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SK수사, 국익 위한 건지 아닌지 판단 어려워”

서영제 서울지검장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3-04-25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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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K수사, 국익 위한 건지 아닌지 판단 어려워”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갔다. 사상 최초의 여성 판사 출신 법무장관, 서열·기수파괴 인사, 좌천된 간부들의 공개적 반발, 평검사들과 대통령의 TV토론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 검찰은 이제 적어도 겉으로는 안정돼 보인다. 물러난 사람들의 항변은 잦아들고 새로운 사람들에 의한 새 체제가 자리를 잡아간다. 관료조직의 생리란 본래 그런 법이다. 새롭고 낯선 것에 곧잘 반발하지만 저항은 이내 진압된다. 힘의 논리에 익숙한 조직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새 체제에 빠르게 적응해간다.

    ‘양은이파 두목 조양은씨를 구속하고 대검 초대 마약부장을 맡는 등 강력통이다. 미국 특검제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갖고 있다. 활달한 성품이나 처신이 비교적 가볍다는 평도 있다.’

    ‘인간관계가 원만하면서도 시시비비가 분명한 스타일.’

    ‘할 말을 하는 깐깐한 성품이지만 업무 스타일은 무색무취하다는 평.’



    ‘구권화폐 사기사건으로 장영자씨를 구속한 강력 수사통. 두뇌회전이 빠르다는 평이다.’

    이른바 ‘검찰 개혁 인사’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사람 중 한 명인 서영제(53) 서울지검장에 대한 몇몇 일간지 프로필 기사다. 법조계 관련 인터넷 사이트 중 가장 영향력이 큰 ‘오세오닷컴’ 인물평에는 ‘정치색이 없고 오로지 수사에만 전념해온 수사통’ ‘강직한 성격에 수사검사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수사를 독려하는 편이며 외부인사와는 거의 만나지 않는 등 스스로의 관리에 철저함’이라고 적혀 있다.

    현재 서울지검은 SK수사의 파장과 더불어 세풍,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 국정원 도청의혹 등 대형사건 수사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나같이 정치색 짙은 이 사건들에 대한 서울지검의 수사결과는 노무현 정부 검찰의 ‘색깔’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가 무슨 서울지검장이냐”

    4월8일 오후 취임 한달째를 맞은 서영제 서울지검장을 만나 서울지검에서 진행되는 수사와 검찰 개혁, 인사 파동을 화제삼아 2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그는 서울지검장에 취임한 후 분란에 휩싸였던 조직을 조용히 안정시키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검찰 일부에서는 그를 역대 서울지검장 중 가장 정치색이 없는 검사로 꼽는다. 반면 그가 충남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지역 안배 케이스’라고 깎아내리는 평도 있다.

    분명한 것은 서울지검 서부지청 특수부장, 서울지검 강력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검 마약부장 등의 경력이 말해주듯 그가 수사통이라는 점이다. 특별한 ‘정치적 연줄’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상을 뛰어넘어 그가 ‘검찰의 꽃’이라는 서울지검장에 오르게 된 데에는 바로 이 점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서지검장은 자신이 서울지검장에 임명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으며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전혀 몰랐어요. 청주지검장으로 있으면서 서울에 잘 올라오지도 않았기 때문에 인사와 관련해선 아무것도 몰랐지요. 그런데 인사 발표 며칠 전 부속실 계장이 모 인터넷신문에 내가 서울지검장에 내정됐다는 기사가 실렸다고 알려줬어요. 깜짝 놀랐어요. 내가 무슨 서울지검장이냐. 이게 도대체 뭔 일인가 하고 지켜보고 있었죠. 인사 발표된 날 YTN 보도를 보고 확정된 줄 알았어요.”

    어느 조직이나 인사는 비밀리에 이뤄진다. 그래야 인사권자의 권위가 서기 때문일까. 검찰도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지금까지 인사 때 단 한번도 사전에 통보받은 적이 없다”는 그는 “인사철만 되면 사실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정말 예상치 못했습니다. 서열로 봐서도 아직 아니잖습니까. 청주지검장 지내고 잘되면 인천이나 대구 또는 광주(지검장)로 가고 잘못되면 대전 정도 가는 게 관례입니다. 아니면 대검 공안부장이나 중수부장으로 가는 거지요. 서울지검장은 생각도 못했지.”

