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MS 프로그램으로 5만여 진성당원 관리와 재정의 일체화
- 6~7월중 ‘싱크탱크’ 격인 당 정책연구소 개소해 본격 정책 개발
- 북한식 국가사회주의, 서구식 사민주의 아닌 ‘제3의 사회주의’ 추구
- 2006년 지방선거 20% 득표 → 2008년 18대 총선 제1야당 비약
- ‘거대한 소수정당’ 전략…2012년 대선 집권 프로젝트
- ‘비례대표의원 2년 순환제’ 전격 도입 가능성
- 느린 의사결정, 정보유통의 폐쇄성 등이 내부적 한계
2002년 9월 민주노동당(이하 민노당) 노회찬(48) 사무총장은 ‘의석 없는 정당’이란 민노당의 핸디캡에 대한 우려와 함께 17대 국회의원총선거를 향한 기대감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이런 입장의 기저엔 정당이 이념 및 정책, 당원, 정책수단으로 구성돼야 함에도 민노당은 정책수단인 의석(입법권)과 정치권력(행정권)을 확보하지 못한 비(非)정상정당이라는 ‘갈증’이 짙게 깔려 있었다.
당시 기자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테마로 한 ‘노풍(勞風), 2002 대선 찍고 2004 총선 간다’ 제하의 기사(‘신동아’ 2002년 10월호) 취재를 위해 서울 여의도 두레빌딩 9층(민노당 구당사)에서 그를 만난 터였다. 노 총장의 ‘우려 섞인 기대’는 그로부터 만 2년도 채 안돼 고스란히 현실이 됐다.
주지하듯, 민노당은 이번 17대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13%를 전국적으로 고루 얻어 비례대표 8명을 포함, 10명의 당선자를 냄으로써 원내진출과 동시에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는 기염을 토했다.
요즘 여의도 한양빌딩 4층 민노당 당사(2003년 7월 당사 이전)엔 연일 취재진과 각계 방문자의 출입이 끊이지 않는다. 권영길(63) 대표와 노회찬 사무총장에 대한 언론매체 인터뷰만도 10∼20분 간격으로 이어질 만큼 분주하다. 외부단체의 방문도 잦다. 4월26일에는 거대 외국계 투자그룹인 모건스탠리 관계자 방문, 5월7일엔 보수 성향의 연구소인 미국 헤리티지 재단 관계자 방문…하는 식이다.
당사 분위기도 활기차다. 2년 전만 해도 자못 엄숙하고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원내진출 이후의 상황변화에 대해 당직자들 스스로도 놀라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2002년 9월8일 민노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됐을 당시 권영길 대표가 “민노당은 진보정당이자 국내 유일의 정책정당임에도 언론의 ‘무풍지대’”라며 언론에 홀대받고 있다는 불만을 줄곧 강도 높게 토로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럼에도 민노당을 속속들이 안다는 이는 예상외로 많지 않다. 17대 총선 이후 최대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한 민노당의 실체는 무엇인가. 또한 그 무엇이 ‘민노당의 힘’인가.
44년 만의 진보정당 원내진출
민노당 창당은 2000년 1월30일 이뤄졌다. 이날 서울 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창당대회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 대표로 선출됐다.
민노당은 ‘창당선언문’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농민 빈민 중소상공인의 정당이며, 여성 청년 학생 진보적 지식인의 정당’이라 규정하고, ‘한국사회의 다양한 진보세력과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개인의 총화를 이루어내는 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 선언함으로써 그 역사적 탄생을 알렸다.
그러나 같은해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21명의 후보가 전원 낙선, 군소정당으로서의 설움을 톡톡히 겪어야 했다. 심지어 기대주였던 울산 북구의 최용규 후보마저 500여표 차로 떨어지자 경선과정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당내 책임논란이 일기도 했다. 민노당은 16대 국회 원내진출 실패의 원인을 뒤늦은 준비와 내부 분열 때문으로 분석한다.
민노당은 2001년 4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소환을 위한 결사대를 프랑스에 파견하는 파격적 행보로 잠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줄곧 원외정당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어 여론의 큰 관심대상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이번 17대 총선에서 ‘대약진’해 그런 ‘상대적 박탈감’은 말끔히 씻겼다.
