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호

70대 4人 삶 온통 채운 질문 ‘뭐 하고 살지’

[20대 리포트] 일 없는 노년, 암울한 미래 극복에 나서다

  • 이아린 고려대 미디어학부 3학년 alyn0211@naver.com

    입력2024-01-3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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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만 있는 건 익숙하지 않다”

    • ‘키오스크’ ‘노 시니어 존’ 난감

    • 공허함과 우울감에서 벗어나기

    • 노인 일자리 수혜 대상 늘려야

    지난해 10월 11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에서 열린 ‘2023년 노인 일자리 채용 한마당’에서 어르신들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0월 11일 경기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에서 열린 ‘2023년 노인 일자리 채용 한마당’에서 어르신들이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뉴스1]

    반듯한 도로 옆, 숨겨진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있는 막다른 길. 그 앞엔 색이 바랜 커다란 간판에, 궁서체로 ‘청기와촌’이라고 쓰여 있다.

    이곳은 조남순(73) 씨가 24년 동안 운영해 온 식당이다. 하지만 동네 전체가 신도시로 편입되면서 식당 운영도 마무리 수순이다. 손님들의 발길은 하나둘씩 끊겼고, 공치는 건 일상이 됐다. 누워서 TV도 봤다가, 식사 시간이 되면 간단하게 밥도 차려 먹고, 반찬도 새로 조금씩 만든다. 폐업을 코앞에 뒀는데도 그가 매일같이 가게로 출근하는 건, 당장 가게 일 말고는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갈 곳도, 할 것도 없는 일상은 앞으로 노인 대다수가 마주할 암울한 미래다. 김회례(71) 씨는 이러한 현실에 대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안 좋고 너무 우울하다”며 “집에만 있는 건 익숙하지가 않다”고 말했다.

    비포장도로 끝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청기와촌. [이아린]

    비포장도로 끝자락에 위치한 한적한 청기와촌. [이아린]

    “뭘 크게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83.6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인의 공식 은퇴 연령은 62세이며, 노동시장에서 완전히 퇴직하는 실질 은퇴 연령은 72.3세다. 한국의 노인은 사회에서 가정으로 돌아와 짧으면 약 10년, 길게는 약 20년 넘게 더 살아가야 한다. 노인들은 20년에 달하는 기간에 무얼 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에 직면해 있다.

    무작정 밖으로 마실이라도 나가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인을 반겨주는 곳은 흔치 않다. 프랜차이즈 매장에는 노인 이용이 어려운 키오스크(무인정보 단말기)가 우두커니 서 있고, 메뉴판에는 젊은 사람도 알아보기 어려운 영어 메뉴가 가득하다.



    일부 가게는 문 앞에 ‘노 시니어 존(No Senior Zone)’을 써 붙이고 60세 이상 손님을 거부하기도 한다. 조남순 씨는 “카페 같은 데 들어가고 싶어도, 노인네가 무슨 저런 데를 와 할까 봐 괜히 창피해서 가기가 싫어진다”고 말했다.

    노후 생활에서는 금전적 걱정보다도 사회 활동에 대한 결핍이 더 큰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김충식(73) 씨는 70대의 늦은 나이에 학교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봉사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그는 “내가 뭘 크게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라며 “건강할 때라도 할 수 있는 걸 찾아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김충식 씨는 나머지 시간에 국악을 하는 아내를 도와 함께 공연도 다닌다. 2023년 10월 28일, 그와 아내는 휴일에 맞춰 서울 마포구 홍대 거리로 공연을 나섰다. 핼러윈데이가 며칠 남지 않은 날, 홍대 거리는 화려한 차림의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수많은 인파에 뒤섞여 걸어가면서 그는 마치 젊은이들과 똑같은 기분으로 걸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거리에서 젊은 기운을 받으니까 기분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바깥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벌거나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도 활기찬 일상을 가꾸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김회례(71) 씨는 새벽부터 일어나 치과로 출근한다. 김 씨가 치과에서 하는 일은 간단한 청소다. 일이 끝나면, 바쁜 자녀들을 대신해 손주도 돌본다. 많은 돈을 받는 것도, 주변에서 알아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녀는 매일같이 집 밖으로 나갈 이유를 찾는다. 김 씨는 “금전적인 걱정보다도, 놀기도 해봤지만 별로였다”라며 “몸이 따라준다면, 계속 (일을) 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홀로 가게 방 한 칸에서 TV를 보며 쉬는 조남순 씨. [이아린]

    홀로 가게 방 한 칸에서 TV를 보며 쉬는 조남순 씨. [이아린]

    몇몇의 말동무와 소일거리

    다만 이러한 사회 활동을 쉽게 시작할 수 없거나, 금방 끝내야하는 경우도 있다. 조남순 씨는 식당 일을 오래 한 탓에 무릎과 허리에 고질적 통증을 안고 산다. 이로 인해 새로 일을 시작해 볼까 싶다가도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노인에게는 건강이 사회 활동의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한 여성병원에서 청소 일을 하던 김복덕(72) 씨는 올해 초 계단 청소를 하다 넘어지면서 병원에 입원했다. 청소 일은 자연스레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답답하더라도 집에서 가만히 쉬며 건강 회복에만 집중했다.

    김 씨는 몸이 회복된 후인 2023년 10월, 동네 주민센터에 갔다가 우연히 노인 일자리 이야기를 듣고서는 일자리를 신청했다. 그에게 배정된 일은 낙엽이 지는 가을 단기간 매주 월·수·금요일에 한해 길거리 낙엽을 치우고 담는 일이었다. 11월 한 달의 짧은 기간이지만, 그는 몸도 움직일 수 있고, 좋은 얘기 나쁜 얘기도 나누며 대화를 하니 시간도 잘 간다고 했다.

    노인들이 이렇게 소일거리를 찾는 데에는 공허함과 우울감이 크게 작용한다. 김복덕 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롭고 쓸쓸하다”라며 “쓸데없는 생각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의 경우,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해 밤이 돼 침대에 누울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도 많다. 텅 빈 듯한 노후 생활 속에서 노인들에게는 몇몇의 말동무와 소일거리, 소박한 취미를 만드는 것조차 어렵게만 다가온다.

    김진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퇴직 후에 얻을 마땅한 일자리가 많지 않고, 비용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가 프로그램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했다. 이어 “저소득 독거노인이 근로 활동이나 여가 활동을 하지 않고 혼자 고립돼 집에만 있을 경우, 우울증 발생 등 정신 건강이 점점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 수혜 대상 확대를 꼽았다. 이를 통해 노인의 빈곤, 고립, 정신 건강 문제를 한꺼번에 완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공공 여가시설 이용 시 기초수급자가 아닌 저소득층 노인에게도 비용 할인을 적용해 많은 노인이 여가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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