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이 재생된다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눈을 감았다가 뜬다
왜 높은 곳에 오르면
전경이 아닌
작은 움직임들이 더 많이 보이는 걸까
너는 저렇게 무수한 불빛 중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단 하나의 전구를 발견하고야 만다
자취를 묶어두고
떠나거나 되돌아오는 그림자
한낮에 밖으로 나간 사람이 돌아오기까지
종일이 걸렸다는 사실도
네가 내내 그곳에 서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겠지
이것이 고작 거대한 몸의 일부 같다는
상상을 한 뒤로
자꾸만 미래가 열리고 닫힌다
끊임없이 잔여를 내보내는 눈꺼풀처럼
내가 본 것은
모두가 서로의 행방을 묻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발밑이 무너지는 세계였는데
네가 서 있는 곳만큼은
세상의 끝에 남아
네가 돌보았던 것들에게 목격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네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것들의
이름을 떠올리며
잠시 여기에 속한 사람으로
충분한 마음이 되고
빛의 모든 온도를 품고도
건물은 제자리에 서 있다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움직이고 있다
끝이라는 말을 내뱉을 수도 없이
이하윤
● 2004년 서울 출생
● 2023년 창작과비평사 신인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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