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트럼프, ‘너무나 예측 가능’해서 문제다

[이근의 텔레스코프] ‘예측 불허’라서 리스크?

  •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前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입력2024-02-1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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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보란 듯 미사일 발사 지시한 ‘럭비공’ 지도자

    • 알고 보면 국정 운영 방향 훤히 보여

    • 韓, ‘무엇을 줄지’ 아닌 ‘무엇을 얻어낼지’ 생각해야

    • 사업가 기질 대통령, 카드 맞추면 얼마든 협상 가능

    • 재집권해도 세계 질서 안 무너져

    1월 16일 미국 뉴햄프셔주 앳킨슨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한 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 뉴시스]

    1월 16일 미국 뉴햄프셔주 앳킨슨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연설한 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AP 뉴시스]

    2017년 4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불과 4개월 정도 지난 시점에서 세계 2위 강대국 중국의 시진핑과 만나는 자리였기에 이 회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에 대해 강경한 기조를 견지하는 데다, 예측 불허라고 평가받는 트럼프가 시진핑을 홈그라운드에 불러 어떻게 다룰지 모두가 궁금해했다.

    이날 트럼프는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예측 불허의 전격 지시를 내린다. 정상 만찬 직전 당시 시리아 내전에서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 정부군에 대해 미사일 공격 지시를 내린 것이다. 그 전날 경고에 이어 하루 만에 내린 신속한 결정이고, 이 지시를 시진핑과 함께 있었던 장소에서 내렸다는 점에서 실로 전격적 지시라고 할 수 있다. 곧 이은 정상 만찬 중에 트럼프는 이 사실을 시진핑에게 알렸는데, 시진핑은 이를 듣고 약 10초간 침묵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시진핑은 시리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고 있었는데, 트럼프가 보란 듯이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 지시를 하니 그로서는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또한 친러 성향으로 알려진 트럼프가 시리아를 지지하는 러시아와 대척점에 서는 조치를 한 터라 시진핑뿐 아니라 언론과 외교 전문가들도 대단히 놀랐다. 무슨 결정을 언제, 어떻게 내릴 것인지 알 수 없는 ‘예측 불허 대통령’이 탄생한 순간이다.

    존재 자체가 ‘萬國 리스크’, 예측 불허 대통령

    2017년 4월 6일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화 뉴시스]

    2017년 4월 6일 미국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화 뉴시스]

    2017년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최대압박(Maximum Pressure)’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는 시진핑이 미국을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은 4월 중순 발표됐다. 그가 최대압박이라는 단어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한국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5월 이후 북한은 대대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진척시켰다. 같은 해 7월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두 번 발사했고, 9월엔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9월엔 중거리탄도미사일 (IRBM) 화성-12형을 발사하고, 11월엔 다시 ICBM급 화성 15형을 발사했다. 이런 도발에 대응해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 결의 2371, 2375, 2397을 채택하는데, 매우 이례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해 만장일치로 결의가 이뤄졌다. 특히 미국은 이 결의에 중국의 협조가 매우 도움이 됐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변화된 중국의 태도를 강조했다.



    지금도 북한이 제재로 인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당시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는 21세기 채택된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결의이고, 북한 핵문제와 관련해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가 다 함께 제재를 취한 최초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런 강력한 제재에 중국, 러시아마저 동참한 배경엔 ‘예측 불허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듯하다.

    2017년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과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을 나열한 이유는 이 사건들이 트럼프의 예측 불허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데 있다. 북한과 대립하는 와중에 사용한 “화염과 분노” “더 큰 핵단추” 같은 단어, 갑자기 태세를 변경해 개최한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그 후 이어진 북한 김정은에 대한 칭찬 등 트럼프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행보는 예측 불허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트럼프 정권 초기 미국의 외교 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실효적 카드로 작용했다. 자신 앞에서 트럼프가 미사일 발사를 지시한 것을 본 시진핑 주석이 대북제재 결의에 감히 반대할 수 있었을까. 또 북한에 대한 최대압박을 외치는 트럼프를 보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같은 민족’을 강조하며 대북제재를 반대할 수 있었을까.

    알고 보니 이보다 더 뻔할 수가

    트럼프의 이와 같은 이미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오히려 트럼프는 어떤 대통령보다 더 예측 가능한 대통령으로 임기를 마친다. 트럼프는 임기 동안 단 한 번도 전쟁을 벌인 적이 없다. 오히려 2017년의 이미지와는 반대로 군사력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한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스스로도 올해 1월 10일 미국 아이오와주 타운홀 미팅에서 “나는 지난 72년간 한 번도 전쟁을 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이는 전쟁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반박이 가능한 주장이지만 그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군 철수를 단행했고,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지미 카터 대통령 그리고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함께 전쟁에서 가장 멀리 있던 대통령임은 틀림없다.

