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대한민국 생활보호대상자, 그들은 지금…

진짜 극빈층은 달동네 전전, 얌체 생보자는 해외여행 훨훨

  • 박은경 자유기고가 siren52@hanmail.net

    입력2006-07-07 12: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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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거 테러’ 지충호, 생보자 된 이유 아무도 모른다?
    • ‘가짜’ 생보자들, “은행에 있는 돈은 무조건 내 돈 아니다”
    • 생보자 선정 탈락하면 불 지르고, 칼질하고…
    • 영구임대 아파트에 넘쳐나는 고급승용차, 위성안테나
    • 차 2대 굴리고, 월 수 백만원 벌어도 생보자?
    대한민국 생활보호대상자, 그들은 지금…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유세 현장에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게 칼을 휘두른 지충호(50)씨. 사건 후 각종 의혹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하 생활보호대상자)인 지씨의 헤픈 돈 씀씀이에 모아졌다.

    전과 8범인 지씨는 지난해 8월 청송 보호감호소를 나와 보호관찰대상자가 됐다. 보도에 따르면 지씨가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는 수급자가 된 것은 올 3월부터였고 액수는 매월 18만원 정도였다. 그런데 지씨는 지난해 11월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서 모 업체에 근무하는 것으로 서류를 작성했고, 이후 월평균 100만원이 넘는 카드 대금을 꼬박꼬박 결제했다. 또 70만원 상당의 휴대전화를 구입하고 통화요금으로 월 20만원 안팎을 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뿐 아니라 술집에 명의를 빌려주면서 속칭 ‘바지사장’의 대가로 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친구나 지인에게 빌리거나 얻어 쓴 돈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고 금융권에 신용카드 이용자료가 남아 있는데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된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과거 생활보호제도를 보완·수정해 2000년 10월부터 실시한 것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절대빈곤층의 기본 생활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수급권자가 되면 월 일정액의 생계 급여를 비롯, 주거·의료·교육 등에 대해 각종 급여를 지원받는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정한 1인 가구(지씨의 경우 여기에 해당) 월 최저생계비는 41만8309원, 그 이상의 소득이 있는 경우는 수급권자에서 탈락된다.

    부정 수급자 성토 봇물



    사정이 이런데도 지씨가 수급자가 될 수 있었던 사유를 알아보기 위해 해당 동사무소(인천시 학익1동) 관계자와 통화를 시도했다. 그런데 지씨가 지난 3월부터 수급자로 돈을 받았다는 언론보도와 달리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자 이모씨는 “지씨가 지난해 출소 직후부터 수급권자로 선정되어 매달 돈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교정시설 출소자의 경우 취약계층 특별보호대책의 일환으로 3개월간 조건부수급자로 선정한다. 이씨는 “지씨는 조건부수급자에서 일반수급자로 변경됐고, 우리 동사무소에서 돈을 받기 시작한 것이 올해 3월부터다. 그전에는 신곡동(경기도 의정부시)이 주소지로 되어 있어 그곳에서 받았다. 일반수급자로 조건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두 달 정도는 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건부수급자에서 일반수급자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지씨의 소득을 파악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계속 수급권자로 남은 이유에 대해서 담당자 이씨는 “지씨 명의의 사업자등록 기록이나 신용카드 이용액 등은 전산상으로 자료가 잡히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의 한 구청 생활보호 담당자는 “바지사장으로 유흥업소에 명의를 빌려줬다면 사업자등록증이 지씨 명의로 나와 당연히 국세청에 기록이 오르게 된다. 소득을 낮게 신고했을 수는 있지만 소득이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며 의아해했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보호를 받는 수급자는 152만명으로 7700여 가구에 달한다. 지난해 이들에게 지급된 돈은 2조1000억원을 넘었다. 그러나 수급자 중에는 국민세금을 축내는 부정 수급자가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3~2004년까지 2년간 수급자의 재산을 조사한 결과, 기초생활보장 지원이 중지된 사람이 4만1000명에 달했다. 수급자로 선정되려면 거주지 동사무소에 호적등본과 전·월세 임대차계약서 또는 등기부등본, 급여와 금융거래 자료 등을 신청서와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신청서를 허위로 꾸미거나 서류를 위조하는 등 제도를 악용해 매월 수십만원씩을 부당하게 타내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민자유게시판에는 부정수급자를 성토하는 글이 여러 건 올라 있다. 윤모씨는 그의 답답한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옆집에 상당한 재산을 가졌다고 소문난 할머니가 있는데요. 20평 아파트에 세들어 살면서 매달 구청에서 약 40만원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독거노인이라고 교회단체에서 쌀 한 포대와 라면 4박스를 가져다줬습니다. 근데 실상은 토지나 집(아파트)을 사위와 딸 앞으로 돌려놓고 세든 것처럼 위장한 것이죠. 이분은 대놓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닙니다. 또 개인적으로 안면이 있는 다른 할머니 한 분은 상가 빌딩과 건물을 5채(시가 20억 상당)나 갖고 있는데, 명의를 사위 앞으로 해놓고 손녀 이름으로 통장까지 만들었습니다. 정말 사람 욕심이 하늘을 찌른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선정 때는 재산상황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하더라도 사후 심사 때에는 신경을 썼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생활보호대상자, 그들은 지금…

