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셀센, 국대 떠나 두바이에 캠프…상금 1위

• 파리 올림픽에선 국대팀과 ‘쿨하게’ 금메달

• 후원사에 목 맨 협회…‘빨대 시스템’으론 안 된다

<1편 ‘‘여제’ 안세영이 폭발한 진짜 이유‘ (https://shindonga.donga.com/society/article/all/13/5105047/1) 기사와 이어집니다.>

배드민턴 쳐 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재미에 꼴깍, 그만 침이 넘어간다. 첫새벽, 라켓 잡는 그 설렘에 밤새 뒤척인다. 손바닥이 간질간질 안달한다. 그렇게 달려간 동네배드민턴장은 이미 새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다. 셔틀콕은 새다. 새는 바람을 따라 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잠시 내려앉을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새들을 잡으러, 까르르 이리 몰리고, 우르르 저리 달린다. ‘그물 라켓’을 허공에 마구 휘둘러 댄다.

배드민턴의 꽃은 단식

그렇다. 배드민턴의 꽃은 누가 뭐래도 단식이다. 올림픽 남녀단식 우승자야말로 ‘꽃 중의 꽃’이다. 그만큼 올림픽 단식우승은 ‘하늘이 점지해 준 자’만이 이룰 수 있다. 그런데 그 어려운 올림픽 금메달을 두 번이나 따낸 선수가 있다. 이번 파리올림픽 남자 단식 챔피언 덴마크의 빅토르 악셀센(30)이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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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승에서 태국의 쿤라부트 비티드사른을 2-0(21-11, 21-11)으로 가볍게 꺾었다. 악셀센은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중국의 첸룽을 2-0(21-15, 21-12)으로 누르고 금메달을 따냈다. 첸룽은 2016 리우 올림픽을 제패한 ‘디펜딩 챔피언’이다. 악셀센이 올림픽 2회 연속 금자탑(리우 올림픽에선 동메달)을 쌓은 것이다. 이는 ‘절대 무림지존’으로 불렸던 중국의 린단과 버금간다. 린단은 2008 베이징 올림픽과 2012 런던 올림픽을 연속으로 제패했다. 세계선수권에선 무려 5번이나 우승했다(악셀센은 2회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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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때부터 모두 9번 치러졌다. 하지만 2회 연속 우승자는 단식 통틀어 린단과 악셀센 그리고 중국의 여자 선수 장닝 3명뿐이다. 국가별로 보면 남자단식은 중국 4회, 덴마크 3회, 인도네시아 2회. 여자단식은 중국 5회, 한국 2회, 인도네시아 2회이다. 덴마크는 일찍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단식에서 포울에리크 회위에르가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그는 2013년부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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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센은 194㎝의 건장한 신장을 가진 오른손잡이다. 천둥 같은 강스매시에 찰거머리처럼 질기디 질긴 수비가 강점이다. 상대는 초반 몇 합을 겨뤄보고 그만 질려버린다. 엄청난 벽이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것이다.

두바이에 캠프 차린 악셀센…국대팀과 ‘쿨하게’ 금메달

악셀센은 8월 13일 현재 국제대회 550승 154패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폐막한 파리 올림픽 얼마 전까지 183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다. 이는 말레이시아 영웅 리총웨이의 398주와 린단의 211주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리총웨이는 고비 때마다 린단에 밀려 3연속 올림픽 은메달과 3연속 세계선수권 2위를 차지한 선수다. 하늘은 사마의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왜 또 제갈공명은 내놓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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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도쿄올림픽 직후, 악셀센은 느닷없이 덴마크 국가대표팀을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표팀은 “아쉽다. 두바이로 이사하기로 한 그의 결정과 새로운 영감에 대한 그의 열망을 존중한다. 덴마크협회는 그의 결정을 협회와의 협력이나 협회 엘리트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의 표현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쿨하게 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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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센은 두바이에 훈련캠프를 차렸다. 이른바 ‘팀 악셀센’을 꾸린 것이다. 매니저는 악셀센의 아버지가 맡았다. 그의 여자 친구 아버지는 코치진으로 합류했다. 여자 친구 나탈리아 코크 로데도 배드민턴선수였다. 그녀의 아버지 헨릭 로데는 덴마크리그팀 수석코치였다. 악셀센의 여자 친구 코크 로데는 2020년, 2022년 연달아 딸을 낳았다. 악셀센은 다양한 스폰서 계약을 맺고 수백만 달러(추정)의 수입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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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센은 왜 두바이에 캠프를 차렸을까. 그것은 각종 주요 국제대회가 대부분 아시아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바이에선 이동 거리가 짧고 교통이 편리하다. 더구나 악셀센은 천식과 심각한 비염을 달고 살았다. 이에 차가운 덴마크 날씨 앞에서는 ‘젬병’이었다. 봄마다 꽃가루와 먼지 알레르기로 생난리를 치렀다. 물론 개인 캠프는 악셀센에게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자신의 리듬에 맞춰 휴식과 훈련을 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악셀센은 2021년 이래 결승전에 28번 올라 24번 승리했다. 2023년 각종 대회 상금도 64만 5095달러로 1위를 차지했다(안세영 62만8020달러 2위, 서승재 37만5455달러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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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악셀센은 덴마크 국가대표팀과 별도 계약을 체결했다. 파리 올림픽을 코앞에 두고 대표팀 코치진의 훈련을 받기로 한 것이다. 협회는 “올림픽은 덴마크 배드민턴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악셀센과 계약을 맺었다”고 역시 쿨하게 발표했다. 악셀센도 “올림픽에서 최상의 조건과 환경을 제공하여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게 덴마크 배드민턴은 파리 올림픽에서 ‘쿨하게’ 금메달을 따냈다.

