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토지개혁 ②수출 ③친미 ④공산국 접경 ⑤바다…
30년 이상 고성장 달성한 나라들 공통점
나라 만들기·압축 산업화 = 보수 업적
압축 민주화·압축 복지국가 = 진보 업적
복지국가 장점 계승하되 경제적 혁신 능력 강화해야
[Gettyimage, 각 정당]
진보는 보수를 악마화하고, 보수는 진보를 악마화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상대방을 ‘절멸’해야만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보수는 여전히 빨갱이 타령, 진보는 여전히 독재 타령을 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는 고통과 상처의 역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대한 성취의 역사였다. 절반은 보수가 주도한 성취였고, 절반은 진보가 주도한 성취였다. 한국의 성취야말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표현을 증명한다.
1945년 한국은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됐다. 2025년이 되면 광복 80년이 된다. 한국 현대사는 네 가지 업적을 이뤘다.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다.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는 자본주의를 할지, 사회주의를 할지, 미국과 한편이 될지, 소련과 한편이 될지, 농지개혁을 할지 말지가 핵심 쟁점이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이룩한 성취를 세계사의 시야에서 조망해 보면, 대한민국은 식민통치를 경험한 제3세계 국가 중에서 압축 산업화, 압축 민주화, 압축 복지국가를 동시에 성취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는 보수가 주도했다.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는 진보가 주도했다. 이러한 네 가지 업적을 세 글자로 줄이면 ‘선진국’이다. 즉 한국이 선진국이 되는 과정을 돌이켜 보면, 앞의 두 개를 보수가 주도했고, 뒤의 두 개는 진보가 주도했다.
기적의 경제성장과 친미 외교 노선의 관계
이 중에서 도시국가에 해당하는 싱가포르와 홍콩을 논외로 하면 한국, 타이완, 중국, 일본은 다섯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첫째, 토지개혁을 했다. 둘째, 수출-제조업 중심 국가였다. 셋째, 모두 친미 국가였다. 넷째, ‘지정학적으로’ 소련 혹은 공산주의 국가와 국경을 접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다섯째, 바다를 끼고 있는 국가였다. 참고로 중국의 경우 마오쩌둥 시절과 덩샤오핑 이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마오쩌둥 시절의 중국은 반미 중국이었고, 덩샤오핑 이후에는 친미 중국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①토지개혁 ②수출-제조업 ③친미 국가 ④지정학적으로 공산주의와 접경 국가 ⑤바다를 끼고 있는 지리적 특징은 서로 연결돼 작동했다. 예컨대 일본과 한국, 대만은 모두 ‘공산화를 막기 위해’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압력이 강했고, 한국의 경우도 미국의 지원하에 토지개혁이 실시됐다. 일본, 한국, 대만의 수출-제조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공산주의와 마주하고 있는 지정학적 이유로 미국이 수출 시장을 적극적으로 열어준 게 큰 도움이 됐다. 미국은 원조, 차관, 무역 개방, 기술 협조 등을 지원했다. 미국으로서는 소련-중국의 세력권 확장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즉 지정학적 요인과 친미외교 노선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물론 한국의 경제 기적은 ‘국내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무엇보다 박정희 경제학의 역할이 컸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에 최대 미션은 자본주의적 산업화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자본주의 산업화는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데, 핵심은 ‘대기업 있는’ 경제체제다. 결국 산업화 성공의 관건은 어떻게 하면 ‘대기업’을 만들 수 있는지와 연결된다.
기적의 경제성장과 독재적 혁신 성장
세계사적 시야에서 볼 때 1960년대 식민지 경험이 있는 제3세계 국가들의 주류 경제 노선은 ‘민족경제론’이었다. 수입대체 공업화론, 내포적 공업화론도 같은 맥락의 표현이다. 박정희 경제학은 ‘이단적’ 경제 노선이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진국과의 교역에 적극적이었던 점이다. 1965년 한일협정은 차관을 도입하고, 선진국과 교역하고, 산업화를 하기 위해 체결됐다.
박정희 경제학의 또 다른 특징은 수출 노선의 채택과 중화학공업 정책이다. 오늘날 ‘한국형 대기업’이 만들어진 것도 이와 관련된다. 수출 노선을 채택한 때는 1964년이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기업에 파격적 수준의 금융 혜택을 제공한다. 무역금융 혹은 수출금융으로 불리는 정책이다.
중화학공업 노선의 채택 연도는 1973년이다. 당시 중화학공업은 선진국이나 하는 산업이었다. 저개발 국가는 경공업 정도만 해도 대단한 것으로 평가됐다. 박정희 정부가 중화학공업 정책을 편 이유는 안보 위기에 있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진다. 국내에서는 격렬한 반전운동이 벌어진다.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 철수’를 공약으로 당선된다. 이후 아시아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고, 중국과 데탕트 외교를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전면 철수할 조짐을 보였다는 점이다. 박정희 정부는 안보 위기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육성을 추진하게 된다. 처음에는 차관 도입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방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대기업과 손을 잡게 된다. 박정희 정부는 ‘전시에는 방위산업, 평시에는 중화학공업’을 겨냥하고,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 연동했다. 한국 경제사에서 중화학공업은 ‘안보 정책’이자 ‘경제성장 정책’이었다.