    ‘가짜’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나랏 돈’으로 흥청거리는 동안, 실제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어야할 사람들은 달동네를 전전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수급자 123만명의 금융재산을 조회했다. 그 결과 3500만원 이상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드러난 사람은 3764명(수급자 2989명, 부양의무자 775명)이었다. 1억원 이상 재산이 적발된 사람도 1009명에 이르렀다.

    은행에 넣어둔 1억원이 탄로 나자 동사무소를 찾아가 칼부림을 벌인 70대 할아버지도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아내와 단 둘이 보증금 1000만원짜리 월세방에 사는 이 할아버지는 수급 대상자에서 탈락되고 그동안 지원받아온 돈까지 징수당할 위기에 놓이자 “통장에 있던 돈은 내 돈이 아니다. 친척이 잠깐 맡겨둔 것인데 다 돌려주고 지금은 한푼도 없다. 가진 거라곤 월세 보증금뿐인데 그걸 빼가든지 마음대로 하라. 싫으면 앞으로 내가 돈 벌어서 모두 갚겠다”며 애원했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동사무소를 여러 차례 찾아가 칼을 휘두르고 “약 먹고 죽겠다”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70세 중반의 나이로 혼자 살던 할머니는 1억원이 넘는 금융재산을 숨겨뒀다 들통이 났다. 할머니는 동사무소 담당자에게 “내가 자식이 없어 어릴 때부터 친자식처럼 키워온 조카가 있다. 그 조카한테 집 한 채 사주려고 모아둔 돈이라 쓸 수가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성북구청 생활보호 담당 민지선 계장은 “은행에 몰래 넣어둔 금융재산이 적발된 수급자 백이면 백 전부가 자기 돈이 아니라고 발뺌한다. 각종 복지지원금 문제로 민원인들이 동사무소로 찾아와 협박하고 난동을 부리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런데 나이 많은 노인이나 질환자가 막무가내로 나올 경우 정말 난감하다. 자칫 돌발 상황이나 사고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난감해했다.

    지난해 서울 강서구청 사회복지 담당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지체장애 1급으로 거동이 불편한 주모(52)씨가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다 스스로 목을 매 숨진 것. 아내의 가출로 두 딸과 함께 살아온 주씨는 1995년부터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되어 숨지기 전까지 생계비와 장애수당을 지원받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서 수백만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2004년 한 해 동안 주씨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원받은 금액은 870여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주씨는 별도의 지원을 요구하며 수시로 구청을 찾아가 구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했고 사정이 여의치 않자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충북에선 생계비를 요구하던 정신질환자가 동사무소에 불을 질러 사회복지 담당자가 화상을 입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민원인에게 폭행당하는 경우도 많죠. 일선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 담당직원 중엔 여성이 많은데 이들은 임신했을 경우 일반여성에 비해 유산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만큼 업무가 과중하고 민원인을 상대하는 스트레스가 크기 때문입니다.”(성북구청 민지선 계장)

