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호

“포탄 부족이 불러온 북·러 밀착, 체스판 움직이는 손을 보라”

[긴급 진단 | 북·러 밀착, 격랑의 한반도]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24-07-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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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당선으로 러·우 전쟁 끝나면 푸틴은 北 팽할 것

    • 막다른 골목에 선 김정은의 ‘남한 지우기’

    • 문재인 정부의 지정학적 이해 부족이 부른 북·중 밀월

    • 미·중 패권 경쟁, 최종 승자 미국일 수밖에 없는 이유

    • 북한이 협상으로 ‘돌아올 다리’ 남겨둬야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6월 19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린 다음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이하 ‘북·러 조약’) 전문이 공개됐다. 외부로부터의 무력 침공에 대해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이 조약에 우리 정부도 즉각 반응했다. 장호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군사동맹에 준하는 북·러 조약 체결을 규탄하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는 재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번엔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한국이) 살상 무기를 우크라이나 전투 지역에 공급하는 것은 아주 큰 실수가 될 것”이라며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상응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이번처럼 한국 국가안보실장의 말에 대해 러시아의 외무부 장관도 아닌 푸틴 대통령이 곧바로 받아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어요. 푸틴이 얼마나 다급했던 걸까요. 그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에 한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임을 말해주죠.”

    7월 8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북·러 밀착의 출발점이 러시아의 포탄 재고 부족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포탄 확보 전쟁

    “2022년 2월 전쟁을 시작할 때만 해도 러시아는 재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길어야 1년이라고 본 거죠. 그런데 서방의 대규모 지원을 받은 우크라이나가 효과적으로 항전하면서 전쟁이 예상보다 훨씬 길어집니다. 전쟁 전 러시아의 포탄 재고는 1600만 발 이하로 추정되는데 개전 후 2년 동안 절반 이상을 썼어요. 당시 러시아의 연간 포탄 생산량이 100만 발 정도였으니까 생산능력의 4, 5배를 써버린 셈이죠. 이대로 가면 2025년 말 포탄이 바닥난다는 계산이죠. 러시아는 부랴부랴 포탄 공장을 증설해 연간 300만 발의 생산능력을 갖춤과 동시에 수입처를 찾습니다. 북한밖에 없죠.”

    북한과의 거래로 급한 불을 끈 푸틴이 북·러 조약 이후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가능” 발언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는 개전 초기 하루에 1만~8만 발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포탄이 부족해 하루 2000발 정도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포탄들이 어디서 오느냐죠. 전쟁 전 미국의 연간 포탄 생산량은 17만 발에 불과했고, 2024년에야 72만 발까지 늘렸습니다. 전 세계에서 포탄 재고가 충분한 나라는 한국과 북한밖에 없어요. 그런데 북한 포탄은 불량이 많고 명중률이 떨어지는 반면, 성능이 좋은 한국 포탄이 들어오면 전황이 바뀔 수도 있다고 푸틴은 생각한 겁니다.”

    김병연 석좌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통 경제학자 중에서는 드물게 구(舊)사회주의 국가들과 북한을 주로 연구해 통일·외교·안보를 아우르는 정세 분석과 정책 제안을 하고 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과 통일평화연구원장을 역임했고 통일미래기획위원회,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국민경제자문회의, 통일준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북·러 밀착 이후 한국의 자체 핵무장론이 부상하면서 한반도의 미래는 더욱 복잡한 고차방정식이 돼가고 있다. 김 교수는 “이 복잡한 고차방정식을 풀려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큰 구조를 포함해 체스판 전체를 머리에 넣고 체스판을 움직이는 손까지 봐야 한다”고 말한다.

    향후 3~5년 이내에 한반도가 격랑에 휩쓸릴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만약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끊고 전쟁을 하루라도 빨리 끝내려 할 겁니다. 미국과 유럽 나토국이 충돌할 테고 그 결과 서방이 분열되면 러시아와 중국은 쾌재를 부르겠죠. 김정은은 세계질서가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다극체제’가 되는 것을 기회로 여길 겁니다.

    다극체제에서 북한은 굳이 서방국가들로부터 핵보유국 인정을 받지 않아도 경제적으로 생존 가능하고 실제 핵 국가로 행동할 수 있다고 믿을 테니까요. 하지만 중요한 반전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 빨리 끝나는 게 김정은에게 유리하기만 할까요. 포탄이 아쉽지 않은 푸틴이 김정은에게 힘을 실어줄 이유가 없어요. 러시아가 북한을 팽(烹)할 가능성이 큽니다.”

