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사람에게 충성하는 문화’ 악용해온 이재명

[강준만의 회색지대] 정치팬덤이 정당 먹어버린 민주당의 비극⑤

  • 강준만 전북대 명예교수

    입력2024-08-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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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노·친문 팬덤정치는 되고 친명은 안된다? 語不成說

    • ‘진영 스피커=정치군수업자들’이 팬덤정치 매개 역할

    • 증오·혐오를 주요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 바람직한가

    • 李, ‘이재명의 민주당’ 공언하며 추앙의 대상 되길 원해

    • 이재명 팬덤정치 제1 조력자=윤석열, 그리고 김건희

    • 윤석열·이재명 합동으로 국민성에 남길 깊은 상흔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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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있다. 한국 팬덤정치의 최고 이론가인 이재명과 맞짱을 뜰 수 있을 정도로 팬덤정치에 해박한 민주당 의원 정청래가 즐겨 쓰는 말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는 늘 팬덤정치 비판자들에게 “억울하면 당신도 팬덤 만들어”라는 취지의 말을 하곤 했다. 그 말에 충실하기 위해서인지 그는 팬덤의 비위를 맞추는 일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아니, 매우 당당하다.

    정청래는 2년 전인 2022년 6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팬덤정치’ 결별을 주장하는 당내 의원들을 향해 “팬덤을 욕할 시간에 ‘나는 왜 팬덤이 형성되지 않는가?’ 한 번쯤 성찰해 보시라”며 “팬덤은 무죄다. 팬들 많은 이재명은 무죄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정치인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과연 그런가. 인내심을 갖고 그의 논지를 좀 더 경청해 보자.

    ‘소통·대화·타협·화합·협치’ 팬덤이 가능한가

    정청래는 “축구장에서 손흥민 팬클럽의 응원 소리가 시끄럽다고 팬들을 입장시키지 말자고 주장할 것인가”라며 “손흥민이 부러우면 실력을 쌓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원들도 이재명을 응원하는 팬덤이 부러우면 이재명처럼 실력을 연마하고 지지받을 생각을 해야 한다”며 “괜한 시기와 질투심으로 이재명을 응원하는 국민과 당원을 향해 눈 흘기지 마시라”고 덧붙였다.

    정청래가 강조하는 ‘실력’의 정체가 궁금하다. 민주당 의원들 가운데 “누가 더 많은 팬을 갖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톱10’을 뽑아보자. 그건 순전히 실력순인가? 실력이라면 어떤 실력인가. 팬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증오·혐오의 선동과는 전혀 무관한 실력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정직하게 답해 주기 바란다. 정청래는 팬들이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팬들이 싫어하는 사람이나 세력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독설을 잘하기 때문 아닌가? 정청래가 소통·대화·타협·화합·협치 등을 부르짖어도 팬들이 환호할까. 물론 정청래는 자신은 소통·대화·타협·화합·협치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고 답할 게다. 이해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드러난다.

    팬덤은 특정 콘텐츠 친화적이라는 사실이다. 민주당을 놓고 보자면 무조건 이재명을 찬양해야만 이재명 팬덤 우산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재명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더라도 쓴소리를 하는 건 절대 금기다. 이재명 체제의 제2인자 또는 적어도 서열 5위권에 속하는 정청래일지라도 이재명에게 쓴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날아간다. 법사위원장 자리도 날아가고 다음 공천도 못 받는다. 이미 주어진 경로와 콘텐츠를 따라가야만 하는 숙명, 그걸 실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청래는 당내 강경파 의원 모임인 ‘처럼회’ 논란에 대해서도 “처럼회를 욕하는 것까지는 백번 양보해 이해하겠다”며 “그러나 당원과 지지자들이 왜 처럼회 회원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며 지지하는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다. 소통·대화·타협·화합·협치를 부르짖어 후원금을 많이 받은 의원을 단 한 명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없을 게다. 처럼회는 ‘윤석열 때리기’에 전념한 의원들이기 때문에 후원금을 보내며 지지하는 당원과 지지자가 많았다는 걸 정녕 모르는가.

