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칼 빼든 금융당국 “책무구조도로 CEO 책임 묻겠다”

[금융 인사이드] 100억 원대 금융사고, 상반기에만 5건

  • 손희정 이투데이 기자 sonhj1220@etoday.co.kr

    입력2024-07-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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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권 내부통제 개선… 책무구조도 의무 작성

    • 불완전 판매·횡령 ‘시스템 실패’ CEO 책임 명시

    • 2025년 1월 3일까지 제출… “기한 임박해서야 낼 것”

    • 긍정·부정 평가 엇갈려, 지속적·구체적 설계 필요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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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에 금융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향후 불완전판매나 횡령 등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최고경영자(CEO)에게 책임을 묻는다. 금융사는 임원별로 내부통제와 관련된 구체적 책임 영역을 작성한 ‘책무구조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동안 불명확하던 내부통제 책임 범위와 내용이 명확해지는 것. 당국은 소관 책무를 배정받은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다각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CEO 책임 회피 막는 내부통제 방안

    6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국내 은행장 간 간담회에 참석하기 앞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6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국내 은행장 간 간담회에 참석하기 앞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올해 상반기에만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에서 총 1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5건은 100억 원대 이상의 대형 금융사고다. 특히 최근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100억 원대 횡령 사건으로 인해 내부통제 강화가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은행은 대리급 직원 A씨가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100억 원 상당의 고객 대출금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연이은 금융사고의 원인으로 임직원의 인식 부족, 업무 관리와 조직문화 미흡을 꼽았다. 그동안 경영진과 이사회가 최종 책임자로서 인식이 부족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처벌 근거가 없어 책임을 물을 수 없었다는 것. 실제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선 불완전판매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지만 당시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 기준 준수가 미흡해도 관계자를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법원 판결로 인해 금융당국 제재가 취소된 전례가 있다.

    6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국내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6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국내 은행장 간담회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이 같은 행태를 근절하고자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금융권의 내부통제 제도 개선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내부통제는 금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사 임직원이 지켜야 하는 기준과 절차를 말한다.

    내부통제 제도 개선 방안 가운데 하나인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7월 3일 시행됐다. 책무구조도 도입을 골자로 한다. 책무구조도는 금융사의 대표이사 등 임원에게 담당 직무 관련 내부통제 관리 책임을 배분하고, 사고 발생 시 해당 임원에게 명확하게 책임을 지게 하는 내부통제 규율 체계다.

    임원의 이름과 직책, 책무 예시, 보고 체계 등을 자세히 기술한 일종의 ‘문서’다. 예컨대 CEO A씨는 ‘총괄책임’을, 최고재무관리자(CFO) B씨는 ‘회사의 재무경영’ 책무를, 최고기술책임자(CTO) C씨는 ‘정보·IT’ 등 책무를 기재한 구조도 형식의 문서를 만드는 것이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불분명했던 책임 소재가 경영진별 책임 영역으로 배분된다. 당국은 소관 책무를 배정받은 임원이 자발적으로 내부통제 시스템을 강화하고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다각적 조치를 취하면서 금융사고를 예방하리라 보고 있다.

    개정된 감독 규정에 따르면 책무구조도는 임원별 책무 내용을 기술한 문서인 ‘책무기술서’와 임원의 직책별 책무 체계를 일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도표인 ‘책무체계도’로 작성해야 한다. 또 이사회 의결일로부터 7영업일 이내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지주사와 은행은 유예기간 6개월 뒤 내년 1월 3일까지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내야 한다. 금융투자업자(증권사)와 보험사는 자산 규모 등에 따라 늦어도 2026년 7월 2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또 금융사 대표이사는 임원의 내부통제 관리 의무 수행을 점검해야 한다. 임직원의 법령 위반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인 또는 취약 분야에 대해 점검하고 위반이 장기화·반복되는 것을 방지하는 조치 등 내부통제 총괄관리를 조치해야 한다. 금융사는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수십 가지 책무 예시를 참고해 임원별 책무를 정한 뒤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금융위는 책무구조도의 빠른 안착을 위해 해설서를 마련했다. 해설서에는 책무구조도상 책무의 개념·배분·범위·이행·제재, 내부통제위원회 운영에 관한 금융권 질의 사항 등에 대한 답변 내용이 담겼다. 해설서에 따르면 책무는 ‘금융회사 또는 금융회사 임직원이 준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의 집행·운영에 대한 책임’으로 규정됐다.



