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참극 벌어진 땅
“그때 생각하면 아직 잠에서 깨”
“죽은 사람만 너무 안됐지”
“사람과 거리 두고 손 확인하는 버릇 생겨”
“CCTV 있어도 무섭다”
“언제, 어디서든 또 벌어질 수 있는 일”
2월 2일 오전 9시 30분께 서울 지하철 2호선·신림선 신림역 4번 출구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지난해 여름 이곳에서 잔혹사가 벌어졌다. 한 달 간격으로 무차별 범죄,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터졌다. 7월 21일엔 서울지하철 2호선·신림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에서 ‘신림역 칼부림 사건’, 8월 17일 관악산 생태공원 등산로에선 ‘등산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신상 정보가 공개된 피의자 9명 가운데 2명이 이로 인해 나왔다. 조선(34)과 최윤종(31)이다. 이들과 각 사건 피해자들은 서로 일면식이 없는 사이였다.
사건 발생 후 반년가량 흐른 시간 때문인지 2월 2~3일 양일간 찾은 이곳엔 사건의 흔적이 더는 눈에 띄지 않았다. 폴리스라인은 진즉 사라졌고, 낭자하던 피해자의 혈흔도 씻겨 내려갔다. 역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행인들로, 인근 상점가는 여가를 즐기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 정오 무렵까진 한산하던 관악산 생태공원도 식사 시간 이후엔 산책을 하러 나온 주민들로 공백이 메워졌다.
사건 전 모습을 온전히 회복한 건 아니었다. 으레 깊은 상처를 감추듯 상흔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있었다. 기억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참극의 기억은 불안이 돼 그들의 마음 한편에 자리를 차지했다. 잠들기 위해 약을 먹는 사람, 일부러 길을 돌아가는 사람, 타인의 두 손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 거리를 두는 사람 등 신림에서 만난 사람들은 여전한 불안감을 호소했다. 그들은 “마치 자연재해 같다”고 말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이 닥칠까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언제 닥칠지 모르기에 당장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처지라는 의미다.
2월 2일 오후 12시 30분께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생태공원 둘레길 초입. [지호영 기자]
지난해 8월 25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신림동 등산로 살인사건 피의자 최윤종(31)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왼쪽). 지난해 7월 2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 신림동 흉기난동 살인사건 피의자 조선(34)이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산 사람은 살긴 해야 하니까…”
2월 2일 오전 9시 30분께, 출근길 ‘러시 아워(rush hour)’를 비껴간 시간인데에도 신림역 4번 출구엔 지하철을 타려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신림역은 신림동 관내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이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일평균 10만8599명이 신림역을 이용했다. 강남역, 잠실역에 이어 서울지하철 2호선 가운데 3위다.으레 사람이 몰리는 곳이 그렇듯 주변 상권도 발달했다. 신림사거리 인근 상권이라고 해서 주민들에겐 ‘신사리’라고 불린다. 특히 4번 출구 쪽은 역 가운데서도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다. 국회의원 총선거,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이곳에서 꼭 유세를 벌인다.
호사다마(好事多魔). 공교롭게도 지역을 살리는 활력이 참극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7월 21일 오후 2시 7분 신림역에서 칼부림 살인사건을 벌인 조선은 체포 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행 장소 선정 이유에 대해 “사람이 많은 곳이라서”라고 진술했다. 조선은 사건 불과 10분 전인 1시 57분 금천구의 한 마트에서 흉기를 훔쳐 택시를 타고 신림역에 내렸다. 4번 출구 인근 한 골목 초입 → 골목 안쪽 갈림길 → 갈림길 오른편 지상 주차장 총 130m를 뛰어다니며 범행을 저질렀다. 피해자들을 흉기로 공격한 횟수는 총 40여 회에 달한다.
첫 번째 피해자는 골목 초입에서 담배를 피던 당시 만 22세의 한 남성이었다. 조선은 그의 목, 얼굴, 팔 등을 흉기로 13회 찔렀다. 피해자는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잇따른 자상에 힘이 빠져 쓰러졌다. 그러자 조선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3분간 마주친 30대 남성 3명의 얼굴·목을 겨냥해 흉기를 휘둘렀다. 이후 공격을 멈춘 그는 흉기를 든 채 주변을 배회하다가 인근 한 스포츠센터 앞 계단에 앉아 있던 중 2시 20분에 검거됐다.
