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 청년, 한반도人 최초 “경성의 한울” 가르다

조선 최초 비행사 안창남 금의환향
잠자던 민족 자긍심 깨운 비행기 ‘금강호’
서울 인구 6분의 1, 비행 보려 여의도 집결
2020년 금강호 모형 복원해 국립항공박물관 전시

1922년 12월 안창남의 비행기 금강호가 여의도 하늘을 날고 있다. [동아DB]

서울 여의도공원 한복판엔 특이한 내력을 가진 비행기가 한 대 서 있다. 비행기의 정식 명칭은 군용 수송기 C-47. 1945년 8월 18일 이범석,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 등 한국광복군 특공대(정진대) 대원들이 미국 전략정보국(OSS) 요원들과 함께 탑승했던 수송기도 이 비행기였다. C-47은 중국 시안(西安)을 출발해 여의도 비행장에 착륙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의 이름으로 미군과 함께 국내에 진입해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승전국 지위를 얻기 위한 전략이었다. 광복 이전부터 준비한 국내진공작전이 일본의 항복으로 성사되지 못하자 사후에라도 그 작전을 실행하고자 했다. 이들은 여의도 비행장 활주로에서 중무장한 채 경계 중인 일본군과 기꺼이 전투를 벌이고자 했으나 미군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음 날 새벽 중국으로 돌아갔다. 석 달 뒤인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이시영 국무위원, 김상덕 문화부장, 유동열 참모총장, 엄항섭 선전부장 등 요원 1진 15명이 이 비행기를 타고 조국 땅에 돌아왔다. 그때 착륙한 바로 그곳에 C-47이 전시돼 있다.

서울 여의도공원 한복판에 전시한 군용 수송기 C-47. [이광표]

여의도공원에 전시 중인 C-47은 1945년 당시 임시정부 요인들과 광복군이 탔던 그 비행기는 아니다. 그 비행기는 당시 미군 소유였기에 현재 소재를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시는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일 기종의 비행기를 구해 이곳에 전시했다. 여의도 비행장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일제에 의해 조성됐다. 1945년 광복군 대원의 진입과 임정 요인이 귀국은 여의도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1922년 이곳에서 의미심장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반도의 천공을 정복한 안창남

최초로 한반도 하늘을 날았던 한국인 조종사 안창남. [동아DB]

1922년 12월 10일 낮 12시 22분 여의도 비행장, 매서운 겨울 추위를 뚫고 프랑스 뉴포르(Nieuport)식 1인승 단발 복엽기 한 대의 프로펠러가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3분 뒤인 낮 12시 25분 비행기가 경성(서울)의 상공으로 솟아오르자 이를 지켜보던 5만여 명의 군중은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조선(한국)의 하늘에서 조선인(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비행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스물한 살의 조선 청년 안창남(安昌男·1901~1930)의 고국 방문 비행은 그야말로 화제였다. 이 행사를 주최한 동아일보는 “반도(半島)의 천공(天空)에 최초의 환희/혹한을 정복한 동포의 열성” “5만 관중을 열광케 한 고등비행”이라고 찬사를 보냈다(동아일보 1922년 12월 11일자). 안창남의 비행을 구경하기 위해 여의도 일대에 몰린 사람은 5만여 명. 당시 경성 인구가 약 30만 명이었으니 경성 인구의 6분의 1이 여의도에 모인 것이다. 당시 조선인들은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에 왜 이렇게 열광했던 것일까. 안창남이 탔던 비행기는 과연 어떤 모양이었고, 그 비행기는 지금 어디에 가면 볼 수 있을까.

