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1주일 매출 5만 원… 황학동주방거리는 이제 끝”

코로나 때보다 더 힘들어… 40년 역사 ‘서울의 부엌’ 몰락

  •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4-08-1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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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돈에, 아들 돈도 다 쓰고, 보험까지 해약…”

    • 폐업 늘고 창업 줄어 새 물건‧중고 물건 모두 안 팔려

    • 자영업자 “황학동보다 당근 마켓 먼저 찾아”

    • 쪼그라드는 거리엔 대형 오피스텔 들어서

    8월 7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임경진 기자]

    8월 7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임대 현수막이 붙어있다. [임경진 기자]

    “황학동주방거리는 죽은 시장이 됐죠. 맞은편 오피스텔이 차지한 자리가 원래는 전부 중고 주방용품 가게가 있던 장소예요. 장사가 안 되니 가게들이 문을 닫고 4년 전부터 오피스텔이 지어지기 시작한 거죠. 5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형편이 괜찮았어요. 지금은 보다시피 중고 물품을 실은 트럭이고 사람이고 전혀 없죠. 지난해 11월 바뀐 임대인이 이 가게 월세도 오피스텔 시세에 맞춘다며 17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올리겠대요. 한 달에 100만 원도 못 버는데 500만 원을 어떻게 내나요. 저도 가게 접을 예정이에요.”

    8월 7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 16년째 이곳에서 주방용품을 팔아 온 임모(73) 씨의 말이다. 그는 “오늘 하루 엘보 파이프 3개를 팔아 총 9000원을 벌었다. 지난 7일간 매출이 5만 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체념한 듯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가게 앞 인도에서 휴대전화 한번 쳐다보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폐업 늘고 창업 줄어… “빈 가게는 안 채워져”

    황학동주방거리는 중고 주방용품과 가구를 판매하는 상점이 밀집된 거리다. 전국 최대 규모 주방시장으로서 ‘서울의 부엌’이라고도 불린다. 식당 등 운영하던 가게를 폐업하며 쓰던 주방용품과 가구를 내놓는 곳이기도 해 서민 경기의 척도로도 여겨졌다.

    1980년대 거리가 형성된 후로 약 40년간 폐업한 가게에서 나온 중고 물건들이 이곳에 모여 새 주인을 찾았다. 어지간한 불황에도 이곳은 건재했다. “불경기에 자영업자들이 폐업을 많이 하더라도 그 자리에 새로운 자영업자가 창업한다. 이에 호황‧불황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사람이 꾸준히 황학동을 방문했다”는 게 이곳 상인들의 설명이다.

    7월 말 폐업한 이 가게는 40년간 황학동주방거리를 지켰던 곳이다. [임경진 기자]

    7월 말 폐업한 이 가게는 40년간 황학동주방거리를 지켰던 곳이다. [임경진 기자]

    이제 이는 옛말이 됐다. 황학동주방거리가 사라지고 있다. 이곳에서 40년간 장사를 이어온 ‘터줏대감’인 창성종합주방도 7월 말 문을 닫았다. 가게 앞에서 만난 한 상인은 “가게 주인이 직원을 20명씩 쓰면서 점포를 여러 개 운영했는데, 손님이 줄자 가게를 하나씩 다른 사람에게 넘기더니 지난달 아예 손을 털어 버렸다”고 했다.

    15년째 중고 주방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안모(68) 씨도 10년 전까지만 해도 창고 4개를 동시에 운영하며 억대 연 매출을 기록했다. 하지만 2년 전부터는 창고 3개를 정리하고 점포 하나만 유지하고 있다. 안 씨는 “2년 전 비운 창고가 아직도 비어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 전엔 물건이 계속해서 팔리니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중고 물품을 가져와 창고를 채웠어요. 지금은 팔 물건을 한 달에 한두 번 떼어 올까 말까 하죠. 손님이 오더라도 예전만큼 많이 사지도 않아요. 코로나 전에는 손님이 한 번 오면 한 번에 120만 원 어치씩 사 갔는데, 지금은 1만 원 어치 숟가락 몇 개만 사가요. 지난 4년 동안 벌어둔 돈만 계속 까먹고 있죠. 아들이 모은 돈 3000만 원과 내가 모아둔 돈 2000만 원을 써버리고도 돈이 없어서 들었던 보험까지 다 해약했어요.”

