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상태 괜찮았다는 트럼프, 렘데시비르 투약한 까닭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20-10-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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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세계가 공인한 코로나 치료제

    • 코로나 중환자 치료기간 단축 효과로 5월 FDA 긴급사용 승인

    • 동물 대상 임상에서는 초기 투약 시 폐렴 억제 효과 입증

    • 미국이 생산량 독식, 다른 나라는 공급난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입증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AP 뉴시스]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입증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AP 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를 받고 10월 5일(현지 시간) 퇴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당일 트위터에 올린 영상에서 “나는 지금 몸 상태가 매우 좋다”며 “코로나19를 겁내지 말라.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약’은 뭘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와 항염증 치료제 ‘덱사메타손’ 등을 처방받았다고 밝혔다. 이 두 약물은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유이한’ 코로나19 치료제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은 8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진행한 많은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정성이 확인된 건 렘데시비르와 덱사메타손뿐”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덱사메타손은 염증 억제 효과가 커서 이전부터 널리 사용돼온 스테로이드 제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새롭게 승인된 치료제는 렘데시비르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렘데시비르는 당초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이 추진됐으나, 임상시험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서 새로운 쓰임이 발견된 셈이다.

    트럼프가 쓴 렘데시비르, 한국에선 중환자만 제한적 투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5일(현지 시간)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GettyImag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5일(현지 시간)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GettyImage]

    렘데시비르는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를 개발한 미국 제약사 길리어드 사이언스 제품이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한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코로나19 중증환자의 치료 기간 단축 효과를 입증했다. 5월 미국이 세계 최초로 렘데시비르를 긴급사용 승인했고, 한국도 7월부터 들여와 환자에게 처방하고 있다. 

    국내 렘데시비르 투약대상자는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폐렴이 발생했고 △산소 공급을 받지 않으면 산소포화도가 94% 이하이며 △현재 산소 치료를 받고 있고 △증상발생 후 10일이 경과하지 않은 환자로 제한된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렘데시비르를 사용할 수 있다. 

    10월 2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공개하며 “현재 증상은 경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렘데시비르 투약이 불가능하다. 때로는 방역당국이 제시한 기준을 다 충족해도 렘데시비르를 처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부본부장은 8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공급자(길리어드 사이언스) 측 사정으로 인해 렘데시비르 공급이 불규칙적이고 원활하지 않다”며 “투여대상자 기준을 조정해 70세 이상 환자에게 우선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병원 한 감염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한동안 물량 확보가 안 돼 70대 이하 환자에게는 처방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다. 방역당국이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환자에게는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시험에서 폐렴 발생 억제 효과 확인

    외신을 보면 렘데시비르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게 한국만은 아니다. 10월 6일 영국 가디언은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가 렘데시비르 부족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원인으로 꼽은 게 미국의 ‘싹쓸이’다. 미국은 렘데시비르 7월 생산량의 100%, 8월 및 9월 생산량의 각각 90%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수급 상황을 바탕으로 미국은 8월 말 세계 최초로 렘데시비르 긴급사용 승인 범위를 확대해 모든 코로나19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하도록 했다. 즉 미국에서는 산소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중환자가 아니라도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 렘데시비르를 사용할 수 있다. 단,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현재 렘데시비르의 표준 투여 기간은 5일로, 이 기간 약값은 2340달러(약 270만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과 동시에 렘데시비르를 투여받은 것은 항바이러스제를 조기에 사용하는 게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준용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감염 초기, 증상이 경미할 때 바이러스 증식이 활발하다. 이후 염증이 진행돼 폐렴이 악화하는 특성을 보인다”며 “감염 초기에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고, 염증이 발생한 후 항염증 치료제를 사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6월 9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동물 대상 임상시험 결과도 눈길을 끈다. 미국 NIH 소속 과학자 등 연구진은 히말라야 원숭이 12마리를 6마리씩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양쪽 모두에 코로나19 병원체를 투여했다. 이후 12시간이 지나고부터 6일간 A그룹에만 렘데시비르를 투여했다. 그 결과 A그룹 원숭이는 3마리만 경미한 수준의 폐렴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B그룹 원숭이는 6마리 모두 폐렴에 걸렸고 폐 손상 정도도 심했다.

    “모든 사람이 트럼프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퇴원한 10월 5일(현지 시간) 보호복을 착용한 방역 인력이 백악관 기자실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퇴원한 10월 5일(현지 시간) 보호복을 착용한 방역 인력이 백악관 기자실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9월 25일 대한민국의학한림원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등이 공동주최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현황’ 온라인 포럼에서 김철민 성균관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사스나 메르스 등 과거 유행한 호흡기 감염병은 중증으로 진행하며 바이러스 양이 늘었다. 그런데 코로나19는 특이하게도 증상이 없는 경증일 때 바이러스 양이 많다. 코로나19의 특성을 감안할 때 항바이러스제를 빨리 쓰는 게 좋긴 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자의 80% 이상이 경증 상태에서 완치되는 것을 감안할 때 초기 환자 모두에게 렘데시비르를 투여하는 건 현실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환자 당 270만원 안팎 수준인 렘데시비르 치료비를 건강보험이 부담한다. 무작정 치료범위를 넓힐 수 없다”며 “타미플루처럼 저렴한 경구용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된다면 코로나19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0월 8일 기준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640만 명이 넘는다. 사망자는 106만 명 수준이다. 김탁 순천향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코로나19 치료법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치명률은 계절 독감의 10배 수준”이라며 “코로나19에 걸린 모든 사람이 트럼프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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