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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⑩]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수저박사’가 된 이유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경제사상가 이건희 탐구 ⑩]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이 ‘수저박사’가 된 이유

  • ● 스승이 제자에게 던지듯 화두 던진 이건희
    ● ‘수저가 무겁다’는 지적에 수저 찾아다닌 이부진
    ● 폴로를 이긴 빈폴의 ‘노 세일’ 전략
    ● “신용카드업 개념은 외상관리업”…본질 찾는 ‘業의 개념’
    ● 유연한 문화 만들고, 방향 제시하는 사람이 경영자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1997년 12월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동아DB]

이건희 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은 1997년 12월 1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동아DB]

이건희 회장은 생전에 경영을 ‘종합 예술’이라고 했다. “경영은 종합예술이다. 뛰어난 영화 뒤에 명감독이 있듯이 훌륭한 경영 뒤에는 탁월한 경영자가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여 기업을 발전시키는 주체는 사람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가 바로 경영자다.”(책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여기까지 들어보면 지극히 당연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경영자의 자질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붙어있다. 바로 ‘시대 변화를 얼마나 민감하게 읽을 수 있으며 이를 조직 구성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고인은 우선 시대별로 요구되는 경영자 모습이 다르다고 했다. 

“1960, 70년대에는 경리에 해박한 인재가 경영자로 성장했다.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였기 때문에 수입을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이 경영의 요체였다. 1980년대 경제가 발전하고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싸게 만들고 많이 파는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경영자도 생산과 판매 부문에서 많이 나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이 중요해지면서 기술과 전략 부문 출신들이 부상하게 되었다. 21세기형 경영자는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고 유연한 조직 문화를 창조하며, 변화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조직 내에 전파해야 한다는 점에서 철학자적 경륜이 요구된다.” 

여기서 눈길이 가는 대목은 마지막 대목이다. 스스로의 변화도 힘든데 이걸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설득시키기 위해 철학자적 경륜까지 필요하다고 했으니 그가 생전에 왜 그렇게 집요하게 사색과 공부에 몰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고인은 말에 그치지 않았다. 실천하고 행동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고 늘 위기의식을 갖고 변화하는 바깥세상과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엄청나게 공부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발신할 지속적인 메시지를 생각해내고 언어화했다. 

그렇게 해서 내건 대표적 화두가 바로 ‘업(業)의 개념’이다. 7‧4제(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가 몸을 바꾸는 것이었다면, 업의 개념은 머리를 바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승이 제자에게 화두를 던지듯

1988년 7월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업(業)의 개념’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제공]

1988년 7월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건희 회장. 이건희 회장은 1980년대 후반부터 ‘업(業)의 개념’에 대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제공]

한자와 일본어 투가 섞여 있다는 느낌을 주는 ‘업(業)의 개념’이란 말은 회장이 만들어낸 단어로 보인다. 그의 생전 어록을 읽다 보면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단어나 조어를 툭툭 만날 수 있는데 이 말도 비슷하다. 

‘업의 개념’이란 무슨 뜻일까. 회장은 생전에 “경영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최소한 다섯 번 정도는 ‘왜(Why)?’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깊은 질문’을 사랑한 ‘딥 다이버(deep diver)’였던 것이다. 

‘업의 개념’이란 것을 언뜻 생각하면 ‘일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질문일 것 같지만 회장이 생각한 것은 그런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현명관 전 비서실장이 신라호텔 경영을 맡고 있을 때 회고담이다. 

“전무로 일하면서 관리 업무를 총괄할 때였습니다. 이건희 부회장이 전화를 걸어오더니 ‘리버사이드 호텔이 매물로 나왔는데 매수를 검토해보라’는 거였습니다. 첫 대화이자 갑작스런 전화였습니다. 

