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예감, 사실과 기억의 왜곡 사이

  • 함정임│소설가·동아대 문예창작과 교수 etrelajiham@empal.com

    입력2012-06-20 17: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예감, 사실과 기억의 왜곡 사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br>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 268쪽, 1만2800원

    줄리언 반스의 신작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펼치면서 깜짝 놀랐다. 누군가의 음성, 음성의 분위기, 분위기의 수위가 고스란히 떠올라 읽는 내내 메아리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너무 많은 소설을 읽어온 탓인지, 때로 서로 다른 소설이 근친적으로 엉겨 붙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한 편의 소설 속에 여러 편의 소설, 여러 작가의 흔적이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특별한 순서 없이, 기억이 떠오른다.

    반들반들한 손목 안쪽.

    뜨거운 프라이팬이 젖은 싱크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지면서 솟아오르는 증기.

    방울방울 떨어져 수챗구멍 속을 빙글빙글 돌다가, 층고 높은 집의 기다란 홈통 전체를 타고 흘러내려가는 정액.



    (중략)

    잠긴 문 뒤의, 오래전에 차갑게 식은 목욕물.

    마지막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소설의 첫 대목인 이 부분에서 뒤라스의 회상에 잠긴 음성이 느껴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선형적 서술, 사건도 시제도 자유로이, 과거의 일조차 예감의 세계로 둔갑시키는 기묘한 분위기의 ‘연인’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말이다.

    내 생(生)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 거기에는 중심이 없다. 길도 없고, 경계선도 없다. … 때때로 이런 생각이 든다. 마구 뒤섞인 일들을 모두 내가 강한 자의식을 가지고 한 것도, 그렇다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둔 것도 아닌 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또한 뒤섞인 일들이 매번 그 본질을 규명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일에 흡수되어버리는 이런 시기에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과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민음사 출간, ‘연인’ 중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가 65세에 쓴 노블(novel)이고, ‘연인’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70세에 쓴 로망(roman)이다. 둘 다 길지 않은 분량의 장편인데 명칭은 두 나라에서 다르게 불린다. 한국에서라면 경장편 소설로 분류될 것이고, ‘돈키호테’의 나라 스페인에서라면 ‘노벨라’라고 명명될 것이다. 소설마다 분량에 적합한 사건과 인물, 주제가 있다. 2011년 영미권 최고의 소설문학상인 맨부커상에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선정된 뒤, 몇몇 전문 평론가는 150쪽 내외 분량의 이 작품의 정체를 파악하고 미덕을 전하기 위해 ‘노벨라’를 제시했다.

    노마디즘의 창시자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저서 ‘천개의 고원’에 따르면 노벨라는 비밀을 다루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노벨라보다 짧은 소설인 단편 소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다루는 것과 차이가 있다. 노벨라의 생명은 비밀을 창출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능력이다. 이를 위해 독자는 한 편의 노벨라에 몇 개의 스토리 라인이 작동되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작가가 그 선들을 발생시키고 조합하는 정도, 나아가 결합시키는 능력에 따라 감동을 받는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 가끔, 시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정말로 사라져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 이제는 일화가 된 몇몇 사건과, 시간이 변모해가면서 확신으로 굳어진 덕분에 꽤 사실에 근접했다고 할 수 있게 된 몇몇 기억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실제 사건들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질 수 없어도, 최소한 그런 일들이 남긴 인상에 대해서만은 정직해질 수 있을 것이다. … 우린 원래 셋이었고, 그가 네 번째로 합류했다.

    - 줄리언 반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중에서

    비밀의 창출과 지속적인 관리 차원에서 보자면, 서두에 인용한 뒤라스의 경장편은 노벨라와는 다른 세계다. 뒤라스의 ‘연인’은 전통적인 소설기법을 해체한 누보로망(nouvwau roman·신소설), 나아가 소설과 영화의 혼융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시네로망(cineroman·영화소설)으로 명명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연인’은 둘 다 회고조의 필치로 ‘인간의 기억’을 소설화하고 있지만,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창작관)에 따라 감상의 결과는 판이해진다. 반스는 원제 ‘어떤 결말의 예감’이 암시하듯, 기억의 진위에 따른 사태의 진상을 알기 위해 추리적인 형식을 취하고, 뒤라스는 기억의 진위나 왜곡조차 삶의 일부로 수용하는 자유 연상의 경지를 보여준다.

