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싸우라! 언론이 숨긴 진실 들려준다는 거짓 선지자들과

[김호기의 고전으로 읽는 21세기] ‘공론장의 구조 변동’과 ‘포스트트루스’로 읽는 탈진실 시대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입력2024-03-11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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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진실의 이중적 의미, ‘애프터(after)’와 ‘디(de)’

    • 민주주의 지탱하는 ‘공론장’, 탈진실이 위협 中

    • 20세기 빛낸 사회사상가 하버마스의 공론장 연구

    • 정치·사회변동 속 탈진실 경향 주목한 매킨타이어

    • 과학부인주의·인지편향·전통적 미디어의 쇠퇴…

    • 건강한 공론장 없이 건강한 민주주의는 없다

    [Gettyimage]

    [Gettyimage]

    이 기획의 제목은 ‘고전으로 읽는 21세기’다. 가장 21세기적인 현상은 어떤 것들일까. 인공지능(AI), 포퓰리즘, 기후위기, 100세 시대와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른다. 이번 칼럼에 다루려는 ‘탈진실(post-truth)’도 그 목록에 포함될 것이다. 탈진실은 2016년 옥스퍼드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였다. 옥스퍼드사전에 따르면, 탈진실이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 사실보다 개인적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뜻한다.

    탈진실의 접두어 ‘탈’인 ‘포스트(post)’는 이중적 의미를 가진다. ‘애프터(after)’와 ‘디(de)’의 의미가 그것이다. ‘애프터’를 강조하면 진실과 진실 아님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디’를 강조하면 진실이 아닌 거짓이 담겨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탈진실의 ‘탈’에는 전자보다 후자의 의미에 그 무게중심이 놓인다.

    탈진실이 관심을 끈 것은 가짜 뉴스와 긴밀히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어느 나라든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려왔다. 가짜 뉴스가 범람한 까닭은 앞서 말했듯 여론 형성에서 객관적 사실보다 주관적 판단이 더 중요해졌다는, 다시 말해 탈진실 경향이 강화돼 왔다는 점에 있다.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포퓰리즘 시대의 등장과 함께 21세기의 시대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탈진실 시대가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우리 인류는 늘 탈진실 시대를 살아왔다. 호모 사피엔스 특유의 힘은 허구를 만들어 그것을 믿는 데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21세기 현재에 가짜 뉴스의 위험성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는 데 있다. 오늘날 넘치는 가짜 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통합을 훼손하며 우리 마음까지 피폐화시킨다.

    이러한 탈진실 현상을 주목하는 까닭은 그것이 공론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제도 중 하나가 언론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효과적 참여, 투표의 평등, 계몽적 이해의 확보, 의제 설정에 대한 최종적 통제의 행사, 성인들의 수용’을 확보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여기서 계몽적 이해란 사회 구성원들이 정책 대안과 이 대안이 가져올 결과를 이해할 수 있는 동등하고 효과적인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계몽적 이해를 제공하는 것이 언론, 곧 공론장이다.



    이러한 공론장에 대한 고전적 연구가 독일 사상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1962)다. 서구 근대 공론장이 근대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선구적으로 이론화하고 분석한 책이다. 한편 탈진실에 대한 최근 주목할 저작은 미국 철학자이자 작가인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2018)다. 탈진실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등장했는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이 두 저작을 통해 21세기 탈진실 시대에 다가서고 조명해 보려고 한다.

    위르겐 하버마스는 존 롤스, 미셸 푸코와 함께 20세기 후반을 빛낸 사회사상가로, 학자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저작은 교수자격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동아DB]

    위르겐 하버마스는 존 롤스, 미셸 푸코와 함께 20세기 후반을 빛낸 사회사상가로, 학자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저작은 교수자격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동아DB]