    정치군수업자가 증오·혐오를 외면할 수 있나

    정청래의 주장 중에 귀담아들을 것도 있기는 하다. 그는 2024년 2월 28일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비명계 공천 학살 논란’을 두고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깃발과 상징이 계승됐다”며 “친노, 친문은 되고 친명은 안 되냐”고 물었다. 그는 “4년 전 총선에서 친문 아닌 국회의원 후보가 있었나. 다 문재인 이름 걸고 국회의원 되고 당선되지 않았나. 그런데 이재명은 안 되나”라며 “이것은 시대 흐름에 대한 몰이해고 역행”이라고 강조했다.

    친노·친문 팬덤정치의 수혜를 누린 사람들이 이제 와서 친명 팬덤정치를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점에선 수긍할 수 있다. 친노·친문이 경청해야 할 주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 항변은 친노·친문·친명을 가리지 않고 모든 유형의 팬덤정치에 대한 이의 제기엔 답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시대 흐름, 시대정신’이라는 말로 포장을 씌워 미화하더라도 이른바 ‘계파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엔 그 계파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을 피해자나 희생자로 만들기 마련이라는 점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정청래가 팬덤정치 이론가를 자처하고 나섰으니, 그에게 팬덤정치로 먹고사는 정치군수업자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정치군수업자는 내가 만든 말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을 지낸 표창원이 ‘게으른 정의: 표창원이 대한민국 정치에 던지는 직설’(2021)에서 “극단적, 일방적으로 자기 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가리켜 붙인 이름이다. 정말 적합하고 탁월한 표현이라 생각해 나도 즐겨 쓰고 있다.

    민주당 진영의 정치군수업자 중 1인자는 단연 김어준이다. 민주당의 실세이던 이해찬이 ‘민주당의 브레인’으로 모실 정도였다. 직종이 좀 다르긴 하지만, 민주당 진영 내 종합 권력 서열로 따지자면 ‘톱5’ 안에는 들어갈 정도로 김어준의 권력은 막강하다. 이재명 팬덤을 움직이는 실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안달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어이없는 일까지 벌어진다.

    3월 15일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딴지방송국’ 방송에서 ‘수도권 여전사 삼인방’ 주제 아래 출연한 이언주·안귀령·전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총선 후보가 김어준 씨의 “차렷, 절” 구호에 맞춰 큰절하는 모습. [딴지방송국 유튜브]

    3월 15일 방송인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딴지방송국’ 방송에서 ‘수도권 여전사 삼인방’ 주제 아래 출연한 이언주·안귀령·전현희 당시 더불어민주당 총선 후보가 김어준 씨의 “차렷, 절” 구호에 맞춰 큰절하는 모습. [딴지방송국 유튜브]

    ‌3월 15일 ‘수도권 여전사 삼인방’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김어준의 유튜브 방송은 “아, 이럴 수가!”라는 탄식마저 자아내게 만들었다. 다소 예능적 요소를 가미한 것이었다곤 하지만, 민주당 총선 여성 후보 3인방(전현희, 이언주, 안귀령)이 김어준의 “차렷, 절” 구호에 일제히 납작 엎드리며 큰절을 한 건 보기에 민망했다. 해당 모습을 접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엇갈렸다. 친야 성향의 커뮤니티 ‘클리앙’ 유저들은 “후원을 다 해드려야겠다”며 강한 호감을 표시한 반면, 우파 성향의 에펨코리아 유저들은 “국회의원(후보)에게 절하라고 시키는 게 김어준이다”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정청래는 그간 ‘형’ 노릇을 자처하면서 김어준에 대해 극찬을 해온 처지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겠지만, 내가 묻고 싶은 건 김어준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아니다. 예능적 가치로만 보자면, 나 역시 “김어준 귀한 줄 알아야 한다”는 정청래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정치가 언제까지 예능일 수는 없잖은가. 어떤 공적 감시도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정치군수업자들이 팬덤정치의 매개 역할을 하면서 주로 적대세력이나 인물에 대한 증오·혐오를 주요 상품으로 판매하는 것이 한국 정치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겠느냐는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는 ‘지도자 추종주의’

