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가맹사업법·안전운임제법… 야권, 親勞 정책 줄줄이 추진
“힘 잃은 정부·여당, 야권이 밀어붙이면 막을 도리 없다”
“의욕 충만 초선 가장 무서워… 벌써 고압적으로 나오더라”
“민주당 vs 조국혁신당 ‘더 센’ 입법 경쟁 벌일 듯”
“적어도 숨 쉴 틈은 줘야… 기업 힘들면 노동자도 힘들어져”
[각 사, Gettyimage]
한 대기업 임원 A씨의 말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 등 진보가 다수당이던 지난 4년간 위태로운 심정으로 지냈는데, 또 4년을 더 보내야 한다니 막막했다”며 “회사 차원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이미 9월부터 예정인 국정감사에 대응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당 지지자인 직장 동료조차 ‘한 2~3년은 쉽지 않겠다’며 쓴웃음을 지을 정도”라고 토로했다.
22대, 192석 거야(巨野) 국회를 맞닥뜨리게 된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범야권은 21대 국회 때(181석·5월 29일 폐원일 기준)보다 더 많아진 의석수를 바탕으로 더 강하고, 빠르게 뜻을 관철하려 드는 모양새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개혁신당의 3석과 국회의장직 수행을 위해 무소속이 된 우원식 의원을 제외하더라도 진보성향 6당(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의 의석수는 188석에 이른다.
재계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이들이 추진하는 ‘친노(親勞)’ 정책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대표 사례다. 노란봉투법은 원청업체의 책임 범위를 하도급 노동자로까지 넓히며, 쟁의행위(파업)를 명분으로 사용자(기업) 측이 노조원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뿐 아니라 가맹 본사를 상대로 한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 개정안(가맹사업법), 화물 운전기사인 차주와 운송 사업자에게 각각 최저운임을 보장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안전운임제법) 등도 줄줄이 본회의 회부를 앞뒀다. 재계에선 “가뜩이나 기업 운영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어려움만 더해진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독해져서 돌아온 巨野
7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촉구 기자회견’을 연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가맹사업법은 민주당이 21대 국회 막판까지 밀어붙이던 법안이다. 당시 법안엔 △가맹점주단체 등록제 도입 △가맹점주단체 협의 요청 불응 시 제재 조치 부과 △가맹본부의 불공정행위 및 보복 조치 금지 등을 골자로 했다. 지난해 야당은 단독으로 이를 처리해 올해 5월 28일 본회의에 부의했지만 여야 및 정부 이견이 커 법안 상정엔 실패, 폐기 수순을 밟았다.
안전운임제법은 안전운임제 상시 법제화가 골자다. 안전운임제는 운수업계 ‘최저임금’ 개념으로, 화물 기사의 과로·과적·과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한시(3년)로 도입됐다.
2021년 11월, 2022년 6월과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화물연대에서 일몰(법률·규제·정책에 대해서 존속기한을 정해놓고, 그 기한이 지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폐지되도록 하는 것) 폐지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지만 윤석열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처했다. 결국 총파업은 소득 없이 끝났고, 안전운임제 역시 지난해 1월 1일 일몰됐다.
22대 국회에서 야권은 이러한 법안에 조항을 덧붙여 재추진하는 등 더 ‘독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6월 18일 야 6당(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새로운미래·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이 내놓은 노란봉투법의 경우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파업을 보장하는 등 21대 법안에 비해 근로자 정의가 확대됐고, 근로자가 아닌 자의 노조 가입을 인정하지 않는 현행 규정도 삭제됐다. 즉 해고자, 배달노동자, 플랫폼노동자 등도 노조 가입과 파업을 할 수 있도록 해준 셈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선 “야권은 더 강하게 목을 조여오는데, 막을 길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자동차업계 관계자 B씨는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에 하청업체가 4000여 개에 이른다”며 “가뜩이나 현재도 노조가 강성해 골머리를 앓는데, 그들에 힘을 더해주면 어쩌라는 건가 싶다”며 답답합을 드러냈다. 조선업계 관계자 C씨도 “위험한 일이 많은 업계 특성상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안전확보의무 등 조치를 소홀히 해 중대한 산업재해나 시민재해가 일어나 인명 피해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법) 시행으로 이미 회사 내 분위기가 위축된 상태였다. 거기에 노란봉투법까지 시행된다고 하니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더 커져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고 말했다.
