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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 엔딩 크레디트

  • 김도영 작가

[에세이] 내 인생 엔딩 크레디트

[Gettyimage]

[Gettyimage]

새벽 4시의 냄새는 특별하다. 낮 동안 내리쬐던 태양의 뜨거움이 식어 묘한 냄새가 난다. 밤새 바닥에 켜켜이 쌓인 자동차 매연이 새벽 찬 공기에 밀려 콧속으로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하루를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물론 그것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2012년, 나는 단번에 취업에 성공했다. 건설 현장에 들어가는 안전용품을 제작하고 납품하는 회사였다. 나는 공장에서 만든 제품들을 납품하는 일을 맡았다. 입사한 지 6개월이 지나자 그동안 납품한 제품들의 하자 보수를 관리하는 일도 맡게 됐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새벽 4시, 회색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이 승합차는 운전석 포함 3개의 좌석만이 가로로 배열돼 있고 뒷좌석 의자를 모두 제거해 짐을 실을 수 있는 차량이었다. 승합차 짐칸에 물건을 잔뜩 싣고 납품할 회사의 물류창고로 출발했다. 왕복 7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운전한 지 2시간이 지나자 출근하는 이들이 늘었는지 도로는 금세 차들로 꽉 차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새벽 4시에 미리 출발하는 것이지만 문제는 졸음이다. 새벽 일찍 일어난 탓에 차가 막히기 시작하면 졸음도 함께 밀려들었다.

졸음을 떨쳐내기 위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며 잠들기 전까지 즐겼던 스파이더맨 게임을 생각했다. 이 게임에서 스파이더맨은 거미줄을 이용해 미국 뉴욕의 고층 빌딩 사이를 날아다닌다. 이렇게 차가 막히는 러시아워에는 게임 속 스파이더맨의 이동 능력이 절실했다.

현실에선 불가능했지만 퇴근 후 게임 속에서나마 고층 빌딩들 사이를 시원시원하게 날아다니며 지금의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도 이런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새벽 4시에 일어나 먹고살 궁리는 안 해도 되겠지.’ 연일 오르는 집값을 떠올리자 공상의 시간은 더 길어졌다. ‘박봉을 감내하며 일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생각이 도달할 즈음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니

“저기요. 이렇게 늦게 오시면 어떡해요. 이번 제품은 시중에 처음 나오는 거라 QC(품질관리) 팀에서 확인을 받아야 입고된다고 말씀드렸는데!”

체중이 내 두 배는 나갈 거 같은 육중한 체격의 물품 구매 담당자가 다짜고짜 화를 냈다. 보통 때 같으면 제품들만 내려놓고 수량 확인 후 인수 영수증을 받아서 돌아가면 됐지만 이번 제품은 처음 입고되는 제품이라 제품을 내려놓기 전에 QC팀에 품질관리 확인을 받아야 입고가 가능했다.

“죄송합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출발하긴 했는데 오늘따라 차가 많이 막혀서요.”

변명이 끝나기도 전에 지청구가 이어졌다.

“차가 막히면 더 일찍 출발하면 되잖아요!”

그는 변명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제품을 빨리 내리라고 재촉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늦게 온 나를 눈빛으로 때리고 있었다. 회초리에 맞는 것만큼이나 아픈 시선 세례였다.

“늦게 온 사람이 제품까지 잘못 가져오면 어떡합니까? 이거 완전히 여기저기 다 까져 있고 색상이 본체와 부자재가 서로 맞지가 않잖아요. 내일 다시 가져오세요.”

육중한 몸매의 물품 구매 담당자는 여전히 나를 하대하는 말투로 짜증을 냈다. 내가 보기에는 제품의 본체와 부자재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긴 나는 백화점에 진열된 립스틱 번호들을 보며 ‘저게 도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하고 생각할 정도로 무디긴 하다.

‘아, 저 킹핀… 확 그냥….’

