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스폰지 같은 몸통을 가진 가지는 반찬뿐 아니라 번듯한 요리 주인공으로 삼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채소다. [GettyImage]
엄마가 즐기는 채식의 중심에는 늘 밥이 있다. 채소는 반찬 재료로 여겨 나물, 무침, 조림, 볶음 등으로 해 드신다. 반면 채식을 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면 한 끼에 한 가지 채소 요리를 꽤나 잘 만들어 즐긴다.
우리 집 여름 밥상에 말랑말랑, 부들부들한 나물로 자주 등장하는 가지는 채소류에서 보자면 ‘소고기’격이다. 푸짐한 한 그릇 요리 주인공으로 부족함이 하나도 없다. 마른 가지로 만든 반찬을 꼭꼭 씹으면 쫄깃한 맛이 고기처럼 좋기도 하다. 가지는 가열하면 숨어 있던 단맛이 점점 드러나고, 부드러우면서도 오물오물 씹는 맛이 있다. 수분이 많아 열량도 낮다.
갓 튀긴 가지에 동남아풍 소스를 조르륵
길쭉한 가지를 2~3등분해 프라이팬에 구우면 촉촉하고 부드러우며 풍미 넘치는 요리가 된다. [GettyImage]
다른 걸 얹을 수도 있다. 굵게 다진 양파, 씨를 빼고 작게 썬 방울토마토, 실파나 쪽파 송송 썬 것, 소금, 올리브유, 후추를 잘 섞는다. 이것을 구운 가지에 얹어 먹는다. 리코타 같은 부드러운 치즈까지 함께 올리면 풍성한 맛이 몇 뼘은 더 자란다. 알싸한 풍미와 식감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채소 토핑은 달게 익은 가지 맛을 한껏 살려준다. 한입 먹을 때마다 다채로운 채소 맛이 온전하게 느껴진다.
앞의 채소 토핑 레시피에서 소금을 빼고 레몬즙과 피시소스를 조금 더하면 동남아시아풍 샐러드를 만들 수 있다. 이 소스에는 튀긴 가지가 딱이다. 앞서 가지를 구울 때처럼 길쭉한 모양을 내거나 아니면 원형으로 두툼하게 썰어도 된다. 가지는 튀기기 전 소금을 뿌려 물기를 살짝 빼고 밑간을 해야 맛있다.
매끈한 가지에 먼저 밀가루를 살짝 묻히고 튀김반죽을 입힌다. 달군 기름에 퐁당 넣고 튀김옷만 익으면 바로 건져 뜨거울 때 차가운 동남아풍 소스를 조르륵 뿌려 먹는다. 여름이니 입맛이 벌떡 일어나도록 매운 고추도 잘게 썰어 섞어 본다. 새콤매콤 짭조름하게 간이 밴 튀긴 가지를 한입 베어 물면 뜨거운 김과 함께 구름처럼 부드러운 속살이 터져 나온다. ‘입천장이 벗겨지겠구나’ 싶지만 순간의 기쁨을 위해 꾹 참는다.
가지 튀김이 선물하는 달콤한 기쁨
가지를 비롯한 여러 채소를 깍두기 모양으로 썬 뒤 뭉근하게 끓여 만든 카포나타. 바삭한 빵에 소복하게 올려 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GettyImage]
이제 커다란 냄비에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두르고 으깬 마늘 서너 쪽을 넣어 볶는다. 맛있는 향이 피어나면 구운 가지를 포함해 손질한 채소를 모두 넣고 윤기 나도록 잘 볶는다. 홀 토마토, 올리브, 케이퍼, 건포도, 꿀이나 설탕, 식초나 와인 비니거를 넣어 뭉근하게 끓인다. 맛은 새콤달콤 자극적이어야 하고, 국물이 흥건하지 않아야 한다.
완성한 카포나타는 바삭한 빵에 소복하게 올려 먹는다. 볶은 잣과 이탈리안 파슬리 잎을 올리면 본토 맛에 조금 더 가까워진다. 전체적으로 달고 부드러운 카포나타를 한입 그득 넣고 오물거리면 재료 각각의 맛이 새콤함과 함께 톡톡 치고 나온다. 이탈리아, 그것도 시칠리아라는 머나먼 땅에서 온 요리지만 누구라도 즐겁게 먹을 만한 음식이다. 파스타나 쿠스쿠스를 삶아 카포나타와 곁들이면 가벼운 한 끼를 완성할 수 있다. 핫도그 빵에 소시지와 함께 그득 넣거나, 연어구이 또는 돈가스와 곁들여도 좋다. 카포나타는 보관하기 좋으니 넉넉히 만들어도 된다.
간혹 비현실적으로 진한 보라색의, 마치 스펀지 같은 몸통을 가진 가지는 결코 먹지 않겠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다. 바라건대 튀긴 가지만은 한입 먹어보면 좋겠다. 살면서 고단한 일은 많지만 이처럼 달콤한 경험은 잘 없을 테니까.
튀긴 가지는 고단한 일상에 달콤한 선물이 될 만큼 맛있다. [Getty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