    -강금실 장관과는 안면이 없었나요?

    “전혀. 그 분이 판사를 했고 더욱이 (사시)기수도 워낙 차이가 나니까….”

    -얘기도 못 들어봤습니까.

    “못 들어본 것 같아요. 언론에서 장관 후보로 거론된 뒤에야 들어봤지요.”

    -강장관이 후보로 처음 거론될 때만 해도 다들 반신반의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았어요. 신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뭔가 파격적인 검찰 개혁 조치가 있지 않을까 예상했어요. 통상적인 인사는 안 할 것이다, 짐작했습니다. 나도 보따리 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했지요.”

    엘리트 의식이 무척 강한 검찰은 위계질서가 군대 못지않은,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이다. 판사 출신에 사시 기수도 한참 후배인 여성 법무장관을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검찰 간부들의 마음이 편치는 않으리라. 이 문제를 거론하자 서지검장은 고개를 흔들었다.

    “장관 내정 사실이 알려진 후 청주지검 조회 때 전직원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첫째, 변화의 물결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불교의 기본 원리는 무상,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흔히 나라는 존재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변화를 느끼지 못할 뿐더러 변화를 거부하게 됩니다. 집착과 소유욕은 그래서 생깁니다. 하지만 나라는 실체를 부인하면 그런 것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점을 인식하면 행복해집니다. 마찬가지로 검찰도 시대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저항하거나 반감을 품을 이유가 없죠.

    둘째로 미국 클린턴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을 지낸 재닛 리노를 예로 들었습니다. 미국엔 법무장관이 따로 없고 검찰총장이 장관 노릇까지 합니다. 흔히 법무장관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번역입니다. 미국의 검찰총장은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임기는 대통령과 같은 4년입니다. 클린턴은 그 막강한 권한을 가진 자리에 여성을 임명했습니다. 당시 재닛 리노는 마흔 살밖에 되지 않았어요. 클린턴이 재선됨에 따라 리노는 총 8년 동안 검찰총장을 지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못할 게 없죠. 결점이나 능력 부족을 문제삼아 반대한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후배라는 이유로 거부한다는 것은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지 못하는 불행의 시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강장관에 대한 인상을 묻자 이렇게 평했다.

    “인사 파동을 수습하는 걸 보며 참 대단한 분이라고 느꼈습니다. 초지일관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사심이 없고 강한 추진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검찰 개혁과 인사파동에 대한 얘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서울지검의 수사상황에 대해 물어봤다.

    “이회성을 조사해야 하는데…”

    -새 정부 출범 초부터 서울지검에 큰 사건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민주당 설훈 의원이 주장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20만달러 수수설 수사는 마무리 단계죠?

    “마무리된 거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개입한 의혹이 남아 있는데, 명예훼손사건은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조사를 못합니다. 고소인이 처벌을 원하는 고소장을 제출해야 수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아직 한나라당에서 이 부분에 대해 고소를 하지 않고 있어요.”

    -김현섭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의 개입의혹은 어떻습니까.

    “아직 모르죠. 수사한 적이 없으니. 설의원의 명예훼손혐의만 조사한 거죠.”

    서울지검 특수2부는 지난 2월 설의원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며 그를 명예훼손 및 선거법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최규선씨는 이회창씨에게 돈 줬다는 설의원의 폭로내용을 부인했죠?

    “그렇죠. 자기는 20만달러 준 일이 없다고.”

    (인터뷰 다음날인 4월9일 한나라당은 이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추가로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현섭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과 김한정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고소 대상이다. 그에 따라 폭로 배후 및 청와대 기획설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정원 도청의혹 수사는 진전이 있습니까.

    “계속 수사하고 있습니다.”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요?