    셋이라는 빠듯한 숫자에 하나가 더해질 줄은 예상치 못했다. 패거리나 짝짓기는 오래 전에 끝나 있었고, 다들 학교를 탈출해 진짜 인생으로 진입할 것을 꿈꾸었을 시점쯤이었다. 그의 이름은 에이드리언 핀으로,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 키가 크고 조용한 녀석이었다.

    - 위의 책 중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의 성장담인 1부와 이후 쏜살같이 흘러간 중년의 삶인 2부로 구성돼 있다. 2부는 1부에 장치해놓은 의미심장한 비밀을 기억의 법칙으로 풀어가는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다. 이 소설이 진정한 노벨라로서의 미덕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추리 형식, 들뢰즈가 말하는 비밀의 내장과 관리에 있다. 이때 노벨라는 경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소설에 해당된다. 동류항으로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 있다. 한 편의 힘 있는 노벨라에는 하나의 삶을 구성하는 세 개의 선(스토리 라인)이 있어야 하고, 그 선은 결정적인 타격선을 동반하며 삶을 무너뜨려야 한다. 세 개의 타격선은 외부에 하나, 내부에 하나, 그리고 기왕의 삶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지점에 하나 있다. 셋이었으나 넷이 된 고교동창생 이야기 하나, 이 중 주인공 내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 사귄 베로니카라는 여자와의 이야기 하나, 그리고 셋을 넷으로 만들었던 에이드리언 핀과 베로니카와 기왕의 나와의 이야기 하나. 여기에서 주인공 토니 웹스터의 삶(의 의미)을 완전히 붕괴시키는 타격선은 마지막 이야기에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천재적인 에이드리언의 자살이 놓여 있다. 옛 고교친구이자 첫 여자친구의 남자친구의 죽음. 이 마지막 이야기는 앞의 두 가지 이야기에 은근히 깔아놓은 뇌선(雷線)의 끝, 곧 40년이 흐른 뒤 소설의 화자인 토니 웹스터에게 날아든 고(故) 사라 포드 여사의 유언으로부터 촉발된다. 포드 여사는 베로니카의 어머니. 그녀는 웹스터에게 편지 두 통과 500파운드를 유산으로 남겼는데, 이는 주인공은 물론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심장한 대목으로, 소설의 2부를 관통해 결말을 향해 가는 서사적 자장과 파괴력을 창출한다. 곧 주인공은 1부에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을 반추하고, 하나의 선으로 반듯하게 정리해가며 편지의 비밀을 풀어간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자리에 앉아 사십여 년 전의 세월을 시시콜콜히 떠올리면서 치즐허스트에서 보냈던 그 굴욕적인 주말을 다시 기억해내려고 했다. … 나는 과거를 기다렸다. 직시했다. 기억의 경로를 다른 쪽으로 돌려보려고 했다. 소용없었다. 나는 고(故) 사라 포드 여사의 딸과 약 일 년 남짓 사귀었다. 여사의 남편은 나를 하대했고, 여사의 아들은 오만하게도 나를 낱낱이 뜯어보았으며, 여사의 딸은 나를 교묘히 조종했다.

    - 위의 책 중에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인간의 기억을 다루는 동시에 피할 수 없는 시간성을 문제 삼고 있으나, 궁극적으로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기억 안쪽의 ‘상처’, 곧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는, 지워진다 해도 무의식 속에 남아 있는 ‘피해의 흔적’과 그것이 일으키는 폭력적 진실이다. 소설의 첫 대목을 접하며 뒤라스의 ‘연인’이 오버랩됐다면,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맹렬히 살아나는 또 하나의 작품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다. A와 B라는 청년이 있고, 그 사이에 한 여자가 있다. 두 청년이 동시에 그녀를 사랑했는데, A는 B에게 그녀를 사랑한다고 털어놓으면서 그녀에게 고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A의 마음을 알게 된 B는 A가 그녀에게 고백하기 전 먼저 고백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B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살을 하고, 그녀와 결혼해 살게 된 A는 평생 죄의식을 짊어지고 죽어간다는 이야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간단히 요약하면 사랑과 우정이라는 소설의 가장 흔하고 오래된 주제를 담고 있다. 소설이 비단 재미만을 추구하는 오락물이 아닌, 인류의 기억과 윤리를 문제 삼는 가장 오래된 질문이자 가장 새로운 탐색임을 소세키의 ‘마음’에 이어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통해 새삼 확인한다. 이때 소설은, 아니 기억은, 반스가 역사가 라그랑주의 견해를 빌려 전하고 싶은바, 역사와 등가를 이룬다.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