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호

[우그그] “품질개선, 주민 설득 없이는 SRF도 없다”

어차피 태워야 할 쓰레기…SRF 부정 인식 타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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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1-10-12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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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기물 고형연료(SRF), 항상 반대 부딪혀

    • 환경단체·주민 “SRF 품질 믿을 수 없다”

    • 나주에서도 불량 SRF 발생, 발전소 멈춰

    • 태우는 것 말고 답 없다면, 안전하게 태워야

    • 품질관리 위해선, 관련 산업 고도화 필요

    • 발전 外 시멘트·제지업계 등 용처 많은 SRF

    • 주민 반대로 전면 정지된 SRF 사업

    • 환경 영향 투명 공개로 주민 설득해야

    *환경 플랫폼 '우그그'는 '우리가 그린 그린'의 줄임말로, 환경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실천입니다.



    SRF 저지 나주시민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6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SRF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차량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SRF 저지 나주시민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해 11월 16일 광주 서구 광주시청 앞에서 SRF발전소 가동을 반대하는 차량 집회를 열고 있다. [뉴스1]

    “쓰레기 연료 결사 반대”.

    고형연료제품(Solid Refuse Fuel·SRF)을 사용하는 발전소 건립 현장에 가면 이런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쉽게 볼 수 있다. SRF는 플라스틱 등 가연성 폐기물을 부수거나 건조해 만든 연료다. 재활용이 어려운 가연성 폐기물은 결국 소각하거나 매립할 수밖에 없다. SRF는 소각으로 폐기물을 처리하는 동시에 이 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SRF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폐기물을 태우다 보니 과거 소각장처럼 다이옥신, 중금속 같은 신체 유해 물질이 다량 발생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 환경부와 SRF 관련 업계에서는 SRF가 알려진 바와 달리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SRF 제조 과정에서 유해 폐기물을 선별하는 데다 고열로 태워내기 때문에 대기오염 물질도 배출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8월 29일 나주 SRF열병합발전소(이하 나주 열병합발전소)에서 사용되는 SRF 품질 조사 결과 납과 수분이 기준치 이상 검출되며 SRF 유해성 논란이 재점화했다. 나주 열병합발전소 사업자인 한국지역난방공사(이하 지역난방공사)가 전남 장성군 복합물류센터 노천 야적장에 3년 넘게 보관해 온 SRF가 문제였다. 환경부 품질검사 결과, 이곳의 SRF는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이 SRF는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 폐자원에너지센터가 지속적으로 검사해 온 제품이었다. 환경부 산하기관이 정기적으로 검사한 제품에서까지 불량이 발생하자 인식이 나쁘던 SRF에 더 큰 악재가 됐다. 그렇다면 SRF는 더는 쓰기 어려운 연료일까?

    소각은 피하기 힘든 운명

    전남 장성군 물류센터 내  SRF(고형연료) 임시 야적장에 비성형 SRF가 쌓여 있다. [뉴시스]

    전남 장성군 물류센터 내 SRF(고형연료) 임시 야적장에 비성형 SRF가 쌓여 있다. [뉴시스]

    널리 퍼진 SRF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는 달리,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SRF 발전소가 폐기물 문제도 해결하는 동시에 전기도 생산할 수 있어, 대도시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고 말한다. 늘어나는 폐기물을 처리하려면 소각은 피하기 어려운데, 소각과 동시에 에너지도 만들 수 있는 SRF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실제로 국내 폐기물 배출량은 해마나 늘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하루 평균 발생하는 폐기물량은 2009년 35만7861t에서 2019년 49만7238t으로 대폭 늘었다. 폐기물은 늘어나는데, 이를 묻을 매립지는 부족하다. 생활폐기물 매립지 절반 이상(55.8%)이 2030년이면 포화되고, 사업장 폐기물 매립지는 이미 77.6%가 매립돼 약 4년 이내 가득 찰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폐기물 처리 정책은 매립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법령이 바뀌어 매립을 하려 해도 소각을 거쳐야만 한다. 7월 개정된 생활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수도권은 2026년부터, 그 외 지역은 2030년부터 종량제봉투에 담긴 폐기물을 그대로 묻을 수 없다. 어떤 방식을 사용하든 재활용하거나 소각해 재만 묻어야 한다.

    SRF 발전시설, 유해하지 않아

    전문가들은 “어차피 소각을 피하기 어렵다면, 소각열을 이용하는 편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미래기술교육원이 9월 10일 개최한 온라인 세미나 ‘폐플라스틱 자원화를 위한 리사이클링(재활용) 기술과 산업적 적용방안’에서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단순 소각·매립되는 폐기물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폐기물 소각 에너지를 이용해야 한다”라며 “SRF 등 관련 기술 활용을 통해 폐플라스틱을 에너지로 재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의 SRF 발전시설은 유해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천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소각시설이 주변 지역에 미치는 영향: 사례조사를 중심으로’ 연구 보고서에서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주민건강영향조사 결과, 배출 물질은 대기환경기준을 준수했고 주변 지역 환경 및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또 이탈리아와 스페인, 영국 등의 연구 결과를 분석해 “최근 몇 년간 현대적이고 효과적으로 관리된 소각시설에서 배출되는 다이옥신 양이 상당히 감소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고 설명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2000년대 이전 다이옥신이 배출된 소각시설과 지금의 소각시설은 운영 기술이나 모니터링 수준이 완전히 다르다”며 “(SRF 발전시설에 대한) 주민 인식을 바꾸고 정보를 제대로 공개해 협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나주 열병합발전소 사례에서 알 수 있듯, SRF가 환경부 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는 일도 생긴다. 일각에서는 비성형 SRF의 도입 때문에 SRF의 품질 유지가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SRF는 ‘성형 SRF’와 ‘비성형 SRF’로 나뉜다. 성형은 말 그대로 파쇄·건조한 폐기물을 일정한 크기로 뭉치는 ‘성형’ 과정을 거친 SRF다. 비성형은 폐기물을 파쇄·건조해 놓은 그대로인 상태를 말한다. 이 중 비성형 SRF에서 품질 문제가 주로 발생한다. 사실상 건조한 폐기물을 그대로 쌓아놓은 셈이니 습기나 주변 환경에 의해 SRF가 오염될 가능성이 높다. 환경부 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SRF도 비성형 SRF였다.