민노당의 태동은 1997년 ‘국민승리21’ 시절 이미 예고됐다. 당시 재야 및 노동계 연합체였던 ‘국민승리21’은 같은해 12월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권영길 후보를 내세웠으나 전체 유권자의 1.2%에 해당하는 30만6026표를 얻는 데 그쳤다. ‘국민승리21’은 민주노총, 진보정치연합, 전국연합 등 거의 모든 진보세력의 결집을 이뤄냈지만 그만큼 급조된 측면도 없지 않았다.
민노당 스스로는 ‘국민승리21’ 시절부터 창당 직전까지의 시기를 ‘당 준비기’로 부른다. 이 과정에서 학생운동가 출신 386세대 상당수가 ‘국민승리21’을 떠나는 아픔도 겪었다. 그중 일부는 기성 정치권으로 흡수돼 현재 민노당엔 노동운동가 출신 386 몇 명만 남아 있다. 당시 기성 정치권행을 택한 386세대로는 열린우리당 17대 총선 당선자(구로 갑) 이인영(40)씨가 대표적 케이스로 꼽힌다. 이씨는 ‘국민승리21’의 조직국 부국장 출신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들은 되레 진보정당 창당 의지를 담금질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1999년 8월29일 진보정당 창당발기인대회(발기인 2000명)를 거쳐 이듬해에 마침내 민노당이 창당된 것이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의석 15석, 정당투표율 15% 획득’이라는 내부 기대치엔 조금 못미쳤지만, 어쨌든 민노당은 1960년 4·19 직후 국회의원 7명을 배출한 사회대중당, 한국사회당 등 혁신정당들이 5·16 군사쿠데타로 무너진 이후 44년 만에 진보정당의 독자 원내진출을 일궈냈다. 제도권 진입 성공과 함께 ‘스타정당’으로 떠오른 민노당의 기세는 가히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렇다면 민노당의 원내진출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요인은 몇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우선 ‘국민승리21’ 시절부터 네 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를 거치면서 선거운동 역량을 축적해 당내 선거전문가를 양산한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민노당은 비록 2000년 16대 총선에선 참패했지만, 창당 3년째인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는 218명이 출마해 구청장 2명, 광역의원 11명, 기초의원 32명 등 45명을 당선시켰다. 또한 8.13%(134만표)의 정당득표율을 획득, 자민련(6.5%)을 제치고 제3당으로 떠올라 정치적 입지를 크게 강화했다.
같은해 12월 16대 대선에 재출마한 권영길 대표는 3.9%(95만7148표)의 지지율을 얻는 데 머물렀지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란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선거기간 내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사회복지 재원으로 쓰자’는 부유세 도입을 전파해 유권자에게 ‘민노당=부유세’라는 등식을 깊이 각인시키며 민노당의 대중적 지지도를 한층 굳혔다.
선거법 개정의 덕도 컸다. 1인1표 비례대표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도입된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소수정당의 원내진출 진입장벽을 낮춰 민노당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유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 또한 민노당 스스로 일궈낸 측면이 강하다. 위헌판결은 민노당이 2000년 2월 헌법소원을 제기해 얻어낸 성과물이기 때문이다.
자발성 강한 진성당원의 힘
‘민노당 대약진’의 저력은 다른 정당에선 감히 넘볼 수 없는 진성(眞性)당원의 존재에도 기인한다. 5월12일 현재 전국의 민노당 당원은 5만38명(후원회원 포함). 창당 초기의 7000명에 비해 7배 늘었다. 이 가운데 당비(黨費)를 내는 진성당원이 80%를 넘는다. 신입당원도 크게 늘어 17대 총선 이전 하루평균 70명 꼴이던 신규가입 당원 수가 총선 후엔 150~200명으로 늘었다. 4월에만 5600여명이 당원으로 신규 가입했다.
민노당은 전교조 교사 출신의 평당원 최철호(44)씨가 창당 전에 개발한 당원관리시스템인 CMS(Cash Manage- ment System) 프로그램을 통해 당원들이 매월 5000원(주부·실업자)과 1만원(직장인)씩 내는 일반당비를 관리한다. CMS는 당원의 인적사항과 당비납부 현황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다. 이같은 ‘재정과 당원관리의 일체화’는 곧 ‘당비에 의한 재정자립’으로 이어져 민노당이 불법정치자금으로부터 초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03년의 경우 민노당 당비납부율은 98%. 한나라당 0.6%, 민주당 0.4%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민노당이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당 홈페이지와 기관지에 공개, ‘유일 투명정당’임을 강조하며 정치개혁 핵심과제 중 하나인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외치는 것도 이같은 자신감에서 비롯한다. 진성당원의 자발성은 민노당의 가장 큰 자산이다.
