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流血入城’이란 말 서슴지 않던 이준석
국민의힘과 점점 더 멀어지는 길 택해
한 번도 정치적 오류 인정하지 않아
강성 유튜브 정치평론式 표현 남발
성찰 없는 나르시시즘이 비극의 씨앗
대오각성과 교정으로 달라지길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양향자 원내대표가 2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혁신당 릴레이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영상] 여의도 고수
“저는 반란군을 내쫓는 데만 온 신경이 곤두서 있으며 (어느 정도 쳐내는) 유혈입성도 하겠다.” 이준석이 2023년 8월 21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혹 이준석 당이 만들어지냐”는 질문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 본 적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한 말이다.
나흘 후인 8월 25일 정치평론가 박성민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준석 발언에 대한 질문에 “가능하지도 않고, 가능하다고 해도 좋지도 않은 일인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유혈입성이라는 말은 섬뜩하지 않는가, 정치인이라면 그런 식의 표현은 안 써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비판과 조롱·경멸은 차원이 다른 말”이라며 “분노와 조롱을 구별해야지 그러지 못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성민이 이준석 언어의 핵심을 잘 짚었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에 대한 이준석의 공격은 시종일관 비판과는 거리가 먼 조롱·경멸에 치우쳤다. 이준석 자신은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 그랬을 것 같진 않다. 그는 늘 조롱·경멸에 능한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게 바로 언론과 자신의 팬덤을 사로잡은 비결이었으니 말이다.
비판 대신 시종일관 조롱·경멸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이 2023년 9월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와 허위 인터뷰 의혹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 공작은 여권 지지자들이 분노할 만한 사건이었기에 이준석이 윤석열에 대한 공격을 한 박자 쉬어가도 좋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준석은 9월 2일 대구에서 “지금 본인(윤 대통령)은 망토 좋은 거 입었다고 착각하고 계신다”며 “왜냐하면 ‘윤핵관’들이 ‘이런 망토 처음 본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누군가는 (윤 대통령에게) ‘지금 망토 안 입고 계세요’라고 계속 이야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9월 5일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더탐사’가 윤석열이 국민의힘 입당 전 당 관계자와 통화한 음성을 보도한 이른바 “이준석, 까불어봤자 3개월짜리” 사건이 터졌다. 이 녹취에 따르면, 윤석열은 입당 전부터 이준석에게 상당한 반감을 품었다는 것인데, 이는 이준석이 당심을 얻는 데엔 매우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준석은 그런 고려 없이 오직 ‘윤석열 때리기’의 강도만 높여나갔다.
9월 7일 이준석은 인천대 특강에서 윤석열을 소설 ‘돈키호테’에 빗대며 “길거리 건달이 기사도 정신에 심취해 돌아다니고 풍차라는 적을 억지로 만들어 망상에 빠져 산다”고 말했다. 9월 9일엔 MBC 라디오 ‘정치인싸’에 출연해 ‘김만배·신학림 녹취’ 사건을 “선거에 큰 영향을 줬다고 보기 어려운 ‘무관심 폭로’였다”고 평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뉴스타파 보도를 ‘공작 뉴스’로 규정하고 “사형에 처해야 할 반국가적 범죄”라고 목소리를 높인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준석, 참 희한한 인물이다. “윤석열, 10% 차이로 이긴다”며 큰소리치던 자신의 낙관적 대선 결과 예측이 전혀 들어맞지 않아 비판을 받던 처지에서 이 ‘공작 뉴스’가 미친 악영향을 지적하는 게 좋았을 법한데도 ‘무관심 폭로’로 일축하다니 말이다. 당시 민주당이 이 ‘공작 뉴스’에 얼마나 환호했는지 기억조차 없는 걸까.
왜 자신의 오류는 인정하지 않는가
나는 이 연재의 첫 번째 글에서 “이준석을 마치 무슨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분위기를 바꾼 결정적 계기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유창훈이 민주당 대표 이재명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9·27 사건이었다”고 했다. 이 사건 덕분에 민주당도 “윤석열 검사독재정권의 무리하고 무도한 ‘이재명 죽이기’ 시도가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열광할 수 있었다는 점도 지적했다.이준석은 영장 기각 당일인 9월 27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서 “이 대표 혐의 중 백현동, 성남FC, 대장동까지 난 솔직히 지자체장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행정행위 범위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검사독재정권의 ‘이재명 죽이기’라는 민주당의 주장에 타당한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었을까.