    “이 사건의 핵심은 국정원이 과연 도청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사팀이 많이 애썼습니다만 아직 결론을 못 내리고 있습니다. 고발인측에서 제보자를 보내주면 쉽게 풀릴 수 있는데 협조해주지 않아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서지검장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공안2부는 압수수색을 통해 국정원 내부까지 조사했지만 도청 여부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물증이 없다는 것이다.

    “SK수사, 국익 위한 건지 아닌지 판단 어려워”

    서영제 서울지검장은 “삼성 등 재벌고발사건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폭로한 도청 관련 문건이 원자료가 아니라 그것을 보고 따로 정리한 자료라면서요?

    “아니, 그것도 확실히 모르죠. 수사를 더 해봐야 압니다.”

    -도청이 기관 차원인지 개인 차원인지도 모르고요?

    “아직 판단할 수 없습니다.”

    -검찰간부들조차 국정원의 도청을 의식한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과장된 얘기입니다. 우리 사회에 도청 공포증이 널리 퍼진 탓인데 검찰엔 그런 것 없습니다. 우리가 도청당할 이유도 없지만 도청할 만한 시설도 없을 거예요.”

    특수1부가 맡고 있는 ‘세풍’ 수사는 정치 공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수사결과 서상목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지원을 요청받은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이 1997년 9월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 회성씨와 공모해 대선 직전까지 23개 기업으로부터 166억3000만원을 불법 모금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회창 전 총재는 ‘세풍’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회성씨 등 관련자들이 출두를 안 하고 있습니다.”

    -강제로 구인할 수는 없습니까.

    “안 돼요, 이미 기소가 됐기 때문에. 기소가 된 이후엔 강제로 구인할 수 없습니다.”

    서지검장에 따르면 이회창 전 총재의 개입 여부는 이회성씨를 조사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소환에 응하지 않기 때문에 조사가 힘들다는 것이다. 법논리대로야 맞는 얘기겠지만 일반인이 듣기엔 답답한 구석이 있다.

    -참고인이 출두를 안 해 수사를 못한다… 검찰의 실력이 그 정도는 넘지 않습니까.

    “추측수사를 할 순 없습니다. 근거를 갖고 해야지. 수사는 마술이 아닙니다.”

    -정치권을 의식하는 건 아닙니까.

    “지금 정치권을 의식할 이유가 전혀 없잖아요. 선거도 끝났고. 오로지 법적 관점에서 수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만 생각할 뿐 다른 고려사항은 없습니다.”

    서지검장은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서면조사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SK수사 때 여권과 금감원 고위관계자 등이 직·간접으로 수사팀에 우려의 뜻을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간섭이나 압력으로 비쳐질 만하지요. ‘세풍’ 수사와 관련해 한나라당에서 무슨 얘기는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부임한 후 수사와 관련해 외부로부터 전화 받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이제껏 검사 생활하면서 외부로부터 청탁전화나 정치적 압력을 받아본 적이 없어요. 도대체 왜 외압이라는 말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원래 아는 정치인도 고위층도 없습니다. 대인기피증이라 할 정도로 바깥 출입을 안 합니다. 그래서인지 전화 같은 게 일절 없습니다.”

    경제사정 고려해 수사해야

    3월13일 부임한 서지검장은 취임사에서 ‘경제발전과 국제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검찰권 행사’를 언급하는 한편 기자간담회에서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재벌수사 유보’ 논쟁을 일으켰다. 노대통령과 여권 일각에서 SK수사를 못마땅해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이었다. 언론은 이를 ‘재벌수사 유보’로 해석했고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에 대해 묻자 서지검장은 “사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얘기”라며 탁자에 취임사를 펼쳐놓고는 길게 설명했다.

    “그 문제는 내가 인터뷰에 응한 이유이기도 해요. 취임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 원칙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검사가 수사하고 기소할 때는 가능한 모든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는. 국익이라든가 국가경제의 균형발전이라든가 서민의 고충이라든가 이 모든 걸 고려해야 합니다.

