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호

[럭셔리 스토리] 거친 저항문화 아이콘 비비언 웨스트우드

  •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입력2023-03-22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지난해 말 별세한 패션계의 대모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하위문화인 펑크 패션을 주류로 이끌었다. 그가 연구한 역사주의, 트위드, 타탄체크, 클래식 테일러링 등은 영국 패션산업 발전에 한몫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사회적 인습을 재생산하는 보수 주류 사회의 통념을 비판하고, 미래 대안을 제시하는 창구로서 패션의 잠재력을 연구했다. 환경과 인권의 중요성을 일깨우고자 자신의 브랜드와 컬렉션을 사용하기도 했다.
    [비비안웨스트우드]

    [비비안웨스트우드]

    비비언 웨스트우드(Vivienne Westwood)는 1941년 영국 더비셔의 작은 마을에서 구두 수선공 아버지와 방직공 어머니의 장녀로 태어났다. 1954년 해로 아트 스쿨에서 잠시 패션과 은세공을 공부했다. 그때부터 그는 교복을 펜슬스커트로 개조하거나 한창 유행하던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뉴 룩 스타일을 롱드레스로 만들어 입는 등 남다른 감각을 발휘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로 사범학교에 진학한 그는 초등학생들을 가르치며 노점에서 보석을 만들어 파는 일을 병행했다. 1962년 댄스 홀 매니저이던 데릭 웨스트우드와 결혼하면서 웨스트우드라는 지금의 성을 갖게 된다. 1965년 데릭과 이혼한 후 18세인 맬컴 맥라렌(Malcolm McLaren)과 만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예술학교에 다니던 맥라렌은 기성세대의 문화에 저항하며 성과 마약, 로큰롤을 탐닉하고 아방가르드 미학에 심취한 당대의 전형적 반항아이자 패션을 사랑하는 ‘댄디(dandy·멋쟁이 남성)’였다.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남자친구였던 맬컴 맥 라렌. [Gettyimage]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남자친구였던 맬컴 맥 라렌. [Gettyimage]

    반항의 패션 ‘펑크’를 창조하다

    1960년대 영국은 대중매체가 급속도로 발달하고 청년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영 패션이 부흥했다. 기성세대의 권위에 반기를 드는 학생운동이 활발히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저항운동은 저항문화로 승화했고,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영국 하위문화의 대표 격인 펑크 패션을 창조했다.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까지 디자인한 작품은 한마디로 ‘반항 패션’이다. 그는 1971년 런던 킹스로드 430번지에 첫 번째 매장 ‘렛 잇 록’을 오픈하고, 로큰롤과 빈티지 의상, 1950년대 유행한 ‘테디 보이 스타일(Teddy Boy Style)’ 의상을 판매했다. 테디는 영국 에드워드 7세(1841~1910)의 애칭으로 테디 보이 스타일은 1950년대 초 런던에 등장한 에드워디안 룩을 과장한, 젊은이들의 풍속 패션이다.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1972년 가죽 바이커 재킷 슬로건에서 딴 ‘살기엔 너무 타락했고, 죽기엔 너무 이르다(Too Fast to Live, Too Young to Die)’로 매장 이름을 바꾸고 가죽 바이커 재킷 등을 판매했다. 이 슬로건은 영화배우 제임스 딘에게서 영감을 받아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 문구는 디자이너들이 티셔츠에 문양으로 새기거나 유명 스타의 타투로도 종종 사용되는 등 청춘의 방황을 나타내는 상징적 문구가 됐다. 아이돌 그룹 빅뱅 지드래곤의 타투 문구로도 유명하다. 1974년에는 상호를 ‘섹스’로 변경하고 섹스와 포르노그래피를 연상시키는 고무와 가죽 소재의 의상을 판매한다. 맥라렌은 간판 위에 직접 자신의 철학인 “가식은 옷을 입지만 진실은 발가벗기를 좋아한다”라는 문구를 넣었다. 나치 문양과 파괴와 같은 파격적 단어를 티셔츠에 사용하기도 했다. 1976년에는 상호를 ‘난동꾼들’로 바꾸고 첫 번째 펑크 의류 매장을 오픈한다. 매장에서는 가죽 끈과 지퍼 등을 사용해 성적 페티시즘을 자극하는 본디지 슈트를 판매했다. 펑크스타일은 1976년 여름, 런던에서 출연했다고 패션사에 기록돼 있다.