    성북구청은 숨긴 재산이 들통나 수급자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인 사람들의 횡포를 줄이기 위한 임시방편으로 수급자 신청서를 받을 때 ‘차명계좌가 나오면 수급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4500만원의 금융자산이 발각돼 수급 중지를 당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최모(52)씨는 “딸이 어렵게 모은 돈이라 차마 손댈 수 없었다”고 했다. 최씨의 남편은 호흡기 이상으로 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두 딸 중 큰딸은 시력장애 6급으로 고교 졸업 후 취업을 한 적이 없다. 장애가 있는 눈 때문에 바깥출입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통장에 들어 있던 4500만원은 직장을 그만둔 둘째딸이 퇴직금으로 받은 돈이었다. 최씨는 동사무소에서 “딸이 직장을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하는데 부모가 돼서 그 돈을 어떻게 생활비로 쓸 수 있겠나. 그 돈이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결국 최씨는 수급자 자격을 상실하고 그동안 받은 돈 25만여 원을 갚아야 했다.

    동사무소 근무 당시 최씨를 담당했던 최문정씨(현재 강서구청 근무)는 “최씨의 경우 사정이 몹시 딱했지만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대신 차상위 계층으로 남편 의료비만 지원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설명했다.

    최씨의 사례처럼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경계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10만명을 웃도는 가운데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돈을 타내는 ‘얌체족’도 적지 않다. 동사무소의 한 생활보호 담당자는 “인터넷 때문에 사람들이 수급자 선정 기준에 대한 정보를 훤히 꿰뚫고 있다. 업무 담당자인 우리도 수시로 법규를 확인하는데, 이들은 우리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수급자 신청에 앞서 서류상으로 자신을 빈털터리로 만들어놓는 것은 기본”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금융재산 조사는 1년에 한 번 정기적으로 시행된다. 금융권에서 계좌정보를 정부기관에 넘겨줄 때 동시에 계좌 주인에게도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일선 행정기관인 동사무소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자료를 넘겨받기 전, 통장 주인이 미리 돈을 빼돌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의료비를 지원받기 위해 병원에서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하는 사람도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망을 피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복지 담당자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이모씨가 보건복지부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수급자→탈락자→수급자’의 과정을 거치면서 편법을 동원한 사례가 적나라하게 실려 있다.

    ‘앞집에 사는 맞벌이 부부는 각자 월 200만원 이상을 벌면서 차를 두 대씩이나 굴리고도 5년 전부터 매달 65만원과 두 아이의 유치원 비용까지 지원받았습니다. 그 사실이 들통나서 지원이 끊기자 이번에는 소득이 드러나지 않게 직장을 다니고 간이 안 좋다는 병원진단서와 발가락이 하나 없다는 장애 확인서를 내고 다시 수급자가 됐죠. 간이 안 좋은 사람이 어떻게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앞집 여자는 통장까지 위조(차명계좌를 말하는 듯)해달라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남편은 금융거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월급도 통장으로 받지 않아요.”

    보건복지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지난 5년간 출입국기록을 조회한 결과 해외여행 경험이 있는 수급자가 8만2244명에 달했다. 그 가운데 100회 이상 해외여행을 간 사람도 85명이나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장모(여·51)씨는 해외여행 사실이 드러나 지원금 수급이 중지되고, 그동안 지원된 290만원을 환수 조치당했다. 서울 서대문구 아현동에 살던 그는 수급이 중지되자 최근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장씨는 남편과 이혼 후 중·고교에 다니는 자녀 둘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급자로 선정됐다. 보험회사에 취직한 그는 매달 299만원을 벌었고, 보험과 적금 통장에 1300만원을 넣어두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감춰오다 해외여행이 들통나면서 부정 수급자로 전락했다.

    아현동 동사무소 직원에 따르면 수급자 선정시 장씨의 소득과 재산, 부양의무자 조사에서 금융재산은 파악되지 않았다. 그는 “전임자 담당 사안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심사 당시 금융기관 자료를 확인할 수 없었던 것 같다. 1년에 한 번 정기조회 때가 아니면 서류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 틈을 노린 부정수급자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생보자도 국민연금 가입?

