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n번방 최초 고발자 ‘추적단 불꽃’ “계속되는 디지털 성범죄, 수많은 ‘우리’가 나서야”

[사바나] 그곳은 지옥이었다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10-17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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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인 꿈꾸던 대학생…일상에서 시작된 추적

    • 텔레그램 성착취 현장 취재해 최초 폭로

    • 무관심한 언론에 좌절도

    • 지인 능욕·성착취물 판매…끝나지 않는 범죄

    • 부족한 사이버 수사대 인력

    • 갓갓 무기징역 구형에 희망 생겨

    • n번방 피의자, 여성 인격체로 안 봐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 ‘사바나’는 ‘회를 꾸는 ’의 줄임말입니다.

    9월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새로 확정했다. 아동 성착취물 제작범에 최고 29년 3개월 징역형 선고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GettyImage]

    9월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새로 확정했다. 아동 성착취물 제작범에 최고 29년 3개월 징역형 선고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GettyImage]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했어요. 많은 이들의 응원을 통해 알게 됐어요. 우리가 비범한 일을 했다는 걸.” 

    2019년 7월 ‘추적단 불꽃’은 매일 5시간 텔레그램 ‘감옥’을 지켜봤다. ‘교도소장’은 ‘갓갓’으로 불렸다. 어린 소녀들이 텔레그램 단체 대화방에 갇혔다. 자신을 학대하는 영상을 직접 촬영했다. 도구를 이용해 자위를 하거나 칼로 자신의 몸에 ‘노예’라는 단어를 새기기도 했다. 10월 12일 검찰은 ‘갓갓’ 문형욱(24)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등 12개 혐의다. 이제 감옥에 갇힌 것은 어린 피해자들이 아닌 ‘갓갓’이다. 

    추적단 불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최초로 세상에 알렸다. 지난해 9월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미성년자 성착취물 파나요?”…‘텔레그램’ 불법 활개’ 기사를 통해서다. 최근 1년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다. 

    10월 10일 서울 마포구 한 공유오피스에서 추적단 불꽃 멤버 ‘단’과 ‘불’(기사에서는 신변 보호를 위해 ‘단’과 ‘불’이라는 가명을 사용한다)을 기다렸다. 평범한 차림의 대학생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들의 추적도 평범하게 시작됐다. 취업준비생이던 ‘단’과 ‘불’은 지난해 여름 뉴스통신진흥회가 주최한 ‘탐사 심층 르포 취재물’ 공모전에 참가하기로 마음먹는다. ‘불법촬영’을 주제로 정했다. 



    - 왜 불법촬영을 취재했나. 

    단 | “일상에서 가져왔다. 여성들은 불법촬영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산다. 자취방 화장실 창문을 열지 못해 습기 가득한 곳에서 샤워한다. 일상이 불안하다 보니 누구나 누릴 당연한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했다.” 

    추적단 불꽃은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방식을 알고 싶었다. ‘고담방’으로 향하는 주소가 적힌 사이트 ‘AV-Snoop’을 검색 몇 번으로 쉽게 찾아냈다. 고담방에서는 아동 성착취물 품평이 이뤄졌다. 문제의 n번방으로 가는 링크도 공유됐다. 

    n번방은 지옥이었다. 갓갓의 협박으로 미성년자들은 스스로 가혹행위를 했다.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영상이 n번방에 올라왔다. 증거를 모아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에 신고했다. 두 대학생은 일련의 과정을 기사로 썼다. 2019년 9월 공모전에 당선된 기사가 공개됐을 때 언론이 반응해 주길 기대했다. 지난해 11월 ‘한겨레’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보도했을 때 안도했지만 세상은 조용했다. 기자 지망생이던 ‘단’과 ‘불’은 실망했다.

    피해자 연락처 내놓으라는 언론에 좌절

    10월 10일 추적단 불꽃의 ‘단’과 ‘불’은 “성착취물을 소지만 해도 처벌받는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신변보호를 위해 두 대학생의 얼굴을 가렸다. [문영훈 기자]

    10월 10일 추적단 불꽃의 ‘단’과 ‘불’은 “성착취물을 소지만 해도 처벌받는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신변보호를 위해 두 대학생의 얼굴을 가렸다. [문영훈 기자]

    - 왜 언론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무신경했을까. 

    불 |
    “오랜 시간 취재가 필요한 일이다. 기성 언론은 장기 취재가 어렵지 않나. 디지털 성범죄 자체를 문제로 여기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올해 3월 이후 디지털 성범죄가 범죄라는 인식이 정립됐다.”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알리고자 직접 언론에 취재 요청을 했다. 