    형법에 규정된 ‘양형의 조건’에 따르면 형을 결정할 때는 범행동기 등 여러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을 수사할 때도 원용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습니다. 1원짜리라도 죄가 되면 무조건 기소하는 단세포적 사고방식은 법정신에 맞지 않아요. 예컨대 어떤 사람이 10억 사기를 쳤다고 합시다. 그런데 구속하려 보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말기암 환자란 말입니다. 주변 정황을 일절 생각지 않는다면 무조건 구속해야겠지요. 10억이니까. 그러나 내일 죽을 사람을 구속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국가도 마찬가지거든요.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예컨대 외환위기 등으로 경제가 아주 안 좋은 상태에서 대기업 관련 수사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수사는 주변 상황을 봐서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국민의 공감대를 얻는 수사와 기소를 하기 위해선 시대 상황과 경제사정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SK수사가 국민의 공감대를 얻었느냐 못 얻었느냐를 따지자는 게 아닙니다. 형사9부(SK수사팀)가 재벌기업의 분식회계를 적발한 것은 대단한 개가입니다. 분식회계를 적발했기 때문에 앞으로 다른 재벌기업들이 분식회계를 하지 않는다면, 국익을 위한 수사로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지금 경제가 어렵고 제2의 외환위기가 온다고 하는데 재벌수사를 해 그 기업이 망하고 외국자본이 다 빠져나간다면, 그건 국익을 해치는 수사가 되는 거지요.”

    -오비이락이라고, 노대통령이 인수위 시절 자기도 모르게 검찰이 전격적으로 SK수사를 벌인 데 대해 불쾌감을 드러내고 여권 일부에서도 수사에 우려를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그걸 의식한 발언은 아닌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그렇게 쓴 거지, 나는 재벌수사 유보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SK수사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나는 지금도 그 수사가 국익을 위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판단하지 못하겠어요. 미래지향적으로 보면 잘한 수사이고 단기적으로 보면 경제에 나쁜 영향을 줬기 때문에…. ‘헤럴드 트리뷴’지에 보니 SK 사태로 외국 자본 180억달러가 빠져나갔다고 합니다.”

    -검찰 출신인 홍준표 의원은 검찰의 사명은 오로지 수사이고 수사유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던데요.

    “그건 수사만능주의지. 죄가 되면 무조건 수사하고 기소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다니까. 그건 단세포적인 사고방식이에요. 수사를 위한 수사, 기소를 위한 기소지. 법에도 어긋나요.”

    서지검장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법전을 펼쳤다.

    “여기 봐요. 형법 51조 ‘양형의 조건’. 형을 정함에 있어서는 다음 사항을 참작해야 한다. ①범인의 연령, 성행(性行), 지능과 환경 ②피해자에 대한 관계 ③범행 동기, 수단, 결과 ④범행 후 정황. 이 조항을 수사할 때도 원용하게 돼 있어요.”

    이어 형사소송법 247조를 읽어 내려갔다. ‘검사는 형법 51조의 사항을 참작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다.’

    -경제사건 수사도 여기에 해당됩니까.

    “모든 걸 고려해야 하니까. ‘범행 후 정황’이 바로 경제 상황 아닙니까.”

    언론이 서지검장의 발언을 ‘재벌수사 유보’로 해석해 보도하자 참여연대는 서울지검에 항의서한을 보냈다. 이에 서울지검은 참여연대에 답변서를 보내 진의가 왜곡됐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검찰도 시민단체 눈치를 보냐’고 비판했다. 그 사설을 못 봤다는 서지검장은 “내가 무슨 눈치를 본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해명서 보냈다고….

    “아, 그럼 해명해야지. 왜 해명을 안 해. 잘못 알고 있으면 적극적으로 해명해야지요. 참여연대가 항의서에 그렇게 썼더라고. 기사에 따르면 서울지검장이 재벌수사를 유보한다는데 무슨 근거로 유보하냐, 근거를 밝히라고. 그래서 ‘그런 사실 없다. 원칙론만 얘기한 거다’고 답변을 보냈어요. 그랬더니 ‘그렇다면 안도한다’고 답이 왔더라고. 뭐가 잘못됐어요?”