    월수입을 축소 신고하는 수법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남편 없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을 둔 40대 중반의 여성 김모씨는 파출부로 일하면서 월수입을 50만원으로 신고했다. 동사무소로부터 매달 30만원씩 지원받던 김씨가 수급 중지를 당한 것은 아이들 이름으로 적금통장을 만든 사실이 들통났기 때문. 김씨는 매달 100만원 이상을 번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기초생활보호 수급자는 수급자 지정 후 재산이나 소득에 변동사항이 발생하면 즉각 동사무소에 신고하도록 되어 있다. 또 허위로 소득을 신고했다 적발되면 처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법 규정이 정확히 지켜지는 경우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수급자가 소득·재산 변동을 자진해서 신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광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이자 광주시청 생활보장위원회 심사위원인 이용교 교수는 “요령만 피우면 매달 몇십만원씩 나랏돈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데 누가 자진해서 탈락자가 되려 하겠냐”고 되묻는다. 이 교수는 또 “부정 수급자 문제는 조세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지적한다. 직장인은 월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데 비해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는 것.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는 수급자는 월소득 파악이 상대적으로 쉽다. 하지만 정부는 무슨 영문인지 이들에 대한 부정사례 적발에 소극적이다. 지난해 9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가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40만여 명에 이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운데 국민연금 가입자(지역과 직장 포함)는 1만5032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4인 가구 최저생계비인 월 113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는 것으로 파악된 사람은 655명에 달했다. 이에 대해 전 의원은 “국민연금은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 113만원을 초과하는 사람만 들 수 있다. 따라서 전·월세 등 재산 환산액이 0원이라 하더라도 이들은 기초생활 수급권자가 되기 어렵다. 655명에 속한 사람은 부정 수급자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4인 가구 전체 월 소득이 282만원임에도 수급자로 지정된 사례도 있다. 성동구 금호동에 사는 김모(여·51)씨는 직장에서 매달 221만원이 넘는 월급을 받았다. 이 외에도 남편의 근로소득 56만원, 딸의 아르바이트 소득 18만원, 노모의 소득 4만5000원이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김씨는 5년 동안 수급자로 지정되어 돈을 받아 챙겼다. 관할 동사무소는 김씨의 국민연금 납부내역에 대해 이미 조회를 하고도 김씨가 작성한 엉터리 서류만 믿고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준 것이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 선정의 난맥상은 영구임대아파트 주차장을 보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평소 서울 강서구 등촌동 일대 영구임대아파트에 자주 들른다는 박모씨의 증언은 놀랍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 중 절반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입니다. 그런데 단지 내 주차장을 보면 빈틈이 없고 트럭 등 생계에 필요한 차보다 고급 승용차가 훨씬 많습니다. 대낮인데도 단지 내에 모여 술판을 벌이는 광경을 자주 볼 수 있죠. 수급자는 의료비와 약값이 지원되니까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타와서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등촌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를 찾았다. 주차장엔 박씨의 말대로 한눈에 봐도 족히 50대는 넘는 고급차가 주차돼 있었다. 차들 가운데 경차는 달랑 세 대뿐이었고, 나머지는 중형차나 SUV 차량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70대 할머니는 “이 동네는 나라에서 돈 받아서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차 명의는 전부 남의 것으로 해놓고 있다더라”며 못마땅해했다.

    같은 영구임대아파트에 살아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가구와 일반 분양을 통해 들어온 가구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있다. 수급자가 내는 보증금은 200만~300만원, 월세는 4만~5만원에 불과하다. 취재 도중 만난 관리사무소 소장은 단지 내 가구의 속사정을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단지 내 상가임대료로 수급자에 한해 관리비를 보전해주고 있습니다. 적은 돈을 들여 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니까 수급 대상에서 탈락한 사람도 서류를 위조해 수급자로 지정받으려고 기를 쓰는 형편이죠.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 중에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데 월급 받는 직장엔 나가지 않습니다. 소득이 잡히면 수급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죠. 뇌성마비 장애인이 청소 일을 하겠다고 나서자 주변에서 취직하지 말라고 말리는 게 단지 내의 분위기입니다. 또 독거노인 중에는 자식들이 돈을 잘 버는 경우가 많은데도 눈을 속여 지원금을 받고 있지요.”