    다가오는 11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비판은 ‘무자비하게 전쟁을 벌일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전쟁을 회피하려 드는 사람’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혹은 휴전을 추진하고, 중국과 대만 간 분쟁을 무력으로 막아설 의지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 때문이다.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미국의 군사적 개입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한국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전쟁 및 분쟁 해결에 대한 생각은 매우 분명해서 예측 가능하다. 적성국 지도자와 친하게 지내려는 것도 전쟁 대신 대화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그의 철학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트럼프는 너무나도 예측이 가능하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는 데 가장 적대적 경쟁국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중국에 대한 하이테크 분야 규제와 공급망 조정을 시작한 정부가 트럼프 정부다. 현 바이든 정부도 그러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을 이어받았다. 또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불공정행위를 한다고 간주하는 국가에 높은 관세를 책정하고,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 및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안 되는 다자무역협상은 거부할 것이다.

    환경 분야에서도 바이든 정부 수준의 탈(脫)탄소 정책을 뒤로하고 미국 산업에 가성비와 시장 경쟁력이 좋은 화석연료 산업을 부활할 것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 유세 중 “대통령에 당선하면 제일 먼저 무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당선 첫날 멕시코 국경에 벽을 다시 건설하고, 화석연료를 다시 파낼 것이다”라고 대답했는데, 이 역시 예측 가능한 그의 어젠다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트럼프가 불법 이민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마약 단속 및 치안을 강화하고, 이른바 ‘좌파 교육’을 청산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트럼프의 이번 대선 공약을 집대성해 놓은 이른바 ‘어젠다 47 (Agenda 47)’을 읽어보면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의 그것 대비 충격적 내용은 단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업·협상 달인이라는 그의 이력이 말하듯 이런 부류의 사람은 도달하고자 하는 마지막 목표와 그걸 달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즉 로드맵과 타임테이블이 매우 명확하다. 이는 목표를 수립해 정해진 시간 내에 밀어붙인다는 뜻이다. 트럼프가 두려운 이유는 이번에도 그는 공약을 단 한 번의 임기 동안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집요하고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 뻔히 예측되는 데 있다.

    우리는 2017년 트럼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이미지와 미국의 ‘리버럴 언론’이 만들어낸 파괴적 이미지, 그리고 다른 선진국 지도자들과 점잔 빼지 않고 언쟁하는 그를 보면서 예측 불허의, 위험한 대통령이라는 허상을 만들었다. 이 허상을 빨리 버려야 한다. 트럼프가 우리에게 부담이 되는 이유는 그가 우리에게 무얼 요구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데 있는 게 아니라, 분명한 영역에서의 요구를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우 거칠고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韓, 對트럼프 협상전략 세울 때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2019년 6월 30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경기 파주시 비무장지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미동맹의 역할 조정은 누구나 예상하는 일이다. 트럼프 1기 때엔 1조 원이 넘는 분담금을 요구했지만 이미 1조 원이 넘은 지금, 그 이상의 상당한 증액을 요청할 것이다. 한국에선 선거 때만 되면 선심성 공약으로 몇조 원 예산의 사업이 하늘에서 툭 떨어진다는 사실을 미국도 다 알 터인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한미동맹에 한국이 인색하게 나온다고 생각된다면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사용하면서 협상을 밀어붙일 것이다.

    이에 더해 트럼프는 김정은과 대화하면서 최악의 경우엔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중장거리 운반수단만을 제거하고, 한미 합동 군사훈련 제한 및 주한미군 규모 대폭 감축까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다. 대만 사태와 관련해서도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이 주축이 돼 풀라”라며 파격적 카드를 내놓을 수도 있다. 물론 최종 목표는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유럽 포함 해당 지역 국가의 부담을 늘리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의 대응 방향은 미국에 무엇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으로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얻어낼 것인지에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선언문 수준의 확장억제 강화가 아니라 구체적 전술핵 배치,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 및 확보, 핵잠수함 도입 같은 것을 얻어내야 한다. 만약 주한미군 철수와 핵 개발을 교환하는 협상을 해야 한다면 우리의 핵 개발 로드맵과 타임테이블, 미국의 글로벌 안보 전략에도 도움이 되는 우리의 핵전략 같은 카드를 구체적이고 정밀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선 일본과의 군사협력 및 공동 핵 개발 혹은 핵 프로그램 분업과 같은 극단적 카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트럼프가 협상에서 그가 원하는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하는 한, 우리의 카드를 정교하게 만들면 얼마든지 우리가 바라는 것을 관철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협상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어떤 정교한 협상전략을 우리가 세우고 추진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트럼프 2기’는 대중정책, 무역정책, 산업정책 등에 관해서도 1기 때와 유사한 방향으로 요구를 강화해 올 것이다. 이 역시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우리는 예상되는 요구 사항을 정리해 보고, 어떤 양자적·다자적 대응 방향을 잡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응 방향은 강대국으로 가는 길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필자는 강해진 중국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무너뜨릴 힘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중국을 구속하는 힘이 더 크다고 믿고 있다. 일개 미국 대통령이 4년 안에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붕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혁신하고 지킨다는 강대국의 시선에서 트럼프와 협상도, 공조도 해야 한다.

    이근
    ● 1963년 출생
    ●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정치학 박사
    ● 외교안보연구원(국립외교원) 교수
    ●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 한국위원회 의장
    ● 한국국제교류재단(KF) 이사장
    ● 現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 저서: ‘도발하라’ ‘대한민국 넥스트 레벨’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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