    푸틴의 승리가 곧 김정은의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말씀이군요. 전쟁은 어떻게 될까요.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올 초 다보스포럼에서 만난 유럽 지도자들은 러시아라는 말만 나와도 부들부들 떨 정도였습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절대로 이 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기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막지 못하면 다음엔 자신들이 타깃이 된다는 위기감이 유럽 국가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푸틴은 김정은을 물고 사자 굴로 들어갔다

    ‌단기적으론 오히려 바이든의 재선이 북한에 더 유리할 수 있네요.

    “바이든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고 따라서 러·우 전쟁도 계속될 테니까요. 트럼프는 북핵 협상을 시도할 수 있고 세계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에 유리하지만 러·우 전쟁이 조기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는 불리합니다. 푸틴에겐 포탄이 필요한 만큼만 김정은이 필요합니다. 전쟁에서 지면 자신도 끝임을 알고 있는 절박한 푸틴이 김정은을 물고 사자 굴로 들어간다면 과연 한국은 괜찮을까요.”

    러시아가 패배하면 향후 어떤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을까요.

    “러시아가 이겨도 급속히 쇠퇴할 겁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예전 소련처럼 세계 초강대국이 되겠다는 대전략하에서 북한을 전략적으로 포섭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군사력 세계 2위이지만 경제력에선 강대국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전쟁 중 많은 외국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했습니다. 석유와 가스를 팔아 버티는 형국입니다. 해외투자가 있어야 기술혁신이 이뤄지고 생산성 증가에 유리하지만 지금은 그 경로가 막혀버렸습니다. 철수했던 외국 기업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러시아의 경제는 회복 불능입니다. 푸틴이 집권하는 한 러시아 경제는 크게 발전하기 어려울 거예요. 그렇다면 러시아에 보험을 든 김정은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과 잘 지내야 얻을 게 별로 없다?

    북한은 지난해 말 열린 조선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는 더는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규정했다. 북한 헌법에 규정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평화통일 3대 원칙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북한이 남한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러시아와 손을 잡는 이유는 뭡니까.

    “쉽게 말해 한국과 잘 지내봐야 얻을 게 별로 없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북한의 편익이라고 하면 경제적·외교적 편익과 핵 협상이 있는데, 대북제재 하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북한도 깨달았죠. 문재인 정부 때 한국이 미국과의 제재 공조에서 이탈할 것을 기대했지만 이뤄지지 않았고, 윤석열 정부는 제재를 푸는 데 외교적 도움은커녕 오히려 한미동맹 및 확장 억지력을 강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김정은이 바라는 것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군축 협상을 하는 겁니다. 여기에서도 남한으로부터 기대할 편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러시아나 중국이 이제 이러한 편익을 제공할 수 있으니 이 두 나라에 기대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올해 북한에 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 이행을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 활동’ 연장안을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거부하고 중국은 기권함으로써 부결해 줬으니까요.”

    그렇다고 해도 북한은 한국과 관계를 열어놓는 쪽이 유리할 텐데요.

    “중요한 것은 북한의 대내 요인입니다. 핵 도발→ 대북제재와 코로나→ 경제 위기→ 주민 불안→ 사상 통제→ 시장 억압→ 남한 문화 제거→ 대남·통일 정책 전환으로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 고난의 행군 때 탈북한 이들에게 먹고살기 어려운 이유를 물으면 ‘미국의 제재 탓’ ‘자연재해 탓’이라고 대답했으나, 최근 탈북민들은 ‘자본주의를 도입하지 않아서’ ‘권력층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아서’라고 대답한다고 해요. 이미 북한 주민들의 마음은 ‘콩밭’에 가 있어요. 콩밭은 바로 자본주의입니다. 그래서 2017년까지는 시장 활동을 묵인했던 김정은이 하노이회담 노딜 이후 자력갱생을 외치며 양곡판매소를 설치하고 외화 사용을 단속하더니 이제는 자본주의, 시장, 남한 문화 3종 세트 제거에 들어갑니다. 한국과 연방을 맺고 평화통일한다는 통일정책을 고수한다면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기 어렵고 남한 문화를 제거하기 힘들어지기 때문이죠.”

    북한이 러시아에 더 의존할 텐데 북·러 밀착이 단기 보험에 불과하다고 보는 이유는 뭡니까.

