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세계가 공인한 코로나 치료제
코로나 중환자 치료기간 단축 효과로 5월 FDA 긴급사용 승인
동물 대상 임상에서는 초기 투약 시 폐렴 억제 효과 입증
미국이 생산량 독식, 다른 나라는 공급난
코로나19 치료 효과가 입증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 [AP 뉴시스]
그가 말한 ‘세계에서 가장 좋은 약’은 뭘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월터 리드 군 병원에서 항바이러스제 ‘렘데시비르’와 항염증 치료제 ‘덱사메타손’ 등을 처방받았다고 밝혔다. 이 두 약물은 현재 세계적으로 널리 쓰이는 ‘유이한’ 코로나19 치료제다. 오명돈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감염내과 교수)은 8월 25일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진행한 많은 임상시험에서 효과와 안정성이 확인된 건 렘데시비르와 덱사메타손뿐”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덱사메타손은 염증 억제 효과가 커서 이전부터 널리 사용돼온 스테로이드 제제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새롭게 승인된 치료제는 렘데시비르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렘데시비르는 당초 에볼라 치료제로 개발이 추진됐으나, 임상시험에서 효과 입증에 실패했다. 그러다 코로나19 유행 국면에서 새로운 쓰임이 발견된 셈이다.
트럼프가 쓴 렘데시비르, 한국에선 중환자만 제한적 투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월 5일(현지 시간) 월터 리드 국립 군 병원에서 코로나19 치료를 받은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 [GettyImage]
국내 렘데시비르 투약대상자는 코로나19 확진자 가운데 △폐렴이 발생했고 △산소 공급을 받지 않으면 산소포화도가 94% 이하이며 △현재 산소 치료를 받고 있고 △증상발생 후 10일이 경과하지 않은 환자로 제한된다.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렘데시비르를 사용할 수 있다.
10월 2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공개하며 “현재 증상은 경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렘데시비르 투약이 불가능하다. 때로는 방역당국이 제시한 기준을 다 충족해도 렘데시비르를 처방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권준욱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중대본) 부본부장은 8월 22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공급자(길리어드 사이언스) 측 사정으로 인해 렘데시비르 공급이 불규칙적이고 원활하지 않다”며 “투여대상자 기준을 조정해 70세 이상 환자에게 우선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지역 병원 한 감염내과 교수는 이에 대해 “한동안 물량 확보가 안 돼 70대 이하 환자에게는 처방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라며 “지금은 상황이 나아졌다. 방역당국이 정한 기준에 해당하는 환자에게는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물시험에서 폐렴 발생 억제 효과 확인
외신을 보면 렘데시비르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게 한국만은 아니다. 10월 6일 영국 가디언은 네덜란드, 폴란드, 스페인 등 유럽 여러 나라가 렘데시비르 부족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원인으로 꼽은 게 미국의 ‘싹쓸이’다. 미국은 렘데시비르 7월 생산량의 100%, 8월 및 9월 생산량의 각각 90%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수급 상황을 바탕으로 미국은 8월 말 세계 최초로 렘데시비르 긴급사용 승인 범위를 확대해 모든 코로나19 환자에게 처방이 가능하도록 했다. 즉 미국에서는 산소치료가 필요한 수준의 중환자가 아니라도 코로나19 치료 과정에서 렘데시비르를 사용할 수 있다. 단, 스스로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서다. 현재 렘데시비르의 표준 투여 기간은 5일로, 이 기간 약값은 2340달러(약 270만원) 수준이다.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입원과 동시에 렘데시비르를 투여받은 것은 항바이러스제를 조기에 사용하는 게 치료 효과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준용 연세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감염 초기, 증상이 경미할 때 바이러스 증식이 활발하다. 이후 염증이 진행돼 폐렴이 악화하는 특성을 보인다”며 “감염 초기에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하고, 염증이 발생한 후 항염증 치료제를 사용하면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6월 9일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동물 대상 임상시험 결과도 눈길을 끈다. 미국 NIH 소속 과학자 등 연구진은 히말라야 원숭이 12마리를 6마리씩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양쪽 모두에 코로나19 병원체를 투여했다. 이후 12시간이 지나고부터 6일간 A그룹에만 렘데시비르를 투여했다. 그 결과 A그룹 원숭이는 3마리만 경미한 수준의 폐렴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B그룹 원숭이는 6마리 모두 폐렴에 걸렸고 폐 손상 정도도 심했다.
“모든 사람이 트럼프는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퇴원한 10월 5일(현지 시간) 보호복을 착용한 방역 인력이 백악관 기자실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국제 통계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10월 8일 기준 세계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3640만 명이 넘는다. 사망자는 106만 명 수준이다. 김탁 순천향대 의대 감염내과 교수는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코로나19 치료법이 조금씩 개발되고 있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치명률은 계절 독감의 10배 수준”이라며 “코로나19에 걸린 모든 사람이 트럼프 수준의 치료를 받을 수는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