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스프의 본거지 독일 루트비히스하펜의 야경. 파이프라인과 공장 불빛이 거대한 은빛 성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화학처럼 일상적인 학문도 없다. 입고 먹고 마시는 모든 것에 화학이 깃들어 있다. 당신이 사는 집에 쓰인 원자재, 거실 바닥에 깔린 카펫, 카펫 위의 인조 우드 테이블, 테이블 위의 플라스틱 컵, 컵 속에 담긴 탄산음료의 탄산. 이 모두가 화학이 낳은 작품들이다.
바스프(BASF)는 독일의 글로벌 화학기업이다. 플라스틱, 농화학, 정밀화학, 석유, 천연가스 등 화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생산한다. 만드는 제품이 3만종이 넘는다. 1864년 설립됐으며 한국지사도 두고 있다.
바스프는 ‘화학 왕국’ 외에 다른 면모로도 주목받고 있다. 선구자적 환경 경영이 바로 그것이다. 바스프는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미국 ‘포춘’이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화학기업’에 선정됐다. 다우존스가 선정하는 지속가능성 지수에서도 매년 상위권에 오른다. 독일은 유럽연합은 물론 세계에서도 환경 선진국으로 꼽힌다. 바스프 최고경영자 위르겐 함브레이트 회장은 “유럽에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달성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독일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지적한 바 있다.
독일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에서 자동차로 2,3시간 거리에 있는 루트비히스하펜. ‘바스프’의 고향이자 본거지다. 반경 7km 내에 바스프 본사와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건물 200여 동(棟)이 들어서 있다. 도시 절반 정도가 공장인 셈이다. 벤츠, 아우디 등 자동차기업이 몰려 있는 슈투트가르트와 함께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도시로 꼽힌다. 인연을 맺진 못했지만, 현대의 기업도시 울산이 자매도시를 제안했었다고 한다.

1864년부터 바스프와 함께한 루트비히스하펜은 독일의 대표적 산업도시. 바스프는 ‘페어분트 시스템’ ‘지속가능성 도구’‘탄소대조표’ 등으로 친환경 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루트비히스하펜은 달랐다. 코를 킁킁거려봐도 석유나 염료 등 ‘화학적’인 냄새는 맡을 수 없었다. 단정한 도로와 볕이 드는 식당과 나무와 낙엽이 있는 풍경은 여느 한적한 중소도시와 다르지 않았다. 밤에는 은빛이 신비롭게 반짝이는 거대한 연구도시로 모습을 바꿨다. 일반적인 공장과 사뭇 다른 경쾌한 표정의 비결은 뭘까.
24시간 모니터링
“중앙감시통제소 직원들이 24시간 공장 주변을 관찰합니다. 감시카메라를 통해 모니터링 포인트의 연기 움직임을 살피지요. 굴뚝 주변의 연기를 보면 공기 중 이상 여부를 단박에 알 수 있습니다. 풍향에 미세한 변화가 보이면 바로 점검에 들어갑니다. 철저한 감독으로 미세먼지, 공해, 유발 연기, 폐수 등 오염물질의 누출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지요.”
바스프 홍보 책임자 가레트 리씨의 말이다. 오염물질의 누출이 없으니 퀴퀴한 냄새도 음지 분위기도 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바스프에는 지속가능성센터(Sustainability Center)가 있다. 기후보호와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만 수행하는 곳이다. 제품 생산부터 오염물질의 사후관리까지 경영 전반에 친환경 개념을 입히는 역할을 한다. 정부기관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 기후만 따로 관리하는 조직을 만든 것은 바스프가 처음이다. 2008년에는 기후보호책임자(Climate Protection Officer·CPO)라는 직위를 신설해 눈길을 끌었다.
바스프의 친환경 경영 원칙은 그룹의 6대 가치에도 잘 드러난다. 1.환경보호(Environmental Protection) 2.직원 건강과 안전(Employee Health and Safety) 3.공정안전(Process Safety) 4.유통안전(Distribution Safety) 5.제품 책임의식(Product Stewardship) 6.지역주민 인식과 비상 대응(Community Awareness and Emergency Response) 등이다.
바스프의 경영철학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틀 안에 있다. 1987년 공개된 뒤 1992년 브라질 리우 정상회의에서 전파된 이 개념은 더는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개념과 실천은 별개다. 지속가능 발전개념이 경영에서 활용된 역사는 길지 않다.
환경 경영은 1990년대 초 도입됐으나 다소 주춤했던 게 사실이다. 미국과 일부 개발도상국들은 노골적으로 환경 경영 불참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는 ‘환경 경영은 경제적 이익에 반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금은 반대다. 친환경이야말로 회사를 먹여 살릴 비전이라는 컨센서스가 형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