    4·10 총선은 민주당의 대승, 국민의힘의 참패로 끝났지만, 선거의 승패는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은 소수의 중도파가 결정했다. 국민의힘은 전체 득표수 기준으로 2년 전 대선 땐 24만 표(0.73%포인트) 차이로 승리했지만, 이번 총선에선 157만 표(5.4%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소선거구제의 마법은 5.4%포인트 차이를 의석수 기준으로 ‘108대 175’, 다른 야당들도 윤석열 정권에 적대적이라는 걸 감안하자면 사실상 ‘108대 192’의 구도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선거에서 승리는 모든 걸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마련이지만, 이 총선은 그렇게 말하기는 어려웠다. 국민의힘, 아니 대통령 윤석열이 스스로 패배하기 위해 매우 적극적인 자해(自害)를 저질렀다는 데에 대체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윤석열과 국민의힘이 처참한 상황으로 내몰린 건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재명의 팬덤정치가 긍정적 인정을 받은 건 아니었다.

    민주당 당선자 175명 중 범친명계 당선자는 127명으로(‘시사저널’ 분류), 순도 72.6%를 자랑하는 명실상부한 ‘이재명의 민주당’이 완성됐다. 늘 민주당의 변방에 머물던 아웃사이더가 10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것은 지지자들에겐 놀라운 ‘인간 승리’ 미담이었겠지만, 달리 보는 시각도 가능했다. 진중권은 언젠가 “(이재명은) 인간의 욕망에 대한 냉철한 계산하에 타인들을 조종해 제 이익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능력 못지않게 중요한 건 그런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토양일 게다.

    한국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사람에게 충성하는 문화’가 강한 나라다. 그런 문화의 엽기적 극단이 동족인 북한이 보여준 권력의 ‘3대 세습’과 지도자 우상화다. 한국은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자신이 추종하는 지도자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충성하는 게 문화로 고착된 나라인 건 분명하다. 충성은 아닐망정 적어도 이견을 강하게 주장해선 안 된다는 게 정치권의 원칙처럼 작동하고 있기에 ‘배신’과 ‘변절’이라는 부족주의 언어가 지금도 한국 정치판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의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윤 총장 부부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검사 재임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뉴시스]

    2019년 7월 25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의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윤 총장 부부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 총장은 검사 재임 시절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해 전국적 인기를 얻었다. [뉴시스]

    ‌대통령 윤석열이 10여 년 전 검사 시절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발언으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것도 한국이 징그러울 정도로 ‘사람에게 충성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후 여당 정치인들과 고위 공직자들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권위주의적 인물로 돌변했다.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 게다. 충성은 받되 하진 않겠다는 이중 기준 또는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돈다”는 극단적인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을 사람들이 미처 몰랐을 뿐이다. 윤석열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꿔온 보통 사람들의 희망과 열망을 배신하고 모욕하는 죄를 저질렀건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반면 이재명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문화’를 비판한 적이 없다. 그는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을 정도로 자신이 민주당에서 추앙의 대상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그의 전기를 읽을 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면서 인간 이재명과 심리적 일체감을 느끼며 아니 흐느끼며 읽었다”(정청래)는 고백까지 나오는 것이겠지만,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지난 호에서 지적했듯이, 이재명의 경기지사 시절 비서실장이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의힘 의원 유승민은 “다섯 명째 소중한 생명이 죽었다”며 “정치고 뭐고 다 떠나서 인간으로서 더 이상의 희생은 막아야 할 책임이 이재명 대표 당신에게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재명은 모든 걸 ‘검찰 탓’으로 돌렸다.

