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이른바 ‘2차 북핵위기’로 고전하던 청와대 안보관련 당국자들은 미국이 가진 몇 가지 선택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북핵 문제에 대한 접근방향을 두고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견해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봄까지만 해도 미국의 카드는 국무부의 ‘외교적 해결론’과 국방부의 ‘제한공격론’으로 압축돼 있었다. 그러나 여름에 들어서면서 부통령실이 내민 ‘비(非)군사적 방법에 의한 정권교체’카드가 강력하게 부상했다는 것이다. 당시 청와대 안보부처에서 일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해 7월24일 미국 정부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게 ‘모종의 임무’가 주어져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의 적실성을 검토해 백악관에 보고한다는 것이었다. 이후 국무부와 국방부, 부통령실 사이의 이견이 있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특히 국무부와 국방부 사이의 갈등은 청와대도 직접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격렬했다.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을 핵심으로 하는 네오콘 진영은 한 발짝 비켜서서 조용히 제 갈길을 가는 형국이었다.
북핵 문제를 담당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국무부나 백악관 NSC 채널에 공을 들인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강도 높은 시나리오를 주장하는 미 국방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이 문제는 이후 청와대 NSC가 각종 군사현안을 두고 미 국방부와 마찰음을 빚게 된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제한공격 시나리오가 갖는 위험성 때문에 이후 백악관의 북핵정책이 일단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로 공식방향을 잡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후 미국 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 의사가 없음을 여러 차례 밝혔고, 정권 자체를 교체하는 것(change)이 아니라 체제의 성격을 개방으로 유도하려는 것(transform)이 목표라고 구체화하기도 했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 우선’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원칙은 집권 2기에 접어들어 파월 장관이 콘돌리자 라이스 현 장관으로 교체된 후에도 대체적으로 유지되었다.
“컨센서스 만드는 중”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한공격 시나리오나 정권교체 시나리오 자체가 완전히 폐기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 끊임없이 언급한 ‘레드 라인’은 최후의 수단으로 군사행동이 남아 있음을 의미했다. 기독교보수주의 세력을 배경으로 둔 네오콘은 ‘북한자유화법안’ 추진, 관련단체 지원 예산의 파격적 증액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북한 정권 교체의 ‘기반’을 다져왔다.
한미연합사가 추진한 작전계획 5029에 대해 지난해 초 청와대가 격렬히 반대한 것은, 이 계획이 기본적으로 ‘김정일 유고(有故) 이후 북한의 상황에 미군이 개입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미 태평양사령부가 북한에 대한 다양한 군사적 압박을 통해 체제 내부의 위기를 유도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작전계획 5030이 추진되어 김정일 위원장 소재지에 대한 위협성 군사행동이 있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2004년 여름 3차 6자회담 직후, 딕 체니 부통령과 폴 윌포비츠 국방부 부장관 등 네오콘 핵심 인사 사이에서는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이 작성한 ‘미국의 대북정책 : 수단과 인식’이라는 메모가 회람됐다. 그해 9월 ‘뉴스메이커’가 공개한 이 메모는 “북한 장성들이 김정일 정권으로부터 벗어나 탈출하려는 신호가 (미국에) 많이 접수되고 있으며, 특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500~1000명의 고급장교·관료가 잠재적으로 배반의 가능성을 띠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탈북자의 미국 망명 허용을 법제화해 ‘배신’을 유도해야 한다는 이 메모의 권고는 같은 해 10월 ‘북한인권법’ 제정으로 현실화했다.
7월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9일 핵실험 이후, 그간 6자회담 중심 해법을 주도해온 미 국무부의 처지가 곤혹스러워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0월3일 핵실험 예고 선언이 나온 직후 북한에 가장 강경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은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였다. “북한은 핵과 미래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는 그의 10월4일 발언은, 끝내 핵실험이 강행될 경우 부시 행정부 내에서 가장 타격을 입을 사람이 ‘협상파’인 그 자신이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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