이후 이준석은 많은 말을 쏟아냈지만, 그건 국민의힘과는 점점 더 멀어지는 길이었다. 매일 마이크에 대고 발언을 해대니, 같은 말을 또 하거나 어제보다 약한 말을 하는 건 곤란하다는 심리적 압박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저는 살다가 이런 미친X들 처음 겪어본다” “그게 대한민국 수장이라니까요 지금.” 이준석이 10월 4일 피부과 전문 개원의 함익병과 대담한 합동 라이브 방송 영상에서 1년 전 사실상 당대표직을 빼앗긴 상황을 거론하면서 윤석열을 겨냥해 한 말이다.
9·27 사건 2주 후에 치러진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7.15%포인트 차로 패배하자, 언론은 18%포인트 차로 질 것이라고 한 이준석의 예측이 맞았다며 이준석을 띄우는 분위기로 나아갔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재원의 표현에 따르자면, 이준석은 이 기회를 활용해 “고소하다, 잘됐다. 봐라, 내 말 맞지 않으냐, 너희들 다 죽었다”는 식의 공격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대통령을 갈아치울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 이준석에게 이렇다 할 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10월 16일 이준석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눈물을 흘리며 윤석열과 여당의 국정 전반을 비판했다. 그는 “내부총질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여당 내에서 자유로운 의견을 표출하는 것을 막아 세우신 당신께서 스스로 그 저주를 풀어내지 않으면 아무리 자유롭게 말하고 바뀐 척해 봐야 사람들은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것이고 그 저주는 밤비노의 저주만큼이나 오랜 시간 동안 여당을 괴롭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준석은 “국정 운영 방식이 엄석대처럼 투박하지 않기를 바랐고 간신배들 아첨 속 대통령이 벌거숭이 임금님이 되지 않길 기대했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설득의 언어였을까. 윤석열의 국정 운영이 전반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는 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윤석열의 전적인 굴복을 요구하는 듯한 그의 언어는 문제 해결보다는 일방적인 책임 추궁에만 매몰된 것처럼 보였다. 여권의 위기에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은 전혀 없다는 듯 독선적 자세를 보이는 것도 설득하려는 자세로 보기는 어려웠다. 두 사람의 책임을 동시에 묻는 양비론 시각도 가능하다는 건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중앙일보는 “이 전 대표의 16일 기자회견으로 그간 당내 일각에서 제기돼 온 ‘친이준석계 포용론’도 힘이 빠진 분위기다”라고 했다. “이 전 대표가 밉더라도, 그가 가진 20·30세대 소구력은 흡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았으나, 이 기자회견이 찬물을 끼얹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병민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이준석의 ‘내로남불’을 지적했다. “이 전 대표가 용산 대통령실의 오류에 대한 오류의 인정을 언급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당내에서는 이 전 대표가 갖고 있는 정치적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근데 이 전 대표는 단 한 번도 본인에 대한 정치적 오류를 인정하지 않죠.”
이준석의 ‘인요한 모욕’ 논란
2023년 11월 4일 부산 남구 경성대에서 열린 ‘이언주&이준석 톡!톡! 콘서트’에 참석한 인요한 당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이 토크콘서트를 지켜보고 있다. 인 전 위원장이 이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부산을 방문했지만 끝내 두 사람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뉴시스]
10월 18일 이준석은 대구에서 대구 지역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밥만 먹는 고양이들” “서울에서 대구의 3~4선 알면 간첩” “편하게 정치하는 정치인들”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대구 인재 양성과 관련해 “호랑이 새끼를 키우셔야 한다. 밥을 많이 먹이면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비만 고양이가 된다”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일망정 ‘비만 고양이’는 정치평론, 그것도 강성 유튜브 정치평론에서나 쓸 수 있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10월 23일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에 임명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인요한은 ‘이준석 포용’에 중점을 두었지만, 그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10월 30일 이준석은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윤석열이 먼저 비공개 만남을 제의하더라도 “아예 안 만나는 게 상책”이라면서 “무슨 뒤통수를 칠지 모른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총선을 염두에 둔 국민의힘은 11월 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당 혁신위원회의 1호 혁신안인 ‘당내 통합을 위한 대사면’ 제안을 의결했다. 이로써 이준석과 홍준표는 국민의힘 당원 자격을 회복했다.