    발등에 불 떨어진 금융지주·은행, 연말 제출 예상

    금융지주와 은행은 책무구조도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책무구조도 초안을 완성하고 외부 컨설팅을 통해 지속해서 보완하고 있다. 선제적으로 책무구조도에 대비한 곳은 신한금융이다. 5월 임직원 대상 설명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설명회에선 관련 법령 및 내규에 따라 임원의 책무를 누락, 중복 없이 도출, 점검하는 방법과 해외 선행 사례 분석을 통한 전사적 내부통제 관리 프로세스 개선 방안을 소개했다.

    ‌신한금융과 신한은행은 연내 책무구조도를 완성할 계획이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초안은 작성됐지만 가이드라인 등 추가로 나오는 내용을 반영해 보완하고 있다”면서 “제출 후 특정 사고가 발생했을 때 관련된 책임이 부여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이행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금융과 KB국민은행도 연내 책무구조도를 조기 도입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KB국민은행은 올해 1월부터 내부통제 제도개선 TFT(태스크포스팀)를 운영해 책무구조도 도입을 준비했으며 초안을 배포해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준법지원부 주관으로 책무구조도 관련 TF를 진행하고 있다. 부서 → 본부 → 그룹별 순서로 책무를 파악하기 위해 본부 내 전체 부서의 기획담당자 혹은 준법감시담당자와 관련 자료를 취합해 책무 도출을 진행하고 있다. 4월엔 그룹장과 본부 부서 부서장을 대상으로 책무구조도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도 책무구조도 작성 태스크포스팀(TFT)을 운영하며 대비하고 있다. 임원별 책무기술서와 책무체계도, 임원별 관리 조치를 포함한 책무구조도 초안을 작성했다. 개정 지배구조법령과 감독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반영해 업데이트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 임원이 관리 의무를 실효성 있게 이행할 수 있도록 임원별 체크리스트도 만들고 있다.

    ‌금융사들은 제출 기한에 임박해 책무구조도를 제출할 것으로 보인다. 현행법에 따르면 임원의 내부통제 등 관리 의무와 임원의 적극적 자격 요건 확인·공시·보고는 책무구조도 제출 이후 바로 시행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처벌을 받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으므로 기한이 임박한 시점에 제출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금융권의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시범 운영 기간 중 발생한 사고에 대해 제재를 면제하거나 당국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고려하고 있다.

    책무구조도 시행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금융사고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정준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존 체계에서는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부분이 있어 법적 제재가 어려웠다”면서 “내부통제를 하게 되면 책임 소재가 확실해져 규제와 감독의 명확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금융사 임원으로서도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모든 금융사고를 원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책무가 부여된 임원들이 영업점에 있는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을 적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발생한 금융사고 대부분은 사후 검사를 통해 발견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고 대부분이 영업점 직원의 개인적 일탈로 발생한다”며 “책무구조도로 내부통제가 강화된다 하더라도 범죄를 작정한 개인의 일탈을 사전에 막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갑론을박’ 형국… “규정 구체화, 지속 감시 필요”

    전문가들은 책무구조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운영 위험 요인에 대한 세부적 인식과 분류가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임원의 내부통제 책무 누락을 최소화하고 다양한 운영 위험 요인에 대한 관리 책무를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는 운영 위험 요인에 대한 세부적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며 “감독당국은 책무구조도를 통해 금융기관이 운영 위험 요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토대로 책무 기술 및 배분의 적절성을 평가하고 CEO의 총괄 관리 의무를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책무구조도가 실효성이 있으려면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하준경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책무구조도 설정이 당장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의도하는 방향과 다르게 갈 수 있다”며 “제3자를 내세워 처벌을 받게 하는 등 과거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꼼수가 없도록 제도 운용을 촘촘히 하고 꾸준히 감시해야 금융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융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었다. 정준혁 교수는 “적절한 당근과 채찍이 잘 작동해야 한다. 책무구조도와 금융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채찍이 정교해지는 것”이라면서 “책무구조도가 잘 작동했을 때에 맞는 인센티브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구체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책무구조도에 명시된 담당 임원만 제재하고 CEO에 대한 제재는 피해 가는 등 면죄부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CEO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금융사고의 규모나 성격을 감독 규정에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일관성 있게 작동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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