1901년 경성에서 태어난 안창남은 10대 때 비행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1917년 9월 15일 서울에서 펼쳐진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목격한 뒤 비행사의 꿈을 키웠다. 그 꿈을 위해 휘문고보를 중퇴하고 1919년 3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 넘는 준비 과정을 거쳐 1920년 8월 안창남은 도쿄(東京)의 오구리(小栗) 비행학교에 입학했다. 안창남은 일본 비행사 면허시험을 거쳐 1921년 5월 3등 비행사 면허를, 1922년 6월 2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어 1922년 11월 6~11일 일본 제국비행협회가 주최한 도쿄~오사카(大阪) 구간 우편비행대회에 참가했다. 자신의 비행기를 갖지 못했던 안창남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비행기로 죽을 고비를 이겨내고 고난도의 왕복 비행을 수행해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안창남이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1400㎞를 비행한 것은 당시 일본에서 최장거리 비행이었다.

비행사로 일취월장하던 안창남은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조국의 하늘에서 직접 비행을 하는 것(고국 비행)이었고, 다른 하나는 비행학교를 세워 조국의 청년 비행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안창남은 일본의 2등 비행사 면허를 취득한 1922년 6월부터 고국 비행을 준비했다. 꿈은 있었으나 돈이 문제였다. 어려운 경제 여건 탓에 전용 비행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두 달 뒤인 8월, 오구리 비행학교에서 고국 비행에 활용할 비행기를 구했다. 그해 여름 안창남의 부탁을 받은 동아일보는 비행 행사를 주최하기로 결정하고, 1922년 10월 19일자 사고(社告)를 통해 이를 널리 알렸다. 동아일보는 이 행사를 과학대중화 운동의 일환으로 기획했다.

안창남은 고국 비행에 차질이 없도록 어렵게 구한 비행기를 열심히 수리하고 단장했다. 엔진은 다른 비행기에서 떼다가 장착했다. 그는 이 비행기에 ‘금강호(金剛號)’라는 이름을 붙이고 몸체 양쪽에 ‘安昌男’ ‘J-TIAD’라고 크게 써넣었으며 꼬리 날개엔 금강산 모양의 도안을 그려 넣었다. 이 도안은 지금으로 치면 금강산을 상징하는 심벌 마크인 셈이다.

몸체의 좌우 앞쪽엔 한반도 지도와 프로펠러를 멋지게 조합해 그려 넣었다. 몸체의 나머지 공간엔 육각형을 연속으로 디자인하고 거기 여러 색을 채워 알록달록하게 꾸몄다. 안창남은 고국 비행의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해 비행기의 이름을 금강호라 짓는 데서 나아가 외관 디자인에도 공을 들였다. 안창남은 금강호를 해체해 11월 17일 도쿄에서 선박편으로 부쳤고, 금강호는 2주 뒤인 12월 2일 인천항에 도착했다. 이어 기차에 실려 노량진역을 거쳐 여의도 비행장 격납고로 옮겨졌다.

최초 비행사 맞으러 역마다 모여든 인파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유인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이때부터 비행기는 근대 과학기술의 총아로 각광받았다. 한반도 상공에도 비행기가 날기 시작했다. 1913년 용산연병장 상공에서 일본인에 의한 첫 비행이 이뤄졌다. 일본인의 비행이 계속 이어졌고, 1920년부터는 서양 비행기들이 경성·신의주·대구 등지에 기착했다. 서양 비행기가 한반도에 착륙할 때마나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근대 과학 신문물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당시 식민지 조선의 대중에게 하나의 희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이 일본에서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안창남의 일거수일투족은 1920년부터 동아일보와 ‘개벽’ 등 언론을 통해 시시각각 보도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안창남은 인기 스타로 자리 잡았다.

고국 방문 비행을 위해 안창남은 1922년 12월 3일 도쿄를 출발했다. 12월 4일 부산시민의 환영을 받으며 부산항에 도착했고, 다음 날인 12월 5일 오전 경성행 열차에 올랐다. 안창남이 상경하는 동안 대구역, 대전역, 평택역, 수원역, 영등포역은 수많은 환영 인파로 북적였다. 12월 5일 오후 8시 50분 안창남이 남대문역에 도착했을 때, 역과 그 주변엔 환영 인파로 가득했다. 안창남의 모교인 미동공립보통학교 학생을 비롯해 휘문, 중앙, 보성, 중동, 협성, 숙명 등 서울의 사립고보 학생 수천여 명과 천주교, 기독교, 불교, 대종교 등 종교청년회 소속 젊은이들이 마중을 나왔다. 이에 그치지 않고 서울 5개 권번(券番) 소속 기생 수백여 명도 환영 대열에 합세했다. 12월 7일엔 경성 소공동의 공회당에서 안창남 환영 행사가 열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당대 언론이 키워낸 슈퍼스타이자 최초의 아이돌이었다”(길윤형, ‘안창남, 서른 해의 불꽃같은 삶’)는 평가도 있다.