덕분에 당의 ‘살림살이’도 확연히 나아졌다. 민노당의 재정은 당비·국고보조금·후원금 등으로 구성되는데, 2003년 기준 재정규모는 48억원 가량이다. 당원 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올해는 그 규모가 훨씬 커질 전망이다.
전국 16개 광역시도지부 외에 해외지구당이 존재하는 것도 민노당만의 특징. 이는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일이다. 2003년 4월 유럽에 거주하는 당원 60여명으로 구성된 ‘유럽지구당’은 유럽지역 교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입장을 반영하고 그들에게 진보정치에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는 첫 해외 근거지다. 미주지역에도 후원회 준비모임이 구성돼 있다.
2000년 1월30일 서울 올림픽역도경기장에서 개최된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숨은 공신’도 적잖다. 특히 ‘기획통’으로 알려진 문명학 기획조정실장, 이재영 정책1국장, 김종철 대변인 등 중앙당 당직자들의 기여도가 높은 것으로 민노당 내부에선 평가한다. 냉정한 판단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는 문 실장은 노회찬 사무총장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다.
총선 공약은 당과 전문가들의 합작품
‘정책선거’를 강조해온 민노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40대 핵심공약’(표 참조)을 내놓은 바 있다.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차별철폐, 무상의료 및 무상교육 실시, 국공립대 통합, 빈곤층 신용카드 채무 탕감 등 그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하나같이 진보적인 민생관련 정책들이다. 입후보자면 누구나 내놓곤 하는 지역개발공약은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이런 공약의 차별성은 선거를 정쟁의 도구로 여기는 구태를 거듭해온 보수정당과 민노당을 확실히 구획짓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40대 핵심공약은 민노당 정책실무진과 진보성향의 학자 및 시민단체 정책담당자들의 ‘합작품.’ 공약개발의 주체는 민노당 총선정책공약개발단(이하 공약개발단)이다. 2003년 11월 공약개발단을 꾸린 민노당은 17대 총선을 정책선거로 가져간다는 방침 아래 정치 경제 민생 노동 복지 사회분야의 소주제를 구체화하는 정책수립에 들어갔다.
그러나 공약의 상당수 내용은 이미 2002년 대선 이전 민노당 정책실무진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공약개발단장으로 공약개발을 총괄조정했던 인하대 정영태 교수(정치학)는 “2002년 당시 만들어진 기본틀을 바탕으로 여기에 한미관계, 정치자금 문제, 노사갈등 등 그간의 국내외 상황변동에 따라 새로 생겨난 국민적 관심사안들을 첨가하고 조정하는 작업을 거쳐 40개 공약을 최종선정했다”고 밝혔다. 공약개발 참여인원만 200여명에 이른다.
민노당은 17대 국회 개원 이후인 6~7월중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 당 정책위원회 산하에 ‘싱크탱크’격인 정책연구소를 개소, 본격적인 정책개발에 나선다. 정책위원회가 단기적 정책과제 개발에 주력한다면 정책연구소는 보다 중장기적이고 정교한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한편 토론회, 세미나 등을 통한 공론화 작업까지 맡을 계획이다.
정책연구소는 17대 총선이 임박한 지난 4월9일 민노당 지지선언을 한 ‘민노당 교수지원단’을 큰 줄기로 해서 구성될 전망. 교수지원단은 총선국면에서 조직된 한시적 지원조직으로 4개 분과로 나뉘어 정책생산 활동을 했다. 분과별로 보면 정치·행정자치·통일외교 분과에 정영태(인하대) 조현연(성공회대) 교수, 경제·산업·농업 분과에 장상환(경상대) 신정완(성공회대) 교수, 노동·복지·환경 분과에 조돈문(가톨릭대) 김성희(고려대) 교수, 여성·문화·교육 분과에 강인순(경남대) 정태석(전북대) 교수 등이 참여했다.
