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친왕 이강, 세종시 부강면 금광으로 의병 양성 도왔다
고종황제 독살한 일제, 대한제국 황실 비하하게끔 사료 조작
황제 비밀정보조직 제국익문사, ‘안중근 구제’ 특명 받아
최민호 세종시장 “부강면 일대 국가유적지화 방침”
황실 독립운동 근거지로 확인된 송암 김재식 가옥(위)과 홍판서댁. [세종시]
송암 김재식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이 내장원경에 임명한 인물이다. 내장원경은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자다. 의친왕은 1928년 김재식이 사망한 후 신도비(神道碑)문을 직접 쓰고, ‘송암신정기(松庵新亭記)’를 작성해 하사했다. 황실에서 신하에게 이런 정성을 보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가 고증한 바에 따르면 의친왕과 김재식은 1908년 의친왕부가 생기고 의친왕이 스스로 항일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는 가운데 맺어진 인연으로 파악됐다. 의친왕은 일제가 황실 재산을 국유화하려 할 때 김재식에게 황실의 재산 관리를 맡긴 데 이어 황실 소유의 금광을 개발하게 했다.
의친왕-제국익문사-김재식의 삼각함수
황실 후손들 사이에는 1909년을 즈음해 김재식이 황제 직속의 비밀 정보조직 ‘제국익문사’ 요원들과 “문의군 부강면에서 금광을 기반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한” 사실이 전해진다. 의친왕이 김재식을 위해 쓴 ‘송암신정기’에도 ‘문의군 부강면에서 제국익문사 요원들과 금광을 기반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한 김재식’이란 문구가 있다.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종손,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장은 “황실가 안에서 ‘의친왕 소유였던 부광면의 금광을 송암 김재식에게 맡겨 의병을 양성하는 독립 자금으로 후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를 근거로 “의친왕이 김재식에게 금광을 개발하게 한 것은 제국익문사의 국내 활동 자금을 확보하고 제국익문사를 통해 독립지사들의 항일 활동을 지원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제국익문사는 1902년 광무제 고종이 대한제국 정부를 상대로 한 일본 측의 극심한 정탐 행위에 대응해 비밀리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정보기관이다. 황실의 지원으로 독립운동의 최전선에서 활약했지만 사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설치 목적과 운영 방법을 명시한 제국익문사비보장정에는 밀서를 반드시 태우라는 조항이 있었다.
이태진 교수는 역사학자로서 제국익문사의 발자취를 끈질기게 쫓아가 제국익문사비보장정에서 소중한 정보를 얻어냈다. 이 교수는 “1909년 광무제(고종)가 태황제로서 하얼빈 의거의 영웅 안중근의 신병이 러시아에서 일본 측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고 ‘안중근 구제’를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사회에 2명의 밀사, 곧 제국익문사 요원을 파견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황실 후손을 대표하는 ‘의친왕기념사업회’는 현재 제국익문사의 공식 인장인 ‘성총보좌’의 실물을 보유하고 있어 황실 안에서 전하는 말의 신뢰도를 높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영주 의친왕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의 증언에 따르면 의친왕은 제국익문사의 비밀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경부선 철도가 부강역을 경유하도록 노선 계획을 변경하고, 김재식이 금광에서 나오는 수익을 부강 포구와 부강역을 이용하는 보부상을 통해 전국에 독립 자금으로 전달하도록 했다. 당시 제국익문사 총책인 독리 이호석은 의친왕의 밀명으로 10여 차례 김재식을 찾아가는 등 김재식의 고택을 제국익문사 충청도 거점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이때 의친왕은 금강의 경치를 즐긴다는 명분으로 김재식의 집을 방문해 이호석, 김재식, 홍판서댁 주인 홍순형 대감과 항일 활동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특히 만해 한용운 일행이 김재식의 집에 들러 대화를 즐겼다고 한다. 이영주 사무총장은 “김재식의 집과 홍판서댁이 부강면에서 항일운동 근거지 역할을 했다”는 사실도 확인해 줬다. 홍판 서댁 주인 여문 홍순형은 헌종비 효정왕후의 조카로 대한제국 황실 종친이며 1874년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다. 이후 홍문관 부제학, 성균관 대사성, 대사헌, 형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제국익문사의 사기(차관급)로 이호석을 보필하다가 부강면에 둥지를 틀었다.
의친왕, 손병희와 3·1독립만세운동 기획
1919년 1월 일본 측이 고종을 독살한 후 의친왕은 천도교 대표 손병희와 3·1독립만세운동을 기획한다.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이 공동선언문을 공표하고 태화관에 모인 것도 의친왕의 주선이었다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황족으로 사느니 자유 대한에서 평민이 되고자 했던 의친왕은 33인 중 가장 먼저 독립선언서에 의친왕이 아닌 ‘이강’으로 서명한다.
“대한제국 황실과 관련된 사람들이 비밀리에 항일 활동을 펼쳤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그동안 우리가 배운 바와 상반된 내용이어서 선뜻 믿기지 않을 수 있다. 이준 의친왕기념사업회장은“학교에서 역사 시간에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을 펴고,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는 부패하고 무능해서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배웠다”며 “황실 어른들께 들은 황실의 역사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너무나 달랐다”고 말했다.
인요한 국민의힘 의원은 선대의 증언과 경험을 근거로 “일제의 식민사관이 짓눌러 우리 스스로 대한제국 황실을 우습게 보도록 만들었다. 고종황제를 비하하게끔 사료를 조작하고 진실을 은폐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인 의원의 외증조부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입국해 학교와 병원을 세운 선교사 유진 벨이다. 그리고 만세 시위운동을 지도한 선교사 윌리엄 린튼은 그의 할아버지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고종황제는 미국인 선교사들을 깊이 신뢰하고 친구로 여겼다. 1895년 일본이 명성황후를 끔찍하게 살해한 을미사변이 계기가 됐다. 인 의원은 “황후가 일본의 칼에 무참히 살해되는 광경을 미국인 선교사들이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다.
“일본은 사료를 왜곡하고 언론을 조작해 끊임없이 고종황제를 부패하고 무능하고 자기 권력만 탐하는 멍청이로 만들었다. 그러나 한국을 지킨 선교사 가문들은 잘 알고 있다. 고종황제가 어려운 시절을 헤쳐나갈 의지를 가지고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이다.”
세종시의 큰 그림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대한제국 황실의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한 세종시 부강면 일대를 국가유적지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홍중식 기자]
최민호 세종특별자치시장은 “송암 김재식 고택을 비롯한 부강면 일대는 대한제국 황실의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한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어서 국가유적지화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김재식 가옥과 홍판서댁 등 황실 독립운동 근거지를 국가 현충시설로 등록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왜곡된 황실의 명예를 회복하고, 후손들에겐 자랑스러운 역사를 전달하는 교육의 장이 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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