사건을 목격한 상인들은 “그날 일을 떠올리기 싫다. 그다지 말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열길 꺼렸다. 복권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시간이 지나 이제 예전만큼 무섭진 않다”면서도 “여전히 조선이 앉아 있던 계단과 그 근처 길은 그때 일을 생각나게 만든다. 그곳을 우회해서 출근한다”며 낯빛을 흐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김모 씨는 한참을 침묵하다 “사건을 목격한 후로 두 달간 잠을 중간에 깨지 않은 적이 없다”며 말을 시작했다.
“난리도 아니었죠. 다들 혼비백산해 비명 지르고, 도망 다니고. 사람들이 난리를 치길래 내다보니까 범인이 흉기를 든 채 뛰어다니고 있더라고요. 주변엔 피가 낭자했는데, 살면서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피를 본 적이 없어요. 그 후로 가슴이 계속 뛰고, 머릿속에 장면이 떠나질 않아서 잠을 못 자겠더라고요.”
잠을 이루지 못하던 김 씨는 결국 신경정신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그에게 “마음 같아선 기억을 지워드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 죄송하네요”라며 수면제를 처방했다.
“한 네 달 정도는 수면제를 먹고 잤어요. 시간이 약이라고,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긴 하더라고요. 매일 약을 먹다가 이틀에 하나 먹고, 나중엔 안 되겠다 싶을 때 한 개 씩 먹고…. 이제 약 없이 자긴 하지만 가끔 그때 모습이 떠올라서 가위에 눌리기도 하고, 악몽을 꿔서 갑자기 잠에서 깨곤 해요.”
상인들이 사건에 대해 술회하길 주저하는 까닭엔 ‘생업’도 있다. 4번 출구 앞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칼부림 사건이 일어난 후 약 두 달 동안엔 손님이 뚝 끊겼다.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이제 다시 그나마 살 만해졌는데, 예전 일을 끄집어내면 그리 달갑지 않아 하는 사람이 많을 거다. 지역 이미지가 나빠지면 사람들 발길이 끊기니까”라고 말했다.
술집을 운영하는 상인 B씨도 “사건 이후 한동안 사람들 발길이 끊겨 빚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다 넉넉한 상황도 아니고, 월급쟁이들 신세나 마찬가지예요. 한 달 벌어서 월세 내고, 살림 꾸려가고 그렇죠.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손님이 없어지니까 그대로 매출에 ‘빵꾸’가 났죠. 월세는 그대로 나가지, 애들 학원비에 생활비에…. 아, 죽겠더라고요. 결국 신용대출을 받아서 썼어요. 아직 그대로 빚이에요. 여기 상인들한테 그 사건은 ‘트라우마’ 그 자체예요. 저만 해도 그런 일 한 번 더 벌어질까 봐 불안한 걸요.”
B씨는 “생각하면 착잡하다”며 사건 이후 추모 인파와 상인 간 벌어졌던 갈등을 떠올렸다. 지난해 7월 21일 사건 발생 후 일주일간 사건 현장은 추모 공간이 돼 추모객들이 찾아와 꽃, 음식, 음료, 쪽지 등을 놓고 갔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놓인 음식은 금세 상해 부패했다. 벌레가 꼬였다. 악취도 진동했다. 이 문제로 상인회와 추모객 사이 고성이 오가며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관악구청은 이 공간을 철거했다.
“추모하는 마음이야 당연히 이해가 되죠. 그런데 그것 때문에 손님들이 더 안 오긴 했거든요. 가뜩이나 살인사건 났다는 곳인데, 골목 초입부터 추모 공간이 있으니 사람들이 와서 먹고 마실 마음이 들겠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지 싶으면서도, 저도 피해자 또래 자식이 있다 보니 마냥 싫어할 수도 없고…. 복합적 감정이 들었죠. 죽은 사람만 불쌍한 것 같아요.”
