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잘려나간 꼬리가 다시 자라는 도마뱀과 달리, 잘려나간 인간의 손가락은 다시 자라나지 않는다. 병든 신장이나 심장도 재생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정상 세포는 암세포와 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지닌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사실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암세포와 만난다. 1953년 미국 잭슨 연구소에서 일하던 암 연구자 르로이 스티븐스는 담배 회사로부터 연구비를 받아 잎담배와 암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다. 그는 실험용 생쥐들을 잎담배 성분들에 노출시켰다. 그러자 고환에 종양이 생긴 생쥐들이 나타났다. 종양을 짼 그는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뼈, 이빨, 머리카락 등 온갖 신체 조직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그런 종양을 테라토마라고 한다.
그는 종양을 일부 잘라 다른 생쥐에게 이식해보았다. 그러자 이식된 종양은 다양한 세포와 조직으로 자라났다. 그런 특이한 현상을 관찰한 뒤로 그는 테라토마 연구에 매달렸다. 수십년 동안 테라토마를 연구한 끝에 그는 그 종양이 배아줄기세포에서 유래했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는 그 종양을 일으킨 세포를 ‘만능 배아줄기세포’라고 불렀다. 그럼으로써 줄기세포 연구 분야가 탄생했다.
스티븐스는 테라토마를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 각지의 연구실에 테라토마와 배양 기술을 전파했다. 그 뒤로 수많은 연구자가 암의 근원을 파헤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81년 에번스와 카우프먼이라는 두 연구자가 생쥐의 배반포에서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0여 년이 더 지난 뒤 제임스 톰슨은 1995년 영장류의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그 기술을 이용해 3년 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분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테라토마는 연구자들이 분리한 세포가 정말로 배아줄기세포인지를 판단하는 용도로 쓰이게 됐다.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생쥐에게 이식하면 테라토마가 생긴다. 테라토마가 안 생기면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다.
재생 전문가 ‘성체줄기세포’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DNA 연구만큼이나 역사가 깊은 셈이다. 사실 배아줄기세포는 훨씬 전부터 존재가 예견됐다고 봐야 옳다. 배아줄기세포가 없다면 세포 하나로 된 수정란에서 200여 종류의 수십조 개 세포로 이루어진 인간으로 자란다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포에서 다양한 종류의 분화한 세포가 만들어지려면, 발달이 이뤄지는 동안 계속 미분화 상태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피부, 털, 뼈, 근육, 신경 등 분화된 다양한 세포와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세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때로 진정한 원인과 기본 원리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성과를 내곤 한다. 성체줄기세포가 그렇다. 1965년 연구자들은 백혈병에 걸린 아이에게 골수를 이식해 치료에 성공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골수에서 혈액이 만들어지므로, 건강한 사람의 골수를 이식하면 혈액암인 백혈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생각은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식한 골수에 들어 있던 것, 즉 백혈병을 치료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것은 성체줄기세포의 하나인 조혈모세포였다.
골수를 이식했을 때 치료하는 것이 성체줄기세포임이 밝혀진 지금은 골수 이식 대신 조혈모세포를 사용한다. 가령 화학물질이나 방사선을 사용해 백혈병에 걸린 환자의 골수 세포를 죽인 다음, 기증받은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혈관에 주입한다. 그러면 조혈모세포는 혈관을 타고 돌다가 골수로 들어가서 자리를 잡은 뒤 건강한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등을 만들어낸다.
최근에는 제대혈에서 조혈모세포를 추출해 이식하기도 한다. 제대혈은 출산할 때 탯줄에서 뽑은 신생아의 피다. 그 피에는 조혈모세포 같은 성체줄기세포가 들어 있다. 신생아는 아직 면역체계가 덜 발달한 상태이므로, 제대혈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면 면역반응이 덜 일어난다.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인체의 각 부위에서 성체줄기세포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곧 간, 치아, 근육, 창자, 피부, 혈액, 뇌, 심장 등 여러 부위에 성체줄기세포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찾아보면 더 많은 곳에서 발견될 것이다. 상처가 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재생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부위에는 성체줄기세포가 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피부나 간이 대표적이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줄기세포의 능력이 모두 똑같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성체줄기세포가 배아줄기세포에 맞먹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다. 수정란에서 발달이 진행될수록 줄기세포도 점점 분화하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세포의 종류가 줄어든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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