유통업계 관계자 D씨는 “워낙 인건비가 비싸졌기도 하고, 업황이 수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경우가 많아 비정규직, 플랫폼노동자를 쓰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고용·비고용 상태도 수시로 바뀌는 게 현실”이라며 “그들에게까지 노조·파업을 허용하면 기업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너무 커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은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돼 힘이 있었고, 21대 국회도 반환점을 돌았던 터라 어느 정도 정부·여당이 제동을 걸어줄 수 있었다고 본다”며 “하지만 이젠 거야 국회가 새로 출범한 반면 정부·여당은 힘이 빠진 듯해 막아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어쩔 도리 없이 지켜볼 뿐”이라고 토로했다.
“초선의원 리스트 뽑아 연줄 찾는 중”
5월 25일 서울 중구 숭례문 인근에서 열린 ‘채 상병 특검법 거부 규탄 및 통과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다선 의원은 오랜 시간 동안 파악하며 어느 정도 예측할 수도 있고, 경륜이 쌓여 지켜야 할 ‘선’을 안다. 반면 초선의원은 의원이 됐다는 뿌듯함, 이른바 ‘뽕’이 차서 일을 ‘너무 열심히’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의욕이 지나쳐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있다. 또 초반 ‘기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거칠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6월 5일 개원 후 며칠 지나 한 초선의원을 찾아갔는데, 보좌진부터 초면에 ‘노동자 권리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 지켜보겠다’며 고압적 자세로 나오더라. 이번 국회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선의원에 더해 야권 대권 후보 간 경쟁 구도로 인해 생길 영향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특히 22대 국회에서 비례로만 12석을 획득한 조국혁신당이 변수로 지목된다. 조국혁신당 의원 12명 가운데 황운하 의원을 뺀 11명 모두 초선이다.
금속업계 기업 임원 F씨는 “조국혁신당 의원 대부분이 초선인 데다, 조국 대표가 이재명 대표와 함께 야권에서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 않느냐”며 “민주당에 비해 소수 의석인 만큼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더 강경하게 나올 공산이 커 보인다”고 우려했다. 물류업계 관계자 G씨도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같은 진보로 분류되긴 하지만 국회에서 내가 느낀 바로는 서로 그리 가까워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미묘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며 “서로 ‘더 센’ 입법을 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로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을 걱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채찍질하더라도 당근 줘가면서…”
야권에 의해 친노동계 정책이 대거 추진되는 반면 친기업 정책은 뒤로 미뤄지고 있다. 재계의 숙원인 상속세율 인하는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설령 여당이 발의하더라도 야권은 이에 반대하는 태도인 터라 입법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이른바 ‘K-칩스법’ 일몰 연장 논의도 뒤로 밀렸다.
‘K-칩스법’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투자하는 기업에 세액공제를 해주는 제도다. 이를 6년 연장하는 내용이 올해 1월 발의됐지만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21대 국회가 끝나면서 흐지부지됐고, 22대 국회에서도 논의되지 않고 있다.
재계에선 “숨 쉴 틈은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 H씨는 “근 몇 년간 고금리·고물가 영향으로 시달리다가 이제야 조금 기업을 운영하는 데 숨통이 트이는 형국”이라며 “다시 기업을 누르는 법안만 나오고, 돋우는 법안은 뒤로 밀리고 있어서 힘이 빠진다”고 토로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 I씨도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칩스액트)으로 기업이 투자하는 액수의 최대 15%를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한국은 보조금이 없고 세액공제만, 그것도 ‘K-칩스법’이라는 임시 제도로 해준다. 또 공제 대상도 ‘장비’ 투자액에만 한정하고 있다”며 “미국은 장비·인프라 모두에 25%까지 공제를 해준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먹거리 사업이 반도체임을 감안하면 반성해 볼 문제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노동자도 결국 기업에 속한 만큼 ‘공생’을 감안한 입법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 J씨는 “기업이 힘들어지면 결국 노동자들도 갈 곳을 잃는 것 아니겠나”며 “야권이 노동자를 위한다면 기업에 채찍질을 하더라도 당근은 줬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상법 전문) K씨는 “이견이 있을 순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가 기업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데다가, 정치가 도움이 되기는커녕 ‘리스크’로 작용할 때가 더 많다”며 “정무적 판단으로 일부러 기업을 때리지 말고, 노동자와 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