정책연구소가 문을 열면 교수지원단은 당 정책위원회 활동과 의원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17대 국회에서 민노당이 내세운 진보적인 공약들이 제대로 실현될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우선 40개 핵심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법안만도 무려 90개에 달한다. 게다가 소속의원이 10명뿐이어서 각종 개혁입법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기엔 현실적으로 상당한 한계가 존재한다.
비록 원내 3당이란 상징적 지위는 갖고 있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양강구도하에서 소수정당일 수밖에 없는 민노당으로서는 개혁입법 추진과정에서 사실상 이념과 노선이 다른 정당과의 공조에 눈을 돌려야 할 형편이다. 그러나 민노당은 대립각을 세운다.
“민노당 입장에서 볼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모두 민노당과 맞지 않는 정체성을 지녔다. 변신을 위한 노력이 다소 엿보이지만 한나라당은 보수정당 가운데서도 가장 우경화돼 있다. 열린우리당엔 자유주의 개혁세력과 신자유주의적 보수세력이 뒤섞여 있긴 하지만 언론·재벌개혁,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문제 등에 있어 국민의 개혁여망과 거리가 멀다. 일부 정책현안에 대해 두 정당과 논의할 필요성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접점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민노당의 기본 입장은 이들과 대립점을 찾아나간다는 것이다.”(김종철 당 대변인)
의석은 10석에 불과하지만, 정책 면에서 볼 때는 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전국단위 대중조직과 시민사회단체, 5만여 진성당원의 적극적 지원을 받고 있는 만큼 민노당의 법안들을 소수파의 목소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민노당은 사회적 약자 보호 차원에서 ‘공익적 이슈’를 끊임없이 생산해내 지지기반을 넓히고 ‘10 대 289’라는 의석수의 열세를 극복함으로써 정치인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지지를 발판으로 삼는 ‘거대한 소수정당’으로 활동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민노당이 추진하는 것이 정책분야별 서포터즈 활동을 통한 민생입법운동이다. 즉 서포터즈 활동을 이해당사자가 자신을 보호하는 입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통로로 삼아 외곽에서 국회에 입법 압력을 가하겠다는 것. 예컨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을 위해 전국지하도상가연합회원들이 민노당 서포터즈로 적극 나선다든가 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당원을 중심으로 의원보좌관 60명과 공동정책연구원 40명을 뽑아 활용하려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노당은 이미 지난 5월11일 의원단 정책연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갖고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 자발적 국민들과 함께 구성할 개혁과제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경제·민생부문 개혁과제들을 실현해나갈 것이라 밝힌 상태. 민노당이 17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추진할 최우선 과제로 꼽은 것은 ▲이라크 파병 반대 ▲상가임대차보호법 고금리제한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민생입법 제정 및 개정 ▲국민소환제 도입 ▲선거연령 18세로 인하, 정당명부제 개선 등이다.
개혁입법 추진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민노당의 국회 입성으로 누구보다도 속이 타는 곳은 재계다.
5월4일 민노당측과의 상견례로 일단 대화의 물꼬를 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부유세 신설과 비정규직 차별철폐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전경련 이승철 경제조사실장(상무)은 “부유세 신설은 기업의 건전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이중삼중의 과세로서 조세형평 원칙에 어긋난다. 조세정의의 실천은 ‘낮은 세율, 넓은 세원’을 취지로 한 제도개선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며 “비정규직 차별철폐 또한 가뜩이나 정규직에 대한 과잉보호가 심한 현실에서 비정규직까지 과잉보호하게 돼 일자리를 더욱 없애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 주장한다.
전경련은 ‘분배’와 ‘성장’에 관한 시각이 판이한 민노당과의 상견례를 다른 제도권 정당과의 회동과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민노당이 노회찬 사무총장을 공정거래위원회, 금감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맡는 국회 상임위원회 정무분과에 배정하자 자못 긴장하는 눈치다.
민노당은 5월10일 당선자 10명의 17대 국회 상임위 배정을 확정한 상태. 당선자별로 보면 ▲권영길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천영세 문화관광위 ▲노회찬 정무위 ▲단병호 환경노동위 ▲강기갑 농림해양수산위 ▲조승수 산업자원위 ▲심상정 재정경제위 ▲현애자 보건복지위 ▲이영순 행정자치위 ▲최순영 교육위 및 여성위 겸임 등이다.
