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쇼펜하우어는 고독에 중독되지 않았다

[에세이]

  •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입력2024-02-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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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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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출간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점차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이 왜 200년 전 독일 철학자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느냐고 내게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다. 나 자신도 알고 싶어서 되묻기도 했다. 요즘 “사는 것이 고통이다”라는 쇼펜하우어의 직언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 단순히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직시하라’는 그의 조언이 큰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고독을 통해 인간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는 통찰은 위로와 힐링의 메시지로 들린다.

    인간은 혼자 있기를 좋아하면서 타인과 어울리는 것도 즐긴다. 고독과 사교성은 동전의 양면이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의 조건인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한 충분조건으로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강조한다. 자족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타인으로부터 독립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여러 이유로 타인에게 의존하며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갈구하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인간은 고독의 끝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는 욕망을 갖는데 ‘홀로서기’와 ‘함께하기’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 우화’를 통해 풀어낸다.

    고슴도치가 찾은 적당한 거리

    추운 날씨에 얼어 죽지 않으려고 고슴도치들이 달라붙어 하나가 되지만, 그들의 가시가 서로 찌르는 것을 느껴 떨어진다. 그러다 추위를 견디지 못해 한 덩어리가 됐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상대방의 가시를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는 내용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자주 만나고 친해질수록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 생겨난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분별력이나 판단력을 더 크게 잃게 되기 때문이다. 사회를 이루는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든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되면서 ‘가시’로 다른 사람을 찌르게 된다. 남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허영심이나 과시욕은 남의 자존심을 깎아내리고 시기심을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다 보면 결국 상대에게 자신이 바라는 어떤 모습을 요구하게 된다. 상대방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다 보면 아픔을 주는 행위를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된다.

    고슴도치 우화가 전하는 지혜는 타인과 너무 가까이하지 말고 일정한 거리를 두며 늘 ‘예의’와 ‘정중함’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뜨거운 사이는 쉽게 식을 수 있고 오히려 냉랭한 관계가 오래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불에 비유하기도 한다. 늘 거리를 두는 현명한 사람과 달리 어리석은 자는 불에 손을 집어넣고 화상을 입은 다음에야 인간관계의 불필요함을 느껴서 ‘고독’으로 도망간다.



    고독이야말로 행복의 참된 조건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만 온전히 그 자신일 수 있다. 그러므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면서 “우리의 모든 불행은 혼자 있을 수 없는 데서 생긴다”고 쇼펜하우어는 홀로서기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고독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고귀한 경험을 준다. “행복이란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의 것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볼 때 행복의 길은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법을 찾는 데 있다. 고독을 피해 사람들을 자꾸 만나고 싶은 것은 내면의 무의미를 바깥에서 채우고 싶기 때문이다. 바깥의 타인을 통해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내면의 공허, 의식의 빈약, 정신의 빈곤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는 시간을 줄이면 타인의 시선에 맞춰서 살아가는 일이 필요 없어진다. 또한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자신을 과장하거나 타인에게 아부하는 일도 없어진다.

    쇼펜하우어는 남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특징을 위대한 능력으로 평가한다.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만큼 지적 능력이나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애인이나 친구, 가족이 아니라 나 자신뿐이다. 우정, 사랑, 결혼으로 맺어진 관계라도 자신만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는 없다. 고독 속에서 가장 크고 풍요로운 가장 행복한 상태를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자기 통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조건으로 꼽는 세 가지는 첫째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평판’, 둘째 내가 소유한 ‘재산’(돈), 셋째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격, 성격)인지 아는 것이다.

    자발적 고독은 행복과 평정심 원천

    누구나 고독이 주는 적막함 속에서 위험이나 재앙이 모두 바깥에서 온다는 점을 통찰할 안목을 갖게 되면서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전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행복의 중심추를 밖에서 안으로 옮기게 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리거나 돈을 버는 데만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에게는 고독 속에서만 가능한 자기 통찰, 자기 인식이 불가능해진다. 더는 바깥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 안의 힘을 믿고 자신에게 무엇이든 거는 사람이 진정 행복하다. 여기서 생겨나는 믿음이 자신에 대한 자긍심(Stolz, Pride)이다. 자존감이 타인의 관계에서 깨어지는 일이 있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인 자긍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쇼펜하우어는 “이러한 고독이 행복과 마음의 평정의 원천이기 때문에 젊은이는 고독을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을 주된 연구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여기서 ‘관계 중독’과 ‘고독 중독’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쇼펜하우어는 ‘관계 중독’의 원인을 혼자 있는 것이 단조롭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어울려 모여살기를 좋아하고, 단지 심심하기 때문에 함께 어울려서 시간을 허비하는 데서 찾는다. 자신의 궁핍함에서 벗어나 심심풀이와 사교를 추구하면서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다는 심리에 호응하고자 바깥에서 강력한 자극을 찾는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가 ‘마음의 진정하고 심원한 평화이자 완전한 내면의 평정’을 ‘고독 속에서만 발견’하려는 시도에는 문제가 없을까? 혹시 쇼펜하우어의 고독 예찬론이 필자가 새로 만들어낸 ‘고독 중독’을 부추기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 사회는 요즘 비혼, 미혼 등이 늘어나면서 가족 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최근 중장년층에는 고독사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젊은이들 사이에는 은둔형 외톨이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고독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여기게 됐다. 조기 퇴직, 실직, 독신, 비혼, 결혼과 출산 기피 등 사회 현상과 맞물려 그 파장이 확산됐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자발적 고독이라기보다는 비자발적 고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비자발적 고립은 쇼펜하우어가 예찬한 고독과 거리가 멀다. 쇼펜하우어가 모든 종류의 고독을 긍정한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혼자 살아라” “애써 어울리려고 하지 마라” “혼자가 행복하다” 등 과장된 해석은 이기적 고립을 조장할 뿐이다. 요즘 쇼펜하우어 책의 열풍과 함께 고독의 역량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쇼펜하우어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의 책과 현실이 달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을 사귀었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혼도 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기 때문에 반려견 한 마리와 산책하는 것을 즐겼다. 고독을 인간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강조한 쇼펜하우어가 노년에 많은 친구들에 둘러싸여 행복한 삶을 마무리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쇼펜하우어조차 인생이라는 추운 겨울을 혼자 지낼 수 있는 ‘정신적 온기’를 충분히 지니지 못했다. 더구나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민과 정, 따뜻한 관심 없이 냉혹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고슴도치에게 배워야 할 점은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는 가시를 눕히는 ‘예절’과, 다른 이와 함께 살기 위해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지혜’를 갖추는 일이다. 고독은 즐길 수 있는 사람에게는 자유를 주지만, 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구속이 된다. 늘 타인에 대한 배려, 공감, 연민의 따뜻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쇼펜하우어가 고독과 사교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살았듯이 우리도 ‘관계 중독’뿐만 아니라 ‘고독 중독’에서도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강용수
    ● 1968년생
    ● 고려대와 동 대학원 서양철학 전공,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박사
    ● 現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 동 대학교에서 강의 중
    ● 저서 ‘니체 작품의 재구성’ ‘니체의 『도덕의 계보』 읽기’ ‘쇼펜하우어가 들려주는 의지 이야기’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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