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물연료 도입을 주장하며 집회를 벌이고 있는 환경단체 회원들.
발등에 떨어진 불, ‘脫석유’
유럽 각국이 식물연료 확대에 열을 올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수송 연료로서 석유의 지위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 고유가 상황이 계속되면서 ‘석유 생산 정점(Oil Peak)’의 도래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가까운 시일 안에 석유 생산 정점이 찾아온다면 이후에는 석유 생산량이 계속 줄어들어 유가는 급등할 수밖에 없다. 전세계적으로 석유 고갈 사태에 대비한 ‘석유로부터의 해방’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필요성이 제기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석유 고갈 사태가 먼 훗날의 일이라고 낙관하는 사람조차 인정하는 고민이 또 있다. 이산화탄소를 위시한 온실가스 문제다. 세계는 기상이변의 주범으로 지목받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기후변화협약을 맺고 있다. 2005년 2월16일 공식 발효된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는 2008~2012년에 유럽 각국을 포함한 선진국이 1990년을 기준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평균 5.2% 줄일 것을 강제하고 있다.
EU는 201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억2000만t 줄여 감축 목표량의 95%를 달성할 계획을 세워놓고 에너지 및 산업 구조조정을 가속화해왔다. 식물연료에 대한 유럽 각국의 관심은 이런 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수송연료가 에너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염두에 두면 자동차의 배기구에서 배출되는 각종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그렇다면 식물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는 얼마나 될까. BD100을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78% 낮아진다. BD20을 사용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 낮아진다. 또한 순수 식물연료를 디젤 엔진 자동차에 넣을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경유에 비해 80%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식물연료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가 탁월한 것은 식물연료가 콩, 유채, 야자수처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식물에서 직접 나오기 때문이다. 이들 식물이 자라면서 대기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디젤 기관이 연소해 다시 배출하는 방식이므로 이론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거의 없다. 실제로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국제기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유채에서 바이오디젤유를 얻을 경우 1t당 이산화탄소 2.2t이 경감된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 때문에 식물연료는 석유 시대 이후, 또 기후변화협약 시대를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식물연료는 ‘지금 당장, 어떤 기술 변환도 없이 폭넓게 사용할 수 있는’ 석유 대체수단이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수소연료전지 자동차가 보급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식물연료의 강점은 더 돋보인다.
대기 질 개선하고, 농업도 살리고
한국의 경우에는 유럽과는 다른 맥락에서 식물연료를 도입할 필요성이 있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인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9월2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앙헬 구리아 사무총장은 한국의 환경정책 성과를 평가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한국 도시의 대기오염 상태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나쁜 수준으로 평가됐다”고 경고했다.
OECD의 경고를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대기오염 수준은 심각하다. 대기오염 물질 중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것으로 알려진 미세먼지에 대해서 살펴보자. 2002년 OECD 오염도 순위에서 서울시는 OECD 평균(31㎍/㎥)을 두 배나 초과하며 ‘당당히’ 1위(71㎍/㎥)를 차지했다. 미세먼지 농도가 평균치보다 30㎍/㎥ 이상 증가할 경우 평균 수명이 3년 단축될 것이라는 예방의학계의 지적을 염두에 두면 충격적인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