민노당은 당초 환경노동 보건복지 교육 통일외교통상 농림해양수산 문화관광 행정자치 재정경제 등 8개를 ‘우선 상임위’(민노당이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사회공공성 강화, 사회적 약자 대변, 한반도 평화통일 등을 펼칠 수 있는 상임위)로, 국방 법제사법 산업자원 등 3개를 ‘전략 상임위’(2012년 집권을 목표로 설정하고 17대 국회 임기 중에 집권의 초석을 닦기 위한 작업을 수행한다는 측면에서 택한 상임위)로 선정해 이중 10개 상임위에 각 1명씩 당선자를 배정키로 했었으나 결국 국방위와 법제사법위가 빠지고 재벌정책과 관련이 있는 정무위가 추가됐다.
한국노총, “새 정당 창당 계획 없다”
민노당의 원내진출로 창당의 견인차 역할을 한 민주노총과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민노당측은 공기업 매각문제처럼 일상적인 노조활동을 뛰어넘는 사안에 대해선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다.
민주노총 이수봉 교육선전실장은 “노동계 제도개선투쟁의 경우 현역의원들의 협조가 절대적인데 그동안은 잘 되지 못했다. 그러나 민노당의 원내진출로 큰 변화가 기대된다”면서도 “민노당이 예전처럼 전위당이 아니라 여러 세력이 연대한 대중정당으로 뿌리내린 만큼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어느 선까지 대변할 수 있을 것인지는 궁금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민노당이 비정규직 차별철폐 문제에 천착함으로써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을 해온 민주노총과 상보관계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독자정당인 녹색사민당을 창당해 17대 총선에 뛰어들었다 민노당 약진의 후폭풍에 휘말려 참패, 4월19일 이남순 위원장의 사퇴로까지 이어진 한국노총과의 관계설정도 관심거리다.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으로 ‘홀로서기’를 감행했지만,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며 0.5%의 부진한 정당득표율을 기록, 결국 해산의 길을 걸었다. 현행법은 정당이 총선에서 2%의 지지율을 얻지 못하면 자동해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선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간 통합 가능성도 조심스레 점친다. 그러나 양대 노총의 통합 문제는 과거 수 차례나 이슈로 등장했던 해묵은 사안.
이에 대해 민노당측은 “노동운동의 발전적 통합을 바라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동운동의 영역인 만큼 당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긴 어렵지 않겠느냐”며 통합 논의가 빠른 시일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반응이다.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민주노총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민노당이 국회에 입성해 민주노총의 발언권이 보다 강력해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직 양대 노총 통합은 전혀 논의된 적이 없다”며 “민노당이 색깔은 분명하지만 ‘미니정당’이어서 한국노총의 입장에선 기존의 정당과 다른 ‘특별한 창구’라곤 생각지 않는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한국노총의 요구를 전달할 것”이라 밝혔다. 그는 또 “현재 한국노총은 녹색사민당을 대체할 새 정당의 창당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다”며 “창당 문제는 5월25일 새 집행부가 출범한 뒤 조직적 논의과정을 거쳐 결정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민노당의 성공은 민노당과 함께 진보정당의 한 축을 이뤘던 사회당(대표 신석준)에도 큰 자극제다. 1998년 청년진보당에서 비롯한 사회당은 2002년 대선 당시 사회주의를 이념으로 삼는 모든 좌파진영이 연대해 선거에 임하자는 입장을 취했지만, 대중정당을 표방한 민노당은 당시 사회당의 입장과는 일정한 간극을 유지한 바 있다. 사회당은 17대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0.2%를 얻는 데 그쳐 법적 해산을 맞았다. 사회당 당원은 5000여명 정도.
