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찬성하면 시민, 반대하면 극우… 왜 우리만”

[Special Report | ‘카오스’ 한국 정치를 말하다] 두 쪽 난 한남동, 청년들이 밤을 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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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01-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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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개인이 자발적 참여했는데 극우단체라니…”

    • 응원봉 맞서 ‘멸공봉’ 든 탄핵 반대자들

    • 영하 11도 추위에 어묵·핫팩 나눠주며 격려

    • ‘백골단’ 논란에는 “국민 정서 맞지 않다” 반대

    • ‘배신자들’ 노래 부르며 탄핵 찬성 의원 규탄

    • 한파 속 시위대 쉼터 된 ‘대장동 버스’

    • ‘탄핵 촉구’ 참가자는 “‘尹 처단’ 답하라”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최진렬 기자]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최진렬 기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민’이라고 표현하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하는 이들은 ‘극우단체’ ‘극우’ 등으로 표현합니다. 어감이 주는 인상이 너무나 다르지 않나요? 저는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도 많이 가봤어요. 민주노총과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여러 조직에서 많이들 참여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저쪽은 ‘시민단체’라고 불리는데, 우리는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데도 ‘보수단체’ 더 나아가 ‘극우단체’라고까지 불리더군요. 우리가 파시스트는 아니잖아요?”

    1월 9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앳된 얼굴을 한 고등학생 지모(18) 군이 “왜 우리한테만 이러느냐”며 불만을 내비쳤다. 이날 지 군은 검은색 패딩 위로 태극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친구 2명과 함께 집회 현장을 찾았다. 친구 오모(18) 군은 “처음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소식을 듣고 ‘X친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면서도 “집회 현장에서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서 대통령이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알게 돼 생각이 바뀌었다”고 부연했다.

    “경호처, 여론조사 맘에 안 든다고 없애자는 행태 부적절”

    1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동아DB]

    1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동아DB]

    “여러분 구호 외치겠습니다. 민주당 해체! 민주당 해체! 민주당 해체!”

    무대 위에서 자신을 32세 여성이라고 소개한 사람이 선창하자 한남동 일대 4차선 도로를 200m가량 점거한 시민 수백 명이 팔을 흔들며 구호를 따라 외쳤다. 그들 중에는 이른바 ‘멸공봉’을 흔드는 이도 적잖았다. 시위 집회 참가자들은 붉은빛을 내는 경광봉을 멸공봉이라 부르며 지니고 다녔다. 응원봉이 탄핵 찬성 집회 현장을 형형색색 수놓고 있었다면 탄핵 반대 집회는 멸공봉이 현장을 붉게 물들였다.

    이날 저녁 한남동의 기온은 영하 11도. 살을 에는 추위에 시위 참여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추운 날씨 탓에 시민들은 인터뷰 와중에 한시도 발을 땅에 붙이고 있지 못했다. 평소 광화문 및 한남동에서 벌어지는 보수 집회에 자주 참석한다는 지 군은 “날씨가 너무 추워 평소보다 참석자들이 적은 편”이라며 아쉬워했다.

    시위 참석자들은 서로 핫팩과 어묵, 햄버거, 컵라면 등을 나누며 격려했다. 팩맨, 강용석 등 유명 보수 유튜버들이 시위 현장에 어묵차를 보내며 지원 공세를 펼쳤다. 이른바 ‘계엄버거’로 불리는 롯데리아 햄버거 역시 현장에서 시민들에게 뿌려졌다. 계엄버거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12월 1일 경기 안산시 롯데리아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계엄을 사전 모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롯데리아 햄버거에 붙여진 별명이다.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는 크게 두 목소리가 나왔다. “윤 대통령 탄핵이 부당하다”는 목소리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의 집권을 막자”는 주장이다. 두 주장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았다. “탄핵을 막아야 한다”고 말한 이들 가운데 다수는 “이재명 대표가 집권하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 최모(35) 씨 역시 비슷한 주장을 펼치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민주당은 경호처가 윤 대통령의 체포를 막으니까 ‘경호처를 없애자’고 하고, 윤 대통령 및 국민의힘 지지율이 상승하니 ‘여론조사 업체를 없애자’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인들한테 조금만 불편하면 다 없애자고 하는데 이런 행태를 과연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전날까지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경호처 폐지 내용이 담긴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4건 제출한 것을 겨냥한 발언이다. 최 씨는 직접 시위 현장을 촬영해 유튜버들에게 영상물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언론은 보수 집회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날 시위대는 유독 ‘자발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나는 보수단체 소속이 아니며 유튜브 채널을 통해 관련 소식을 접한 뒤 자발적으로 모였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30 남성들은 ‘신남성연대’ ‘그라운드씨’ 등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을 줄줄이 언급하며 해당 채널들을 볼 것을 권했다. 유튜브 등 뉴미디어는 이들의 집단 감정을 키우고 있었다. 이날 집회 현장에는 2030 남성들이 다수 있었다. 집회 운영진 역시 2030 청년들을 주로 단상 위로 올렸다.