고국 방문 비행에 즈음해 ‘금강호야’ 라는 노래 가사도 만들어졌다. 동아일보 1922년 12월 10일자 1면에 소개된 이 가사는 신향산(辛香山)이라는 인물이 프란츠 슈베르트의 1828년 작 ‘세레나데(Ständchen)’ 의 곡조에 맞추어 쓴 것이다. 모두 3절로 돼 있는데 1절의 가사는 이렇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우리 금강호야/반만년 기다리든 그대로구나/그대가 부르짓는 큰 소래와 그 웅자(雄姿)로/아- 깨워다오 그대여 이 잠을 깨워라/아하- 반가운 그대여 깨워라 이 잠을 아- 깨워라.” 금강호는 조선인의 잠을 깨워 식민의 열패감을 물리치고 조선의 미래를 이끌어갈 희망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로 그려져 있다. 당시 대중이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왜 열광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불꽃처럼 뜨거웠던 30년 생애

여의도공원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안창남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한 ‘역사의 터널’. [이광표]

1922년 12월 10일 여의도 비행장과 그 주변은 몰려든 인파로 인산인해였다. 노량진역에서부터 여의도에 이르는 길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동아일보는 “광막한 여의도 벌판에는 사람으로 성을 쌓고 사람으로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첫 비행은 12월 10일 낮 12시 25분 시작됐다. 이륙한 금강호는 1000m까지 날아올라 용산, 남산, 북악산, 경복궁, 창덕궁의 상공을 선회했다. 여의도 상공으로 돌아온 안창남은 놀라운 곡예비행으로 마무리하면서 군중을 매료했다.

“이어서 비행기가 거꾸로 내리박히다가 다시 두어 번 가로 재조(재주)를 넘으매 관중은 그의 신묘한 재조(재주)에 너무 감격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고 환호하엿다. 비행기는 다시 가던 길을 고치어 동편으로부터 서편으로 손에 잡힐 듯이 얕게 떠서 부인석 있는 편으로 내려 닥치니 일반 관중이 비행기에 차이지 아니할까 의심할 만 하엿다.” (동아일보 1922년 12월 11일자)

안창남은 같은 날 오후 두 번째 비행을 실시했다. 금강호는 오후 2시 20분경 경성 상공으로 다시 날아올라 800~900m까지 솟구친 뒤 횡전(橫轉), 역전(逆轉), 선회(旋回) 등의 고난도 비행술을 선보였다. 두 번째 비행에서 안창남은 과학대중화 캠페인 전단 1만여 장을 지상으로 뿌렸다. 행사를 주최한 동아일보가 고국방문비행후원회, 안창남과 공동 제작한 전단으로, 과학기술 발달에 힘쓰길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모습을 동아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오색지질로 박인 종이는 청량한 태양빛에 비춰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이 영롱찬란하게 번적번적하여 바람에 펄펄 날리는 광경에는 관중은 진실로 비행장의 전체가 떠나갈 듯한 갈채가 일어났다.”(동아일보 1922년 12월 11일자)

사흘 뒤인 12월 13일 세 번째 비행이 이뤄졌다. 이날 오후 4시 안창남은 여의도 경성비행장에서 곡예비행을 보여준 뒤 인천으로 향했다, 인천시민을 위해 200m 높이로 저공비행을 하고 5시 5분에 여의도로 돌아왔다.

