도체 불황기만 지나면 전보다 큰 호황 온다
반도체업종은 불황기를 지나면 이전보다 더 큰 호황기를 맞는 특성을 보인다. 사진은 SK하이닉스 본사. [뉴시스]
“기업의 연간 투자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무제표 주석 유형자산 변동 내역을 살펴봐야 한다. 이는 반도체 업종의 재무제표 특징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의 2022년 사업보고서 재무제표 주석 중 유형자산 변동 내역을 보면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기 시작한 2022년에도 SK하이닉스는 19조6000억 원을 신규로 투자했다. 참고로 반도체 경기가 좋았던 2021년에는 13조3000억 원을 신규 투자했다. 2022년 신규 투자 금액 19조6000억 원 중 생산설비 투자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해 12조7000억 원으로 나타나 있다.”
반도체업종에 투자할 때 유의할 점이 뭔가,
“반도체업종도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한다. 그 변동 폭이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더 가파르고 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황기를 지나면 이전보다 더 큰 호황기가 찾아오는 업종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반도체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도체 경기에 대한 우려와 실제 기업 실적이 악화해 주가가 크게 하락한 시기에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그리고 반도체 기업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다는 뉴스, 반도체 경기에 대한 긍정적 전망이 지속돼 주가도 크게 올랐을 때 매도하는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
신약 개발사 투자 전 무형자산 손상차손 확인해야
요즘 바이오 기업의 신약 개발에 주목하는 이가 많다. 신약 개발 회사에 투자하려면 어떤 계정과목을 살펴봐야 하나.“무형자산에 대한 손상차손(손실)을 확인해야 한다. 재무제표에서 해당 기업의 무형자산(개발비)에 대한 손상차산이 발생하고 있는지, 발생했다면 구체적인 상세 내역까지 꼭 확인하기를 바란다. 신약 개발 회사들이 연구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회계 처리했다는 의미는 신약 개발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신약 개발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주가에 반영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무형자산으로 회계 처리한 개발비의 손상차손은 곧 신약 개발 실패를 의미한다. 신약 개발만이 유일한 영업활동인 기업과 일반 제약 회사를 구별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한미약품, 녹십자, 종근당 등 국내 대표 제약사들 역시 신약 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일반 제약사들도 연구개발비 일부는 무형자산(주로 임상3상부터 발생하는 개발비)으로 회계 처리하고 있다.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제약 회사들도 무형자산을 손실로 처리한다.”
제약사들은 기본적으로 의약품 판매로 매출과 이익을 낸다. 기업의 존폐가 신약 개발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고 말하긴 어렵지 않을까.
“일리 있는 지적이다. 하지만 신약 개발만이 유일한 영업활동인 기업의 경우는 신약 개발 실패가 기업 및 주가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임상시험 실패로 주가가 나락으로 떨어진 신약 개발 회사가 적지 않았다. 모 신약 개발 회사의 무형자산 변동 내역을 보니 개발비 대부분을 손상차손 처리했다. 현재 일부 신약 개발 회사는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뉴스로 해당 내용을 투자자에게 알리지 않고 단지 재무제표상으로만 손실 처리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재무제표를 분석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김 부장은 “재무제표 분석으로 투자 유망 종목을 발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재무제표 분석 목적은 현재 기업의 영업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무제표 분석은 투자 유망 종목이 아닌, 절대 투자하지 말아야 할 문제 기업을 걸러내는 작업임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