    재벌수사 유보가 아니라니,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SK뿐만 아니라 삼성 한화 두산 등도 참여연대에 의해 고발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검찰이 나머지 재벌기업들을 수사한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를 들어 SK측에서는 수사 초기 ‘형평성’을 문제삼기도 했다. 다른 재벌기업 수사 여부를 묻자 서지검장은 “아직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비켜갔다.

    “재벌수사를 하겠다, 안 하겠다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 경제와 국익과 서민들의 삶을 고려해 수사를 하겠다는 겁니다. 재벌수사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입니다.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할 것입니다.”

    취임사에서 논란이 된 표현은 또 있다. 바로 ‘참여검찰’이다. ‘참여정부’와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 아닌가. 새 정부를 의식한 표현이 아니냐고 의심받을 만했다.

    “그 문제는 저도 해명하고 싶었습니다. 취임사를 보면 ‘참여검찰’에 앞서 ‘열린 검찰’이라는 표현이 나와요. ‘어떠한 형태로든지 국민을 검찰권 행사에 직접 참여케 해 공정성과 신뢰성을 검증받는 열린 검찰로 나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재판 때 일반 국민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배심제가 운용되고 있습니다. 수사하고 기소할 때도 그랜드 쥐리(grand jury·대배심)라고 민간인들이 관여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법에 배심제가 없으니 그와 비슷한 국민참여제도를 만들자는 겁니다.

    예컨대 항소심 재판이나 항고 심사위원회에 민간인을 참여시키거나 국민적 의혹을 받는 주요 사건 수사과정을 민간인이 감시할 수 있는 수사 참관인 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어요. 그게 ‘열린 검찰’이고 ‘참여검찰’이라는 거지. 참여정부와 코드가 맞는다는 뜻이 아니라. 아첨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서지검장은 검찰 내 특검 반대파로 유명하다. 미국 특검제를 연구해 책을 펴낼 정도로 이 분야에 전문가인 그는 특검 위헌론을 쟁점화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검찰의 대북송금사건 수사유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급할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오기 전 일이라.”

    -그 사건은 특검이 맡게 됐습니다. 특검제 반대 소신을 갖고 계신 걸로 아는데.

    “언급하고 싶지 않습니다.”

    -특검제 반대의 핵심 논리는 무엇인가요.

    “반대라기보다는 하려면 미국식으로 하자는 게 제 소신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측근이나 고위층 범죄의 경우 검찰총장이 90일 동안 내사를 벌인 후 특검제 도입 여부를 결정합니다. 내사 결과 검찰이 수사할 경우 신뢰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검찰총장이 연방항소법원에 특별검사 임명을 제청합니다. 수사권을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양도하는 것이기에 3권분립에 위반되지 않지요. 그나마 그것도 문제가 있다며 1999년 6월에 폐기하고 검찰총장 임의로 특별검사를 임명할 수 있는 임의적 특별검사 규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검찰총장이나 법무장관이 그런 권한을 갖고 있지 않지요. 헌법상 수사권은 행정부에서 갖고 있는데 입법부인 국회에서 발의해 특검제를 도입하기 때문에 3권분립에 어긋나고 위헌이라는 겁니다.”

    말 많았던 검찰 인사파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서지검장은 취임사에서 “검찰개혁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자 시대적 소명”이라고 말한 바 있다.

    -새 정부의 첫 검찰 고위간부 인사에 대해 검찰 내에서 반발이 심하지 않았습니까. 좌천된 고위 간부들이 퇴임사나 언론을 통해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거칠게 비난했는데요. 이번 인사를 어떻게 보십니까.

    “서울지검장으로서 뭐라 평할 처지가 아닙니다만, 인사권은 바로 대통령의 최고 통수권에 해당하는 겁니다. 검찰은 행정부에 속해 있고 행정부의 최고 수반은 대통령입니다. 대통령이 인사 철학과 개혁 철학에 따라 고유의 권한을 행사하는 데 대해 이의를 제기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인사권자가 권한을 행사하겠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대통령이 평검사와의 TV토론회 때 한 얘기와 비슷하네요. ‘인사권자는 나다. 내가 하겠다는 데 웬 말이 많냐’는 투로 말하자 검사들이 할 말을 잃었지요.