    성형 SRF 위주로 시장 재편해야

    서울시 한 자원회수시설에 쌓여 있는 종량제봉투를 대형 크레인이 끌어올리고 있다. 서울시 자원회수 시설은 폐기물을 SRF로 가공·소각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동아DB]

    서울시 한 자원회수시설에 쌓여 있는 종량제봉투를 대형 크레인이 끌어올리고 있다. 서울시 자원회수 시설은 폐기물을 SRF로 가공·소각해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동아DB]

    비성형 SRF는 국내에 도입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SRF다. 비성형 SRF가 국내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2013년에 개정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시행규칙에 있다. 법 개정 이전에는 국내 유통되는 SRF는 모두 성형 SRF였다.

    재료에 따라 RDF(Refuse Derived Fuel·폐기물), TDF(Tire Derived Fuel·폐타이어), WDF(Woodchip Derived Fuel·폐목재)로만 분류됐을 뿐 비성형 SRF는 유통되지 않았다. 법 개정 이후에는 재료별 구분이 사라졌고 성형 여부에 따라서만 SRF를 분류했다.

    2019년 환경부 집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SRF의 70% 이상이 비성형 SRF다. 비성형 SRF가 유통되며 SRF의 품질이 떨어졌다는 게 SRF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환경부와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환경규제 및 이에 따른 고형연료 활용방안 고찰’ 보고서는 “비성형 SRF와 같은 저품질 환경 제품은 환경문제를 초래한다”며 “SRF시장이 고품질 성형 SRF를 중심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정책과 제도를 확립해 SRF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 해도, 관련 시설에 대한 님비(NIMBY)현상이 쉬이 사라질 것이라 낙관하기는 힘들다. SRF를 이용한다는 것만으로도 주민 반대가 극심하기 때문. 대표적 예가 시멘트 업계의 SRF 사용이다. 시멘트 업계는 경북 의성군의 19만t에 달하는 폐기물로 이뤄진 ‘쓰레기산’을 치운 일등 공신이다. 2020년 4월 환경부는 시멘트 업계에 ‘불법 폐기물 신속 처리를 위한 시멘트 소성로 확대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쓰레기산의 폐기물을 SRF로 이용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멘트 공장 소성로의 온도는 1500℃. 이 정도의 고열에서는 플라스틱을 포함한 대부분의 폐기물이 완전 연소돼 유해 물질이 배출되지 않는다.

    쓰레기산 치워도 주민 반대 부딪혀

    하지만 지금 시멘트 업계는 SRF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인근 주민 반대와 SRF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때문에 지금은 SRF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나주 열병합발전소도 주민 설득 실패로 가동이 불가능한 상태다.

    지역난방공사는 2012년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나주 열병합발전소에 SRF를 연료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4년까지 주민 설명회를 통해 인근 주민 설득을 마쳤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설명회를 마친 뒤인 2014년 2월 나주 열병합발전소가 위치한 나주혁신도시에 신규 입주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2014년 나주혁신도시의 인구는 총 3895명. 신규 입주민이 유입되기 시작한 2015년에는 인구가 1만2452명으로 늘었다. 이후 2016년에는 2만1000명을 돌파했다. 2021년 7월 기준 나주혁신도시의 인구는 3만8682명. 단순 계산해 보면 지역난방공사의 설명회를 들은 주민 비율은 약 10%에 불과하다.
    지역난방공사의 설명을 전혀 듣지 못한 주민들에게 SRF 발전소 건립은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2017년 9월 시험 가동 이후 집단 민원이 발생해 지금까지 발전소는 멈춰있다.


    320번 설득, 지역 주민 지원으로 성공

    주민들을 설득해 SRF를 사용하는 곳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의 자원회수시설이다. 강남구, 노원구, 마포구, 양천구 4곳에 위치해 있으며 각 시설마다 연간 1500~2000만t의 SRF를 태워 에너지를 생산한다. 서울시는 주민 설득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원회수시설 건립을 두고 2001년부터 320여 회에 이르는 주민 설득 과정을 거쳤다.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관계자는 “자원회수시설 폐기물 소각량을 늘리는 안건 하나를 두고도 100여 번이 넘는 설명회를 거친다”고 밝혔다.

    경제적 보상도 있다. 서울시 자원회수시설의 경우 다른 지역에서 반입되는 폐기물에 대해 반입 수수료를 받는다.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자원회수시설 주변지역 지원기금 조례’에 따라 자원회수시설 주변 지역 주민들에게 지역난방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에도 주민지원협의체가 자원회수시설 환경영향조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신뢰도를 높였다. 서울시 자원회수시설 관계자는 “주민들이 자원회수시설을 신뢰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고 시설의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한다면 폐기물 소각시설에 대한 님비현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밝혔다.

    #SRF #자원회수시설 #님비 #폐기물소각 #신동아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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