    불 |
    “1월 한 방송사와 접촉했다. 작가가 우리를 인터뷰한 뒤 피해자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피해자가 언론과 접촉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제작진에 전달했다. 계속 조르더라. 나중에는 ‘피해자를 연결해 주지 않으면 방송이 나갈 수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언론이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3월 9일 ‘국민일보’는 추적단 불꽃의 취재를 바탕으로 한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1주일 뒤 ‘박사’ 조주빈(25)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람들의 관심이 조주빈에게 쏠렸다. 조주빈을 ‘악마’로 칭한 기사가 많았다. 3월 23일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에 대한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겠다”는 내용의 성명문을 냈다. 

    - 성명문을 낸 배경은. 

    단 |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지는 배경에 주목하길 바랐다. 당시 언론은 조주빈의 개인적 서사나 자극적 피해 사실을 주로 보도했다. 우리에 대한 불필요한 관심도 늘었다. 신상 정보를 노출한 기사도 있었다.” 

    - 그럼에도 언론 인터뷰에 대부분 응했다. 

    불 | “사람마다 주로 접하는 언론사가 다르다.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면 많은 사람이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취재해 온 우리가 입을 열어야 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공론화하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법체계의 변화를 촉구했다. 20대 국회는 임기 마지막 본회의에서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범죄수익의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5월 9일 n번방을 만든 ‘갓갓’ 문형욱도 체포됐다. 추적단 불꽃의 활동은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경찰 수사를 돕고 있다. ‘불’은 인터뷰 중 경찰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수백 명 참여 성범죄 대화방 아직도 기승

    - 무엇을 추적하고 있나. 

    불 |
    “아직도 텔레그램·디스코드·페이스북 비밀그룹 등 SNS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진다. 한 단체 대화방에 많게는 수백 명이 들어가 있다. 불법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조직을 만들어 키워보려는 움직임도 포착됐다. 일례로 여성의 치마 속만 찍어 올리는 그룹을 만들고 있다. 구성원을 모집할 때 일종의 면접도 본다. 지금까지 찍은 영상을 제출하는 식이다. 유출된 성착취물 판매를 시도하는 사람도 많다.” 

    - 힘들지 않나. 수사는 경찰에 맡길 수도 있는데. 

    단 | “디지털 성범죄 담당 경찰이 부족하다. 각 지방청 사이버 수사대에 배정된 인원은 5명 내외다. 반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은 수십만 명에 달한다.” 

    추적단 불꽃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지인 능욕 범죄’도 알리고 있다. 지인 능욕 범죄는 친구나 동료 등의 사진을 성적(性的) 이미지나 영상과 합성해 타인과 공유하는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다. 일명 ‘지인 능욕방’에서 피해자 사진뿐 아니라 이름·나이·주소 등 개인정보가 공유된다. 지인 능욕 범죄는 5월 20일 n번방 방지법이 통과되며 범죄로 규정됐다. 

    - 지인 능욕 범죄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나. 

    불 | “지인 능욕 범죄는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디지털 성범죄다. 더 큰 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 ‘스토킹 방지법’도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 | “스토킹 방지법은 처음 발의된 1999년 이후 논의만 이뤄졌다. 구애와 스토킹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현행법은 스토킹을 경범죄로 분류한다. 스토킹 범죄는 살인까지 이어진다. 디지털 성범죄와 스토킹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스토킹은 디지털 성범죄 성격을 지닌다. 디지털 성범죄를 통해 노출된 개인정보로 스토킹이 이뤄질 수 있다.” 


    ‘박사’ ‘갓갓’ 잡혔다고 끝이 아니다

    3월 25일과 5월 18일 ‘박사’ 조주빈(위)과 ‘갓갓’ 문형욱(아래)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3월 25일과 5월 18일 ‘박사’ 조주빈(위)과 ‘갓갓’ 문형욱(아래)이 경찰 조사를 마치고 검찰에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추적단 불꽃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미약한 처벌에도 목소리를 내왔다. 2019년 5월 2일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는 항소심에서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9월 1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안을 새로 확정했다. 아동 성착취물 제작범에 최고 29년 3개월 징역 선고를 권고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 검찰이 ‘갓갓’ 문형욱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불 | “드디어 희망이 조금씩 보인다. 달라진 사법부 모습을 보여줄 기회다.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주시할 것이다. 검찰 구형을 무시한다면 희망만큼 실망도 클 것 같다.” 