1922년 식민지 조선은 안창남의 비행에 열광했다. 안창남은 슈퍼스타였고 대중은 그의 비행을 통해 근대과학 문명을 경험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었다. 그러나 안창남의 인기는 일제의 경계심을 촉발했다. 고국 방문 비행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안창남은 차별에 시달려야 했고, 오구리 비행학교에서 식민 정책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요시찰 대상이 됐다. 1924년 9월엔 일본 적화방지단 소속 청년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안창남은 1924년 12월경 중국으로 망명했다. 안창남은 비행학교를 세워 항공 독립군을 양성하고 일본과 전면전을 벌여 조국 독립을 쟁취하고자 했다. 비행사로 성장하던 과정에서 그가 세운 두 번째 목표였다. 베이징(北京), 산시(陝西)성 타이위안(太原) 등지에서 항공 독립투쟁의 길을 모색하던 안창남은 1928년 대한독립공명단(大韓獨立共鳴團)을 조직했다. 그러던 중 1930년 4월 타이위안 산시비행학교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던 중 추락 사고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30년의 불꽃같은 삶이었다.

비행사 안창남의 30년 생애가 불꽃처럼 뜨겁고 드라마틱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 순간으로는 1922년 12월 고국 방문 비행이 아닐 수 없다. 19세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열정적으로 비행을 공부한 안창남은 불과 3~4년 만에 조선과 일본에서 최고의 비행사가 됐다. 그리고 바람대로 고국의 동포 앞에서 자신의 비행 실력과 항공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안창남의 고국 방문 비행은 흔히 ‘조선인의 첫 조선 상공 비행’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비행의 의미는 좀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안창남의 고국방문 비행은 1920년대 전후 조선에서 전위적이고 상징적이며 대중적인 근대 경험의 하나였다. 금강호에서 쏟아진 전단 1만 장, 그걸 바라보는 5만 여 군중. 그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벌어진 일대 사회적 사건이고 낭만적 이벤트였다.

여의도공원에서는 C-47과 안창남의 흔적을 함께 되새겨 볼 수 있다. 여의도공원에서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엔 안창남을 기억하기 위한 ‘역사의 터널’이 조성돼 있다. 안창남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 금강호의 사진을 터널 내부에 전시해 놓았다.

젊고 모던한 금강호의 美學

서울 강서구 국립항공박물관이 전시한 금강호 모형. [이광표]

아쉽지만 금강호는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동아일보에 실린 흑백사진 몇 장만 남아 있을 뿐. 그러다 2020년 국립항공박물관(김포공항 바로 옆) 개관으로 다행스럽게 금강호의 모형을 볼 수 있게 됐다. 옛 사진 자료를 토대로 국립항공박물관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 전시한 것이다. 국립항공박물관은 2022년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 100주년을 맞아 ‘공중용사 안창남’이란 기획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안창남의 불꽃같은 삶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됐다.

금강호는 국립항공박물관 1층 전시실 상공에 매달려 있다. 그곳에서 금강호의 전모를 좀 더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다. 자그마한 뉴포르식 1인승 단발 복엽기. 외관은 안창남이 직접 디자인했다. 자신의 이름을 큼지막하게 넣고 한반도 지도를 양쪽에 붙였다. 알록달록한 육각형 디자인이 젊고 모던한 분위기를 풍긴다. 안창남의 미적인 감각이 비행 실력 못지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창남은 고국 방문 비행의 소감문을 1923년 1월 ‘개벽’ 제31호에 기고했다. 거기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경성의 한울! 경성의 한울! 내가 어떠케 몹시 그리워했는지 모르는 경성의 한울! 이 한울에 내 몸을 날리울 때 내 몸은 그저 심한 감격에 떨릴 뿐이엇습니다.” 국립항공박물관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1922년 12월 10일 하늘로 솟아오르던 금강호를 떠올려본다. 5만여 군중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언젠가 저 금강호가 날아올라 서울 상공에서 은빛 전단지 1만 장을 흩뿌린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