    “윤석열·김건희만 믿고 막 까분다”

    특정 정치인과 정치세력에 대한 충성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는 반대편에 있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증오·혐오의 반작용일 경우가 많다. 이재명은 비록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패배했을망정, 그런 관점에선 윤석열을 상대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행운아다. 윤석열은 스스로 유권자들이 반윤(反尹) 증오·혐오의 정서를 발산할 수 있는 사건과 기회를 풍성하게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재명 팬덤정치의 제1조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재명은 제3차 대선 도전을 위해 팬덤정치의 동력은 윤석열로부터 공급받고, 당 장악을 위한 방법은 ‘문재인 모델’을 강화하는 방식을 취했다. 2015년 민주당 대표 문재인은 온라인 당원제를 도입해 2년 만에 당원 수를 24만 명에서 71만 명으로 크게 늘리며 당 장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 수법을 원용하면서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다.

    “당원분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에너지를 키우는 흐름으로 가야 한다. (국회의장 후보 경선 당시) 당원과 의원의 권리가 충돌해 당원이 2만 명 탈당해 2000명밖에 돌아오지 않은 이유를 봐야 한다. 당원 주권, 당원 중심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6월 5일 이재명이 당헌·당규 개정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는 전국지역위원장·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한 말이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강성 당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추미애를 제친 우원식의 승리에 반발하는 당원들을 달랠 해법으로 ‘국회의장 후보, 원내대표 경선에 권리당원 투표 반영’을 밀어붙이겠다는 뜻이었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를 맡은 김현철 변호사가 6월 7일 경기 수원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전 부지사의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를 맡은 김현철 변호사가 6월 7일 경기 수원시 수원지방법원에서 이 전 부지사의 1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6월 7일 이재명의 경기도지사 시절 평화부지사였던 이화영이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1심 재판에서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받자, 민주당 의원들은 앞다투어 판사를 비난하면서 ‘법 왜곡 판검사 처벌법’ ‘판사 선출제’까지 꺼내 들었고, 강성 지지자들은 ‘판사 탄핵’을 외치고 나섰다. 민주당 내부에선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검사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강성 당원들이 할 일이 많아진 셈이었다.

    이재명이 약속했던 당원 중심 정당은 6월 10일 당헌·당규 개정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 때 당원 투표 20% 반영, 당권·대권 분리 규정에 예외, 부정부패 혐의로 기소될 경우 당무 배제 규정 삭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JTBC는 리포트에서 “당장 당 안팎에선 ‘이시황제나 다름없다’ ‘일극 체제가 우려된다’ 등의 지적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특히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선출 때 당원 투표 20% 반영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의 선을 넘은 것이었기에 원조 친명계 핵심 의원으로 꼽힌 김영진마저 동아일보(6월 11일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 조항이 도입되면 후보자들이 어떻게 선거운동을 하겠나. 결국 김어준 박시영 등 대형 유튜버들의 방송에 매일 나가서 입에 발린 소리나 할 것이다. 그러면 올바른 정치를 하기 어려운 구조로 간다. 추미애 의원을 국회의장 만들자는 의견도 4월 말까지 당내에 없었다. 대형 유튜버들이 만들어낸 걸 당원들의 의견이라고 할 수 있나. 유튜버들 장사를 우리가 왜 쫓아가냐.”

    민주당은 이미 김어준 박시영 등 대형 유튜버들에게 장악됐고, 이는 곧 이재명의 뜻이었음을 어이하랴. 민주당 원로 유인태가 이재명 맞춤형 당헌·당규 개정과 관련해 정곡을 찌르는 말을 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달라진 모습을 보이면 이재명 대표나 민주당이 지금 같은 그 따위 짓을 하겠는가”라면서 “민주당이 저렇게 해도 되는 게 든든한 분이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가 저러고 있으니까 그것만 믿고 막 까분다”고 어이없어했다.

    이재명의 침대재판·판사겁박·검사탄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7월 10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8·18 전당대회 당대표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6월 12일 검찰이 이재명을 쌍방울 대북 송금과 관련한 제3자뇌물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하자, 다음 날 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는 “누가 봐도 별건 기소에 조작 기소”라며 “지긋지긋하고 극악무도한 정치 검찰의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했다. 6월 14일 이재명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관련 재판에 출석하며 기자들을 향해 “진실을 보도하기는커녕, 마치 검찰의 애완견처럼 주는 정보 받아서 열심히 왜곡 조작하고 있지 않으냐”며 언론을 적대시하는 강경 발언에 나섰다.

