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호

넥타이 고르기 ‘화려함’보다‘조화’

남훈의 ‘남자 옷 이야기’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01-06 16: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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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향의 시대다. 과거에는 생각과 이념으로 한 사람을 가늠했다. 이제는 아니다. 입고 먹고 즐기는 모든 것에서 그 사람을 읽는다. 그중 패션은 취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 ‘그냥’ 입은 차림새라도 보는 이는 ‘의도’를 덧입혀 해석한다. 옷과 쇼핑을 좋아하는 남자는 꼴불견이라는 시대는 지났다. 멋을 아는 남자가 자기관리를 할 줄 아는 능력남으로 통한다. 이달부터 남훈 ‘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가 ‘남자 옷 이야기’를 펼친다. 첫 번째 주제는 넥타이.
    넥타이 고르기 			 ‘화려함’보다‘조화’
    남자가 품위와 격식을 표현하기 위해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 어쩌면 넥타이는 가장 비싼 물건일지도 모른다. 짧은 것은 140cm에서 길게는 152cm 정도의 작은 천 조각일 뿐인데 왜 거의 모든 명품브랜드에서, 심지어 남성복을 취급하지 않는 브랜드에서조차, 넥타이를 매시즌 수백 가지 이상 출시하고, 게다가 그처럼 만만치 않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남성이 깊이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로 넥타이라는 화두(話頭)에 진지하게 접근해보면 의문은 계속된다. 넥타이란 본질적으로 남성용인데 여성들이 그 선택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것은 또 무슨 조화란 말인가. 게다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이 작은 소품은 투입되는 원가에 비해 너무 비싸게 팔리는 것은 아닐까? 화려한 백화점 명품관에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는 최고가 제품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넥타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정말 좋은 넥타이를 감식하는 기준은 색상인가 소재인가.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당대의 새로운 흐름을 감안하면 넥타이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품위 있는 남자를 만들기 위한 아이템들은 슈트, 셔츠, 타이, 구두에서 시계나 양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이 모든 것은 결국 그것을 걸치는 사람을 향해 부드럽게 조화를 이뤄야 의미가 있다. 여자들의 로망은 핸드백이나 구두,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보석으로 비수평적으로 진화하겠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남자가 마음속에 아련히 품는 로망은 좋은 품질의 정장과 자신의 개성이 담긴 자동차로 압축된다.

    하지만 넘쳐나는 좋은 자동차 중에서 결국엔 자신과 어울리는 차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듯, 옷이나 자동차와 같은 남자의 소유물들은 일단 경험하는 순간 존재감의 일부가 되어버리기에 함부로 고르지 못한다. 너무 많은 남자가 화려한 컬러에 현혹되어 쉽게 고르는, 그리고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남자를 위해 선물하는 넥타이도 사실은 마음 가는 대로만 골라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넥타이 고르기 			 ‘화려함’보다‘조화’

    넥타이는 소속 집단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됐다고 알려진다. 슈트를 잘 차려입어도 넥타이는 잘못 매면 스타일을 망치기 쉽다.

    여전히 넥타이의 의미와 실용적인 지침에 관한 해석은 다양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각종 미디어는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새롭고 화려한 넥타이 컬러를 제안하며, 넥타이에 대한 남녀의 관점도 사뭇 다르다. 그러나 넥타이에 대한 많은 이야기 중에서 무엇보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그것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품목이 아니라 항상 슈트와 재킷 같은 아이템과 함께 정장을 완성한다는 사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넥타이는 정장의 일부이지 액세서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넥타이는 정장의 일부

    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면 남자의 얼굴 바로 아래에 위치하며 그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제시하는 넥타이가 슈트나 재킷, 그리고 셔츠와의 조화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단순하게 색상, 그것도 튀는 컬러만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잘못 해석된다. 네이비블루와 차콜그레이와 같은 어두운 계열의 슈트가 압도적으로 선호되는 한국 사회에서 화려한 파스텔 톤의 프린트 타이가 유독 날개 돋친 듯 판매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그저 넥타이만 맸다고 해서 정장이라는 룩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듯, 아무리 슈트를 격식에 맞게 차려입었다고 해도 넥타이 하나 잘못 맴으로써 전체 스타일을 망쳐버릴 수 있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남녀 모두 넥타이를 고를 땐 어떤 슈트나 재킷과 함께 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채 먼저 눈길을 사로잡거나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상의 타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평균의 문화가 중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지구 어느 곳보다 더 과감한 스타일의 타이, 이를테면 넥타이 중심에 큐빅을 박아서 아무리 멀리서 봐도 빛이 나는 (용감하지만 어이없는) 제품도 흔히 볼 수 있다.

    물론 넥타이는 슈트나 재킷에 비해 다양한 색상이나 무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각자의 개성을 어느 정도 가미하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다. 다만 한 사람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란 몸에 걸친 브랜드의 유명세나 가격표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옷차림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하기 때문에 넥타이 홀로 너무 튀어서는 곤란하다.

    선택의 핵심은 ‘조화’

    전세계의 품위 있는 젠틀맨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입을 클래식 복식의 철학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유행보다는 오랜 역사를 통해 쌓아온 품질 높은 아이템들 간의 밸런스다. 그러므로 넥타이는 함께 입는 슈트나 재킷의 색상과 같거나 비슷한 톤으로 매치하는 것이 기본 법칙이고, 전체적인 옷차림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방식으로 은근한 멋을 내는 게 긴요하다.

    그렇게 선택된 컬러에 무늬는 무지거나 스트라이프이거나 혹은 특별한 패턴이 있어도 무방하지만, 타이를 매야 할 상황도 생각해야 한다. 훌라춤 추는 여인들과 야자수가 그려진 타이가 아무리 마음에 든다고 해도 하와이 기념품 가게에서 일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넥타이 고르기 			 ‘화려함’보다‘조화’

    넥타이는 정장의 일부다. 재킷, 셔츠와 어울리는 정도가 넥타이의 선택포인트다.

