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소 전, 체중이 57kg일 때 찍은 사진(왼쪽). 단식 7일째 모습(체중50.5kg)이다(오른쪽).
9월18일 통보받은 건강검진 결과다. 수치가 보여주는 진실은 이렇다. 다른 부위는 정상이지만 ‘배둘레햄’이 대(大)자 사이즈로 둘러진 몸매라는 것. 사우나 남탕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맹꽁이배 체형의 여성 유형이랄까. 20년 넘게 언론 현장에서 밥을 먹었으니 그 정도 수치는 약과라며 웃을 이도 있겠다. 맞다. 웃어도 된다. 배꼽티는커녕 허리 벨트를 매본 게 언제던가. 불룩한 허릿살을 완벽하게 가려주는 XL사이즈 티셔츠와 엠파이어 라인의 웃옷만 줄기차게 찾은 세월은 또 얼마인지.
‘언젠가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말이다! 장롱에 굳세게 걸어놓은 허리 25인치 시절의 그 벨트를 차고 나서보리라.’ 어리석은 바람 끝에 내다버리지 못한 허리띠는 또 몇 개란 말인가. ‘아줌마’란 이름으로 불려도 백번 천번 당연할 이 나이에 S라인을 찾고 싶은 맘을 들킨들, 그리하여 누가 웃은들 그게 뭐 어떻다고.
‘그래, 어쩌라고’ 스스로 묻고 배 퉁기며 검진결과지를 받은 날 저녁에도 술자리에 나갔다. 올 추석 연휴를 앞두고 2권의 주간지를 마감하며 가진 저녁모임과 기름진 회식은 도합 5차례. 그 2주일 사이 체중계 눈금은 또 조금씩 위로 향했다. 당연하지. 눈물나게 맵지 않으면 짠 음식, 기름에서 갓 건져낸 바삭 고소한 튀김류를 좋아하는데다가 ‘무주공산 유주명산(無酒空山 有酒名山)’이라고 ‘내 귀에 도청장치’는 늘 공명(共鳴) 중이니 할 말이 없지. 음주 후 꼭 찾는 뜨거운 국물은 또 어떤가. 나름대로 위를 줄여보겠다고 끼니를 건너뛰다 먹는 소나기밥은 또 어떻고.
사실 몸은 이미 1년 전에 심각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정기검진 결과지에 기록된 체중 63kg.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해야 할 지 모르겠으나 좀체 체중계를 믿지 못하는 현상이 낳은 결과였다. 거울을 봐도 ‘음 괜찮구만, 이만하면’, 흡족까진 아니지만 불만스럽지 않은 몸매라고 생각했더랬다. 대학 3학년 때 46kg에서 쭉 50kg대 이하를 고수하다가 결혼, 출산을 거치고 30대 중반까지 결코 53kg 이상을 넘겨본 적 없었기에 체중계 눈금이 아무리 늘어나도 늘 3kg을 줄인 수치로만 인식하는 현상이 만든 자기 최면? 아니면 체중계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할까.
바넘 효과는 대다수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성격이나 취향을 유독 자신만 그러하다고 확신하는 상태를 일컫는 심리학 용어다. 이런 경향은 특히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좋은 것일수록 강해지기 때문에 착각인 줄 모르고 제 편한 대로 규정하고 정당화한다는 것. 체중계 바늘까지 낮춰 본 착각도 다 그 속이리라.
하여 지난해 5월 1차 단식을 감행한 바 8kg의 체중감량에 성공했으나 고량진미폭음(膏粱珍味暴飮)의 습벽은 고치지 못했다. 그러니 황금의 연휴라는 추석 연휴 일주일을 앞두고 불어날 체중은 어떨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제사를 모셔온 지 10년째인 큰며느리가 차례상을 등진다는 게 될 일은 아니지만 올 추석은 남편에게 주부의 짐을 지우기로 하고 2차 단식의 장도(壯途)를 떠나기로 했다.
D-1일 : 단식 기념 소주 한 병 자작
이틀 전부터 단식에 대한 부담감이 엄습했다. 토요일 0시30분 마감을 끝내고 집에 들어와 씻고 나니 새벽 1시 반. 마감에 시달린 위(胃)가 뭔가를 넣어달라는 신호를 마구 보낸다. 피곤한 날은 잠도 안 오는 법이다. 늘 하던 대로 냉장고에서 술병과 안주거리를 뒤졌다. 더욱이 이 술은 단식 전 마지막 술일 터. 한 잔 한 잔이 각별했다. 그렇게 DVD 한 편을 보며 먹다 남은 치킨 두 조각으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취침은 새벽 4시. 오전 10시에 일어나 간만에 대청소를 하며 허기를 달래다(단식해야 하니까) 결국 식욕을 못 이긴다. 오후 3시 박형진 시인의 책 ‘변산반도 쭈꾸미 통신’에서 배운 비법대로 라면을 끓여 먹고 밥 한 공기를 더 먹었다. 1차 단식 후 1년 넘게 이미 위는 늘어날 만큼 늘어났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