    이재명의 대응 방안 중 하나는 7월 2일 민주당이 이재명 수사 검사 4명에 대한 탄핵 소추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곧바로 소추안을 발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그간 재판을 질질 끄는 ‘침대재판’과 판사를 겁박하는 묘기를 원 없이 보여주더니 이젠 곧장 이재명 수사와 관련된 검사들에 대한 탄핵으로 돌입한 것이다. 사실 이건 웃어야 할 코미디 같은 사건이다. 경향신문이 잘 지적했듯이, “탄핵소추안이 구체적 사실관계보다는 두루뭉술한 의혹 위주인 데다 사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마저 포함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검사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음에도 민주당이 밀어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해당 검사들이 최소한 몇 달간 직무가 정지돼 이재명 사건 수사와 공판 동력이 떨어지게 된다. 개인적으로도 월급이 기본급만 나오는 데다 변호사 수임비까지 써야 하니 ‘변호사 개업하고 말지’란 생각이 들게 될 수도 있다. 민주당이 노리는 게 이거다. 검사들의 사기를 꺾어 이재명 사건 수사와 재판을 한없이 공전시키려는 것이다.”(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찬호)

    민주당은 검찰의 강한 반발에 대해 “검찰은 김건희 애완견”이라거나 “이원석 검찰총장은 식물 검찰총장”이라고 대응했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증오·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윤석열·김건희가 이재명과 민주당의 믿는 구석이라는 걸 시사해 준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거둔 압승을 통해 이 두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 무슨 일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면허를 획득했다고 믿게 됐으니 말이다. 유인태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윤석열 대통령, 김건희 여사가 저러고 있으니까 그것만 믿고 막 까분다”는 것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윤석열·김건희의 극단적 어리석음을 믿고, 자신들이 창출해 낸 검찰의 악마 이미지를 믿고, 빼앗긴 밥그릇을 다시 찾으려는 사람들의 욕망을 믿고, 충성스러운 팬덤의 힘을 믿으면서 앞으로 계속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투쟁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그들은 검찰이 악마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악마 자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러려면 공정하게 문재인 정권의 탄생이 그런 악마의 헌신과 술수에 의해 탄생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국정농단을 응징하고 ‘박근혜 죽이기’를 완성함으로써 민주당에 꽃길을 깔아준 검찰이 바로 지금의 검찰이다. 그때는 정의롭고 위대했지만, 지금은 불의의 악마인가? 이재명과 민주당 정치인들은 ‘내로남불’을 제1의 신조로 떠받들면서 국민 인성과 윤리에 큰 해악을 초래했으며, ‘사람에게 충성하는 문화’를 악용해 민주당을 특정인을 추앙하는 팬덤 공동체로 전락시켰으며,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대 세력에 대한 증오·혐오를 선동해 온 죄를 저질렀다. 이 세상은 윤석열과 이재명의 편가르기로 양분될 수 없다는 걸 정녕 모르는가.

    권력에 열광하는 정치 팬덤의 속성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짓자. 팬덤정치를 굳이 긍정적으로 보자면, 정치인들이 독점하던 권력에 일반 시민들이 같이 먹자고 숟가락을 들이민 것이다. 팬덤정치의 본질은 권력 게임이다. 잘 생각해 보시라.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외치던 친문 팬덤이 얼마나 극성스럽고 배타적이었던가.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친문 팬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그들은 이재명 체제하에서 친문 정치인들이 모진 탄압을 받으면서 숙청당할 때 왜 아무런 말이 없었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젠 아무런 권력이 없는 문재인과 친문 정치인을 추앙하는 건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정치팬덤의 속성이다. “개딸들은 이재명 대표와 정치 운명을 같이하겠죠. 이재명 대표가 사법적(司法的)으로 어떤 판단을 받느냐에 따라서 개딸의 미래는 결정돼 있는 겁니다. 그만큼 지속성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또 다른 정치인이 나오면 그쪽으로 가겠죠.”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병진이 ‘월간조선’(2023년 11월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재명이 사법 처리되면 ‘재판이 불공정했다’며 들고일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그의 답은 이렇다.