킹핀은 스파이더맨 게임 초반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육중한 몸매에 대머리가 인상적인 악당인데 딱 저 담당자와 판박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게임 속 캐릭터와 실제 인물이 닮아 있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게임을 좋아하는 나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 세계의 특정 인물에 게임 속 캐릭터의 이름을 붙여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내일도 왕복 7시간에 걸친 대장정을 해야 된다는 말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기존에 제품을 납품하던 대학교에 들러야 했다. 납품한 제품에 페인트칠을 다시 해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폐에 물이 많이 찼어요”

돌아가는 길에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전에 벌어진 일을 보고했다.

“과장님. 제품 다시 가져가라네요. 색상이 맞지 않는데요. 내일 다시 가져오랍니다.”

나는 싣고 갔던 제품들을 고스란히 다시 싣고 서울로 향했다. 회사로 돌아가면 과장님께 다음부터는 꼭 샘플을 먼저 보내라고 말씀드려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오후 5시쯤 서울에 도착했다. 회사로 돌아가기 전에 보수를 요청한 대학교에 들렀다. 차 앞자리에 실어놨던 페인트와 시너, 롤러를 챙겨서 학교 운동장 쪽에 있는 공사 현장으로 갔다. 안전 펜스 망을 뜯어내고 학생들 눈에 잘 띄는 노란색으로 다시 덧칠하는 일이었다. 한참을 작업 중인 내 옆으로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학생들이 지나갔다. 학과명이 적힌 점퍼를 입고 있었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페인트 롤러를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나도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업을 마치고 공장에 돌아와 퇴근 버스에 올랐다. 작업복은 아침에 짐을 싣고 내리느라 여기저기 먼지투성이였고 노란색 페인트가 머리카락과 옷 여기저기에 묻었다. 새벽부터 운전하느라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버스 좌석에 몸을 구겨 넣으니 페인트 냄새, 땀 냄새가 섞여 코끝으로 올라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물류창고로 출발하기 위해 새벽 3시 반에 일어났다. 쪼그려 앉아 양말을 신으려는데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수초가 지나자 어깻죽지에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고 간신히 응급차를 불러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실에 대기하면서 엑스레이, 피검사 등 몇 가지 간단한 검사를 마친 후 의사 3명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환자분, 상의 탈의하시고 팔을 위로 올리세요. 폐 부분을 절제해야 합니다. 이미 폐에 물이 많이 찼어요.”

내 인생을 향한 게임

의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폐에 구멍이 났다. 몸을 쓰는 일이 힘들었는지 최근 15㎏ 이상 몸무게가 줄더니 골병이 든 모양이다. 의사 두 명이 내 손을 한 쪽씩 잡고 의사 한 명이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서… 선생님…. 마취는 하는 거죠?”

나는 공포에 질린 말투로 사정하듯 물었다.

“절개하는 부분의 피부는 마취하지만 내장 부분은 마취가 되지 않아요.”

의사는 나이프로 피부를 가르고 새끼손가락만 한 호스를 내 폐에 밀어 넣었다.

응급실에 내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곤 11일간 병원 신세를 졌다. 회사에서는 당장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해고 통지를 보내왔다. 몸이 아픈 사람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작은 회사이기는 했다.

퇴원하는 날 저녁 나는 다시 스파이더맨 게임을 켰다. 게임 속 스파이더맨은 뉴욕 고층 빌딩 꼭대기에 앉아 석양이 지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실 세계에서 악당들과 상대하다 보면 매일이 게임 오버였다.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처럼 나도 생존 수단이 필요했다.

그날 저녁, 나는 공무원 수험서를 구매했다. 게임을 클리어하면 영화처럼 엔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다. 엔딩 크레디트에서는 게임의 주인공인 스파이더맨의 행복한 일상이 그려지곤 한다. 내 인생에서도 엔딩 크레디트를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교정직 공무원이 됐다. 나도 거미줄을 갖게 된 것일까. 아직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성공적인 엔딩 크레디트를 꿈꾸며 내일도, 내 인생을 향한 게임은 계속된다.


김도영
● 현직 교도관
● 2021년 에세이 ‘교도소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발표




신동아 2022년 5월호

김도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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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내 인생 엔딩 크레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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