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가 당 무시…‘닥치고 정권교체’ 결과
지금 보수 가치 = 비주류화·왜소화·극우화
민생 회복과 경제성장, 새로운 리더십 필요
국힘은 새 시대 새 보수 출발 터전 제공해야
[Gettyimage]
보수 재구성의 필요성은 22대 총선 참패로 재확인된다. ‘지는 데 익숙해진 정당’이자 ‘만년 2당(permanent minority)’이 됐다. ‘여당으로서 사상 첫 총선 대패’이자 ‘새누리당-미래통합당-국민의힘’이라는 서로 다른 정당 이름으로는 총선 3연패다. 전국 단위 선거 4연패를 극복한 2022년 양대 선거 승리는 ‘일시적 현상의 착시’였다. 이제는 ‘어쩌다 대선 승리’를 기대하는 정당으로 전락했다.
보수 재구성의 출발점은 ‘국민의힘 폭파’부터다.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최악의 국민의힘은 역동성과 자생력 그리고 책임성의 부재를 상징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스스로 할 생각도 해낼 능력도 없는 (그 무엇조차 없어 보이는) 무책임한 집단에서 벗어나려면 그 원인부터 알아야 한다. 그래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보수가 집권하면 찾아오는 민주주의 위기
첫째, ‘정체성 위기와 혼란’이다. 지금 국민의힘은 왜 자신들이 존재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정당이다. 당선된 게 다행인 ‘샐러리맨 정당’으로 “지금 당이 죽어가는 데도 용기 없는 자들이 고개만 숙인다”는 자조는 염치도, 용기도 없는 ‘공동묘지의 평화’ 같은 당을 웅변한다.
윤석열 정부 역시 국정 철학이나 방향을 알 수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비전과 가치의 제시는 찾아보기 어렵다. 보수의 태생적인 권위주의적 전통과 민주주의의 이해 부족은 오히려 ‘보수정권 때 민주주의의 위기가 온다’는 역설로 이어진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을 살리려면 당이 중심을 잡아야 했지만, 보스는 당을 무시했다. 당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조직인지에 대한 인식은 물론 존중조차 없었다. ‘닥치고 정권교체’의 바람에 우연하게도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을 뿐이다.
근본적으로는 당이 보수의 기본 가치와 원칙에 충실하며 시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선제적 변화에 열려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다. 당력(黨力)이 계속 약화된 건 당연한 귀결이다. 시대의 기후는 모르고 그날그날의 날씨에 집중한 결말이다. 지금 보수에 ‘시장(발전)과 안보(반공)’를 넘어서는 비전, 이를 위한 개혁과 변화의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그렇기 때문에 여의도연구원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론적, 철학적 무장이 선행돼야 한다. ‘균형과 약자 배려 그리고 통합과 평화’의 미래를 향한 진보적 전환을 위해 여의도연구원 중심의 비전과 정책 개발 연구 단체 등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여의도연구원은 비전과 정책대안 그리고 인재 풀의 원천이어야 한다. ‘내 편이 아니라 우리 편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공동체를 리드하는 당’의 핵심으로 가능한 한 객관적이며 중립적으로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하는 이유다.
방향은 분명하다. 민생 회복과 경제성장이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 미래의 불안을 해결해야 한다. 양극화 완화와 해소를 지향하는 구조개혁과 미래의 성장 동력 확보를 통한 공동체 지속가능성의 확보다. 당과 여의도연구원은 현장과 구체적 삶의 문제로 들어가야 한다.
8년간 6번의 비대위, 임기 마친 지도부 全無
4월 10일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어두운 표정으로 출구 조사 결과를 시청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이제 여당은 홀로 서야 한다. 여당으로서 대통령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면 변화를 유도하거나 최악의 경우 정치적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의 지적은 정확하다. 그는 “총선 참패는 대통령의 불통 그리고 우리 당의 무능함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라며 “여당은 더 유능해져야 한다. 대통령만 쳐다보는 정당이 돼선 안 된다. 필요하다고 생갈될 땐 직언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당과 여권 내 당의 선도 리더십 구축을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생각과 믿음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하면서 중론을 모아가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방향과 사람의 구심점이 생기도록 일단은 내버려둬야 한다. 짧은 시간에 인위적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카오스를 겪어야 한다.
7월 23일 전당대회는 그 출발점이다. ‘수도권 보수 vs. 영남(TK) 보수’ 분화의 가능성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보수 분화의 갈림길’이 될 수 있다. 최근 언론에 따르면 ‘친윤계와 영남권 지지를 배경으로 한 후보들’ vs. ‘수도권 초·재선 그룹과 원외 위원장을 지지기반으로 한 후보의 대결양상’이라고 한다. 한동훈의 ‘윤석열 극복의 차별화’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보수 가치의 비주류화 또는 왜소화 그리고 보수의 지역적 축소에 대한 대안은 크게 둘로 나뉜다. 스스로를 ‘보수 적통’으로 보는 홍준표 시장은 “우리 당 사람들은 저 살기 바빠 몸 사리기로 비겁한 생존을 이어왔다”며 “하나 돼 다시 일어서자, 자립 자강의 길로 가자”고 한다.
영남 출신의 홍 시장은 2021년 대선 경선 때 여론조사에서는 앞섰지만 당원투표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에게 집토끼를 기반으로 한 세력 확장이 중요한 이유다. 나아가 그는 “여당 대표 주자가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가 정권을 잃었다”며 “10년 야당의 가능성”을 경고한다.
오세훈 시장은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한다. 그는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따뜻한 우파로 노선 전환을 할 때”라며 “집토끼 산토끼 따지지 말고 힘든 토끼 억울한 토끼를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고 보수의 근본적 변화를 주장한다. 2021년 서울시장 보선 후보 경선에서 당원 표심에 밀려 예비경선 2위였지만 100% 시민 경선에서는 1위를 기록한 자신의 경험에 따른 ‘중도와 수도권 우선론’이다.
만성적 리더십 위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나타난 ‘어대한(어차피 대표는 한동훈)’과 ‘1강 2중 1약의 여론 흐름’은 국민의힘 지지자와 보수층의 한동훈에 대한 기대와 아쉬움의 표현이다. ‘한동훈이냐 아니냐’의 1라운드는 물론 ‘윤석열이냐 아니냐’의 결선투표 역시 같은 질문인데 그것은 결국 ‘신뢰와 능력의 위기에 빠진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다. 윤 대통령과의 관계를 상징하는 “친윤, 비윤, 절윤 그리고 창윤”이라는 신조어도 이제 끝이다.
관건은 영남의 선택이다. 국민의힘은 “85만여 당원의 40%가 영남”이라는 ‘영남 기반의 정당이다. 지역구 의원 90명 중 59명이 영남인데도 영남 출신의 현역의원이 한 명도 출마하지 않은 전당대회는 갈림길 앞에 선 영남의 고민을 상징한다. ‘윤석열 대통령과 보수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주목된다.
만성적 리더십 위기의 대안은 결국 ‘누가 시대의 가치와 세대 변화에 맞는 새 리더십’을 보이느냐다. 세상과 사람의 변화에 따르며 시대를 선도하는 정치의 역할을 누가 할 수 있느냐다. ‘보수의 노무현’이나 ‘한국의 레이건’이 필요하다. 지금 국민의힘은 ‘보수정당의 한 줄기를 공식적으로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보수 정치의 출발이 가능하도록 넓은 터전을 제공하는 공적 역할’ 앞에 있다.
신동아 8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