    “일시적으로 반발이 있겠지만 곧 스러질 것으로 봅니다. 왜냐하면, 사법처리가 되면 제도적으로 개인의 정치적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이재명의 정치적 미래가 사라지는 순간 이재명은 쉽게 잊히는 존재가 되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딸의 행태가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예를 들어 대깨문은 사라졌지만 개딸이 나왔잖아요? 다른 인물이 나타났을 때 그쪽으로 몰려갈 가능성이 큽니다. (…) 정치인 중에서 개딸을 주목하는 인물이 있을 겁니다. 새로운 기회가 오면 길 잃은 사람들을 선점(先占)하려는 거죠.”

    그렇다. 그게 게임의 법칙이다. 전부는 아닐망정 개딸의 상당수는 한때 ‘문빠’였다. 팬덤의 정치적 지도자 역할을 하는 김어준을 보라. 그는 문빠의 지도자였지만, 지금은 개딸의 지도자가 아닌가. 정치 팬덤이 중요하게 여기는 건 ‘권력감정’이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권력감정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신경 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감정이다.” ‘수박’을 외치면서 정치인들을 벌벌 떨게 만드는 재미, 자신의 활동에 의해 정치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정치적 효능감’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심리적 혜택이자 축복이다. 그걸 문재인에게서 얻건 이재명에게서 얻건 조국에게서 얻건 그게 무슨 상관이랴.

    이재명의 사법 처리는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다. 윤석열이 집권 이후 계속 저질러온 자해(自害) 습관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윤석열은 어떤 정치적 행위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그걸 판별할 능력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지난 총선도 중도 유권자들이 싫어할 일만 골라서 하느라 그렇게 말아먹은 게 아니겠는가. 공적 마인드가 없는 부인을 자신의 우상으로 섬기면서 그 우상을 기쁘게 해주는 걸 국정 운영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윤석열의 죄는 응징당해 마땅하지만, 진짜 문제는 윤석열이 이재명을 도와 합동으로 국민성에 남길 깊은 상흔이다.

    이미 싸움은 ‘이재명 대 윤석열’ 또는 ‘민주당 대 국민의힘’의 싸움이 아니다. 싸움의 무대는 그간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에 눈을 감고 ‘검찰독재’라는 주문만 외우면서 충성을 바친 사람들의 내면세계로 옮겨갔다. 이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이거니와 도덕적인 사람들이었다는 걸 증명하고, 명예를 보호하기 위해 ‘닥치고 이재명’을 외칠 수밖에 없다. 이재명의 사법 리스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악마와 같은 검찰이 조작해 낸 허구라는 걸 믿어야만 하고, 그 믿음을 실현해야만 한다. 애초부터 이기적인 이권 투쟁의 모드로 이 문제에 접근했던 사람들이 그게 가능하게끔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진실은 의외로 끈질긴 것이어서 그들의 마음에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시(詩)로 파시즘에 맞서 싸웠던 영국 시인 세실 데이 루이스는 “정직한 꿈을 꾸며 살았던 우리가 나쁜 사람들을 더욱 나쁜 사람들과 비교해 옹호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논리다”라고 개탄했다지만, 지금 우리가 바로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편가르기’의 광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선 정치의 목적은 ‘반대편 타도’로 전락하고 만다. 잘못된 모든 것은 ‘반대편 탓’으로 돌리고, 우리 편에 대한 내부 비판은 무조건 ‘배신’과 ‘변절’로 매도하는 광란의 수렁에선 안온한 소속감과 만족감을 제공하는 진영과 팬덤의 힘을 믿어야만 한다.

    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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