    “그랬습니까. 그런데 그게 법률적으로 맞는 얘기예요. 회사 사장이 자신의 경영철학에 의해 인사권을 행사하는데 회사원이 반발할 수 있습니까. 똑같은 얘기지.”

    “충청도에 태어난 게 행운이네”

    -좌천된 고위간부들이 다 선배들인데, 인사를 비난할 때 심정이 어땠습니까.

    “선배님들이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나가게 된 데 대해선 안타깝고 가슴이 아픕니다. 저도 앞으로 그럴 수 있으므로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봅니다. 검사는 법률가로서 인사권 행사에 승복해야 합니다.”

    -명로승 전 법무차관은 “이번 인사파동은 밀실인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그 의미를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에선 검사장이 검사들 인사를 다 해요. 인사권 행사에 대해선 그것이 어떤 형태든 법률적으로 항의할 수 없어요. 다만 공정하지 않은 인사라면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되겠지요.”

    자신의 서울지검장 임명을 ‘지역안배’ 차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는 기자의 지적에 허허 웃기만 했다.

    -지역 불균형 문제가 심각해요. 3월13일 발표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인사를 보면 전체 승진자 13명 중 6명이 영남 출신입니다. 반면 좌천된 10명 중 5명이 호남 출신이에요.

    “충청도에 태어난 게 행운이네. 하여튼 그건 모르겠어요. 나는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지금도 모르니까. 아는 정치인도 없고 대인기피증 같은 게 있어 밖에서 사람 만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모임 나가는 것도 꺼리고. 퇴근하면 집에 돌아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게 취미입니다.”

    -지난 5년 동안 지역간 불균형을 시정한다는 명분으로 호남 편중 인사가 이뤄진 것은 인정하시지요?

    “노 코멘트.”

    -검찰 안팎에선 벌써 PK 득세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역대 정권은 검찰을 정권의 칼로 삼아왔습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과 같은 지역 출신들이 인사에서 우대를 받아왔지요.

    “노 코멘트.”

    검찰 인사파동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대통령과 TV토론을 벌였던 평검사들이다. 판사 출신의 강금실 변호사가 법무장관에 임명된 데 이어 이른바 서열파괴 인사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지검의 평검사들은 회의를 소집해 검찰 인사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길 것을 요구하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를 계기로 평검사회의 상설화까지 계획했으나 TV토론 후 여론이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자 뒤로 물러섰다. 서지검장은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검사들이 몰려다니며 밖에 대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평검사회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평검사회의를 반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평검사회의가 열린 것은 평소 검찰 상층부와 평검사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이해는 가요. 윗사람한테 건의하면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언로가 부실하니 평검사들이 그런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고. 그렇긴 해도 평검사들이 의견을 취합해 언론에 전달하는 것은 반대합니다. 밖에 얘기하기 전에 우선 검찰 내부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평소 검찰 간부들과 평검사들 사이에 대화가 활발해야 합니다. 저는 서부지청장과 청주지검장을 지낼 때 점심은 꼭 구내식당에서 검사들과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여기(서울지검) 와서도 검사들과 직접 대화해야겠다고 생각해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검사들 또는 검찰 직원들과 같이하고 있습니다. 단 한번도 밖에서 식사한 적이 없었어요. 서울지검 소속 검사가 176명인데 거의 한번씩 돌아가며 함께 식사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하려고 합니다. 검사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사에 대한 불만이나 제도개혁 건의는 검사장인 나한테 하라, 검사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와 얘기하라. 옳은 얘기를 듣고도 내가 반영하지 않으면 내 멱살을 잡아라, 그래도 안 되면 밖에 얘기하라. 지금은 아주 분위기가 좋습니다.”