지시받은 대로 해당 호텔의 영업전망, 신라호텔과의 시너지 효과 등에 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으로 판단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우선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주로 받는 곳이어서 격이 맞지 않았습니다. 건물과 땅 주인 간에 갈등이 깊어 채권 채무 관계도 복잡했고요. 

내부도 방, 복도, 화장실 크기, 부대시설 등에 문제가 있어 대규모로 수리를 한다 해도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비서실과 의논해봤는데 마찬가지 의견이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부정’의견을 냈고 호텔 매입 건은 결국 백지화됐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학수 비서실 재무팀장으로부터 “회장 말을 대신 전한다”며 “경영진이 호텔업의 특성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다시 현명관의 말이다. 

“고개를 갸우뚱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호텔업이란 게 고객을 최고 서비스로 편안히 모시는 거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마치 불가(佛家)의 스승으로부터 화두를 받은 제자라도 된 것처럼 회장 질문을 곱씹어봤습니다.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다가는 답이 안 나오겠기에 우선 호텔 선진국 일본을 들여다보기로 했습니다. 도쿄에서 호텔 경영자를 두루 만나고 전문 잡지를 내는 편집장을 만나보니 서서히 감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어떻게 감이 왔다는 건가요. 

“호텔업을 서비스업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학자나 직원, 고객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이었습니다. 경영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호텔업은 부동산업과 유사한 면이 많았습니다. 호텔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위치 아닙니까. 

처음엔 대개 5년에서 7년 정도 적자를 보지만 시간이 갈수록 인적 네트워크가 생기고 무엇보다 부동산 가치가 높아져 영업 적자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리버사이드 호텔이 강남과 강북이 맞닿은 요지에 있다는 점에서 회장이 부동산업 측면에서 관심을 두고 있었으리라는 것을 그때서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호텔업은 장치산업

이건희 회장은 평소 사고의 유연성과 입체성을 강조한 대로 한 업종도 매우 다양한 앵글로 바라봤다. 호텔업에 대해 부동산업 관점 외에 ‘장치 산업’이라고도 했다. 거대한 기계 설비가 필요한 석유화학이나 중공업에나 해당하는 장치 산업과 호텔업이 얼른 연결이 안 될 것 같지만 회장은 “호텔에 들어가는 비품이 1300개 정도가 된다. 이걸 얼마나 잘 갖춰 놓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장치산업”이라고 했다. 호텔업을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단순히 서비스를 잘 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접근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서비스의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태가 그려진다. 

신라호텔의 한 전직 임원은 회장이 직접 신라호텔 내부를 챙긴 적이 있다면서 이런 일화를 전했다. 

“회장이 맏딸 이부진 사장에게 호텔을 맡긴 뒤 아예 석 달 가량 호텔에 묵으면서 출퇴근을 했습니다. 그만큼 딸에게 무게를 실어주겠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매우 디테일한 것까지 챙겨 일을 가르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은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먹다가 ‘수저가 너무 무겁다’는 지적을 했습니다. 그날로 이부진 사장은 ‘수저 박사’가 될 정도로 공부를 해서 적정한 무게의 수저를 찾아내려 애썼습니다. 

또 어떤 날은 방 안 비품 가운데 당장 바꿔야 할 것이 있다면서 플라스틱 휴지통을 모두 철제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호텔의 경우 화재가 제일 무서운 일이니 불에 약한 비품을 두면 안 된다는 거였죠.”


미국 폴로가 한국 빈폴에 지다

회장이 ‘업의 개념’을 설파할 때 주목할 만한 것은 업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만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현명관의 경우처럼 경영진에게 일종의 화두를 던짐으로써 스스로 답을 찾게 해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방식을 썼다는 점도 특이하다. 막연하게 일을 열심히 하라거나, 성과를 많이 내라고 닦달(?)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로 하여금 곰곰이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패션협회장을 지낸 원대연 전 제일모직 사장 말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진다. 원 사장은 1973년 삼성물산 봉제수출과에 입사해 45년간 섬유·패션이라는 한길만 걸었다. 그의 말이다. 