11월 4일 부산 경성대에서 열린 이준석의 토크콘서트에서 이준석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인요한이 이준석으로부터 ‘모욕’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준석은 미국계 한국인인 인요한의 면전에 대고 영어로 “내가 환자 같냐? 진짜 환자는 서울에 있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니 꼭 그를 만나 대화를 나눠보라.(Am I the patient here? I gotta say this. The real patient is in Seoul. You gotta go talk to him. He needs some help.)”고 했다.
인종차별 논란이 일자 이준석은 “어이가 없는 상황”이라며 인요한의 “언어 능숙치”를 고려해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 영어로 말했으며 “정중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참 이상한 주장이었다. 이는 토종 한국인인 이준석이 자신의 “언어 능숙치”를 고려할 때에 “뉘앙스”를 전달하기 위해선 영어로 말하는 게 필요했다는 주장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즈음 ‘한겨레21’ 편집장 구둘래는 ‘이준석과 오늘의 한국어’라는 제목의 ‘편집장 칼럼’에서 이준석과 인터뷰한 후 그의 표현을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처음에 기사 제목으로 뽑은 것은 ‘이준석 “윤 대통령이 공천 파동을 만들 것이란 굳은 신뢰가 있다”’ 였는데 이것이 관용어 ‘I strongly believe(굳게 믿는다)’의 영어 번역투 문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구둘래가 10여 년 전에 페이스북에 썼다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이준석은 정녕 극복한 걸까. “하버드대 출신이라서일까. 영어로 사고하고 한국말로 번역해 표현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준석은 이런저런 논란으로 언론의 가장 큰 조명을 받았으니 그로선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동아일보 논설실장 정용관은 11월 13일 ‘이준석의 복수, 윤석열의 해원’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말했을까. “이준석 신당 관련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말만 무성하고 실체는 희미한데도 언론의 큰 관심을 끄는 현상 자체가 기이할 정도다.”
이준석은 11월 17일 MBC ‘뉴스외전’에 출연해 “(국민의힘 혁신위에) 하나회를 척결하듯 윤핵관을 척결하라고 했더니 (윤석열 정권은) 하나회를 다루듯 KBS를 다뤄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는 11월 20일엔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대장동·김건희 특검’에 관해 민주당에 ‘가장 국민의힘을 힘들게 괴롭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는 “민주당이 할 수 있는 건 ‘기명투표’를 걸어버리는 것”이라며 “그렇게 했을 때 (정부여당이 김건희 여사에 대한) 방탄 프레임에 걸린다.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방탄 프레임이 걸린 적 있지만 이번엔 (여당이) 특검 갖고 방탄 프레임에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윤석열은 거악(巨惡), 김건희는 측천무후”
12월 12일 이준석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탈당 선언문을 쓰고 있다”며 “신당의 취지는 거창한 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에서 여러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얘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총선은 ‘거악과의 경쟁’이 될 것이다. 저는 여러 거악이 있다고 보는데, 국민이 제일 싫어하는 건 대통령이 아닐까”라고 윤석열을 직격했다. 한겨레와 인터뷰하면서 나온 말인데 ‘거악’이라는 정도의 공격은 마땅히 해줘야 할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걸까.이즈음 한동훈이 여당의 구원투수로 나설지도 모른다는 설이 떠돌았다. 12월 19일 이준석은 YTN 라디오 ‘박지훈의 뉴스킹’에 출연해 한동훈이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갈 경우 첫 관문으로 거론되는 김건희 특검법과 관련해 “대단한, 궁극의 결단인 양 ‘받겠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수사는 정쟁을 피하기 위해 총선 뒤에 하자’고 역제안을 던지는 척할 것”이라며 “하지만 민주당이 콧방귀도 안 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준석이 여권을 향해 즐겨 쓰는 ‘김빼기 작전’의 일환으로 나온 발언이었지만, 이 또한 들어맞지 않았다.