사회당 최광은 정책위원장은 “민노당이 한국 진보진영 모두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진보정당들의 오랜 숙원이던 원내진출에 성공한 만큼 긍정적 역할을 기대한다”며 “사회당은 민노당보다 더 래디컬(radical)한 이념을 지녀 원내진출 또한 더디겠지만, 곧 새 정당을 창당하기 위해 창당준비위원회 형식의 ‘사회당 2004’를 구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민노당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사회체제의 모습은 국가사회주의의 오류와 서구식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제3의 사회주의’다. 민노당은 당 운영방식과 활동내용 면에서 브라질 노동자당을 비롯 스웨덴 사회민주당, 독일 녹색당 등 외국 진보정당들의 그것을 적잖이 차용했다. 예컨대 최근 확정한 당직·공직 분리방침은 독일 녹색당에서 빌려온 것이다. 브라질 노동자당의 경우 벤치마킹을 위해 3차례나 방문했고, 2002년 10월의 브라질 대선을 참관하기도 했다.
이재영 당 정책1국장은 “브라질 노동자당은 노동자·농민을 지지기반으로 한 통합정당이라는 점, 옛소련이나 북한식 국가사회주의와 서구 사민주의와는 또 다른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노당의 관심대상”이라 밝힌다.
민노당은 ‘2008년 제1야당, 2012년 집권정당’이란 의욕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구체적으로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정당지지율을 20%대로 끌어올리고, 2008년 총선에선 80석 이상을 확보하며, 2012년 대선에선 집권에 성공하겠다는 야심만만한 프로젝트다.
문명학 당 기획조정실장은 “당의 외연을 확대해 앞으로 수년 내에 확실한 비전과 국정운영능력을 갖춘 수권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2003년 당 발전특별위원회에서 집권 플랜을 연구했다”고 밝힌다.
이와 관련, 민노당은 5월29일 임시 당대회(당내 최고의결기관)에서 당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중앙당 조직체계도’ 참조)해 변화를 모색할 예정이다. 당 운영의 주체로 당원들이 직접 선출한 13인의 최고위원회 집단지도체제가 신설된다. 최고위원회는 당의 최고집행기관으로 당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의원단 대표, 당원 직선으로 선출한 9인의 최고위원 등으로 구성되며 이들은 5월24∼27일 당원 직접투표를 거쳐 5월29일 확정된다.
이에 앞서 민노당은 5월6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직·공직 분리’ 방침을 확정함으로써 17대 총선 당선자가 당대표와 사무총장을 포함한 최고위원직을 겸하지 못하도록 권력의 집중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이에 따라 권영길 대표, 천영세 부대표, 노회찬 사무총장 등 현 지도부는 전면퇴진하고 2기 지도부로 교체된다.
당내 이해관계의 잦은 충돌은 문제
그러나 민노당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비록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자신감에 충만해 있지만, 당 운영과 관련해 스스로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 있다는 점은 자인한다.
“민노당은 철저히 민주주의 원칙을 택하고 있지만, 그 기회비용이 큰 것이 문제다. 어떤 개별사안을 결정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걸려 정치적 선택의 기회를 놓치곤 한다. 일례로, 성명서 문구의 해석 문제로만 6개월을 끈 적도 있다. 또 당대표와 부대표들이 당의 안정과 통합을 이유로 의사결정을 빨리 내리지 않아 당원들 사이에 ‘당 지도부가 대체 무엇을 결정했는지 불분명하다’는 불만이 튀어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민노당의 한 당직자는 익명을 전제로 “민주노총 외에도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 출신의 당원이 적지 않다 보니 당내에서 이해관계의 충돌이 벌어질 때도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내세우는 ‘당위’와 당의 ‘정치적 취사선택’이 경합하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진성당원 비율이 지극히 높은 데도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당원 활동이 미약한 것도 민노당의 한계다. 민노당측은 총선 직후인 4월18∼24일 당 사이트 방문자 수가 열린우리당을 앞서자 “인터넷에선 민노당이 제1당”이라며 반색하기도 했지만, 아직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과 비교할 때 조직적 동원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이는 감성적 측면이 강한 노사모와 달리 민노당 당원들이 매우 이성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과도 관계가 있다는 게 민노당 관계자의 전언이다. 일례로 당 대의원대회에서 권영길 대표가 어떤 안건을 내놓고 지지를 호소해도 ‘동의’나 ‘제청’이 전혀 나오지 않은 적도 있을 정도로 당원들의 성향이 철저히 이성적이라는 것.
민노당 평균당원이 ‘수도권 거주 30대 후반 고학력 화이트칼라’이다 보니 20대가 우위를 점하는 노사모 등에 비해 당 홈페이지에 대한 접근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동원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3월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노당에 입당한 환경미화원들이 국회와 각 정당을 청소하는 퍼포먼스를 가지고 있다.