    “당장 포탄이 급한 푸틴이 김정은에게 뭐든 다 줄 것처럼 했지만 첨단 군사기술은 빼고 식량과 에너지, 외화 수입, 그리고 어느 정도의 군사기술만 주는 거래로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북·러 밀착은 상호 보험을 든 것과 비슷합니다.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서로가 필요한 것이지요. 전쟁 추이와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만 만약 러시아가 전쟁에서 코너에 몰린다면 푸틴의 기대와 반대로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더 큰 도움을 받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보험을 청구하는 경우이지요. 이때 러시아는 그 대가로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불리하지 않으면 러시아는 보험을 쓰지 않을 겁니다. 이 보험은 북한에 썩은 동아줄일지도 모릅니다. 푸틴은 전쟁에서 이긴 뒤 북한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러시아에 이익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푸틴이 북·러 조약을 맺으면서도 우리 쪽에는 ‘걱정 마라’는 시그널을 주는 이유겠지요. 만약 김정은이 트럼프에 이어 푸틴에게까지 모욕을 당하면 도발을 할 겁니다. 7차, 8차, 9차 핵실험이 유력하죠.

    북·러 밀착은 단기 보험, 푸틴의 배신 가능성도

    북한의 가장 큰 도발은 핵실험인데 지금까지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핵실험 자체는 별 의미가 없어요.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는 것은 전 세계가 알고 있으니까요. 북한의 핵실험 자체는 큰 파급력이 없습니다. 현 단계에서는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하는 것을 반기지 않습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중국으로선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미국으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게 될 테고, 북·러 조약을 맺은 러시아는 자칫 두 개의 전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을 말릴 겁니다. 반대로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국은 대만 공격과 관련해 주한미국이 개입하지 못하게 할 의도로, 러시아는 전황이 극도로 나빠져 핵을 사용했거나 사용을 만지작거릴 때 핵의 공포를 극대화할 의도로 북한을 부추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로서는 가장 나쁜 시나리오입니다. 그때는 북한의 핵실험이 한국 경제를 엄청나게 흔들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정책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이며 구조를 파악한 뒤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복잡한 구조와 변화무쌍한 지정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을 변화시킬 중요한 기회를 놓쳤다고 탄식한다. 그는 최근 쓴 칼럼 ‘문재인 정부의 북한 비핵화는 왜 실패했나’(중앙일보 2024년 6월 19일자)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과 대화하고 북·미회담을 주선하는 데 온 관심을 기울였을 뿐 비핵화 합의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을 협상으로 이끈 조건은 2016~2017년 발효된 ‘경제제재’였다. 만약 2017년 하반기 제재 강도가 유지됐다면 2019년 무렵에는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부분적 비핵화와 일부 제재 해제가 시작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에 급급해 제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 김정은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하려면 ‘억수 같은’ 제재가 필요하나, 남북 및 북·중 정상회담 이후 제재는 ‘호우’ 수준이어서 결과적으로 북한의 협상력을 키워주고 말았다.

    또 최근 펴낸 문재인 회고록(외교 편) ‘변방에서 중심으로’에서 미국이 1차 북·미 회담 장소를 싱가포르를 고집하는 바람에 중국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던 김정은이 시진핑을 만났고, 그로 인해 중국이 개입하게 됐다고 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지정학적 이해 부족’이라고 했다.



    패권 경쟁의 승자는? 美 잘해서 아니라 中 허약해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월 13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암살 시도 총격을 당한 직후 오른쪽 귀에 피를 흘리는 상태로 주먹을 흔들며 “싸우자”고 외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졌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7월 13일(현지 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암살 시도 총격을 당한 직후 오른쪽 귀에 피를 흘리는 상태로 주먹을 흔들며 “싸우자”고 외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졌다는 외신 보도가 쏟아졌다. [AP/뉴시스]

    “싱가포르 회담 전에 이미 김정은과 시진핑이 두 번이나 만났다는 사실은 빼놓았더군요. 이때부터 북·중관계가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하반기까지 북한에 나사 하나도 못 들어가게 막던 시진핑이 왜 마음을 바꿨을까요. 평창올림픽(2018)과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서 이러다간 미국이 북한을 중국 품에서 뺏어가는구나 싶었을 겁니다. 그 무렵 북한의 친미(親美)화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었으니까요. 문재인 정부가 판문점회담의 판을 너무 키운 것이 북·중 밀착을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는 훨씬 더 어려워졌습니다.”