    “우리는 왜 항공 샷(숏) 찍지 않느냐”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앞줄 가운데)이 1월 9일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을 소개하고 있다. [채널 A 캡처]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앞줄 가운데)이 1월 9일 국회 소통관에서 ‘반공청년단’을 소개하고 있다. [채널 A 캡처]

    언론에 대한 불신은 상당했지만 하고 싶은 말은 많아 보였다. 기자가 직장명을 밝히자 “그 쪽과는 인터뷰 안 한다”며 화를 냈지만, 이내 20~30분가량 쉬지 않고 말했다. “탄핵 찬성 집회는 참가자들이 최대한 많이 담기도록 ‘항공 샷(숏)’으로 보여주는데, 우리 쪽은 반대로 ‘확대샷’이 주로 나온다” “양측 집회 현장 모두 다툼이 벌어지는데, 반대 집회 참가자의 폭력성만 강조한다” 등 불만 이유도 다양했다.

    이날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2030 청년들로 구성됐다는 반공청년단이 국회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한 날이다.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해당 기자회견을 주선했다. 하지만 반공청년단이 예하 조직으로 ‘백골단’을 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백골단은 1980~90년대 민주화 시위를 진압했던 사복경찰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과거 투석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흰 헬멧을 착용해 백골단이라는 별칭이 붙여졌다.

    반공청년단 측은 “우리는 민노총의 대통령에 대한 불법 체포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인 청년들”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지만 여론은 싸늘했다. 해당 기자회견 직후 “분변을 못 가리는 정치”(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국민의힘이 하다하다 백골단과도 손을 잡았다”(노종면 민주당 의원) 등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민주당 등 6개 야당은 김민전 의원에 대한 ‘제명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공동 제출하기도 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 역시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보냈다. 백골단을 내세우는 것이 ‘국민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30대 김모 씨는 “돕고 싶은 마음에 나선 것은 고맙다”면서도 “백골단에 대한 인식이 워낙 좋지 않고, 폭력경찰 등의 나쁜 이미지가 있는 상황인데, 굳이 이름을 그렇게 지은 까닭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튜브를 보면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을 폭행하는 등 폭력을 저지르고 있는데, 매번 우리만 폭력단체처럼 나온다”며 “상황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여론이 그런 만큼 조심하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전 의원은 이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수의 윤석열 대통령 지지 청년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집회가 조직화되지 않기를 원하며, 반공청년단이라는 명칭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이어 “백골단이라는 명칭 역시 좌파에 명분을 줄 수 있는 표현이라서 사용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집회 곳곳에서는 “물리적 폭력은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집회용 차량에 올라선 한 청년은 “정당한 방법으로 집행을 진행하려 노력하는 분들을 보고 많은 것들을 배웠다”며 “우리는 모두 폭언이나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단상 위에서는 때때로 강경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집회 참가자들은 ‘배신자들’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함께 부르며 여당 의원들을 규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해당 노래는 안철수, 김상욱 등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석했거나, 찬성 의사를 밝힌 국민의힘 의원을 응징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어머니 모시고 온 아들

    대장동 버스 내부 모습. [최진렬 기자]

    대장동 버스 내부 모습. [최진렬 기자]

    한파 속에서 오랜 시간 시위가 진행되다 보니 집회 참여자들이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난방버스’가 운영되는 진풍경도 나타났다. 이 버스의 이름은 ‘대장동 버스’. “이재명 대표를 구속하라”는 취지의 문구로 래핑이 돼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 대장동 버스 내부는 시위 참여자들이 마주한 채 몸을 녹일 수 있도록 개조돼 있었다. 커피, 차 등 마실 거리도 마련돼 있어 짧은 시간이나마 이곳에서 몸을 녹이고 가는 시민들이 제법 있었다. 탑승객들은 기자에게 “여길 왜 왔느냐”며 화냈지만, 이내 “커피 좀 마시고 쉬다 가라”고 말하며 자리를 내줬다. 대장동 버스를 운영하는 최인식 씨는 “한 보수 유튜버가 버스 운영비를 후원해 주고 있어 시민들로부터 따로 후원금을 받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불과 100m 가량의 거리를 두고 탄핵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리다 보니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1월 12일 윤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가 반대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에게 문구용 커터 칼을 휘둘러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도 발생했다. 50대 남성 A씨는 이들이 야당 대표를 욕하는 것을 듣고 분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100여 m 떨어진 곳에서 집회를 하는 탄핵 촉구 시위대 현장으로 향했다. 참가자들은 노래와 공연을 하는 간이 무대를 중심으로 30여 명이 모여 앉아 있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따라 불렀다.

    집회 참가자들은 기자의 취재에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 참가자는 기자에게 “여긴 왜 왔냐”고 물었고, “취재를 하러 왔다”고 하자 “윤석열 대통령을 처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며 여러 차례 질문을 했다.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니 이내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여기 오지 말라”며 밀어내기도 했다.

    한편 이날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는 “윤 대통령의 행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오는 등 집회가 목적이 아니었다. 충청에서 어죽을 판다는 박모(33) 씨 “점심 장사를 마친 후 어머니와 함께 한남동에 들렀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이 외치는 구호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다. 평소 어머니가 보수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보는데, 이번에 꼭 한남동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왔다. 어머니가 가고 싶어 하는데 아들이 ‘싫다’면서 안 모시고 가는 것도 웃기지 않느냐. 어머니의 생각이 바뀌었으면 하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가 좋아하시니 그걸로 됐다.”

    신동아 2월호 표지

    신동아 2월호 표지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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