12월 23일 이준석은 ‘신동아’ 인터뷰에서 “거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윤 대통령이) 1년 반 동안 서글플 정도로 여당과 대한민국 행정을 무너뜨린 데 있다”며 “야당의 방해 때문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하고 싶은 일 다 하다가 무너진 것이다. 여소야대 소리를 꺼내기 힘들 정도다. 어느 대한민국 국민도 대통령을 불쌍하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한동훈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닷새 후인 12월 26일에 취임했다. 일반적 예상에 비해 빨랐던 한동훈의 등장은 사실상 이준석과의 완전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불과 70여 일 전인 10월 13일 이준석은 한동훈에 대해 “국민의힘 일반적인 의원에 비하면 천사 같은 존재”라며 “스타성·엘리트성·매너 등은 군계일학”이라고 극찬했지만, 곧 정반대의 평가와 공격이 한동훈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석은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한 지 꼭 12년이 되는 12월 27일 자신의 정치적 고향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국민의힘 탈당을 선언했다. 그는 드물게 성찰의 말을 했지만 이 또한 결국엔 윤석열 비난이었다. “저는 잠시 보수정당에 찾아왔던 찰나와도 같은 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스스로를 다시 한번 반성한다. 그들의 권력욕을 상식선에서 대했고 진압하지 못했던 오류를 반성한다. 모든 것이 제 부족한 탓이다.”
이준석은 그날 오후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한동훈과 관련해 “장(腸)을 비우기 위한 특임 비대위원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장’을 비운다는 표현이 현역의원을 비우는 ‘공천 학살’을 뜻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새로운 음식을 넣기 위해 장을 비우는 과정이다. 세게 비울 것 같다”며 “멀쩡하던 사람들도 계속 설사약을 먹이면 싼다. 그것과 비슷하게 갈 것”이라고 답했다. 한동훈이 ‘공천 물갈이’를 하기 위해 비대위원장을 맡았다는 주장이었다. 국민의힘의 내분을 촉진하기 위한 발언이었겠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더 두고 볼 일이었다.
이준석은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 법안’에 반대하는 여당을 향해 “특검 대상이 성역이기 때문이라면 오늘은 무측천(측천무후)을 옹립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했다. 역사를 조금 아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이준석은 측천무후가 어떤 사람인지는 제대로 알고서 한 말일까.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한 인물이었다는 점에 끌린 걸까. 아니면 천하의 악인이었지만, 정치적으론 유능한 점도 있었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질 논란을 위해서라면 조롱·경멸의 극한 표현을 추구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걸까.
“나도 옳지 않을 수 있다” 인정한다면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23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장 임명 수락 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1월 5일 이준석의 ‘개혁신당’이 온라인으로 당원을 모집한 지 이틀 만에 3만 명을 돌파했다. 서울에서만 8155명이 당원으로 가입했고 △경기 9722명 △대구 2016명 △부산 1983명 △인천 1764명 △경남 1487명 △경북 1448명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신당을 띄우는 데에 자극만 주기 위한 게 목적이었는지는 몰라도 가장 지지율이 높았던 호남의 당원 가입은 저조했다.
1월 10일 한동훈이 숫자 ‘1992’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부산시민을 만난 것이 화제가 됐다. 1992년은 부산에 연고지를 둔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우승 연도였다. 한 롯데 팬은 “우리 다시 시작하자. 우승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읽었다)”고 했다. 한동훈이 이런 ‘디테일 정치’로 부산 민심을 파고드는 데 작게나마 성공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준석은 “롯데자이언츠가 1992년 이후 우승을 못 했다는 것이 어떤 분들한테는 조롱의 의미”라는 무리한 토를 달아 빈축을 사기도 했다.
한동훈이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딱 한 달만인 1월 21일 놀라운 뉴스가 전해졌다. 대통령실이 한동훈에게 비대위원장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한동훈이 그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는 뉴스였다. 이 충돌의 원인은 ‘김건희 명품백 논란’에 대한 대처 방안의 차이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준석은 22일 유튜브 채널 ‘장윤선의 취재편의점’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위원장을 잘 아는 모 인사가 나에게 ‘이관섭 실장을 보낸 건 약속 대련’이라고 이야기하더라”라며 “기획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한 위원장을 속된 말로 혼내거나 싫은 소리 할 일이 있으면 전화하거나 텔레그램을 하면 되는 것”이라며 “굳이 이 실장을 보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위원장 쪽에 힘이 쏠리는 모양새로 끝을 내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준석은 이날 오후 ‘시사IN’ 유튜브 채널 인터뷰에선 “선거 끝나면 해코지하러 달려들 것이라는 걸 한동훈 위원장이 모를 수 없다. 이미 서로 불신의 골은 깊어졌다”며 “한 위원장에겐 삼십육계 줄행랑이 답”이라고 주장했다. 며칠이 지난 것도 아니고 같은 날 ‘약속 대련 기획설’을 제기한 사람이 ‘삼십육계 줄행랑이 답’이라는 말을 했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그에게 목적은 시종일관 ‘윤석열 때리기’였으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런 모순은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을까.
