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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명분에 얽매이지 않은 실리 외교의 속살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책 속으로] 1780년, 열하로 간 정조의 사신들

구범진 지음, 21세기북스, 351쪽, 1만7000원

구범진 지음, 21세기북스, 351쪽, 1만7000원

청나라의 전성기는 건륭제(1711~1799) 때였다. 건륭제는 여러 차례 정복 전쟁을 통해 현대 중국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가진 대제국을 건설했다. 스스로 십전무공(十全武功)을 이룩했다며 자랑했다.

1780년은 건륭제가 칠순, 즉 고희를 맞은 해. 건륭제는 자신의 업적과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베이징 북쪽의 열하(熱河)에서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건륭제는 청 영토 내인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판첸 라마를 비롯해 외번(몽골과 신장)의 왕공 귀족들을 초청했다.

저자가 이 축하연에 주목한 것은 당시 정조의 파격적인 축하 사신 파견으로 조선이 막대한 부담이었던 공물 제공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은 인조 때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항복한 이래 막대한 공물을 바쳐야 했다. 1640년 청에 바친 공물의 가치는 약 50만 냥에 달했다. 당시 호조에서 거둔 연간 세입이 35만 냥 수준이었으니 조선으로선 허리가 휠 정도였다.

더구나 조선 조정은 임진왜란 때 군대를 파견한 ‘중화의 근본’ 명나라에 대해 지독한 향수를 갖고 있었다. 1704년 궁궐 깊숙한 곳에 대보단을 짓고 해마다 명나라 황제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 또 정조의 할아버지 영조는 청나라가 멸망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조의 건륭제 고희 축하 특사 파견은 파격적이었다. 특히 청의 입장에서는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조선이 알아서 축하 사절을 보낸 것이 건륭제의 어깨를 더 으쓱하게 했다. 정조의 고모부인 박명원이 정사(正使)였던 특사 일행은 융숭한 대접을 받고, 마침내 앞으로 공물을 보낼 필요가 없다는 ‘은사’를 받았다. 중화라는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건륭제 칠순 축하에 각별한 정성을 기울인 정조의 실리외교가 빛을 발한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조선과 청의 관계는 질적으로 변했다.



중국사 전공인 저자는 이런 거대한 변화의 계기를 한국과 중국 사료를 오가며 차분하게 정리했다. 그 속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이 책의 재미를 배가한다.

당시 사촌형 박명원을 따라 열하에 간 박지원이 쓴 여행기가 바로 열하일기인데, 박명원 일행이 고희연의 국빈이던 판첸 라마로부터 작은 불상을 선물로 받은 것이 나중에 귀국한 뒤 논란이 됐다. 박명원은 어쩔 수 없이 받은 것이라 해명했지만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에서 왕을 대리한 사신이 불상을 받아 온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는 지탄이 잇따랐다. 박지원은 1783년 탈고한 열하일기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기록했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교묘한 편집을 통해 사실과 달리 박명원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 흥미로운 전말은 책에서 직접 확인하는 게 좋겠다.

#정조의사신들 #신동아


나홀로 읽는 도덕경
최진석 지음, 시공사, 376쪽, 1만5800원

중국 베이징대에서 도가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가 ‘도덕경’을 독학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쓴 책. ‘도덕경’ 혼자 읽기에 도전하는 한 독자가 최 교수에게 보낸 질문 40개에 최 교수가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대중 강연자로 명성 높은 저자의 입말이 그대로 살아 있어 철학적으로 심도 있는 내용도 술술 읽히는 게 강점이다.



헌법은 상식이다
이석연 지음, 와이즈베리, 268쪽, 1만6000원

이석연 변호사는 국내 1호 헌법연구관, 제28대 법제처장 등을 지낸 법률 전문가다. 30년 이상 헌법 연구와 관련 소송에 전념하며 제대군인 가산점, 행정수도이전법 등과 관련한 30여 건의 위헌결정을 이끌어냈다. ‘헌법이 상식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그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상식으로서의 헌법’을 쉽고 명쾌하게 풀어낸 책이다.



신동아 2021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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