지난해 7월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지하철 2호선·신림선 신림역 칼부림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국화꽃이 놓여 있다. [뉴스1]
“사람을 피하게 돼요”
신림역과 삶으로 얽힌 사람들은 더 있다. 이들에게도 그날의 사건은 지워지지 않는 상흔으로 남아 있다. 금천구청 인근에 거주하는 이수지(28) 씨는 사건 발생 이전엔 항상 신림역을 경유해 출근했다. 5530번 버스를 타고 신림사거리·신림역 버스정류장에 내려 서울지하철 2호선으로 환승, 역삼역으로 갔다. 사건이 벌어진 후 그는 반년 동안 일부러 다른 역을 이용해 직장으로 향했다. “10~15분이 더 걸렸지만 그게 더 마음이 편했다”라고 했다. 신림역으로 돌아온 지 3주쯤 됐다고도 했다.“원래는 항상 신림역 4번 출구로 다녔어요. 사망자가 발생한 그 지점을 지나서요. 제가 가끔 오후 출근을 해요. 그럴 땐 오후 2시쯤 오는데, 사건이 발생한 시간이죠. 만일 그날 제가 오후 출근을 했으면 저도 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서 못 오겠더라고요. 한동안 사당역에 내려서 출근했어요. 시간도 제법 지났고, 요즘 업무가 많아져서 아침잠 1분이 아쉽다 보니 다시 신림역을 거쳐 출근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골목을 볼 때마다 기분이 섬뜩하죠.”
신림동 별빛거리 지역 주민 이준혁(33) 씨는 사람을 경계하는 습관이 생겼다. 모자를 푹 눌러써 시선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사람이 근처에 오면 슬쩍 거리를 둔다. 흡연할 때도 사람들과 떨어진 구석자리를 찾는다. 불을 빌리고자 가까이 오는 사람에게서 물러나다가 뒤로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
“사망자도 담배를 피우다가 변을 당했잖아요. 사람이 무서워서 피하게 되더라고요. 흉기라도 들고 있는 건 아닌지 사람들 손을 확인하게 돼요. 손이 안 보이면 불안하고, 갑자기 흉기로 내 목을 찌르지는 않을지 겁도 나고. 괜히 목 주변 칼라를 추켜세우게 되죠. 그래도 주변에 강남 방향 가는 역이라곤 이곳밖에 없으니 불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거쳐서 출근해요.”
사건 현장 인근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홍모 씨는 “사건이 터졌을 때 부모님이 일을 그만두길 권했다”고 말했다. 부모는 전남 고흥군에 산다. 사건 이전 하루 한 번 하던 통화가 이후엔 세 번으로 늘었다. 사건 직후 며칠 동안엔 대여섯 번 하기도 했다. 부모의 걱정이 마음에 걸리지만 일을 그만둘 순 없다. 사장과 정이 들기도 했고, 마땅한 다른 일을 찾기도 어려워서 그렇단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딱히 유명하지 않은 지방대를 나와서 그런지 과외 같은 알바가 구해지지도 않고,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장님이 잘 해주시는 편이기도 해서 계속 일하고 있는데, 같이 일하던 사람 가운데 두 명은 무섭다고 관뒀어요. 저도 솔직히 무섭긴 해요. 호신 무기라도 사야 하나 싶었는데, 갑자기 공격당하면 그것도 별 소용없을 것 같아서 관뒀어요. 그냥 먹고살아야 하니까 참고 사는 거죠.”
“이제 안전한 곳 없는 것 같아”
2월 3일 오후 7시께 서울 지하철 2호선·신림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골목에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이현준 기자]
지난해 8월 17일 이곳에선 최윤종이 초등교사로 일하던 30대 여성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성폭행을 목적으로 양손에 너클을 끼고 피해자를 때렸다. 최윤종은 경찰 진술에서 “지난 30년간 성관계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성폭행을 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그는 오전 9시 55분 금천구 독산동 집에서 나와 공원으로 걸어서 이동했다. 11시 무렵 공원 둘레길 입구에 도착해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오전 11시 40분께다. 사건 지점은 둘레길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최윤종은 이곳을 범행 장소로 택한 이유로 “자주 다니는 곳이라 CCTV가 없는 곳임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2월 2일 찾은 사건 지점은 인적이 드물긴 해도 10분에 1명꼴로 사람이 지났다. 길도 서너 명은 나란히 걸어가는 게 거뜬할 만큼 넓고 트여 있었다. 오른편 100m쯤 아래엔 난곡초등학교가 보였다. 백주 대낮에, 성폭행을 시도할 만한 장소라기엔 사방이 노출된 곳이다.