안보 위기, 유신, 대기업 결합
한국 대기업으로서는 방위산업도 중화학공업도 하고 싶지 않았다. 중화학공업은 엄청난 자본이 투입돼야 했고, 성공 확률도 극히 희박했다. 자본의 회수 기간도 지나치게 길었다. 불확실성은 매우 컸지만 기대수익은 불투명했다. 박정희 정부는 절반은 당근으로, 절반은 협박으로 대기업에 중화학공업(방위산업) 육성 정책을 관철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3년 1월 중화학공업 육성선언을 앞두고 1972년 10월에 유신을 선포했다. 즉 중화학공업+파격적인 대기업 지원+유신 독재는 하나의 패키지였다. 박정희 정부의 정치적 반대편에는 중소기업 지원+대기업 특혜 반대+유신 반대(민주화)의 패키지가 있었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자본주의적 산업화 성패의 핵심은 ‘대기업 있는’ 경제체제가 될 수 있는지 여부였다. 한국은 그 과정을 냉전 상황과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중반 안보 위기라는 상황과 맞물려 ‘독재적 자원배분’을 통해 만들었다. 수출금융과 중화학공업, 대기업에 대한 파격적 혜택은 경제적 합리성과 정치적 합리성 측면에서 상반됐다. 경제성장과 상관관계가 높은 것은 ‘규모의 경제’다. 결과적으로 독재적 자원배분은 오늘날 한국형 대기업의 토대가 됐다. 반면 정치적 합리성의 관점에서 볼 때, 중화학공업에 참여하는 대기업에 대한 파격적 혜택은 ‘1인 1표’의 민주주의 원리와 양립할 수 없다. 수출금융, 중화학공업, 대기업에 대한 파격적 혜택은 ‘경제적’으로 합리적 측면과 ‘정치적으로’ 독재적 측면이 공존했다.
진보, 압축 민주화와 압축 복지국가 주도하다
오늘날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는 마치 상대방을 ‘절멸’해야만 국가가 발전할 수 있을 것처럼 상대를 악마화 하지만 우리가 선진국 반열에 오른 데 보수와 진보가 각각 절반의 공로가 있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DB ]
냉전 세력은 탈냉전이 되면 위기에 빠지고,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가 되면 위기에 빠진다. 미션의 완성으로 인해 미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때 생존하는 방법은 ‘역사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통해 정치 민주화가 진도를 나가자, 한국의 민주화 세력은 위기를 겪는다. ‘민주화 이후’에도 과거 어젠다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열린우리당의 총선 승리 이후 연전연패를 하게 된 근본 이유다.
민주화 세력은 ‘유럽식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진보정당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전열을 재정비한다. 중요한 분기점은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통한 선거 승리였다. 2010년 이후, 한국 정치사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점진적 수용사(史)’와 다름없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주장한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1기 정부’였다. 소득주도성장론, 최저임금 대폭 상승,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장한 문재인 정부는 ‘민주노동당 노선의 2기 정부’였다. 박근혜-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한국의 복지 수준은 일취월장했다. 그 결과, 한국은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세금과 복지비 증가율 모두 ‘기울기가 가장 가파른’ 나라가 됐다. 2020년 코로나19 위기가 터졌을 때는 K-방역을 통해 국가 브랜드가 상승했다. K-방역은 ‘한국형 복지국가’가 유럽 여느 복지국가에 공공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뒤지지 않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의 재검토 필요성
복지국가 관점에서, 유럽사를 살펴보면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복지국가 준비기, 복지국가 확대기, 복지국가 재편기다. 복지국가 준비기의 핵심은 산업화와 민주화다. 두 가지 요건이 갖춰지면 그다음에 복지국가는 확대된다. 왜냐하면 유권자들은 요구하게 되고, 국가 역량은 충족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는 위기에 빠져 있다.
돌이켜 보면 유럽 복지국가는 나토(NATO)로 상징되는 미국 군사력에 의존한 안보 무임승차, 아시아의 경제발전이 뒤처졌던 초격차 상황을 통해 가능했다. 지금은 상황이 모두 바뀌었다. 2023년 유럽 주요국의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독일 –0.3%, 영국 –0,4%, 프랑스 0.6%, 이탈리아 0.2%, 스페인 1.3%다. 미국과 유럽의 GDP 규모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유럽의 경제 규모는 곧 중국에 역전당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지난 79년의 역사를 통해 ①나라 만들기 ②압축 산업화 ③압축 민주화 ④압축 복지국가라는 4대 업적을 만들었다. 그러나 ‘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은 유럽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한국은 후발국 이점을 살려 복지국가의 장점은 계승하되, 경제적 혁신 능력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대안적 국가 모델로 전환할 때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