    타이를 살 때는 진열 상태만 보고 고르면 안 된다. 즉, 타이의 색상, 디자인, 원단, 폭, 사이즈가 내가 가지고 있는 슈트나 재킷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받쳐 입을 옷에 직접 대보는 것이다. 기억력은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멋있다고 해서 사버린 그 타이가 자신의 옷장에 있는 슈트와는 하나도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아치’와 ‘딤플’

    타이를 살 때 슈트나 재킷을 입고 있지 않다면, 번거롭더라도 매장에서 자신의 옷과 가장 비슷한 옷을 찾아 타이를 대볼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슈트나 재킷, 셔츠들과의 조화 여부가 넥타이 선택의 핵심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남자의 옷을 사는 것은 집안에 들여놓을 가구를 사는 것과 비슷한 일이 아닐까? 새 가구는 내 마음에도 들어야 하지만, 이미 집안에 있는 다른 가구들과도 어울려야 하니까.

    역사적으로 타이는 그 사람이 소속된 집단을 표시하기 위해 태어난 제품이었다. 기원전 중국 군대나 로마시대 보병들에게서도 비슷한 흔적이 나타나지만, 현대적 의미의 타이는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의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목에 두르던 스카프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런 초창기의 타이는 남성복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한층 정교해졌는데, 슈트나 재킷 등이 영국의 군대식 복식으로부터 진화했듯이 넥타이를 구성하는 디테일도 군대나 클럽, 학교 등 착용자들 간의 연대나 공통의 문화적 코드를 보여주는 특성을 가졌다.

    넥타이 고르기 			 ‘화려함’보다‘조화’

    넥타이을 맬 때는 ‘아치’와 ‘딤플’을 기억해야 한다. 매듭 아래 잡힌 홈인 ‘딤플’과 볼륨 있게 튀어나온 ‘아치’는 슈트차림에 생기를 더한다.

    이를테면 유럽 신사들이 가장 즐겨 맨다는 스트라이프 무늬인 레지멘탈(Regimental)은 과거 영국의 군 소속 부대들을 별도로 상징하기 위한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였으며, 스포츠를 함께 즐기던 회원제 클럽들은 테니스 라켓이나 동물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클럽 타이를 통해 소속원들의 신분과 유대를 보여주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문명이 발전하더라도 클래식 복식에는 상류사회의 귀족문화와 수준 높은 엘리트 군복의 영향력이 고스란히 내재돼 있으므로 타이 역시 품위와 엄격함, 그리고 절제를 표현해주는 상징으로 접근해야지 오색창연한 색채감의 발산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보면 한국 사회의 이상한 유행인 무난한 비즈니스 슈트에 핑크, 오렌지, 그린 등의 파스텔 톤 프린트 타이를 하는 것은 사실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타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화려한 타이는 결혼식이나 파티에 어울리는 것이므로 비즈니스 상황에는 그다지 맞지 않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좋은 넥타이란 컬러나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슈트나 재킷의 톤과 얼마나 어울리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또한 장인의 섬세하고 능숙한 손길로 제작하는 최고급 맞춤 슈트에 어울릴 만한 타이는, 겉으로 보아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을 실제로 매보았을 때만 확인할 수 있는 내부 구조에서 차별화된다. 즉, 전체적인 밸런스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선택한 타이도 결국 그것을 매는 방식에서 존재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타이를 선택하기 전에 그 타이를 직접 매본 후 매듭이 얼마나 강건하게 유지되는지, 그리고 하루를 보낸 후 그 타이를 풀어 걸어두었을 때 자연스럽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라고 하더라도 이런 퀄리티와 특성을 가진 타이는 흔하지 않으므로,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부단히 타이를 매보면서 좋은 타이를 찾는 연습을 해보길 권한다.

    완벽한 타이를 가슴 위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아치’와 ‘딤플’이라는 두 가지 핵심적인 테크닉을 기억하는 것이 좋다. 딤플(dimple)은 타이의 매듭 중심부 바로 아래 원단이 접혀 들어간 홈을 뜻한다. 딤플을 만들어 맨 타이는 고상한 선과 깊이를 드러내는 동시에, 타이의 매듭에 강한 힘을 주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볼륨감이 생긴다. 이 볼륨감 역시 타이의 존재 형태에 관한 핵심적인 법칙인데, 올바르게 맨 타이는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앞으로 돌출하는데, 이런 모양을 아치(arch)라고 한다.

    결국 좋은 타이란 아치와 딤플이라는 테크닉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런 타이를 매보면 드레스셔츠 사이에서 살아 있는 듯한 무게감을 내는 즐거움을 누리는 동시에, 그것을 풀었을 때도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쉽게 돌아오는 애프터서비스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넥타이를 감식하는 기준과 그것을 올바르게 매는 법칙은 그것을 매는 남성이 직접 고르는 과정을 통해 안목을 높여가야만 체득될 수 있다. 자신이 입을 옷도 선택하지 못하는 남자는 옷 자체를 제대로 입을 수 없듯,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지닌 사람은 자신의 옷장을 결코 타인에게 맡기지 않는 법이다. 상대가 아무리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라도 해도.

    ▼ 남훈_클래식 콘셉트의 셀렉트숍인 란스미어(LANSMERE)의 브랜드매니저다. 서강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삼성그룹 임원, 증권지점장, 마켓리더스클럽 등에서 임원급 남성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복식 가이드를 하고 있다. 성공하는 남자의 이미지를 위한 ‘남자는 철학을 입는다’라는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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