    ‘공론장의 구조 변동’의 주요 내용

    하버마스는 존 롤스, 미셸 푸코와 함께 지난 20세기 후반을 빛낸 사회사상가다. 학자로서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저작이 교수자격논문인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다. 서구 근대 공론장에 대한 그의 깊이 있는 분석과 이론은 사회학, 정치학, 커뮤니케이션학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하버마스는 공론장을 두 가지 맥락에서 정의한다. 먼저 공시적 맥락에서 공론장은 사적 영역과 대립한다. 사적 영역이 개인의 노동과 생활, 인간관계 및 가족관계를 말한다면, 공론장은 개인들 사이의 사회적 의사소통 행위와 관계를 지칭한다. 한편 통시적 맥락에서 공론장은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사회 영역을 지칭한다. 여기서 국가가 공적 영역을 대표한다면, 시민사회는 사적 영역을 대표한다. 공론장은 바로 두 영역을 매개하는 공간이자 주체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하버마스가 주목하는 공론장은 서구 근대에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부르주아 공론장’이다. 부르주아 공론장의 주체는 시민적 교양과 이성적 사유를 갖춘 근대적 개인들이다. 이들을 하버마스는 ‘공중’이라고 한다. 이 공중이 벌이는 토론과 그로부터 이끌어내는 합의가 진행되는 영역이 곧 부르주아 공론장이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부르주아 공론장의 기원에 대한 하버마스의 분석이다. 공론장의 최초 형태는 17~18세기에 등장한 ‘문예적 공론장’이었다. 살롱, 커피하우스, 클럽이 바로 그것이었다. 문예적 공론장은 부르주아지를 사적 공간으로부터 불러내어 문학과 예술의 토론 장소로 이용됐다. 이 문예적 공론장은 그 토론 주제가 문예에서 정치로 대체되면서 ‘정치적 공론장’으로 변모해 갔다. 이러한 변모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시민혁명, 신문의 발명과 인쇄물의 보급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부르주아 공론장의 역사적 발전은 나라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영국에서는 17세기 후반에, 프랑스에서는 18세기에, 독일에서는 그것보다 뒤늦게 이뤄졌다. 부르주아 공론장의 등장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정당과 의회민주주의의 확립에서 찾을 수 있다. 부르주아 계급이 공론장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이 여론으로 정부 정책에 압박을 가할 때, 정당과 의회는 이 정치의 생산과 재생산에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통해 하버마스가 전하려는 첫 번째 메시지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등장이 근대 민주주의의 확립에서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개인의 자율성에 관한 권리(개인의 자유, 사유재산의 보호, 국가권력 행사의 제한), 정치적 공론장의 보장(출판·집회·결사의 권리), 참여의 권리(투표) 등과 근대 헌법과 민주주의의 기본권 보장은 공론장의 역할과 성취를 상징했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하버마스가 전하려는 두 번째 메시지는 이러했던 공론장이 19세기 후반 이후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됐다는 점이다. 이 변화를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재봉건화’로 개념화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와 시민사회 간의 분리는 근대의 등장을 알리는 사건이자 현상이었다. 그런데 근대가 진행되면서 국가와 시민사회는 다시 결합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러한 국가와 시민사회의 재결합에 영향을 미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가 사회국가라고 불린 복지국가의 형성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이익집단·노동조합과 같은 거대 사회조직의 등장이었다. 복지국가와 거대 사회조직들은 공론장의 매개 없이 국가가 시민사회에 직접 개입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요컨대 국가와 시민사회의 재결합으로 부르주아 공론장이 쇠퇴하는 과정이 곧 ‘공론장의 재봉건화’다.

    하버마스의 결론은 비관적이다. 공론장의 재봉건화의 결과로 공론장의 여론 형성 기능은 상실됐고, 국민 다수는 탈정치화를 요구받게 됐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새로운 대안을 내놓은 것은 30년이 지난 다음 출간한 ‘사실성과 타당성’을 통해서다. 그 대안은 ‘투 트랙 숙의정치’다. 투 트랙 숙의정치란 의회 안의 ‘내부 공론장’과 의회 밖의 ‘외부 공론장’ 사이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정치를 말한다. 공론장의 살아 있는 여론을 통해 현대 민주주의에 생동감을 부여하려는 하버마스의 꿈은 결코 쇠퇴하지 않았던 셈이다.

    ‘공론장의 구조변동’이 기여한 바는 두 가지다. 첫째, 현대 민주주의에서 공론장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했다. 민주주의의 본령이 생각이 다른 개인과 집단이 공론장에서 개방적 토론을 통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음은 분명한 진리다. 둘째, 넓은 의미의 시민사회론에 포함될 수 있는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그람시의 시민사회론과 함께 20세기 후반 시민사회론의 부활을 주도했다.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힘의 원천으로서의 시민사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이론화는 환경운동·여성운동·평화운동 등 신사회운동의 철학적 기반을 제공했다.

    현대사회에 대한 하버마스의 대안은 ‘계몽의 계몽’이다. 잘못된 계몽에 대한 새로운 계몽을 모색함으로써 이성적인 사회를 일궈나가려는 유토피아적 기획은 하버마스 사상의 존재 목표다. 근대 공론장에 대한 분석과 새로운 대안의 모색은 계몽으로서의 현대성을 적극 옹호하려는 하버마스의 의지와 희망을 집약하고 있다.