“회장이 어느 날 전 사업 부문 책임자들에게 ‘업의 개념을 정립하라’고 해서 그제야 ‘패션업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타사 브랜드보다 값싼 제품을 많이 만들어 팔아 매출을 올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섬유 봉제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으면 망하기 딱 좋은 업종입니다. 당시 삼성도 중국이든 동남아든 제작 단가가 싼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으니까요. 

그런데 패션업을 파고 들어가 보니 정보통신(IT) 못지않은 ‘선진국형 고부가가치 문화 창조산업’이란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렇게 업의 개념을 세우니 비전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사양 산업이 아니라 문화 산업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면서 가격이 아닌 질로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회장이 제시한 ‘업의 개념’은 고인이 단순한 경영자가 아니라 본질을 탐구하는 사상가라고 느끼게 하는 대표적 메시지였습니다.” 

원 전 사장은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빈폴’ 브랜드였다”고 했다. 

2002년 한국 패션업계에서는 세계 의류업계를 놀라게 한 일대 사건이 일어난다. 미국 브랜드 ‘폴로’가 국산 토종브랜드 ‘빈폴’에 1위 자리를 내준 것이다. 게다가 ‘노(NO) 세일’을 고수하며 폴로와 거의 같은 수준의 가격대를 유지해 이룬 성과였다. 이것은 앞서 말한 ‘업의 개념’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결과였다는 게 원 전 사장 말이다. 

“당시 제일모직은 양(量) 경영에 치우쳐 매일 ‘재고를 어떻게 털어낼 건가’로 회의를 했습니다. 우수하다는 인재가 모여 기껏 고민하는 게 ‘얼마나 싸게 팔까’였으니 한심했다고 할 수 있지요. 

회장이 강조하는 질(質)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컬러와 소재, 디자인, 생산 공정 모두를 해외 명품과 일일이 비교해 벤치마킹했습니다. 다들 원가가 많이 들어간다고 반대했지만 질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2년 정도 지나니까 시장에서 반응이 오더군요. 바로 그해 말 ‘노 세일’을 결정했습니다. 처음엔 직원 대부분이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첫해 생산량의 78%가 정가에 나가니 표정과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 후 매출이 죽죽 올라 2004년까지 무려 생산량의 85%를 정가에 팔았습니다. 그때는 65%만 정가에 팔아도 대박이라고 하던 시절이에요. 패션은 굉장한 고부가가치 산업입니다. 품질 개선이 이뤄지자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갔습니다. 지금은 빈폴 명성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아쉽지만, 어떻든 회장이 말한 업의 개념을 깊이 저 나름대로 숙고해 현장에 적용해 나온 대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지요.”


보험업은 모집인이 생명

2001년 7월호 신동아 이형삼 기자가 쓴 ‘삼성의 힘, 이건희의 힘‘이라는 기사에는 보험업을 바라보는 회장만의 독특한 생각이 소개된다. 기사 중 일부다. 

“삼성생명 이수빈 회장이 1985년 미국에서 돌아와 동방생명(현 삼성생명) 사장으로 발령받았을 때 일이다. 당시 이건희 그룹 부회장에게 인사를 하러 갔더니 이 부회장이 ‘생명으로 가신다면서요? 보험회사는 모집인(설계사)이 전붑니다’ 지나가듯 한마디 했다.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없는 이수빈 사장으로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거니와 당시 동방생명은 지금처럼 생명보험 업계에서 수위를 달리지도 못했고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미미했기 때문에 ‘경영수업 중인 부회장이 보험에 대해 뭘 안다고 저러시나’ 싶었다는 마음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현장을 돌아다니며 눈여겨보니 과연 보험회사 경영을 좌우하는 것은 모집인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파격적으로 대우해줬더니 2∼3년 후부터 실적이 급증하더라는 것. 계열사 돌아가는 형편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있다가 단 하나의 문장으로 핵심 경영 전략을 귀띔해준 이 부회장을 이수빈 사장은 그 후부터 다시 보게 됐다고 한다.” 