    -TV토론회 이후 검사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담긴 ‘검사스럽다’는 말이 유행어가 됐습니다. 아버지한테 대드는 버릇없는 자식, 한 말 또 하고 짜증날 때까지 말하는 사람 등 몇 가지 특징이 있지요. TV토론회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검사는 법률가입니다. 항상 법에 따라 행동하고 법에 어긋나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염두에 뒀다면 좀더 세련되고 국민으로부터 비난받지 않는 토론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법규정에도 없는 얘기를 한다면 법률가라 할 수 없죠.”

    -법에 없는 얘기라면?

    “예컨대 인사권(인사제청권)을 넘겨달라는 건 법에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우리나라는 3권 분립에 의해 고위 공직자의 인사권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법에 보장된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를 두고 왈가왈부할 순 없습니다.”

    -평검사들과 식사하면서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해보셨습니까.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려면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요구를 했다고 해요. 내가 ‘그건 법률적 얘기가 아니다’고 설명해줬더니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강한 검찰 같지만 욕 먹는 검찰

    서지검장에 따르면 평검사들은 TV토론을 다룬 언론보도에 불만인 모양이다. 자신들의 진의를 왜곡하고 과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론 자체에 대해선 대체로 만족해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할 말을 다 했고 대통령이 직접 검사들의 얘기를 들어준 데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

    -검사들 요구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봅니다. 법무장관의 인사 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는 것과 검찰인사위원회가 실질적인 심의기구가 돼야 한다는 거죠.

    검찰인사위원회에 심의 기능을 부여하자는 데는 서로 생각이 다르지 않은데, 위원회 구성을 두고는 이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장관은 인사위원회에 외부인사를 많이 참여시켜야 한다는 입장이고 검사들은 검찰 내부 인사들이 인사위원회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일장일단이 있다고 봅니다.”

    -검찰의 자기 반성이 아쉽습니다. 좌천된 고위간부들의 항변도 그랬지만 평검사들도 TV토론에서 검찰이 오늘날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 것을 정치권 탓으로 돌리더군요. ‘검사스럽다’는 말에는 검찰에 대한 불신과 원성이 담겨 있는 듯싶습니다.

    “내가 취임사에서 언급한 ‘무소신의 검찰’이 바로 그거지요.”

    -‘무소신의 검찰’이라면?

    “정치검찰이죠. 그래서 검찰이 비난받아온 것 아닙니까.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온다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죠. 압력을 넣은 사람을 설득해야죠. 그래야 정치검찰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정치권 압력에 굴복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그는 또 ‘부드러운 검찰’을 강조했다.

    “청주지검장 시절 모 대학총장을 구속한 일이 있었습니다. 조사하기 전 담당부장에게 체포할 때 예의를 갖춰 데리고 와라, 방에서 차를 대접하라, 직접 검사에게 안내하라, 얘기를 다 들어주라, 시간이 되면 돌려보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검사들은 조사할 때 반말 짓거리에 욕하고 소리 지르고 다음날 다시 불러 조사해도 되는데 안 돌려보내고 붙잡아둡니다. 겉으론 강한 검찰로 보이지만 실은 욕먹는 검찰일 뿐이죠. 이런 나쁜 관행을 고쳐야 ‘부드러운 검찰’로 거듭날 것입니다.”

    4월6일 KBS ‘일요스페셜’은 서울지검 강력부를 다뤘는데 국내 조직폭력 수사의 베테랑으로 꼽히는 검사들이 상당수 출연해 화제가 됐다. 조승식(사시19회) 서울고검 형사부장, 김홍일(사시25회) 서울지검 강력부장, 남기춘(사시25회) 대검 중수1과장, 박충근(사시27회) 부산지검 강력부장, 안희권(사시28회) 울산지검 특수부장이 그들이다. 이 중 조폭수사의 원조로 꼽히는 조승식 부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서지검장이 서울지검 강력부장을 할 때 밑에 근무했던 검사들이다. 서지검장은 “이번엔 강력부 출신 검사들의 인사가 대체로 잘 된 것 같다”고 흡족해했다.