    8월 7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상인 안모 씨가 2년 전 비운 2층짜리 창고가 빈 상태로 남아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7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상인 안모 씨가 2년 전 비운 2층짜리 창고가 빈 상태로 남아 있다. [임경진 기자]

    시장 상인들은 중고 물품의 주요 수요자인 신규 창업자가 줄어든 것을 주방거리가 쇠퇴한 핵심 요인으로 봤다. 지난해 8월 기준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음식업 폐업자는 2022년 13만6168명으로 2021년 대비 6.3% 증가했다. 반면 창업 기업 수는 5985개로 19.4% 감소했다.

    폐업한 가게를 철거하는 일을 8년째 해오고 있는 40대 김모 씨는 “예전과 달리 요즘은 가게가 폐업만 하고 그 자리가 새로 채워지지를 않으니 황학동 중고업자들 창고에 물건이 회전하지 않는다”며 “2022년부터는 철거한 가게에서 나온 주방용품, 의자, 책상 등 중고업자들에게 물건을 넘기려면 오히려 물건 폐기 비용을 줘야 한다”고 했다.

    온라인 중고 거래 활성화로 몰락 가속화

    8월 8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 마켓’에 업소용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임경진 기자]

    8월 8일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 마켓’에 업소용 주방용품을 판매하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와 있다. [임경진 기자]

    당근 마켓 등 온라인 중고 거래 플랫폼 활성화도 황학동주방거리의 활기를 꺾는 요소다. 중고 주방용품점을 운영하는 50대 권모 씨는 “요즘 자영업자들은 폐업 후 가게를 정리할 때 물건을 따로따로 하나씩 당근 마켓에 직접 판다”며 “쓸만한 물건은 온라인으로 다 팔고 버릴 물건만 남았을 때 철거업자를 부르니 요즘 철거업자들이 가져오는 물건 중에 쓸만한 물건이 없다”고 했다.

    실제 황학동주방거리에서 만난 자영업자들은 당근 마켓을 즐겨 쓴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에서 장어구이 식당을 운영하는 40대 오모 씨는 “초벌 기계를 사고 싶어 당근 마켓에서 먼저 검색해 봤는데 올라온 물건이 없길래 황학동으로 왔다”며 “깡통 의자, 그릇 등 필요한 다른 물건은 당근 마켓으로 이미 다 샀다. 요즘 폐업하는 가게가 많아서 당근 마켓에 새것 같은 물건이 많이 올라온다”고 했다.

    인천에서 카페를 운영하다가 오리고기 집으로 업종을 변경하려 한다는 60대 A씨도 당근 마켓 이용 내역을 보여주며 “최근에 당근 마켓 이용 방법을 배워 잘 쓰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책상이고 의자고 당근 마켓에서 팔면 돈을 더 받을 수 있어요. 철거업자들은 가게에 있는 물건을 통으로 100만 원, 200만 원 견적을 내놓고 문짝까지 다 떼어가 버리잖아요. 폐업하면서 급하게 돈이 필요한 자영업자들은 철거업자를 부르겠지만 월세 계약 기간이 한두 달 남은 사람들은 당근 마켓에 물건을 내놓고 팔죠.”



    7월 31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들어선 오피스텔 전경. [임경진 기자]

    7월 31일 서울 중구 황학동주방거리에 들어선 오피스텔 전경. [임경진 기자]

    경영난을 이기지 못한 황학동 중고업자들이 떠난 자리는 대형 오피스텔이 채운다. 대형 오피스텔의 진입은 주방거리 축소 현상을 심화한다. 15년 전부터 중고 주방용품을 판매해 온 38세 B씨의 가게는 올해 입주를 시작하는 20층짜리 오피스텔 바로 옆에 있다. B씨는 “주방거리 중간중간에 큰 건물들이 생긴 뒤로 가게에 손님이 더 줄었다. 손님이 주방거리 골목을 따라 걸어 올라오다가 중간에 큰 건물이 나타나면 주방거리가 끝난 줄 알고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고 울상을 지었다.

    인근 공인중개사 김모 씨는 “4년 전만 해도 중고 주방용품 가게 20개가 있던 자리에 오피스텔이 들어선 것”이라며 “황학동주방거리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붙은 빈자리가 많다. 우리나라 3대 거짓말 가운데 하나가 ‘장사 안 된다’는 말이라는데, 폐업한 자리에 새 주인이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니 이젠 정말 장사가 안되는 게 맞나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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