    뉴 로맨틱 스타일과 新낭만주의

    197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하고, 절약 정신을 바탕으로 합리적 소비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서구 사회는 여러 가치가 공존하기 시작하며 다원주의 사회로 변모한다. 1980년에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낭만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흐름에 따라 패션계는 역사적 전통을 가진 브랜드와 오트쿠튀르, 아방가르드한 테일러 링이 주목받는다.

    1981-1982 가을겨울 시즌(F/W) 비비안웨스트우드(한국 공식 브랜드 표기명)의 ‘해적’ 컬렉션은 뉴 로맨틱 스타일과 신낭만주의 운동으로 조명을 받았다. 1982 봄여름시즌(S/S) ‘새비지’ 컬렉션에서는 페루 원주민 여성에게서 영감을 받은 부푼 페티코트 스커트에 브라운 새틴 브라를 티셔츠에 위에 덧입힌 파격적인 스타일링을 선보였다. 이는 속옷을 겉옷 형태로 재탄생시킨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지난해 말 별세한 비비언 웨스트우드. [Gettyimage]

    지난해 말 별세한 비비언 웨스트우드. [Gettyimage]

    1983년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파리 오트쿠튀르 컬렉션에 참가했는데, 영국 디자이너가 파리 오트쿠튀르 컬렉션에 참가한 것은 미니스커트를 창조한 영국 디자이너 메리 퀀트(Mary Quant) 이후 두 번째였다. 이후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1983 F/W 컬렉션을 마지막으로 맥라렌과 결별했다. 1984년 비즈니스 파트너 카를로 다마리오를 만나 이탈리아로 기반을 옮긴다. 1984년을 전후해 그녀의 컬렉션에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뉴욕의 그라피티 예술가 키스 해링의 작품, 힙합 스타일, 도쿄 밤거리의 네온사인 등 동시대의 문화적 요소가 다양하게 반영됐다.

    영국 전통과 체크의 재발견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개성을 뚜렷이 각인시킨 새로운 창조적 전환점은 1984년 10월 파리에서 발표한 1985 S/S ‘미니 크리니’ 컬렉션이다. 이 컬렉션에서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발레 공연 ‘페트루시카(Petrushka)’에서 영감을 받아 빅토리아 시대의 상징인 크리놀린을 축소한 미니 크리니를 소개해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후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 발표한 첫 컬렉션 1987-1988 F/W ‘해리스 트위드’에서 그는 영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요소인 여왕의 관과 대관식 케이프 등으로 표현한다. 여왕이 어린 시절에 착용한 붉은 트위드 재킷을 미니 크리니와 결합하고 귀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프린세스 재킷을 보여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옛 문화의 전통을 이어나가며 타탄, 해리스 트위드 등의 영국산 모직물을 즐겨 사용한다. 1989-1990 F/W ‘키테라섬으로의 순례’ 컬렉션에서는 완벽하게 테일러링된 영국의 새빌로 스타일을 선보였다.

    웨스트우드는 여성 하이패션의 중심지로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프랑스와 영국의 패션 문화를 비교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영국 패션의 가능성을 도모하고자 했다. 여기에 1990년대 절충주의 스타일을 취함으로써 영국 정체성에 프랑스식 재해석을 가미한 의상을 상당수 선보인다. 이질적인 문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공존하면 서로 절충돼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기도 하고, 경계를 해체하거나 모방하면서 독창적 문화를 이뤄내기도 한다. 웨스트우드는 자신이 연구한 요소들을 통합해 전통·문화·존엄에 대한 존경과 패러디, 성적 해방에 대한 사랑 사이의 모순을 작품에 반영했다.