그는 또 “한 스포츠신문이 내가 더 이상 정치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이는 명백한 오보여서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다음 총선에 출마할지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민노당을 위해 당이 부여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아서 할 것”이라 말했다.
아직 보도된 바 없지만,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민노당이 향후 ‘비례대표의원 2년 순환제’를 전격 도입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민노당 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몇 달 전 관련 안(案)을 당내에서 검토한 적이 있는데, 아직 폐기된 건 아니다. 이미 당선자 몇 명에게서는 호의적인 의사를 확인했다”고 귀띔했다.
비례대표의원 2년 순환제는 말 그대로 4년인 국회의원 임기를 비례대표인 경우 2명의 의원이 2년씩 나눠 의정활동을 맡는 것으로 독일 녹색당이 창당 초기에 시행했던 제도다. 경우에 따라선 이주희(9번), 이문옥(10번)씨 등 이번 총선에서 당선권에 들지 못한 후순위(9∼16번) 비례대표 후보들도 임기 후반 2년 동안 의정활동을 하게 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민노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조금씩 흘러나온다.
부유세 아이디어의 주인공인 민노당 정책부장 김정진(33) 변호사는 4월29일 당 정책부장직을 사퇴하면서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글 ‘사직서-평당원으로 돌아가며’를 통해 “지도부의 무책임 때문에 절망을 느꼈다”고 한 뒤 “정보가 제대로 유통되지 않는 것이 민노당의 특징이다. 정보가 유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민주주의의 강화는 오히려 의사결정의 왜곡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쓴소리를 던져 눈길을 모았다.
6·5 재보선, 2개 지역구만 후보 출마
그러나 김 변호사는 평당원 신분은 유지하고 있다. 5월7일 현재 사직서도 수리되지 않았다. 민노당측은 김 변호사에게 그동안 총선을 치르며 누적된 피로를 추스를 시간적 여유를 준 뒤 오는 9월쯤 그를 다시 당직에 복귀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민노당 중앙당의 상근자는 50여명. 이들이 노동자 평균 월급여인 180만원에도 한참 못미치는 월 70만원대의 낮은 임금, 4대보험조차 안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물질적 보상보다 진보정당에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간다는 자부심으로 일한다”는 게 김종철 당 대변인의 답변이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이란 민노당의 슬로건이 무색해지는 부분인 것만은 분명하다. 민노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엔 이와 관련한 비판글도 종종 올라온다.
민노당은 오는 6·5 지방선거 재보선에서 ‘전략지역’인 2개 지역구에만 후보를 내기로 확정한 상태. 대전 유성구청장 후보로 신현관 유성지구당 위원장을, 경남도지사 후보로는 임수태 경남도지부장을 각각 선출했다.
“총선 피로가 아직 많이 쌓여 있기 때문”이란 게 민노당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선거비용을 당원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민노당으로서는 총선이 끝난 지 얼마 안된 상황에서 선거비용을 마련하기가 여의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한국 정당시스템 재편의 시금석
민노당 원내진출의 의의는 무엇보다 이념과 노선이 분명한 진성당원 중심의 대중정당인 민노당이 새롭게 제기하는 의제들에 기성 정당들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당시스템이 정책정당 중심으로 재편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데 있다.
민노당의 향후 전망과 관련,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노동정치)은 “모범적인 의정활동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민노당의 성패는 향후 선거제도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 긴밀히 맞물릴 것으로 본다. 또한 당내 핵심지지세력들 사이의 이해갈등을 어떻게 발전적으로 조율할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그는 또 사견임을 전제로 “한국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맡아온 영역으로 지지기반을 확대해야 민노당의 정치적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
5월9∼11일 민노당이 의원단 정책연수를 개최했던 전북 남원 민노당 중앙연수원(폐교된 두동초등학교)의 기념석에 쓰여진 글귀다.
민노당은 과연 새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기성 보수정치권과 차별화된 새로운 정치공간을 형성해 지역 일변도였던 기존 정치지형을 변화시키며 한국 정치사를 새로 써내려가고 있는 진보정당 민노당. 여론은 ‘신장개업’한 민노당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