    -지난해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발생한 피의자구타사망사건 이후 강력부가 많이 위축됐지요. 하루아침에 인권의 사각지대로 낙인찍히고 사람이나 잡는 무식한 부서로 인식됐는데요. 이런 이미지를 개선하고 강력수사를 지원할 방안이 있습니까.

    “검사는 자백을 받으려 하면 안 됩니다. 증거를 수집해야지. 계좌추적이나 감청 등 과학 수사로 승부를 내야 합니다. 피의자구타사망사건도 무리하게 자백을 받으려다 생긴 사고입니다. 그런 수사는 앞으로 지양해야 합니다. 또 효율적 수사를 위해서는 유관기관과의 공조가 중요합니다. 조직폭력 수법이 더욱 교묘해지고 다양해지는 추세이므로 검찰 힘만으로 안 됩니다. 국세청이나 경찰 등 타 기관과 합동수사본부를 만들어 공조수사해야 합니다.”

    -초대 대검 마약부장도 지내셨는데요. 마약검사들은 수사장비와 시설 미비, 수사비 부족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수사를 많이 하면 예산도 많이 딸 수 있어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고 다른 부서에 비하면 지원이 괜찮은 편입니다. 마약수사도 관세청 경찰 등 유관기관과의 공조가 필수입니다. 미국 마약청처럼 우리도 전문요원을 양성해야 합니다.”

    -그밖에 서울지검장으로서 포부나 목표가 있다면요?

    “검사의 존재가치는 수사입니다. 수사를 더욱 활발히 해 범죄를 많이 없애는 것이 첫째 목표입니다. 검사들이 일선에서 수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할 계획입니다. 둘째로 청주지검장 시절 시도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인데, 사무직의 승진제도를 개선할 생각입니다. 검찰 간부들과 하급직원들이 참여하는 승진심사위원단에서 무기명 비밀투표로 승진심사를 하는 겁니다. 이미 50명의 사무직 직원들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성과급을 지급할 때도 이 방식을 적용하려고 합니다.”

    베르디에서 바그너로

    서지검장은 오페라 애호가다. 3월28일 오후 7시30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예술의 전당’에서 ‘춘희’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베르디의 대표작 ‘라 트라비아타’ 공연이 있었다. 이날 그는 2층 VIP석에서 일행도 없이 홀로 이 공연을 관람했다.

    VIP석엔 이상수 민주당 총무를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10여 명의 모습이 보였다. 서지검장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어울리지는 않았다. 총 3막으로 구성된 이 오페라의 공연시간은 3시간. 막간 쉬는 시간에 정치인들은 따로 마련된 휴게실에서 음료를 들며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서지검장은 그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공연장 입구에 있는 기다란 의자에 일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다는 게 목격자의 전언이다.

    -오페라 좋아하십니까.

    “굉장히 좋아해요. 60편의 오페라 CD가 담긴 스크립트를 사서 한 편에 7∼8번씩 들었어요. 라디오에서 오페라가 나오면 무슨 곡인지 알 정도예요. 돈이 없어 공연은 자주 못 보지만.”

    -그날 공연은 어땠습니까.

    “그리스 여자가 주인공 비올레타로 나오고, 일본 사람이 비올레타의 남편인 알프레도 역을 맡았는데 상당히 잘하더군요. ‘라 트라비아타’는 마지막 3악장이 압권입니다. 3악장은 소품도 없고 다른 배우도 등장하지 않고 순전히 주인공의 연기와 목소리만으로 이뤄지거든요. 그런데 일품이었어요.”

    그는 전에는 베르디나 푸치니 등 대중적인 작품을 좋아했는데 오페라의 깊이를 알게 되면서 ‘니벨룽겐의 반지’ ‘탄호이저’ 등 바그너에 빠졌다고 말했다. 또 다른 취미는 독서인데, 종종 영어 원서를 읽는다고 한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I Witness To Power’라고. 사람 사귀길 꺼리고 홀로 오페라를 즐기는 이 독특한 취향의 수사통 검사장이 ‘검찰 개혁’의 소신을 구현할지, ‘말 잔치’로 끝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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