    ‘포스트트루스’의 주요 내용

    미국의 공공지식인 리 매킨타이어는 주목할 만한 책들을 잇달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포스트트루스’는 탈진실 현상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 대표적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X 캡쳐]

    미국의 공공지식인 리 매킨타이어는 주목할 만한 책들을 잇달아 발표했는데 그 가운데 ‘포스트트루스’는 탈진실 현상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 대표적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X 캡쳐]

    매킨타이어는 하버마스만큼 널리 알려진 지식인이 아니다. 미국의 공공지식인이 그러하듯 매킨타이어는 대중적 독자를 위한 주목할 만한 책을 잇달아 발표해 왔다. 주요 저작으로는 ‘포스트트루스’ ‘과학적 태도’ ‘조작된 정보’ 등을 꼽을 수 있다. ‘포스트트루스’는 탈진실 현상을 분석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 대표적인 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옥스퍼드사전이 탈진실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2016년은 서구에서 정치적으로 뜨거운 해였다.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일어났고, 미국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진행됐다. 특히 미국 대선에서는 워싱턴 정치사회의 아웃사이더였던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가 당선돼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동시에 기성 언론을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폭스뉴스가 주관한 TV 토론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 그는 자신의 트위터(현재 X)를 통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동시에 기성 언론을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했다. [액시오스 사이트]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폭스뉴스가 주관한 TV 토론회에서 열변을 토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 그는 자신의 트위터(현재 X)를 통해 가짜 뉴스를 유포하는 동시에 기성 언론을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거짓말쟁이’라고 공격했다. [액시오스 사이트]

    ‘포스트트루스’가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정치·사회변동에서 관찰할 수 있는 탈진실 경향이다. 매킨타이어가 전하려는 것은 이러한 탈진실 현상이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한층 심화된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탈진실 등장의 배경으로는 다섯 가지가 중요하다. 과학부인주의의 등장, 인지 편향의 영향, 전통적 미디어의 쇠퇴, 소셜미디어의 출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그것이다.

    첫째, 과학부인주의란 과학적 사실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거나 그 연구 방법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과학부인주의의 대표 사례는 담배와 기후변화에 관한 논란을 들 수 있다. 담배의 유해성과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연구는 그 발견의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다. 언론은 형식적 객관성을 내세워 서로 다른 두 주장을 함께 보도했지만, 시민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둘째, 인지 편향은 인간의 불완전성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인간은 본래 심리적 불편함과 불안을 회피하려고 한다. 인지 편향은 이 불편함과 불안을 해소하려는 심리적 기제들을 지칭한다. 고전적 발견으로는 ‘인지부조화’ ‘집단 동조’ ‘확증편향’이, 최근의 발견으로는 ‘역화 효과’와 ‘더닝-크루거 효과’가 있다. 역화 효과가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사실이 제시될 경우 반발 심리에 의해 기존 편견이 강화되는 현상을 말한다면, 더닝-크루거 효과는 능력 없는 사람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셋째, 전통적 미디어의 쇠퇴 또한 탈진실 시대의 등장에 중요한 배경을 이룬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1970년대까지 객관성·정확성·중립성을 추구하는 전통적 미디어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이후 당파적 뉴스를 보도하는 새로운 매체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졌고, 이에 상응해 전통적 미디어의 영향과 신뢰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넷째, 소셜미디어의 출현은 여론 형성을 뒤흔들고 가짜 뉴스를 양산해 왔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6년 미국 성인 중 62%는 소셜미디어에서 뉴스를 확인하고, 그 가운데 71%는 페이스북에서 확인한다고 응답했다. 이 조사는 이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뉴스만 선택적으로 읽고 믿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경향은 뉴스의 ‘사일로화’ 경향을 강화시킨다. 사일로화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한 채 밀폐된 공간에서 선택적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진실 경향은 소셜미디어의 성장과 가짜 뉴스의 범람과 비례해 분명해졌다.