CCTV가 길을 따라 설치돼 있었다. CCTV 옆엔 “위급상황 발생 시 국가지점번호로 위치를 신고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국가지점번호가 쓰여 있는 표지판이 있었고, 아래엔 비상벨이 설치돼 있었다. 사건 이후 생긴 것이다.
2월 2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관악산 생태공원 둘레길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길에 비상벨(왼쪽위)이 부착된 기둥 위 CCTV가 설치돼 있다. [지호영 기자]
“이 근방이 다 산이라 녹지가 많긴 한데, 거주지랑은 여기가 가장 가깝거든. 그래서 주민들이 많이 애용했어. 사람 수도 적당하고, 산책로도 무난하고 해서 젊은 사람보다는 나 같은 노인들이 더 많이 찾긴 했지. 사건 터지곤 그마저 끊겼지만. 시간이 꽤 흘렀고, 예전보단 안전해졌다고 하니까 난 다시 다녀. 붐빌 땐 예전만큼 붐비는데, 확실히 젊은 사람들은 더 안 오는 것 같아. 특히 젊은 여자들. 그런 험한 일이 있었으니 당연히 오기 싫겠지. 나도 젊은 여자였으면 무서워서 못 왔을 거야.”
이웃 아파트 주민 최모(69) 씨는 사건 이후 사람들의 눈에 잘 띄는 공원 중심부에서만 운동을 한다. 적어도 사람들이 다 보는 데에선 별일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다.
“꼭 젊은 사람들만 변을 당하라는 법은 없잖아. 그래도 사람들이랑 같이 있으면 마음이 좀 놓이더라고. 변두리 길은 아직 무서워. 그런데 모르지. 신림역에서 난 칼부림 사건 보면 사람들 많은 길 한복판에서 일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이제 안전한 곳은 없는 것 같아. 각자가 조심하는 방법밖엔 없나 싶어.”
“CCTV 있어도 ‘미친놈’은…”
사건 이후 관악구청과 관악경찰서는 각각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9월 관악구청은 △안전취약 지역 중심 현장순찰 강화 △범죄예방 시설(인프라) 구축 △범죄예방 추진체계 재정비 및 기관 간 협업 강화 △여성 안심서비스 확대 및 안전의식 홍보 등 4개 분야 22개 내용을 담은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생활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자율방범대 순찰을 강화하고 안전 취약지역엔 ‘안전지킴이’, 주민센터엔 ‘안전보안관’을 배치했다. 관악경찰서는 역, 길거리, 산길 등에 경찰을 배치하고 산악 순찰대를 운영하는 등 치안 강화에 나섰다.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등산로 살인사건 당시 관악구엔 CCTV 5600여 개가 이미 설치돼 있었다. 경찰도 신림역 칼부림 사건으로 인해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하고 장갑차와 무장 특공대까지 동원해 순찰을 강화한 상태였다.
