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모래밭에 일군 제국의 영광

시리아 사막의 ‘오아시스’팔미라(Palmyra)

  • 글/사진: 김선겸 여행작가

    입력2003-04-29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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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밭에  일군 제국의 영광

    중동지역 최대 유적 중 하나인 팔미라의 벨 신전. 고대 실크로드의 교역지로 번영을 누렸던 팔미라 유적에는 화려한 옛 제국의 영광이 그대로 남아 있다.

    중동 지방을 여행할 때에는 가능한 한 아침 일찍 움직이는 것이 좋다. 타는 듯한 태양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서다.

    시리아 사막의 한가운데 위치한 팔미라 유적지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에서 불과 10여 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신새벽에 방문할 수 있는 팔미라 유적지는 사막의 삭막함과 신비로움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다. 광활한 모래밭 한가운데 신기루처럼 솟아 있는 열주와 허물어진 건물들은 “뜨거운 모래사막 한가운데 땅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환상적인 도시”라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묘사가 허튼 것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유적지에는 한 무리의 프랑스 단체 관광객들만이 눈에 띌 뿐 조용했지만, 유적지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침부터 몰려든 낙타몰이꾼들의 호객행위로 어수선하다.





    팔미라는 바둑판같이 정교한 도시다. 길게 뻗은 주요 도로와 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도로가 촘촘히 나 있고, 교차로마다 네 개의 탑문이 세워져 있었다. 도시 밖에는 거대한 벨 신전이, 맞은편에는 고대 팔미라로 들어가는 입구인 아치형 개선문이 보인다. 이 문을 통과하면 1km가 넘는 대주랑(大柱廊) 거리가 펼쳐지고 양 옆에는 높이 9.5m에 달하는 원주가 끝없이 줄지어 있다. 대주랑 거리를 따라 신전과 극장, 시장, 법원, 아고라, 목욕탕, 원로원 등이 있다. 2000년이라는 세월의 흐름에 유적 대부분이 폐허가 된 채 기둥과 주춧돌만 남았지만 극장만큼은 거의 완벽하게 복원돼 있다. 중앙의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세워진 이 극장에서는 그 옛날 춤과 음악 등 다양한 공연이 열렸다지만 지금은 적막감만이 감돌 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무대 앞을 왔다갔다 하던 동네 꼬마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이방인을 쳐다본다.



    극장에서 나와 대주랑 거리를 걷다 보니 베드윈 여인이 팔찌와 목걸이 등 볼품없는 물건을 사라며 따라붙는다. 고개를 저었더니 이번에는 자신의 집에서 차를 마시지 않겠냐고 묻는다. 호기심에 이끌려 따라간 그녀의 집은 멀리 대주랑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있었다. 주변에는 그녀의 집 한 채만 보일 뿐 온통 황량한 사막뿐이다. 변변한 가재도구 하나 없이 시멘트 바닥에 낡아 떨어진 카펫을 깔고 여섯 명의 아이와 살고 있는 그녀는 삶에 찌들어 실제 나이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의 방문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치고 박고 싸우며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차를 끓여온 그녀가 보따리를 풀고 다시 한 번 물건을 사라고 권유했다. 원래부터 물건을 살 생각이 없었던 터라 찻값만 치르고 나와 무덤의 계곡으로 향했다. 사막에 펼쳐진 무덤이 계곡을 이루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곳에는 그 옛날 팔미라를 건설했던 사람들이 묻혀 있다. 팔미라 전통양식인 탑묘(塔墓)를 비롯해 지하분묘, 가형묘 등 다양한 묘들이 줄지어 있다. 팔미라는 인도,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 동서 문물이 오가던 도시인 만큼 묘 역시 여러 나라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유적은 시간을 초월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정작 도시를 건설했던 주인들은 무덤 속에서 말이 없다.

    해가 저물 무렵 팔미라 유적지 뒤편 언덕에 있는 성채로 올라갔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성채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경사가 급한 자연사면에 둘러싸여 접근이 어렵고 양 옆에는 깊은 홈을 파 성채 수비를 용이하게 해놓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팔미라의 전경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하다. 삭막한 유적과 대추야자 숲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대비를 배경으로 태양이 사방을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수천 년의 시간을 묵묵히 이겨내고 남아 찾는 이들에게 경이에 찬 감동을 전해주는 신비의 도시 팔미라. 역사의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가 여행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곳이다.





    모래밭에  일군 제국의 영광

    오후 더위를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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