    - 최고 29년 3개월 선고를 권고하는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과도하다는 주장도 있다. 

    불 | “최고 형량일 뿐이다. 위조지폐를 만들어도 무기징역이 선고될 수 있다. 최저 형량 기준이 필요하다.” 

    -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말인가. 

    불 | “제작에 개입하지 않고 성착취물을 유포·소지한 사람도 제대로 처벌해야 한다. 성착취물에 접근만 해도 처벌받는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일부 소수만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한다.” 

    단 | “시민들의 지속적 관심도 필요하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조주빈이나 문형욱이 잡혔다고 해서 디지털 성범죄가 끝난 것이 아니다.”

    경찰이 피해자 증언 이해 못하기도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더라도 피해자의 고통은 이어진다. 5월 21일 여성가족부가 공개한 ‘2019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법촬영 피해를 당한 여성 응답자 중 60.6%가 정신적 고통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폭행·협박을 동반한 성추행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 경험(58.1%)보다 높은 수치다. 추적단 불꽃은 최근 1년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 어떤 어려움을 호소하나. 

    단 | “피해자는 경찰·검사·변호사에게 피해 사실을 여러 번 증언해야 한다. 피해 사실을 말하려면 트라우마를 끄집어내야 한다. 그 고통을 최소화하는 원스톱 체계가 필요하다. 수사기관에서 피해자 증언을 보관해 이를 참고하는 방식이다.” 

    불 | “수사 담당자가 디지털 성범죄 관련 용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증언하면 ‘그게 뭔가요’라고 되묻는 경우도 많다.” 

    - 불법촬영물 삭제도 쉽지 않다던데. 

    단 | “피해자가 가장 원하는 것이 불법촬영물 삭제다. 취재 과정에서 경찰이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불법촬영물 삭제 요청을 했다. 1주일 넘게 걸리더라. 한 경찰관에 따르면 삭제 요청은 많이 들어오는데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정부는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지원하는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불 | “불법촬영물이 게시된 온라인 플랫폼 서버가 해외에 있을 때 특히 삭제에 어려움을 겪는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국제 공조 수사로 빠른 시일 내 체포됐다. 불법촬영물 삭제도 해외 경찰과 발 빠르게 공조해야 한다.” 

    - 현재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는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나. 

    단 | “여성가족부와 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있다. 여기에 연락하면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리 상담뿐 아니라 경찰 신고 절차를 알려준다. 법률 지원도 제공한다.”

    다른 ‘우리’가 많으니 지치면 쉬어가라

    7월 12일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n번방 피의자를 강력 처벌할 것을 사법부에 촉구하고 있다. [뉴스1]

    7월 12일 여성·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n번방 피의자를 강력 처벌할 것을 사법부에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추적단 불꽃은 1년간 벌어진 사건의 소회를 정리해 책으로 펴냈다. 9월 23일 출판된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추적한 과정을 기록했다. ‘단’과 ‘불’이 페미니스트가 되기까지의 시행착오도 담겨 있다. 

    - 페미니즘과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어떤 연관성이 있나. 

    불 | “취재 전에는 페미니즘을 잘 몰랐다. n번방에서는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았다. 범죄가 일어나는 배경을 생각하면 여성을 타자화한 역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젠더 갈등으로 몰아가지 말라는 주장도 있는데. 

    단 |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9년 버닝썬 사건, 2020년 위력형 성범죄까지 여성을 대상으로 벌어진 범죄와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독립적으로 볼 수 없다. 최다 26만 명이 성착취 영상이 공유되는 단체 대화방에 들어가 있었다. 여성들은 이에 분노하고 사회를 향한 실망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추적단 불꽃은 디지털 성범죄를 막고자 연대한 여성들에 감사를 표했다. 추적단 불꽃 활동 이후 디지털 성범죄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시민단체가 여럿 생겨났다. 

    -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불 | “지치면 쉬어가라고 말하고 싶다. 혼자 큰 짐을 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개인 생활도 돌아봐야 한다. 우리도 처음에는 몸이 힘든지 몰랐다. 그게 다 상처로 남았다.” 

    정작 ‘단과 ‘불’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체계를 만드는 일에도 직접 참여한다. 경찰 수사도 계속 돕는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상담가를 대상으로 강의도 한다. 1년 사이 기자를 꿈꾸던 두 평범한 대학생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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