조원동 주민 최수진(29) 씨는 “내가 사는 곳은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지역이라 사각지대가 많다”며 “집에 들어가려면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만 하는데,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이 아직 있다. 그런 구석구석 다 경찰이 살피고, 지켜줄 수는 없으니 심호흡을 하며 지나곤 한다”고 말했다. 서원동 주민 30대 박기태 씨는 “순찰과 CCTV를 늘린다 해도 대책이 될까 싶다”며 “솔직히 ‘미친놈’은 그런 게 있어도 일을 벌이지 않나. 사실상 대처가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치안 강화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사건이 벌어진 후 범인에 대한 형량 강화, 순찰 및 CCTV 수 증가 등 사후대책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며 “조기에 위험을 감지하고, 개별 사례에 따른 맞춤형 대응으로 사건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게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현직 경찰 C씨는 “아무리 치안을 강화한다 해도 빈틈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소화하는 게 당연하지만 24시간 모든 사람을 살필 순 없다. 예기치 못한 데서 일이 터지면 방법이 없다. 시민 불안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모든 곳이 신림”
전문가들은 근본적 해결책을 ‘사회’에서 찾았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타인에 대해 분노를 쏟아낸 것으로 봤다. 조선과 최윤종은 모두 ‘사회 부적응자’다. 조선은 흉기 상해를 포함한 전과 3범이다. 법원 소년부 송치 횟수는 14건에 달한다. 가정환경이 불우했다. 부모가 있으나 별다른 교류가 없었고, 조모와 생활했다. 조선은 경찰 조사에서 “내가 불행하게 사니까 남들도 불행하게 만들고 싶었다”고 진술했다.최윤종은 부모와 함께 거주했지만 PC방과 집을 오가는 것이 외출의 전부였다. 통화도 음식을 배달할 때 한 것이 대부분인 ‘은둔형 외톨이’였다. 입대해 이등병이던 2015년 2월엔 소총과 실탄을 휴대한 채 무단이탈하기도 했다. 약 두 시간 후 붙잡힌 최윤종은 탈영 이유로 “군대 체질이 아닌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재발을 막기 위해선 죄질, 인성 등 개인의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사회구조에 주목해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전에 여의도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무차별 칼부림을 벌인 적 있다. 고용 불안전성에서 오는 ‘한풀이’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 쌓이면 불특정 다수에게 그 감정을 표출하게 된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로 꼽힌다. 혐오가 만연하고 최악의 저출산 국가다. 사회가 그만큼 각박해졌다는 뜻이다. 불평등, 지나친 경쟁, 주거 불안정 등 상황이 사람들에게 불행을 강요하고 있다. 국가가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곽대경 교수는 ‘무차별 범죄’라는 이유 탓에 대책이 없다는 식으로 논의가 흘러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 이러한 사건을 당하면 ‘운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는 대처로선 옳지 못한 것”이라며 “사회 부적응자는 사회, 경제, 인간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존재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은 자립할 수 있도록 교육·일자리 지원을 한다는 식으로 각자의 상황에 맞는 맞춤형 대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명한 해결 방식이 있는데, ‘자연재해’처럼 취급하는 것은 무책임이다.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림에서 벌어진 사건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선과 최윤종은 올해 1월 1심에서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형 판결이 나지 않은 것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하는 여론이 거셌다.
30여 년간 소년범을 전담 변호해 온 변호사 D씨는 “물론 엄연히 법 원리도 피해자에 대한 구제, 피해자 측의 복수 감정을 반영하기에 말하기 조심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가해자들의 범죄 사실, 그들에 대한 형량 강화 및 사형 집행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형을 집행한다고 해서 무차별 범죄가 줄어든다는 근거는 없다. 소년범들을 만나다 보면 불우한 가정의 자녀가 많다. 이미 좌절을 겪은 이들을 처벌 대상으로만 보면 더 내몰리고 좌절한다. 교화가 되지 않고 더 악화한다. 정신을 차리고 성실하게 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대개 그나마 주변이 애정으로 감싸주고 사회에서 기회를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이 비뚤어져 자라면 무차별 범죄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작든 그든 어떤 ‘사회’라는 게 원래 그렇다. 어떻게 잘난 사람들만 사나. 형법학 가운데 유대 이론에 따르면 친구·부모님 등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 속에 살아야 범죄가 억제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유대가 근본적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신림엔 위험이 상존한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불행이 자신에게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현재를 살아가려 애쓴다. 2월 3일 오후 7시께 신림역 4번 출구 골목에서 만난 김진태(43) 씨는 말했다.
“원래 일 한 번 터지면 바짝 관심 갖다가 지나고 나면 흐지부지되곤 하잖아요. 안 그러길 바라지만 사는 게 더 퍽퍽해진다는 느낌을 받아요. 또 비슷한 일이 벌어져도 안 이상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때 또 부랴부랴 대책을 논의하겠죠. 사람들은 계속 불안하게 살고요. 신림동이 우범지대라서 벌어진 일이 아니에요. 세상이 계속 이 모양이면 우리나라 어디든 신림이 될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대학에서 보건학과 영문학을 전공하고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했습니다. 여성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설령 많은 사람이 읽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겐 가치 있는 기사를 쓰길 원합니다. 펜의 무게가 주는 책임감을 잊지 않고 옳은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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