안세영은 ‘소녀 가장’인가…후원사에 목 맨 협회

안세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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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도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 이건 선수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모든 선수를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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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배드민턴협회의 입장은 고장 난 녹음기처럼 한결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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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인기종목 특성상 공식후원사로부터 받은 현금과 용품으로 전체 대표팀 선수들과 주니어선수들을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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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선수를 앞세워 살림비용을 마련하지 않으면 대책이 없다는 얘기다. ‘소년소녀 가장’이 없으면 집안을 꾸려나갈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온갖 규정으로 대표선수들이 ‘딴맘’ 먹지 못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그 좋은 예가 ‘지도자의 명령과 지시에 복종해야 한다’는 대표선수 운영 지침일 것이다. 개인 광고 출연 금지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졸업 후 7년간 계약금은 1억 원을 초과할 수 없다’며 연봉까지 꽁꽁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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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구 스타 신유빈(20·대한항공)은 연봉이 2억4000만 원에 이른다. 광고 출연도 10곳이 넘는다. 각종 행사출연료도 짭짤하다. 그렇게 대표선수를 풀어놓은 탁구협회는 도대체 어떻게 운영하기에 끄떡없는가. 배드민턴 인구는 탁구 인구보다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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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걱정이 생긴다. 협회처럼 그렇게 후원사에만 목매고 있다가, 어느 날 그게 끊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표선수들의 국제 성적이 나쁠 때도 있을 텐데, 그땐 또 어쩔 것인가. 후원사에선 당연히 계약금을 낮추자고 달려들 게 아닌가. 박세리 하나가 수많은 골프 꿈나무를 키웠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스타가 없어서 아쉬운 경기단체가 얼마나 많은가. 언제까지 이런 ‘안전빵’ 시스템으로 세계 무대에 나설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빵은 ‘안전빵’이라던가. 한마디로 대표 선수 등에 빨대 꽂고 있는 구조 아닌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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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장 40명의 협회 임원부터 죽을 각오로 나서라. 어떻게 예산을 만들지 머리를 짜내라. 배드민턴은 동호인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 그만큼 기초가 탄탄하다. 뼈를 깎는 각오로 나선다면 왜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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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셀센은 중국어에 능통하다. 스스로 ‘안사이룽(安賽龍)’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게임의 지존’이라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안세영과 엮어 ‘안 씨 남매’라고 부른다. 이들 남매가 세계 배드민턴계를 호령하고 있다는 뜻이다. 8월 11일 악셀센이 안세영 인스타그램에 댓글을 달았다. ‘You have my respect and support!’ 존경과 지지를 보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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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도대체 왜 우리는 안 되는가. 젊은이들은 세계 운동장에서 펄펄 나는데, 어른들은 왜 그거 하나 뒷받침 해주지 못하는가. 이런 식으로 4년 후 LA올림픽에서 안세영이 단식 2연속 금메달을 따낼 수 있을까. 남자 단식의 린단이나 악셀센이 될 수 있을까. 실력대로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세계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목소리다. 하지만 지금 같은 구닥다리 ‘빨대 시스템’이라면 어찌 될까. 그건 안 봐도 비디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