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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적 인간의 출현

인간의 착한 본능 설명하는 이론들

이타적 인간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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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최후통첩 게임’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실험을 해보자. 방 안에 세 사람이 있다. 한 명이 탁자 위에 1만원짜리 한 장을 올려놓고 내게 말한다. “이 돈을 당신께 드리니 이 돈의 일부를 앞에 있는 분과 나누십시오. 1원도 좋고 100원도 좋고, 1만원을 다 주어도 좋은데, 만약 앞의 분이 그 금액을 흔쾌히 받아들이면 당신이 제안하신 대로 금액을 서로 나눠가질 수 있고, 앞의 분이 거절하시면 제가 그 돈을 도로 가져가겠습니다.”

독재자·최후통첩 게임

경제학 교과서의 개념대로 사람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이렇게 결론을 내릴 것이다. 금액이 1원이든 1000원이든 앞의 사람은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다. 안 받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무조건 최소한의 액수를 제안하라. 하지만 1982년 독일 쾰른 대학에서 실시한 실험에서 제안자들은 평균 37%에 해당하는 몫을 응답자에게 건네주었고, 절반을 떼어주겠다고 제안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독재자 게임이라는 것도 있다. 기본적인 상황은 최후통첩 게임과 같지만 응답자에겐 거절할 권리가 없다. 제안자가 주는 대로 받아야 한다. 만약 최후통첩 게임에서 거절당할까봐 두려워서 제안자가 액수를 높여 말했다면, 독재자 게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독재자 게임에서도 대부분의 제안자는 총 몫의 25% 정도를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 물론 최후통첩 게임에 비해 상대방에게 나눠주는 몫이 줄어든 것을 보면 상당수 사람이 응답자의 거절이 두려워 액수를 높여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거절의 위험이 없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상당한 몫을 나누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1986년 카너먼 등이 행한 실험에서 20달러를 주고 18달러와 2달러로 나누는 첫 번째 안과 10달러씩 똑같이 나누는 두 번째 안을 제안했을 때, 참가자의 76%가 두 번째 안을 선택했다.

이를 통해 인간은 극도로 불평등한 분배보다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방식을 선호하며, 일부가 합리성과 이기심이라는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라 행동하지만, 또 다른 일부는 공정함 또는 정의의 기준에 따라 행동함을 알 수 있다.



경제이론과 맞지 않는 이타적 행동

호의에는 호의로 답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신뢰 게임’도 있다. 제안자 A가 응답자 B에게 일정 액수를 건네면 바로 3배가 된다. 즉 A가 1만원 가운데 5000원을 B에게 주면 B의 수중에는 1만5000원이 생긴다, 그리고 B는 여기서 일정 액수를 다시 A에게 주어야 한다. A는 얼마를 주고, B는 또 얼마를 돌려줄 것인지가 ‘신뢰 게임’의 포인트다.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면 1만원을 다 줘서 3만원으로 불린 다음 절반씩 나눠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나눠준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A와 B 모두 최초의 금액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하고 한 푼도 주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실험 결과 A는 상당한 액수를 B에게 건네고 B 역시 상당한 액수를 돌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이타적 또는 협조적 행위를 설명해줄 몇 가지 대안이론을 제시했다. 선한 사람은 선한 사람끼리 만나는 ‘유유상종’ 가설(거래를 할 때 이타적인 사람은 이기적인 사람을 피하고 이타적인 사람을 찾아서 하므로 협조가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값비싼 신호 보내기’ 가설(선행 자체가 잘났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의사소통’ 가설(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협조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집단선택’ 가설(이타적 행위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더라도 다른 구성원들에게 혜택을 주는 행위이므로 집단 안에서 권장된다) 등이다.

이러한 대안이론들은 집단 내에서 이타적 행위가 어떻게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는지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는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행위적 특성을 발전시켜왔으며, 사회규범으로부터 이탈하는 사람들에게는 징계나 보복을 가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영화 ‘다크 나이트’에서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두 배에 타고 있던 고담 시 사람들은 양쪽 모두 기폭장치를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죄수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와 ‘신뢰 게임’을 벌인 것이다. 감독은 왜 영화 속에 이 장면을 삽입했을까? 범죄와 온갖 부정행위로 물든 고담 시지만 결정적인 순간 시민들은 이타적 행동을 함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악이 아니라 선임을 보여주었다. 슈퍼 히어로는 배트맨이 아니라 고담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영화 덕분에 ‘이타적 인간의 출현’을 다시 펼쳐들었다. 이 책은 왜 조커가 실패하고 배트맨이 이길 수밖에 없는지를 멋지게 설명해준다.

신동아 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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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동아일보 출판팀장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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