    마지막으로,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탈진실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에는 이 세상에 진리가 부재하고 각자의 이야기만 존재한다는 상대주의 세계관이 놓여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르면, 누군가가 어떤 진실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 이념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세계관 아래서 진실과 허위의 경계는 무너지고, 결국 탈진실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쓴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1962)와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2018). [각 출판사]

    위르겐 하버마스가 쓴 ‘공론장의 구조변동: 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Strukturwandel der Öffentlichkeit: Untersuchungen zu einer Kategorie der bürgerlichen Gesellschaft·1962)와 리 매킨타이어의 ‘포스트트루스’(Post-truth·2018). [각 출판사]

    탈진실 시대에 맞서기 위해 매킨타이어가 내놓은 전략은 ‘거짓에 맞서 싸우라’는 것으로 집약된다. 진실로부터 멀어질수록 현실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탈진실 현상은 현실 자체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현실에 반응하는 방식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의 태도다. 우리 밖에 놓인 가짜 뉴스는 물론 우리 안에 있는 탈진실 경향을 직시하고 이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는 것이 ‘포스트트루스’의 결론이다.

    ‘포스트트루스’가 ‘공론장의 구조변동’과 같은 전문적인 학술 저작은 아니다. ‘포스트트루스’가 겨냥한 독자는 전문적 연구자라기보다 대중적 청중이다. 학문적 깊이를 중시하는 독자들은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공론장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그 공론장이 삶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 새로운 현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포스트트루스’는 작지 않은 통찰을 안겨주고 있다.

    소셜미디어, 포스트모더니즘, 탈진실

    탈진실 시대의 도래가 보여주듯, 오늘날 어느 나라든 가짜 뉴스와 전쟁 상태에 놓여 있다. 일반적으로 가짜 뉴스는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조작된 정보(disinformation)’를 말한다. 잘못된 정보가 내용이 허위이지만 현실적 악의가 없는 정보를 말한다면, 조작된 정보는 정보 제공자가 허위의 내용을 현실적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정보를 의미한다.

    이 정보들과 비교해 ‘악의적 정보(malinformation)’도 존재한다. 악의적 정보는 그 내용이 사실이지만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을 침해하기 위해 악의를 갖고 유포하는 정보를 지칭한다. 언론학자 심영섭은 이러한 악의적 정보 역시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개인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현실 세계에서 가짜 뉴스 전쟁은 복합적이다. 언론학자 하재식은 ‘가짜뉴스 전쟁’에서 “우리 내면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포털사이트, 인터넷 동호회, 언론사 홈페이지, 심지어 사적 카카오톡까지 여론전이 시도 때도 없이 발발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때로는 거짓과 진실이 싸우고 때로는 거짓과 거짓이 싸우는” 것이 오늘날 지구적 공론장의 자화상이다.

    분명한 것은 21세기가 진행될수록 탈진실 경향이 두드러질 것이라는 점이다. 21세기 정보사회 변동을 이끌어가는 것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이다. 이와 연관해 유튜브를 위시한 온라인 공론장에서 알고리즘의 지배력이 증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실제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고 탈진실 경향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매킨타이어가 분석한 소셜미디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이 21세기 공론장에 미치는 영향을 눈여겨봐야 한다.

    소셜미디어가 갖는 힘의 원천은, 사회학자 마누엘 카스텔이 명명했듯, ‘네트워크화된 개인주의’에 있다. 다시 말해 소셜미디어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를 모두 강화하는 속성을 가진다. 우리가 페이스북에 수시로 접속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발신하기 위해서인 동시에 외로워서 공동체적 유대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소셜미디어가 인간의 본질적인 ‘인정 욕망’에 부응하는 한, 그것이 탈진실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쇠퇴하지 않을 것이다.

    더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힘 또한 갈수록 커질 것이다. 사회사상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영향력을 상실했더라도 사유 방식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오히려 그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오늘날 인문·사회과학에서 진리의 절대성은 승인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이념 및 세계관의 프리즘으로 현실을 분광(分光)시켜 이해한다. 너도 옳고, 나도 옳고, 우리 모두 각자 다 옳다는 극단적 다원주의가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이룰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공론장이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정치다. 정치란 공론장에서 형성되는 여론에서 누가 우위를 점하느냐의 경쟁이다. 문제는 이러한 여론 형성에서 소셜미디어가 보여주듯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져왔다는 점이다. 이렇게 증가하는 원심력 속에서 탈진실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인터넷은 원심력을 만들어낸다.” 이 말을 남긴 사람은 다름 아닌 하버마스다. 21세기적 현실을 지켜보며 하버마스는 정보사회의 진전이 가져온 수평적이고 분산적인 네트워크가 정치적 토론을 파편화하고 공론장을 분단시키며 결국 근대 초기 공론장이 일궜던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공론장의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이, 진리의 단수성이 아닌 복수성이, 사회의 코스모스가 아닌 카오스가 더 힘을 발휘하는 탈진실 시대에 우리 인류는 이미 진입해 있다고 볼 수 있다.

