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호

향긋한 모과와 맵싸한 겨자로 만드는 ‘가을맛’ 스프레드

김민경 ‘맛 이야기’ ㉝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10-3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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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이 좋은 모과는 활용도 높은 가을 과일계의 ‘씬 스틸러’다. [GettyImage]

    향이 좋은 모과는 활용도 높은 가을 과일계의 ‘씬 스틸러’다. [GettyImage]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벚나무가 꽤 많다. 이사 올 때만 해도 삐죽삐죽하던 어린 나무가 8년 새 꽤 통통하게 자랐다. 봄이면 탐스러운 연분홍 벚꽃을 팡팡 터뜨리고, 가을이면 빳빳한 잎에 알록달록 화사한 물이 든다. 노랗고 빨간 벚나무 잎사귀가 파란 하늘을 가리다 보도블록 위로 소복소복 떨어질 때쯤이면 석류, 모과, 유자가 장에 나온다.

    가을철 ‘씬 스틸러’ 석류, 모과, 유자

    보석 같은 알갱이로 눈길을 끌고 쨍한 맛으로 미각을 깨우는 석류.  [GettyImage]

    보석 같은 알갱이로 눈길을 끌고 쨍한 맛으로 미각을 깨우는 석류. [GettyImage]

    가을 과일의 주인공은 먹기 수월하고 누구라도 좋아할 감, 사과, 배일 테다. 석류, 모과, 유자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이른바 ‘씬 스틸러(명품 조연)’ 급이다. 이들은 먹자고 사기엔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석 같은 석류는 힘껏 쪼개다 석류물이 벽에 튀기 일쑤인데, 붉은 자국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향이 좋은 모과는 너무 단단해 굵은 것 하나 칼질하고 나면 손목이 얼얼하다. 유자 역시 날 것 그대로는 한입도 먹을 수 없으니 사들이기 애매하긴 마찬가지다.

    세 가지 과일을 먹는 가장 익숙하고 수월한 방법은 설탕에 재우는 것이다. 모과는 나박나박 썰거나 채를 쳐서 설탕에 버무린다. 이때 생강을 모과 모양 비슷하게 썰어 같이 넣기도 한다. 모과는 수분이 적은 과일이라 설탕이 녹고 맛이 스며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이렇게 만든 모과청 건더기와 국물을 듬뿍 떠 주전자에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이면 매우 맛있는 차가 된다. 모과청을 끓일 때 홍차 티백을 하나 담그면 쌉싸래한 맛과 향이 은은하게 배 색다른 매력을 즐길 수 있다. 모과차를 차갑게 마실 때도 일단 청을 끓인 다음 얼음이나 탄산수를 넣어야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모과는 좋은 잼 재료이기도 하다. 모과 껍질을 벗긴 다음 과육을 아주 잘게 썬다. 꼬마아이가 먹는 깍두기 크기 정도면 된다. 이후 모과 조각을 넓은 그릇에 펼쳐 색이 누렇게 될 때까지 30분 이상 뒀다가 물을 자작하게 붓고 설탕을 넣어 무르도록 끓인다. 이것을 곱게 갈면 잼이 된다. 




    삶은 모과에 겨자를 섞어 만든 ‘모과 겨자’를 고기 요리에 쓱쓱 발라 먹으면 매우 맛있다. [GettyImage]

    삶은 모과에 겨자를 섞어 만든 ‘모과 겨자’를 고기 요리에 쓱쓱 발라 먹으면 매우 맛있다. [GettyImage]

    모과를 즐길 또 다른 방법도 있다. 모과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곱게 간다. 여기에 단맛 없는 머스터드나 노란 겨자를 섞는다. 맛을 봐가며 원하는 맵기 정도를 맞춘다. 입맛에 따라 꿀을 좀 섞어도 된다. 이렇게 만든 ‘모과 겨자’를 구운 닭고기, 삶은 돼지고기, 소시지 요리 등에 쓱쓱 발라 먹으면 매우 맛있다. 샌드위치 스프레드로 사용해도 좋다. 모과의 농익은 향과 은근히 맵싸한 겨자가 어우러진다니, 상상만 해도 호기심과 군침이 샘솟지 않는가. 맛을 보면 색다른 풍미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유자껍질과 석류청의 달콤한 만남

    석류를 설탕에 절여 만든 석류청을 얹은 샌드위치. 새콤달콤한 석류청은 각종 요리와 잘 어울린다.  [GettyImage]

    석류를 설탕에 절여 만든 석류청을 얹은 샌드위치. 새콤달콤한 석류청은 각종 요리와 잘 어울린다. [GettyImage]

    다시 청으로 돌아오면, 유자는 씨를 뺀 과육과 가늘게 채 썬 껍질을 섞어 설탕에 재워 청을 만든다. 이때 유자 과육은 잘게 썰거나 믹서로 후루룩 갈아 넣어야 맛이 한결 진해진다. 

    조금 다채롭게 유자를 쓰고 싶다면 청을 담글 때 껍질을 좀 남겨두자. 껍질 흰 부분을 깔끔하게 도려내고 곱게 채를 썬 다음 끓는 물에 데치면 쓴맛이 빠지고 기분 좋은 쌉싸래함만 남는다. 살캉하게 씹히는 맛, 톡 쏘는 향긋함을 가진 유자껍질은 샐러드에 넣고, 고기를 굽거나 볶을 때 섞고, 구운 생선에 올리고, 생선회를 찍어 먹는 간장에도 몇 개 담그면 좋다. 굵직하게 썬 배, 사과, 감 위에 데친 유자껍질을 몇 개 뿌려 달콤한 샐러드를 만들 수도 있다. 여기에 석류청 한 숟가락을 듬뿍 얹으면 가을 열매 한 사발을 아삭아삭 씹어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석류청은 발라낸 석류 알갱이와 설탕을 잘 버무려 만든다. 설탕에 절여도 석류의 쟁쟁한 신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말 그대로 새콤달콤이다. 보석 같은 석류알갱이가 눈길을 끌고, 쨍한 맛이 미각을 깨우니 여러 요리에 조금씩 곁들이면 좋다. 오일과 섞어 드레싱을 만들고, 탄산수를 부어 음료로 마실 수도 있다. 술에 타면 칵테일, 따뜻한 물과 섞으면 마음까지 맑아지는 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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