비슷한 일화는 또 있다. 회장은 신용카드업 개념을 물장사에 비유하기도 했다. 1994년 1월 금융계열사 사장단과의 회의에서 불쑥 “신용카드업의 개념이 뭐냐”고 물은 뒤 누구도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외상 관리업”이라고 한 것. 사장단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자 회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카드업은 외상값을 잘 받아야 한다. 아무리 영업을 잘해도 돈을 제때 받지 못하면 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채권 관리가 생명이란 거다. 실적을 올린다고 마구잡이로 회원을 모집하면 당장 경쟁사와의 외형 경쟁에서는 앞서 나갈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연체와 부실채권 양산으로 낭패를 겪게 된다.” 

손욱 전 삼성종합기술원장 말이다. 

“회장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업의 개념을 설파했습니다. 카드업을 물장사에 빗대며 물장사도 외상관리가 핵심이라고 했죠. 흔히 술집으로 성공하려면 좋은 술이나 안주를 판다거나 마케팅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단골 장사이기 때문에 외상관리에 실패하면 망한다는 겁니다. 

회장이 던진 ‘업의 개념’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줬습니다. 어느 날은 안양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임원들끼리 골프장 업의 개념이 뭔가 토론을 벌인 게 기억이 납니다. 코스를 잘 만드는 것은 기본이요, 향후 땅값이 오를 것까지 계산에 넣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부동산업이고 나무를 잘 키워 미래에 팔 수 있다는 점에서는 조경업이라는 상상력까지 확대됐죠. 이렇게 회장의 철학은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생각의 씨앗을 뿌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손 전원장도 삼성종합기술원장을 맡으면서 업의 개념에 몰입했다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술원은 ‘연구가 전부’라고 생각했지만 ‘누가 쓸 것인가’라는 마케팅 개념을 집어넣으니 전혀 다른 관점이 나왔습니다. 당장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뭘 만들어 팔아야 돈을 벌 수 있을까 그런 걸 연구하게 된 거죠. 기술원 인력을 통폐합해 바이오연구팀을 만들게 된 것도 그런 배경에서였습니다. 회장이 내건 업의 개념은 모든 임직원을 한 사람 한 사람 독립된 경영자로 키워냈다는 면에서도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배종렬 전 제일기획 사장의 증언이다. 

“‘업’이라는 개념을 회장이 처음 말하기 시작한 건 1993년 신경영 선언보다 훨씬 전인 1989년으로 기억합니다. 회장은 매년 10월 쯤 되면 관계사 사장들을 불러 저녁 식사를 하며 보고를 받고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여명의 사장이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나면 새벽 1시가 넘어야 끝이 날 때가 많았습니다.
 
회의는 단지 사업보고를 하는 자리가 아니라 회장의 경영철학, 경영관, 인생관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고인의 깊으면서도 넓은 지식과 생각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품 브랜드 구찌와 에르메스가 말안장에서 탄생했다는 얘기에서부터 개에 대한 이야기까지 화제가 정말 다양했지요. 

주제도 하나에 집중하면 집요하게 파고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신라호텔 사장에게는 ‘접시는 몇 개이고 종류는 몇 가지인가?’부터 시작해 옛날 여인숙에서 시작하는 한국 숙박시설의 역사, 일본 료칸의 역사, 서양호텔 역사를 두루 꿰면서 호텔업의 본질을 설명했습니다. 이후 오늘날 어떻게 발전시켜야 된다에 이르기까지 ‘호텔’이란 주제 하나만 갖고도 2시간 이상 얘기하곤 했습니다. 회장은 인간, 생활, 삶의 모든 것을 비즈니스와 연계해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신동아 2021년 4월호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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