    남북관계와 북핵 문제는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큰 구도 안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풀 수 없는 고차방정식이다. 한때 한국 정부는 우리가 중국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중국은 ‘셰셰(감사)’로 풀 수 있는 나라가 더는 아니다. 미국을 통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중국에 영향을 미치기 어려운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의 최고 전략가들은 미·중 패권 경쟁이 언제까지 지속되고 어떻게 끝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향후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미·중 패권 경쟁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바이든 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에서 앞으로 10년이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결정적 10년’을 말했지만 에드윈 퓰너 미 헤리티지재단(비영리 싱크탱크) 회장은 ‘indefinite’, 즉 시기를 알 수 없을 만큼 길 거라고 하더군요. 미·중 패권 경쟁은 세계가 경험하지 못한 특이한 케이스죠. 워낙 덩치가 큰 두 나라는 자기 완결성이 있어서 웬만한 제재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서로 안 보고 살 수 없을 만큼 운명적으로 얽혀 있어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푸는 데 10년밖에 안 걸릴까하는 의구심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할까요.

    “결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저는 결국 미국이 승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미국이 잘해서라기보다 중국이 허약하기 때문이죠. 10년 전만 해도 곧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와 시장경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것은 중국의 구조적 문제입니다. 중국은 내수와 과학기술에 기대를 걸지만 모두 어렵습니다. 중국의 사회 분위기와 불확실한 경제 상황에서 가계가 돈을 쓰려고 할까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미국이 유리할까요, 중국이 더 잘 할까요. 이미 답은 나와 있습니다. 사회주의 정치체제에서 자원을 한곳에 집중한다면 거기서는 기술개발 성과가 나오겠지만 모든 부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또 한 곳에서 개발한 기술을 다른 부문으로 확산하는 데서도 시장경제보다 크게 불리합니다. 중국의 남은 선택은 국영은행과 국영기업 민영화로 성장을 촉진하는 것인데 시진핑 체제에서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중국의 GDP는 미국 대비 70% 정도 되는데 앞으로 미·중 간 경제성장률 차이는 1%포인트 정도로 낮아질 거예요. 중국이 1년에 1%포인트씩 따라잡는다 해도 30년 이상 걸린다는 계산이 나와요. 중국의 인구는 줄고 미국은 증가하기 때문에 중국이 미국을 경제 규모 면에서 따라잡기는 힘들 겁니다.”

    북·러 밀착 이후 한국의 핵무장론이 다시 제기되고 있습니다.

    “지금 문제는 북핵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핵까지 연결된다는 겁니다. 러시아의 핵탄두 보유량을 감안할 때 우리가 자체적으로 핵탄두 몇 개를 보유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죠. 오히려 우리가 핵무장을 하지 않고 미국의 확장 억제에 의존하면서 대응하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체 핵무장론의 한계와 ‘아시아판 나토’의 가능성

    미·중 패권 경쟁과 러·우 전쟁이 지정학적 구조의 문제라면 한국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먼저 미국과 소통해 미국을 통해서도 러시아가 레드라인을 넘으면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압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본과 안보협력을 통해 한·미·일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좀 더 범위를 넓혀 일본과 함께 미국·영국·호주 3국 안보협의체인 ‘오커스(AUKUS)’ 필러(pillar·기둥)2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필러1 협력으로 미국은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을 제공했고 필러2 협력은 첨단 군사 역량의 공동개발을 포함할 수 있음). 우리의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들을 하나씩 실행하거나 실행을 준비하면서 북·러 밀착이 이처럼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도를 바꿀 수도 있다는 ‘시그널’을 중국에 보내야 합니다. 그 시그널을 본 중국이 한국을 압박하려 들지, 아니면 북·러 밀착을 견제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요. 하지만 대만 문제가 걸려 있는 중국으로선 ‘아시아판 나토’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을 테니 한국의 안보 공간을 고려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것은 실행하고 어떤 것은 준비하고, 어떤 것은 러·우 전쟁 상황을 지켜보면서 결정해야 하겠지요.”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지금 북한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그들이 협상으로 돌아올 다리를 남겨둬야 한다고 했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라는 것은 영구적 원칙이라기보다 국면적, 거래적 방안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김정은이 다급하고 절박한 데서 나온 일시적 방편이기에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구 분단론은 오히려 김정은의 의도가 실현되도록 도와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견고해 보이는 북·중·러의 결합도 일시적이고 조건부적입니다. 지정학적 바람이 바뀔 때 북한이 남북대화와 협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돌아올 다리’를 만들어둬야 합니다. ‘단기 비핵화→ 중기 경협→ 장기 경제통합→ 통일’은 여전히 최선의 통일 시나리오이며, 한국 정부는 이를 위해서라도 먼저 비핵화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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