    나오미 킴벨 넘어뜨린 킬힐 ‘플랫폼 슈즈’

    1989년부터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응용예술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던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1991년 25세 연하의 제자 안드레아스 크론탈러와 결혼한다. 부모조차 매스컴을 통해 알았을 만큼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2년 컬렉션 준비로 바쁜 신혼부부의 모습이 포착됐다. 이 시기 비비언 웨스트우드가 만든 의상의 가장 큰 특징은 역사주의다. 1993-1994 F/W ‘앵글로매니아’ 컬렉션에서는 영국 테일러링의 전통과 모직물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이를 현대화하는 작업에도 적극 참여했다. 1993년에는 60년 전통의 타탄체크 스카프와 니트웨어 전문 기업 록캐런사와 협업을 진행했다. 자신의 새 남편을 위한 ‘맥안드레아스(McAndreas)’라는 고유 타탄체크를 개발해 ‘앵글로매니아’ 컬렉션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이 타탄체크는 다른 종류의 타탄체크를 믹스해 디자인한 것으로 전통적인 체크 패턴과 달리 풍부한 색감과 깊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0년 3월 이탈리아 밀라노 한 호텔에서 열린 비비안웨스트우드 자선 행사에서 부두아 향수가 전시됐다. [Gettyimage]

    2010년 3월 이탈리아 밀라노 한 호텔에서 열린 비비안웨스트우드 자선 행사에서 부두아 향수가 전시됐다. [Gettyimage]

    1993년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브랜드를 고급 맞춤복과 고급 기성복 사이의 중간 개념인 데미 쿠튀르의 퍼스트 라인인 ‘골드 라벨’과 기성복 라인인 ‘레드 라벨’로 구분했다. 1998년에는 남녀 캐주얼 라인인 ‘앵글로매니아’와 향수 브랜드 ‘부두아’를 론칭했다. 앵글로매니아는 영국 숭배자라는 뜻이다. 안방, 내실을 뜻하는 ‘부두아’는 여성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자 자신의 단점이나 잠재력을 발견할 수 있는 친밀한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톱 모델 나오미캠벨을 넘어지게 만든 플랫폼슈즈. [Gettyimage]

    톱 모델 나오미캠벨을 넘어지게 만든 플랫폼슈즈. [Gettyimage]

    굽 높이가 높은 플랫폼 슈즈는 비비안웨스트우드의 대표 아이템이다. 플랫폼 슈즈는 굽뿐만 아니라 밑창 전체를 높게 하고 굽을 신등 부분과 같은 가죽으로 재단한 구두다. 1993-1994 F/W ‘앵글로매니아’ 컬렉션에서 30cm 높이의 플랫폼 슈즈를 신은 모델 나오미 캠벨이 런웨이에서 넘어진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이후로도 식을 줄 모르는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킬힐 사랑은 런웨이를 걷는 모델들을 떨게 하고 있다.

    2016년 비비언 웨스트우드의 세 번째 남편이자 디자이너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포 비비안웨스트우드’ 컬렉션을 맡는다. 2017 F/W 컬렉션에서는 비비안웨스트우드의 ‘런던 펑크의 여왕’ 타이틀을 이어받은 펑크스타일 콘셉트의 ‘PUNK’ 레터링을 강조한 의상이나 거대하게 부풀린 오버 사이즈 재킷과 스커트를 착용한 모델들이 독특한 컬러의 눈 화장과 헤드피스로 시선을 끌며 런웨이에 등장했다.

    ‘오브(ORB)’ 넘어 환경과 인권까지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영국 패션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패션협회로부터 1990년, 1991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2006년 ‘레드 카펫 디자이너상’을 수상, 1992년 영국 여왕으로부터 대영제국 훈장(OBE)에 이어 2006년 DBE 작위(2등급의 작위급 훈장)의 훈장을 수여받았다. 2007년 ‘공로상’을 수상했다. 원래 오브(ORB)는 구 형태에 십자가를 올려놓은 것으로 왕가의 보물, 보주를 의미한다. 오브는 강력하고 신성한 왕권의 상징으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비비언 웨스트우드에게 작위를 수여하면서 오브 마크 사용을 허가했다. 브랜드 비비안웨스트우드 마크인 ‘오브’는 미래 지향적인 행성과 오브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전통과 미래의 조화라는 철학이 담겨져 있다.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브렉시트, 기후변화, 인권 등 국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 하지 않는 디자이너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2006 S/S 컬렉션에서는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I am not a terrorist)’라는 슬로건의 프린트와 ‘선동에 대한 적극적 반항(Active Resistance To Propaganda)’이라는 뜻의 AR을 그라피티로 프린트했다. 2010 S/S 컬렉션에서는 기후변화에 따른 환경문제를 에코 슬로건으로 시사했다. 2013 S/S 레드 라벨 컬렉션에서는 기후변화 혁명 캠페인의 일환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코스메틱 브랜드 러시(Lush)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100% 오가닉 코튼으로 제작한 ‘클라이밋 레볼루션 기프트 랩’을 선보이고, 판매 금액을 전액 기후변화 혁명 캠페인 활동에 기부한다.

