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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죄 기소된 한국계 美 북핵 전문가 스티븐 김

“10여 년간 미 정부 위해 모든 걸 바쳤다. 부당하다”

  • 천영식│문화일보 워싱턴 특파원 youngsikchun@gmail.com│

간첩죄 기소된 한국계 美 북핵 전문가 스티븐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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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NSA의 드레이크는 10건의 기밀 유출 혐의를 받았지만, 스티븐 김은 1건에 불과한데도 간첩죄를 적용한 데 대해 부당하다는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소수민족 출신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스티븐 김이 기밀 서류를 건네줬다는 어떠한 물증도 없다. 변호사 애비 로웰은 “증거 없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은 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첫 재판 당시 만난 스티븐 김은 “억울한 점은 많지만, 현재로선 말을 하기 곤란하다”면서 “10여 년간 미 정부를 위해 모든 걸 바쳤고, 한 번도 정보유출 의혹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부당하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인들은 재판에 불리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스티븐 김의 언론접촉을 차단했다. 대신 로웰 변호사는 “재판이 본격화되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북한 관련 기밀 정보들이 추가로 노출될 수 있다”고 예고했다.

미국 내 북한 정보를 둘러싼 최대 사건으로 분류되는 이번 사건은 새삼 스티븐 김의 역할과 미국이 갖고 있는 북한 정보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고 있다. 스티븐 김은 미 정부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힐의 주장 받아들일 수 없다”

2008년 12월10일 6자회담이 벌어지고 있던 중국 베이징으로부터 긴급 전문이 날아들었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美)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사이의 마지막 의견조율에 관한 내용이었다. 힐은 “6자회담이 완전히 깨질 상황에 이르렀다”면서 “북한이 시료채취(sampling)를 빼지 않으면 최종 협정에 참여할 수 없다고 최후통첩을 해왔다”고 밝혔다. 힐은 그러면서 “현 단계에서 그동안 협상을 수포로 돌리지 않으려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마지막 북핵 폐기 협정문을 둘러싸고 미국 측의 양보를 건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6자회담은 사실상 힐의 독무대였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찰떡궁합이 된 힐은 국무부 부장관이나 차관, 여타 부서와의 조율 없이 대부분의 사안을 장관의 양해 아래 직접 결정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감히 힐에게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게 최종 협정이기 때문에 국무부 관련 부서의 동의가 필요했다. 특히 협정 검증과 이행을 담당하는 국무부 검증준수이행국(약칭 검증국·Bureau of Verification, Com-pliance and Implementation, 현재는 군축 Arms Control까지 포함한 부서로 확대 개편됨)으로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시료채취는 이미 국무부 내부에서 한바탕 격론을 벌인 뒤 채택된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힐은 막판에 북한의 마지막 요구라는 점을 내세워 이를 삭제하려 했다. 국무부 관련 부서들은 그동안의 관행대로 힐에게 전권을 위임한 상태여서 “어쩔 수 없다”며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대로 시료채취 없이 6자회담 협정이 끝날 상황이었다.

이때 “그건 안 된다”고 유일하게 반기를 들고 나선 게 검증국이었다. 검증국은 “시료채취 없이는 현재 북한 핵개발 상황을 파악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향후 북한이 핵개발 시도를 다시 할 때, 그것이 과거의 연장인지 아닌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과학적 근거를 가질 수 없다”면서 협정 무용론을 제기했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오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검증국의 주장에 가세했다. 6자회담이 열린 뒤 처음으로 힐의 제안이 미 정부 내에서 거절된 것이다. 힐은 자신이 그토록 염원했던 최종 협정을 이루지 못한 채 다음날인 11일 6자회담을 종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힐의 6자회담 잔치가 빈손으로 막을 내린 순간이다.

힐과 검증국은 불편한 천적

검증국은 당시 폴라 드서터 차관보(Assistant Secretary)가 이끌고 있었고, 대북 정책에서는 전적으로 스티븐 김의 입장이 반영됐다. 스티븐 김은 검증국의 정보총괄 선임 보좌관이었다. 검증국은 국제적 조약과 협약, 협상 등이 제대로 맺어졌는지, 잘 이행되고 있는지 등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는 기관이다. 현재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도 검증국 차관보가 협상 책임자일 만큼 막강한 자리다. 국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국 출신이라는 스티븐의 독특한 배경으로 북핵 협상 당시 검증국의 위상이 아주 강화됐다”면서 “스티븐이 고안한, 북한의 북핵프로그램 폐기 선언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기 위한 검증플랜이 차관보에게 전해졌다”고 말했다.

힐과 검증국 사이의 갈등은 오랫동안 계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초 북한은 미국의 집요한 시료채취 요구에 영변에서 나온 것이라며 알루미늄 튜브를 하나 건넸다. 자신들의 핵물질 개발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여기서 고농축우라늄(HEU)의 흔적이 발견됐다. 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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