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vs 업체, 운동복 성능 놓고 3년째 소송
처음엔 ‘원단’ 검사, 납품하니 ‘완제품’ 검사
軍은 원단 바꿔치기 의심, 法 “제작공정 문제없어”
軍 의뢰 보고서 ‘원단과 완제품 성능 다를 수 있다’
“기준 미달 제품 납품했다”며 납품업체에 손배 청구
방사청 “기품원이 연구 보고서 알리지 않아 몰랐다”
‘오락가락’ 군수 납품 기준 도마에…
중증장애인시설이 제작해 군에 납품하던 육군 하계 운동복. [동아DB, Gettyimage]
‘신동아’가 입수한 ‘군 피복, 섬유류 이화학 특성 조사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단을 운동복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원단→열처리→완제품 공정을 거치며 원단의 수축 현상이 발생했다”며 “이는 제조 과정 중 수행되는 프린트 및 열처리 스팀 아이론(다림질)에 의한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사진 참조) 제조 과정을 거쳐 운동복이 됐을 때 원단 성능보다는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원단’ 검사한다더니 ‘완제품’ 검사한 방사청
이 문제는 2020년 12월 일부 운동복에서 물 빠짐 등의 현상이 발생해 언론에 보도되자 수면으로 드러났다. 당시 방사청은 운동복을 납품하는 13개 업체를 대상으로 성능검사를 실시했고, 13개 업체 모두가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를 근거로 2022년 9월에는 이들 업체에 대한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처분과 함께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국방기술품질원이 사단법인 KOTITI 시험연구원에 맡긴 연구용역 보고서 ‘군 피복, 섬유류 이화학 특성 조사분석 및 개선방안 연구’의 일부. 원단과 완제품 사이의 물성 변화에 대해 적혀 있다. [박세준 기자]
방사청은 재판 과정에서도 원단과 완제품(운동복)의 성능이 같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품원은 지난해 3월 원단과 완제품의 성능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KOTITI 시험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겼다. 연구는 실증 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새 원단을 구해 운동복을 만들며 직접 성능 변화를 측정한 뒤 지난해 12월 보고서를 기품원에 보냈다.
증거 제출했지만 보고서 내용 모른다?
‘신동아’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는 원단이 제조공정을 거치자 땀 견뢰도(염색 등이 물, 빛 등 외부 영향에 대한 내성), 염색 이염(移染·색 번짐) 등의 분야에서 기존 원단보다 0.5등급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261쪽 사진 참고) 직물의 성능은 1~5등급으로 분류하는데 수치가 낮을수록 성능이 낮아진다. 또한 이염 분야는 아세테이트, 나일론, 모 등의 소재에서 제조공정을 거치면서 원단보다 0.5~1등급 떨어졌다. 제조공정을 통해 자연스레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이 군이 의뢰한 보고서에서 확인된 것이다. 보고서에는 “군의 구매요구서는 완제품이 제조됐을 때 원단과 프린트(압착해서 원단에 인쇄한 그림) 간 이염 등에 대한 평가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도 쓰여 있다.
성능검사 기준을 ‘원단’에서 ‘완제품’으로 바꾼 데다 제조 과정에서 원단과 같은 등급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군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확인되면서 방사청의 오락가락 군수 행정도 도마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군은 재판 중 이러한 연구 보고서 내용을 전달받은 만큼 원단과 완제품의 성능 차이가 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방사청은 기품원에 ‘사실조회신청서’ 공문을 통해 “군용 여름 운동복 생산과정에서 원단의 물성치(성능)에 변화가 발생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관련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기품원은 ‘원단에서 운동복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땀 견뢰도 수치가 일부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첨부해 회신했다. 해당 문서에는 “(물성치 변화는 있었으나) 연구시험분석 결과(구매요구서가 정한 기준)를 충족하였으며, 제품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만큼의 이화학 변화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됨”이라고 쓰여 있었다. 성능 점수는 낮아졌지만 완제품은 기준을 충족했다는 의미였다.
납품업체 측은 올해 1월부터 기품원 측에 수차례 보고서 전문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견뢰도 수치가 일부 떨어진 부분이 있는 만큼 전문을 확인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지만 기품원 측은 중요한 내용은 가린 채 문서를 공개했다.
국방기술품질원이 재판부에 제출한 (사)KOTITI 시험연구원 연구용역 보고서의 대부분이 검게 가려져 있다. [박세준 기자]
방사청, 패소 이어지자 손배 청구
납품업체 관계자는 “애당초 방사청은 원단 기준을 4등급 이상으로 규정해 업체들은 4등급 원단을 사용했는데 완제품(운동복)의 성능검사 결과가 4등급 아래로 나오자 부적격 판정을 했다”며 “결국 이번 보고서를 통해 업체들이 나쁜 원단을 쓴 게 아니라 제조 과정에서 일부 성능이 떨어진다는 것이 확인됐다. 성능검사를 원단에서 완제품으로 바꾼 것도 문제인데 원단과 완제품의 등급이 같아야 한다는 방사청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섬유업계 관계자는 “군의 완제품 성능 기준이 4등급이라면 원단은 이보다 높은 등급의 것을 사용해야 등급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기준을 맞출 수 있다”며 “KOTITI 실험에서 사용한 원단 성능은 군이 요구하는 완제품 성능 기준보다 높았을 것이다. 결국 실험 당시에는 좋은 원단을 사용해서 성능 기준 합격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이라 분석했다.
앞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업체들은 방사청을 상대로 각각 ‘줄소송’에 나섰고, 7개 업체가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제4부는 지난해 10월 13일 판결문에서 “원단의 품질기준은 완제품 상태에 적용될 수 없고, 그 외 원고(납품업체)의 제작 공정에 별다른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검찰도 2022년 7월 이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지만, 방사청은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지난 2월 각 업체에 29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논란을 낳았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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