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첫 말라리아 위험지역 13개 구 선포
양천구‧강서구엔 ‘경보’… 주민 불안 고조
인원 적은데 비 잦아, 지자체 방역 어려워
전문가 “장마철 끝난 지금 방역이 가장 중요”
7월 29일 말라리아 경보지역인 서울시 강서구 한 마트에 모기 기피제가 가득 비치돼있다. [전혜빈 기자]
7월 29일 저녁 서울 양천구 학원가 앞에서 만난 A(59) 씨는 자신이 찬 모기퇴치 팔찌를 보여주며 말을 이어갔다. “모기퇴치 스티커나 모기퇴치 팔찌도 2주 전 약국에서 처음 사봤다”며 “말라리아 경보가 내려 올해 유난히 모기퇴치에 신경을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양천구에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말라리아 감염자가 여러 명 생겼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서울에 말라리아 비상등이 켜졌다. 말라리아는 일본뇌염, 매독 등과 함께 제3급 법정 감염병으로 분류된다. 말라리아에 걸리면 고열, 오한, 무기력증, 설사 등의 증세가 나타난다. 치사율은 0.1% 수준으로 낮지만 임산부·어린이 등 노약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어 주의를 요한다.
질병관리청 감염병포털에 따르면 7월 31일 기준 올해 국내에서 발생한 말라리아 환자는 모두 387명이다. 말라리아가 주로 경기 북부와 강원 등 휴전선 근처에서 발생해 왔다면 이번엔 서울 도심까지 확산하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다. 감염자 387명 가운데 67명(17.3%)가 서울에서 나왔다. 지난해 말라리아 위험지역은 인천, 경기, 강원 내 30곳으로 서울은 포함되지 않았다. 올해는 6월에 서울 내 13개 구(강서·마포·종로·성북·강북·도봉·노원·중랑·광진·강동·양천·구로)가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포됐다.
특히 7월 9일 양천구엔 말라리아 군집사례가 확인돼 첫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말라리아 경보는 전국 말라리아 주의보 발령 이후 첫 군집사례(위험지역 내에서 2명 이상의 환자가 14일 이내 발생하고, 그들의 거주지 거리가 1㎞ 이내인 경우)가 발생했을 때 발령된다. 22일엔 강서구에도 군집사례가 발견돼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신상엽 한국의학연구소 수석상임연구위원은 “군집사례가 발견됐다면 해당 지역에는 말라리아 모기가 여전히 생존해 있어 그로 인해 말라리아가 유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는 말라리아 ‘청정지역’이 아니게 된 서울이지만 인력 부족, 기상 상황 등으로 방역은 여의치 않다. 이에 시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장마 이후인 지금부터가 중요한 시점”이라며 “방역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 종일 방역하는데도 인력 부족”
7월 24일 서울 강서구 공암나루 근린공원에서 말라리아 위험지역 방역담당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뉴스1]
강서구 관계자는 “2명씩 3팀을 구성, 총 6명의 인원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인원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빽빽한 방역 일정과 적은 인원으로 방역단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토로했다. 이어 “오전 9시에 출근해 퇴근 때까지 밥만 겨우 먹고 종일 바쁘게 방역작업 하는 것이 요즘 일상”이라며 “밀린 민원도 많고 말라리아 감염 방역, 하절기 특수 방역 등 해야 할 작업이 많아 지금이 가장 바쁘다”고 덧붙였다.
중랑구 관계자는 “방역 인원이 총 4명에 불과하다”며 “이 인원이 주 2회씩 취약지역을 방역하는 데다 민원 발생 지역의 방역까지 맡고 있어 일정 소화가 쉽지 않다”며 “하루 종일 방역만 할 정도”라고 말했다.
각 구는 방역 인원을 보충하기 위해 ‘주민자치 방역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 역시 역부족이다. 주민자치 방역단은 새마을 방역단, 마을 사랑 방역단 등 구마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주민의 봉사에 기반한 방역 단체다. 구별로 평균 100여 명의 인원으로 구성돼 있다. 대개 한 달에 평균 4~5회 ‘분무 살수 방식’으로 방역을 실시한다. 각 동네의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활동하는 만큼 외진 곳까지 꼼꼼히 방역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봉사 개념으로 방역이 이뤄져 방역 활동을 강제할 수 없기에 한계가 따른다.
오락가락한 기상 상황도 방역에 어려움을 더한다. 방역은 차량에서 살충제를 살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비가 오거나 강풍이 불 경우 약이 떠내려거나 흩어져 효과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양천구 관계자는 “오늘(7월 29일)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중간에 방역을 철수했고,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해서 방역 계획이 없다”며 “기상 상황을 예측할 수 없어 정확한 방역 날짜를 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평구 관계자 역시 “우기에는 방역 작업을 못한다”며 “비 오는 날을 빼고 되도록 매일 작업을 나가는 방식으로 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민 불안 증폭… “방역, 지금부터가 더 중요”
이러한 방역 상황으로 인해 말라리아 경보 지역인 양천구와 강서구 주민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29일 오후 9시께 서울시 강서구 한 마트에서 만난 B(32) 씨는 “9개월 된 아이가 혹여나 말라리아에 감염될까봐 불안함이 크다”며 “나름의 방식으로 모기를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땀이 나면 모기가 좋아한다고들 해서 최대한 나와 아이가 땀이 안 나도록 가까운 곳도 차로 이동하고 마트나 백화점 등 실내에서만 활동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양천구 한 공원에서 만난 주민 C(27) 씨도 “원래 집에 바람이 잘 불어서 에어컨 없이 창문을 열고 여름을 났는데, 올해엔 말라리아 때문에 창문을 닫고 생활하려고 에어컨을 새로 샀다”며 “모기가 들어올까 걱정돼 방충망도 새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양천구 주민 이연옥(49) 씨 역시 “말라리아 때문에 걱정이 많다”며 “일주일 전부터 소독수를 사서 모든 가족이 외출 전후로 옷에 소독수를 뿌리고 집의 배수관도 소독수로 살균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방역에 역량을 더 집중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지난해 겨울철 습도가 높아 월동 모기들이 살아남기에 유리했고, 이로 인해 말라리아 매개 모기의 숫자가 빠르게 증가했다”며 “많아진 모기 개체수에 맞게 철저한 방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올해와 내년 추가적인 환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면 장마철이 지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상엽 수석상임연구위원은 “과거엔 한강 이북 쪽에만 산발적으로 환자들이 발생했으나 올해에 유독 한강 이남에서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는 말라리아가 토착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한 예방책으로 “장마철 이후 물웅덩이나 생활 쓰레기에 물이 고인 곳이 많아진다. 이런 곳에 알을 까지 못하게 유충구제제로 알을 못 낳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시민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도 필요성을 지적하며 “한강 이남 지역도 더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울 등 수도권 시민들이 본인이 위험지역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야 피해를 최소화 할 수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