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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호박도 보급 나선 무예인 김인만

  • 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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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랑권은 한국 전통무예, 이젠 ‘호박도’라 불러주세요”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호박도 동작을 보여주는 김인만 관장

-호박도는 어떻게 전파됐습니까.

“호박문(虎搏門)의 스승들이 전하는 호박의 시조는 왕랑(王郞) 선사이고, 저의 직계 스승은 송계처사(松鷄處士) 한상열 선생입니다. 대중에게 자신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송계처사는 중국 공산화 이후 산둥성에서 건너와 부산에 기거한 화교 강경방(姜庚方) 선생으로부터 무예를 전수받았죠. 송계처사는 강선생과 수십년을 함께 생활하며 무예를 익혔는데, 제가 호박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1987년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온갖 무예에 관심을 가져왔지만, 마흔이 다 된 나이에 호박권을 접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지금껏 당랑권으로 알려진 무예를 호박도라고 하니 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청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직후 대규모 무예대회를 열었습니다. 명나라와 청나라의 교체기였던 만큼 한족 무예인들과 만주족 무예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대결을 벌였는데, 산둥성 출신인 이병소라는 청나라 무사가 각 문파 고수들을 모조리 제압하는 대이변이 벌어졌어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중국인들이 그의 무술이 사마귀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낮춰 부른 데서 당랑권이라는 이름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권보에 나와 있듯이 사마귀가 아니라 호랑이의 움직임을 본떠 만든 동이족의 전통무예죠. 그래서 호박(虎搏)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호박도와 다른 무예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든다면.



“호박무술은 우리 민족이 동물의 왕이라 칭송해온 호랑이의 공격과 방어 동작을 모방해 고안한 무술입니다. 즉 하체를 대지에 깔면서 상체를 세운 상태로 허리의 힘과 손바닥으로 상대를 얽어채거나 가격하죠.

상대를 굴복시키는 기술을 무술이라고 한다면 호박도는 이제까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어떤 무술보다 뛰어납니다. 원시시대부터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생태계의 생존논리 속에서 살아남은 기술이거든요. 이런 무술 덕에 북방민족인 동이족이 세상을 호령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겁니다. 또한 자연의 원리를 기본 이념으로 삼고 이를 인체를 통해 구현하므로 아름답고 과학적이기도 합니다.”

부드럽되 실전에 강한 무술

이 대목에서 김관장은 무예 시범을 보여줬다.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제대로 들어간 움직임으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이 동작은 ‘번신배산수(?身?山手)’라는 동작입니다. 잉어가 물 속에서 노닐 때 힘차게 몸을 뒤척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몸을 틀면서 비탈진 바위산에 자라는 풀뿌리를 힘차게 낚아채듯 팔목을 움켜잡는 것이죠.”

-부드러운데도 대단히 역동적으로 보입니다.

“태권도의 움직임은 일직선에 가깝지만, 호박도의 동작은 곡선을 그리기에 부드러워 보이죠. 세 수, 즉 3박자에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물리치는 것으로, 인간의 신체와 심리상태를 꿰뚫는 지극히 과학적인 무예입니다. ‘죽은 무술’이 아닌, 살아 있는 무예죠. 무술을 배운다고 해서 모두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호박도는 전투에서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용 무술입니다.”

김관장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전북지역 명문고인 전주고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당랑권을 접하고 깊이 빠져들었다. 청년 시절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았고 자질도 보였지만, 직업적으로는 고려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당랑권과의 만남은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1992년 스승 송계처사와 함께 대한당랑권협회를 창설했고, 2000년에 이를 한국호박도협회로 개칭했다. 한학을 공부한 덕분에 그는 한문으로 전수되어온 호박도를 한글화하는 작업도 병행할 수 있었다. 동이족 무예의 역사와 호박도의 수련법을 담은 책 ‘동이족 무예 호박도’를 펴냈고, 호박도 홈페이지(www.hobakdo.com)도 개설했다.

“무예란 게 그렇습니다. 한번 빠져들면 끝을 보고 싶은 욕심에서 헤어나기 어려워요. 저 또한 공연히 고난스런 길을 택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습니다. 호박도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맥이 끊어질지도 몰라요. 이것이 중국의 ‘사마귀 권법’이 아니라 동이족의 ‘호랑이 무예’라는 사실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반드시 전해주고 싶습니다. 제 남은 생은 호박도의 실체를 알리는 일에 매진할 겁니다.”

신동아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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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호재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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