    지난해 ‘2개월 현장취재, 수도권 임대주택 실태보고’라는 제목으로 국정감사 참고자료를 낸 민주당 이낙연 의원에 따르면 경기도 분당의 한 영구임대아파트는 베란다에 위성안테나가 달린 집이 3분의 1을 넘었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한 아파트의 경우 10가구에 7가구꼴로 위성안테나가 설치되어 있었다.

    등촌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60대 초반의 택시기사는 “내가 사는 동에도 불법으로 돈을 타먹는 수급자가 몇 명 있다. 어떤 부부는 부인이 식당에 다니면서 월 100만원을 벌고 남편은 형이 하는 사업체에서 일주일에 2~3일 일하면서 매월 150만원 정도 받는다. 정식 직원이 되면 소득이 잡히니까 그렇게 안 했다고 한다. 이 부부는 중형차를 끌고 다니면서 여유있게 산다”며 씁쓸해했다.

    서울 강서구청 생활보호 담당자는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나라에서 돌봐주니까 수급자 지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영구임대주택 거주자 중 형편이 나아져서 나가는 경우는 0.01% 미만인 것 같다”며 답답해했다.

    이런 ‘얌체’ 부정 수급자들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 영구임대아파트에 실제 입주해야 할 사람들이 달동네를 전전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대기자는 전국적으로 5만5000여 가구에 이른다.

    생보자 등치는 파렴치범들

    대한민국 생활보호대상자, 그들은 지금…

    이런 쪽방에서 사는 사람이 생활보호대상자에서 제외된 이유는 뭘까?

    빈곤층임을 가장해 부정 수급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지만 빈곤층을 이용해 지원금을 빼돌리는 파렴치범도 적지 않다. 얼마 전 SBS ‘긴급출동SOS24’를 통해 방영된 ‘현대판 노예 할아버지’의 사례는 시청자들의 공분을 자아냈다. 이모 할아버지는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에서 2대에 걸쳐 남의집살이를 하며 50여 년간 착취와 학대를 당해왔다.

    주인으로 행세해온 가해자는 주민등록 기록이 말소된 할아버지를 위하는 척하면서 지난 2000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도록 도와줬다. 하지만 속셈은 딴 데 있었다. 할아버지 앞으로 지급되는 기초생활보장비를 가로채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가해자는 할아버지의 통장을 직접 관리하며 매달 들어오는 지원금 28만여 원을 모두 착복했다. 동탄면사무소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그동안 가해자가 착복한 돈은 1300여만원에 달했다. 동사무소 담당자는 “가해자로부터 전액을 환수해 할아버지에게 돌려줬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안성의 노인복지시설에 들어간 이후 그곳으로 기초생활보장비가 지급되고 있다”고 알려줬다.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친동생의 돈을 착복해오다 잠적한 경우도 있다. 서울 양천구에 사는 40대 후반의 이모씨는 남편 없이 자녀 둘을 데리고 살아왔다. 이씨의 언니는 동생을 데리고 관할 동사무소를 찾아 기초생활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왔다. 하지만 보호자를 자처하며 지원금 통장의 명의를 자신으로 했다. 이후 수년간 지원금을 착복한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조카이자 이씨의 딸이 성폭행 피해를 당한 후 합의금으로 받은 3000만원까지 가로챘다.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동생과 달리 중형 평수의 아파트에서 중산층 생활을 하던 이씨는 동사무소의 조사가 시작되고, 합의금 착복 문제가 불거지자 행방을 감췄다.