    2014년 S/S 남성복 컬렉션의 비비안웨스트우드 쇼. 이라크-아프간 전쟁 시 관련 기밀문서를 유출한 미군 브래들리 매닝의 사진이 상의에 프린트돼 눈길을 끈다. [Gettyimage]

    2014년 S/S 남성복 컬렉션의 비비안웨스트우드 쇼. 이라크-아프간 전쟁 시 관련 기밀문서를 유출한 미군 브래들리 매닝의 사진이 상의에 프린트돼 눈길을 끈다. [Gettyimage]

    2014 S/S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2010년 위키리크스에 이라크-아프간 전쟁범죄 기록 39만여 건의 기밀 자료를 넘긴 혐의로 체포된 미군 브래들리 매닝의 사진을 프린트하거나 장식했다. 2015년에는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에서 주관하는 ‘북극 살리기 캠페인’에 동참했을 뿐만 아니라 캠페인의 티셔츠를 디자인했다. 북극 살리기 캠페인에는 영화배우, 패션모델, 화가, 영화감독, 디자이너, 팝 아티스트, 록 스타 등 세계적인 유명 인사 60명이 동참했다. 2015년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영국 정부의 셰일 가스 개발 허가에 항의하기 위해 UN이라고 쓰인 화이트 탱크를 몰고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 자택으로 향했고, 가스 개발이 기후 변화를 심화할 거라고, 지지자들과 함께 퍼포먼스로 주장했다. 2018 S/S 안드레아스 크론탈러 포 비비안웨스트우드 컬렉션의 광고는 유니섹스 콘셉트와 디자이너가 강조하는 인권 평등에 어울리는 성소수자들을 메인 모델로 구성해 개성 강한 캠페인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진행된 비비안웨스트우드와 영국을 대표하는 헤리티지 브랜드 버버리의 컬래버레이션은 캡슐 컬렉션으로 출시됐고, 버버리 특유의 체크 패턴으로 표현된 비비안웨스트우드의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카르도 티시, 비비안웨스트우드의 공동 디자이너인 비비언 웨스트우드와 남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함께 제작한 한정판 룩이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삼림 벌채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열대우림 지역사회와 함께 일하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쿨어스(Cool Earth)를 지원하고 홍보하기 위한 공동 작업임을 밝혔다.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손으로 직접 쓴 메시지와 초대형 티셔츠를 자선단체에 헌정했다.

    2018년 12월 비비언 웨스트우드는 20년 동안 지속적으로 환경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패션 어워드에서 스와로브스키가 주는 긍정적 변화상을 수상했다. 긍정적 변화상은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 사람을 기리는 상이다. 2019 F/W 컬렉션에서는 인권과 환경을 위해 싸우는 인물들이 모델로 참여해 지구인 70억 명이 기후변화로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과 아울러 잘못된 민주주의와 브렉시트에 대한 항거 메시지를 알렸다.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홍보대사이기도 한 그는 윤리적 패션 이니셔티브(Initiative)를 통해 가방을 생산함으로써 유엔 국제무역센터를 후원한다. 환경보호 비영리단체 쿨 어스를 도우며 열대우림을 구하고 기후변화를 막는 데도 열성을 다한다.

    비비언 웨스트우드(가운데)가 2018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다국적 화학 회사의 프래킹 반대 시위를 이끌고 있다. [Gettyimage]

    비비언 웨스트우드(가운데)가 2018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다국적 화학 회사의 프래킹 반대 시위를 이끌고 있다. [Gettyimage]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