    탈진실 시대가 열렸다고 해서 가짜 뉴스의 범람을 이대로 놓아둘 순 없다. 매킨타이어는 진실 문제를 모호하게 만들려는 어떤 시도에도 의문을 제기해야 하고, 어떤 거짓에도 맞서 싸워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재식은 가짜뉴스 현상을 이념 또는 진영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가짜 뉴스는 결국 자유·평등·정의·평화·인권·행복·민주주의 등을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에 가짜 뉴스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하재식은 강조한다.

    가짜 뉴스에 맞서는 제도 개혁과 일상적 실천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도 개혁으로는 가짜 뉴스를 근절하기 위한 법적·행정적 규제를 시행하는 것과 뉴스 생산자의 윤리적 기준 및 책무성을 강화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제도 개혁의 주체는 당연히 국가가 될 터인데, 국가의 중립성이 어디까지 보장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상적 실천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제시할 수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미디어에 담긴 정보와 콘텐츠를 적절하게 접근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며, 나아가 미디어를 활용해 의미 있는 정보와 문화를 생산하고 전달할 수 있는 역량을 지칭한다. 이러한 역량을 키우고 미디어 이용에서의 윤리적 책임을 발휘하는 태도를 내면화하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지만 공론장이 놓인 시민문화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안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탈진실에 어떻게 대처할 건가

    가짜 뉴스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할까. 구체적인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2017년 전 세계 3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뉴스 매체가 정치적 사안을 공정하게 잘 보도하는지를 묻는 항목에서 우리나라는 응답자의 27%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18%를 차지한 그리스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는 47%였고, 일본의 경우는 55%였다.

    한편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조사한 결과도 큰 차이가 없다. ‘2022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언론이 공정하다’는 진술에 32.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40.7%는 ‘보통이다’라고, 26.5%는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또한, 이 조사에 따르면, ‘뉴스/정보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문제점 중 무엇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가’의 질문에 가장 많은 응답을 받은 것은 ‘편파적 기사’(22.1%)와 ‘허위/조작 정보(가짜 뉴스, 19.9%)’였다. ‘속칭 ‘지라시’ 정보’(12.1%)와 ‘언론사의 자사 이기주의적 기사’(11.2%)가 뒤를 이었다. 가짜 뉴스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가짜 뉴스의 위험성은 현장에서도 제기된 바 있다. 칼럼니스트 문소영은 우리 사회 가짜 뉴스 소비자의 경우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발언에 열광한다고 지적한다. “이들에게 진실은 ‘카톡’에서 지인이 전달해 주는 정보인데, 진실인지를 따져보지도 않는다. (…) 1인 미디어 시대에는 ‘언론이 숨긴 진실을 들려주겠다’는 거짓 선지자 같은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팟캐스트와 유튜브가 통로인데, 그 성향에는 좌우가 따로 없다.” 우리 사회에서 가짜뉴스를 생산하는 데는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사실과 주장, 정보와 오락, 진실과 허위가 혼재되고 결합돼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 공론장의 현주소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자. 21세기에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공론장이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사실이다. 과학기술혁명과 정보혁명이 우리 삶과 사회를 크게 변화시킨다고 해서 그 삶과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과 권력의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니다. 공론장의 의의가 이 권력과 자본을 감시하고 비판하며, 나아가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한 진실이다. 권력과 자본 없는 현대사회를 상상하기 어렵듯, 공론장 없는 우리 인류의 사회적 삶 역시 상상하기 어렵다.

    내가 탈진실을 주목하는 까닭은 최근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놓인 상황에 있다. 앞서 말했듯,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힘은 다원적 토론이 진행되고 사회적 합의를 추구하는 공론장에 있다. 오늘날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다원주의적 공론장의 기반을 뒤흔들고 있다. 반다원주의적 경향과 극단적 다원주의적 경향 사이에서 우리 사회 공론장과 민주주의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탈진실 시대에 대처하는 데에 지름길은 없다. 가짜 뉴스 근절에 대한 제도 개혁과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통한 민주적 공론장 형성을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건강한 공론장 없이 건강한 민주주의는 뿌리내릴 수 없다.

    김호기
    ●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 박사
    ● 미국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센터 코렛 펠로
    ● 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저서 : ‘현대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한국의 현대성과 사회변동’ ‘한국 시민사회의 성찰’ ‘South Korea's Democracy in Crisis’(신기욱과 공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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