신당들끼리의 연대나 통합 논의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 이건 이준석의 ‘타협 마인드’와 이준석과 윤석열 사이에서 불거진 갈등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일찍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2월 1일 이준석은 전남 순천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민주당 전 대표 이낙연 등이 주도하는 개혁미래당과의 연대나 통합 가능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지금은 그냥 거기도 윤핵관이랑 다를 바가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개혁미래당에 굉장히 실망했다.”
아니 그런 논의가 이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자신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공격했던 ‘윤핵관’에 비유하는 말을 한단 말인가. 이에 개혁미래당의 소통책임자인 신경민은 “이준석 대표가 가끔 이렇게 좀 속에 불 지르는 소리를 한다”며 “그건 저희 쪽에서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원래 이준석 대표는 그런 걸 취미생활 내지는 일상생활화 돼 있는 분이라고 본다”고 했다. 또 “그저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가야지. 그걸 일일이 대꾸하고 그러면, 일이 잘되지도 않을 거고 무슨 도움이 되겠나. 역사와 대의에 복무한다는 의미에서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맞다. 신경민의 그런 자세가 옳거니와 바람직하다. 이준석은 자신의 모든 생각을 공개적으로 마이크 앞에서 밝히는 게 절대적 원칙이 아니라면 생각나는 대로 말을 곧장 내뱉는 걸 자제해야 했다. ‘윤핵관’이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쓰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윤석열은 워낙 비호감도가 높아 이준석이 무슨 조롱과 경멸을 해도 괜찮았을 뿐만 아니라 반윤·비윤 세력으로부터 뜨거운 지지까지 받았지만, 개혁미래당은 윤석열이 아니잖은가.
이준석에게 거는 마지막 기대
이제 이야기를 끝맺도록 하자. “나는 이준석의 정치적 재능을 몹시 높게 평가했기에 그가 과도한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의 편견에서 해방돼 부디 그 재능을 살릴 수 있기를 바라는 편견이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내가 지난해 3월에 쓴 글에서 한 말이다. 그런 ‘편견’에 기대어 이준석에 대한 비판을 너무 많이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리 ‘너 잘돼라’ 비판이라곤 하지만, 요즘처럼 모두가 다 조금씩은 정치에 민감해진 상황에서 ‘너 죽어라’ 비판과의 차이점을 알아주길 기대하는 게 과욕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홍준표라면 이준석도 그의 선의를 신뢰할 수 있을 게다. 홍준표는 국민의힘이 이준석 징계 문제로 뜨거웠던 2022년 7월 페이스북에 이준석을 위해 이런 글을 올렸다. “업보라고 생각하라. 바른미래당 시절 대선배인 손학규 대표를 밀어내기 위해 그 얼마나 모진 말들을 쏟아냈느냐. 좀 더 성숙해져서 돌아오라. 세월 참 많이 남았다. 나는 이 대표의 모든 점을 좋아한다.”
나는 윤석열·이준석 갈등의 본질은 ‘나르시시즘의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윤석열은 자기가 잘나서 대통령이 됐다고 생각하고, 이준석은 자기가 없었으면 윤석열의 대선 승리는 어림도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나만 옳고 나만 잘났다”는 나르시시즘이다. 나르시시즘엔 성찰이 없다. 이게 비극의 씨앗이었다.
윤석열은 자신의 그런 특성에 대해 그 어떤 교정을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치지도 않은 채 곧장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바람에 실패한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반면 이준석에겐 아직 대오각성과 교정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젊음이라는 무기가 있다. 물론 그 무기를 지금까지처럼 ‘죽어도 마이웨이’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 말을 하는 걸로 이 글을 끝맺고 싶다. “나도 옳지 않을 수 있다.” 이준석은 이 원칙 하나만 잘 지켜도 좋은 방향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성공을 기원한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