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9월말 그가 평양 시내에서 화물차에 의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설이 최근 보도됐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만으로는 북한의 최근 행태에 대한 설명으로 불충분하다. 협상용으로 핵 보유를 추진했다면 대화를 유지함으로써 시간을 벌고 가능한 한 은밀하게 핵 개발을 지속하는 것이 오히려 협상에 효율적이다. ‘생존을 위한 핵 보유’라는 설명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이 아무리 국제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미사일 발사 이후 악화된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핵실험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모를 리 없다.
‘미국의 자극’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고 타당성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다. 2005년 하반기에 진행된 미국의 북한 소유 불법계좌 폐쇄조치는 위폐·마약·돈세탁 같은 국제범죄 차단을 내걸고 시행된 것이다. 북한이 입는 타격이 매우 심각하리라 예상하더라도 불법행위 자체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난센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해 북한이 보인 반응은 반발심리나 적대감보다는 초조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미사일 발사에서 핵실험에 이르는 북한의 행태에서도 그대로 입증된다. 만일 북한이 정말로 신뢰할 만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고 ‘안전성이 담보된’ 핵무기를 제조할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면, 이후 표출된 미국 및 서방세계의 비판이나 제재 움직임에 대해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대량살상무기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로서 느긋하게 비난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협상에 임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대외적으로 보인 행태는 정반대였다.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행위자가 불안감 혹은 논리적 착각에 의해 실제로는 이뤄지기 힘든 목표를 마치 충족될 수 있는 예언과 같이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전후한 북한의 대외 성명이나 입장표명에는 이러한 ‘자기충족적 예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전예고와 더욱 강한 수위의 언급을 반복하는 최근 북한의 행태는 결국 ‘자기충족적 예언의 확대재생산’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미뤄지는 세대교체
궁금증은 하나로 모아진다. 북한의 이렇듯 납득할 수 없는 초조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외 여건만을 고려하기보다 평양 권력층 내부의 상황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이미 40여 년간을 ‘주체’의 이념 하에 생활해왔다는 점에서(이는 국제적 고립과 압력을 의미한다) 체제의 내구력만 충분하다면 대외 여건 악화를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즉 미사일 발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핵실험을 앞둔 북한 지도부의 계산에는 체제 내부의 불안요인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재돼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불안요인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왜곡된 당·군 관계와 그로 인해 파생된 정치체제의 잠재적 불안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 당시 필자가 지적한 바 있듯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는 김정일의 개인적 권력기반 강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기존의 당·군 관계를 왜곡했다(‘신동아’ 2006년 9월호 170쪽 ‘북 정권의 미사일 파워게임’ 기사 참조). 일반적으로 공산권 국가에서는 군의 적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당의 우위가 확실히 보장돼왔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당 대(對) 군이라는 제도와 제도 간의 역학관계를 김정일 개인 대(對) 군이라는 개인과 제도 간의 관계로 변질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