    아동과 치매노인, 정신지체 장애인 등을 수용하는 미인가 사회복지시설이 수용인의 기초생활보장비를 착복하는 경우도 있다. 강서아동학대예방센터 박병기 소장은 “시설에 수용된 행려자나 아동, 치매노인은 개인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되어 지원금을 받는데 미인가 시설 수용자라도 지원금이 나오기 때문에 수용자 전부의 금액을 합치면 큰 액수가 된다”며 “이중 일부 시설이 권리 주장이나 의사표현에 서투른 수용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지만, 관계기관에선 시설 운영자에게 지원금 관리를 떠넘긴 뒤 모른 체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실종자가족찾기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은 “아이들의 경우 1인당 월 100만원 가량의 지원금을 받는 곳도 있다. 때문에 일부 미인가 시설은 미아 부모가 찾아가면 신상카드도 안 보여주고 아이들을 빼돌려 못 보게 한다. 부모가 있음에도 신상카드에 이름이 바뀐 채 무연고 아동으로 올라 있다가 부모와 극적으로 상봉한 미아 사례도 있다”고 했다.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르면 부정 수급자는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태료에 처할 수 있다. 나아가 그동안 지급된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징수하도록 되어 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수용자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을 위탁받아 관리하다 착복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이런 법규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는 예는 거의 없다. 이에 대해 한 구청 담당자는 “동사무소나 구청 생활보호 담당자들이 부정 수급자를 처벌해달라고 고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히 동사무소 담당자의 경우 늘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하는 동네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야 하는데 누가 나서겠나. 법 집행에 제3자 또는 감독기관이 대신 나서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고백했다.

    이렇듯, 수많은 사람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랏돈을 타내는 한편에선 절박한 심정으로 동사무소와 구청의 문을 두드리는 이도 많다. 정부의 도움이 긴박하게 필요하지만, 유명무실한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금을 받지 못하는 ‘실질적 극빈층’이 바로 그들이다.

    “7세, 10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남편이 무능력해서 이혼할 때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보내려고 하는 걸 제가 데리고 와 키운 지 3년이 되었어요. 갈 곳이 없어 친정에서 더부살이를 하면서 식당에 나가 월 80만원을 벌었는데, 지난해 말에 허리를 다쳐 지금은 돈벌이도 제대로 못한 채 빚만 지고 있어요. 넉넉지 않은 노부모에게 손을 벌리기도 어려운 처지라 동사무소에 갔더니 아버지 소유 땅 때문에 생활보호 대상자가 안 된다고 합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경기도 부천시 현이 엄마·32)

    “이혼 후 월 30만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들(14)과 함께 사는데 전남편이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습니다. 전 남편은 월수입이 800만원이나 됩니다. 양육비 지원을 받으려면 재판을 해야 하고, 거기서 이긴다 해도 강제 징수 또한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모든 걸 포기했어요. 재판 비용도 없습니다.”(서울시 강북구 이모씨·42)

    이씨의 관할 동사무소 생활보호 담당자는 “이런 경우 여성의 실제 생활은 어려운데 부양의무자가 있고, 전남편이 소득이 많으니까 쉽게 수급자로 선정할 수 없다. 특례를 고려할 수도 있지만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갈등 중”이라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원확대보다 부정수급 차단이 시급

    심지어 부양의무자인 자녀들이 협조를 거부해 거동이 불편한 노부모가 수급권자 지정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서구청 최문정씨는 “거동이 불편한 70대 할머니 한 분은 누워 있는 할아버지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 몹시 어려운 형편인데도 인연을 끊고 사는 딸들 때문에 지원을 받지 못했다. 또 70세가 넘은 노모는 파지를 주워 겨우 생계를 꾸리는데 30∼40대 아들은 집에서 술 마시며 노는 가정도 많다. 이 외에도 딱한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광주대 이용교 교수는 “큰 틀에서 보면 빈곤층을 지원하는 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어느 정도 해결책이 됐다고 본다. 그런데 부양의무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부양의무자는 1촌으로 한정된다. 직계 혈족 외에 사위와 며느리도 부양의무자에 포함된다. 보건복지부의 ‘2005 기초생활보장수급자 현황’에 따르면 부양의무자이면서 능력이 없는 경우는 9만9810가구에 달했다. 부양을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도 8만2547가구나 됐다. 이 교수는 “며느리가 시부모를 부양해야 하고, 사위가 장인·장모를 부양해야 하는데 요즘 누가 그렇게 하겠느냐”면서 “생보자 지정 기준을 완화하기 위해 부양의무자 범위를 축소하면 분명 지금보다 수급자 수가 늘어날 것이고 이는 곧 세금의 인상을 의미한다”고 난감해했다.

    기초생활보장 지원을 필요로 하는 수급자는 양극화의 심화에 따라 해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극빈층 지원 확대에 앞서, ‘가짜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줄줄 새는 ‘돈구멍’부터 틀어막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국민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더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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