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 구름, 드넓은 땅. 몽골 초원에서 보이는 모든 것이다.
그는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거든?! 내몽골도 이제 차 타고 다니거든!”
훗날 내몽골의 구도(區都)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 가보니 높은 빌딩이 줄지어 서 있고 넓은 차도에 차들이 달리는 평범한 도시였다. 말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아 내몽골의 흥취를 느낄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차도를 무단횡단해 중앙선 가드레일을 넘는 모습이 그나마 가장 내몽골다웠다고 할까? 그는 가슴 높이의 가드레일을 매우 날렵하게 뛰어넘었다. 한달음에 말 위에 올라타는 몽골 전사 같았다.
네이멍구자치구(內蒙古自治區)의 약칭은 ‘어리석을 몽(蒙)’자다. 몽골어로 ‘몽골’은 ‘세상의 중심’이란 뜻이다. 그러나 중원의 한족은 몽골족에 ‘몽고(蒙古)’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지몽매하고[蒙] 고루한[古] 것들’이라는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다. 한족에게 몽골족은 무지함을 일깨워줘야 할, 즉 계몽(啓蒙)의 대상이었다.
이 같은 편견은 몽골의 조상, 흉노 때부터 시작됐다. ‘흉노’는 흉노어로 ‘사람’이라는 뜻인데, 중원은 ‘흉악한 노예’를 떠올리게끔 ‘흉노(匈奴)’라고 음차했다. 사마천은 비교적 점잖게 하(夏)나라 하후(夏侯)씨의 후예가 북방으로 가서 흉노족이 되었다고 설명했지만, 전국시대 중원의 노예들이 혼란을 틈타 북방으로 도망쳐 흉노족이 되었다는 속설이 횡행했다. 중원의 떨거지들이 북방 오지에 가서 야만스럽게 산다는 멸시가 깔려 있다.
‘황소 꼬리가 부러지는 추위’

후허하오터의 이슬람 사원 모스크, 몽골은 여러 종교 및 문화에 관용적이었다.
북방 초원은 매우 거친 땅이다. 북쪽인 데다 고원지대라 겨울은 매우 길고 여름은 매우 짧다. 몽골국의 관공서는 매년 9월 중순 난방을 틀기 시작해 5월 중순에야 멈춘다. 몽골어는 추위를 구분하는 말이 발달했는데, ‘양이 잠자는 바닥이 어는 추위’ ‘3살 된 황소의 뿔이 얼어 부러지는 추위’ ‘4살 된 황소의 꼬리가 얼어 부러지는 추위’ 등 추위의 이름도 매우 살벌하고 다양하다.
초원은 일조량과 물이 적고 건조해 풀만 자랄 수 있을 뿐 농사에 부적합하다. 풀조차 가축이 다 뜯어먹으면 초원은 금세 황무지와 사막으로 변한다. 따라서 몽골 고원에 사는 이들은 가축을 데리고 목초지를 옮기며 살아가는 유목민이 되었다.
유목은 초원에 가장 적합한 생활양식이었지만, 그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정성껏 가축을 길러도 벼락 한 번, 폭설과 홍수 한 번에 몰살당하기도 한다. ‘장군도 화살 한 대면 끝장나고, 삼대 부자도 폭설 한 번이면 망한다’는 몽골 속담은 초원 생활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유목민이라 해도 유목만으로 생활하기란 힘들었다. 사냥, 약탈, 장사 등 여러 활동을 병행해야 했다. 이런 유목민에게 전사(戰士)는 매우 중요했다. 목초지와 가축을 지키고, 사냥을 이끌며, 전쟁·약탈을 수행하는 일은 부족의 생존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방 유목민들은 용사를 존경했고, 지도자를 뽑을 때에도 능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