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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②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모 심고 나면 딸기와 앵두가 활짝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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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를 꺾어 모으고. 산달래도 눈에 띄고. 다래덩굴을 만나면 다래순도 꺾고 두어 시간 다니다 돌아온다. 이렇게 산을 쏘다니다 멍하니 앞산을 보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내 안에 내 할머니, 그 할머니… 그 할머니 때부터 쌓은 지혜가 다 들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걸 보면 왠지 움츠러들고. 어떤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입에 한 잎 넣고 싶어지고. 그게 무언지 몰라도 왠지 안에서 나오는 반응. 이걸 보면 내 안에 다 들어 있는데 그 길을 여는 방법을 까먹은 게 아닐까?

학교 다니며 책에 나온 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배우고 익혔다. 어른이 돼서도 무얼 알고자 하면 책을 찾고 정보를 찾고. 남한테서, 나보다 더 전문가한테서 배워야 한다고 믿고 살아왔는데 과연 그런가. 이러느라 내 속에 들어있는 인류의 지혜를 묻고 살아온 건 아닐까?

사십이 되도록 늘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살아왔다. 내가 진정 누군지 스스로 찾지 못하고. 나이가 들면서 진짜 내가 누군지, 내가 진정 하고픈 일이 무언지 더욱 궁금해졌다. 더 늦기 전에 그 길로 접어들어야지, 초조했지만 그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내가 자연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면서 조금씩 자신을 찾는 길에 들어섰나 보다. 혼자 호미질 낫질을 해도 머릿속으로는 늘 사람 사이에 일어난 일이 떠오르곤 한다. 그 시간이 내 마음에 엉킨 사연들을 베어내는 시간이 고, 내 마음에 새싹을 심는 시간이었나 보다.

그 덕에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 다니겠다고 했을 때 그걸 받아들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세상에서 떨어져나온 듯 혼란스러웠지만 이겨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며 자라고, 그러다 제 마음에서 우러나 공부하는 걸 본다. 아이들은 직관으로 알게 된 듯하다. 자연만큼 좋은 친구이자 스승은 없다는 걸. 요즘 세상에는 더욱더.



어린이날이 아니라 고추 모 내는 날

5월은 입하(立夏)로 시작한다. 그러니까 여름 기운이 일어서는 철이다. 늦서리도 맥을 못 추고 사라지니 비닐집에서 가꾸던 모종들이 모두 밭으로 나온다. 이곳에 와서 처음 맞는 어린이날, 딸애 친구들과 함께 놀고파서 초대를 했다. 한데 아무도 안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날은 어느 집이고 고추 모를 내야 하기에 아이들도 모두 거들어야 하는 날이었던 것. 5월5일은 어린이날이 아니라 고추 모 내는 날이다. 고추 모만 있나. 가지 모, 토마토 모, 오이 모, 호박 모… 부지런히 옮겨 붙여야 한다. 그러고 나면 땅콩, 동부, 유두콩 싹이 안 난 곳에 따로 마련해둔 모를 옮겨 붙여 빈자리를 채워야지.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처음에는 뻐∼꾹, 뻐∼꾹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그러다 뻐뻐꾹 하고 빨라진다. 그 소리만큼 일손도 빨라져야 농사일을 할 수 있다는 옛말이 있다. 뻐꾸기 울음이 시작될 즈음은 콩 심기 좋은 때다. 날이 한여름처럼 더워지고 비가 오면 모내기를 한다.

우리 농사는 2000평쯤 된다. 그 가운데 논이 네 다랑이, 모두 500평이다. 산에서 맑은 물을 끌어들여 윗논부터 계단처럼 물을 댄다. 그래 모내기를 하려면 논둑을 깎고 논둑을 다시 발라야 한다. 논둑에 구멍이 있으면 물이 새나가 논이 마르기 때문이다.

논둑을 삽으로 비스듬히 깎으면 여기저기 구멍이 드러난다. 논에 물을 대고 논흙을 곤죽으로 만든 뒤 그걸로 논둑을 바른다. 농사하기 전에는 논둑을 깎고 바르는 일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다. 딸애 말이, “전에 논둑을 깎은 걸 보고 저러다 논둑이 없어지면 어쩌나 걱정했어. 그때는 논을 넓히려고 논둑을 깎는 줄 알았거든.”

이 일이 만만치 않다. 솜씨 좋은 일꾼이 바른 논둑은 한마디로 예술이다. 산을 따라 굽은 논둑이 가지런히 발라져 있는 모습. 내가 막상 해보면 생각처럼 안 발라진다. 일이 서투르니 금방 허리가 아파지고. 그래도 논둑 깎을 때가 되면 삽을 들고 논에 나가 조금이라도 해본다. 자꾸 해보면 몸에 익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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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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